초, 중, 고 시절엔 친구들이 다 그 지역출신이었다.
지역적인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캠퍼스에 들아가자 상황이 달라졌다.
강원도에서 제주도까지 그야말로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순식간에 나의 휴먼 네트웍도 전국구로 돌변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경향각지의 친구들을 만난 것도 소중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핵심은 따로 있었다.
지난 35년 이상, 숱한 사람들과 푸른 우정을 멋지게 엮어왔다는 것,
그 한결같은 행보가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것이 진정한 보배였다.
감히 고백하건대, 그 긴 세월 동안 나는 각양각색의 사람들 사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었다.
캠퍼스 신입생 때 만났던 제주도 출신의 '친구'가 있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수도권에서 살다가 사십대 중반이 되어서야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업을 시작해 확실한 기반을 다졌다.
내 친구지만 자랑스럽고 멋진 사나이의 모습이었다.
제주도는 사방팔방이 모두 광활한 바다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엄마품처럼 생각한다.
사업이 안정궤도에 접어들자, 그 친구는 어느날 홀연히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평상시 그의 로망 중 하나였던 값비싼 '요트'를 한 척 구입했다.
일본에서부터 직접 요트를 조정해 3일만에 현해탄을 건너 제주항으로 돌아왔다.
순전히 바람에만 의지한 채 용감무쌍하게 항해했던 '무동력 귀환'이었다.
그 당찬 사내가 캠퍼스적 친구들을 제주로 초대했다.
자신의 요트로 푸른 바다를 함께 항해 하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멋진 제의였다.
그런데 각자 사는 게 바빠 바로 달려갈 순 없었다.
해를 넘겼다.
드디어 4월 21일 새벽 비행기로 제주를 향해 날아갔다.
그렇게 다섯 부부 열 명의 향기로운 추억만들기가 삼다도에서 시작됐다.
'사려니숲길' 트레킹도 좋았고 '애월 해안로' 산책도 행복했다.
'금오름 탐방'과 '큰엉 올레길'도 감동적이었다.
'제주 돌 문화원'도 멋진 곳이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의 백미는 무엇보다도 '요트항해'였다.
선장님의 "이안" 구호와 함께 12인승 요트는 잔잔한 바다로 미끄러지듯이 나아갔다.
마치 물 만난 물고기 같았다.
빠르고 날렵한 청새치처럼 시종일관 부드럽고 매끈했다.
요트 선실 내부엔 침대, 냉장고와 주방, 화장실, 다용도실까지 온갖 편의시설들이 완비되어 있었다.
고급진 디자인과 마감재들이 품질에 품격을 더해주고 있었다.
검푸른 바다로 나가자 까마득하게 멀고 먼, 내 시야의 끄트머리께에서 광활한 수평선과 드넓은 창공이 푸른 빛깔의 한 선으로 맞닿아 있었다.
또한 싱그럽고 맑은 해풍이 우리들의 귓볼을 부드럽게 간질이며 어디론가 흘러갔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폐부 깊숙한 곳까지 깨끗함과 청량감이 그대로 밀려들었다,
리프레시와 힐링의 행복감이 모세혈관을 타고 전신을 휘감았다.
쪽빛으로 물든 우리네 영혼까지도 이완과 감사로 충일했다.
바다낚시도 즐겼고 간식도 먹으며 우정과 삶을 찬미했다.
저마다 한번 벌어진 입들이 좀처럼 다물어지지 않았다.
몇 시간만에 뱃머리를 돌려 모항으로 돌아가는 바닷길.
붉은 태양이 서녘 수평선 너머로 장엄하게 빠져들고 있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인도양 안다만 선셋'의 장관과 감동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됐다.
"와우~"
긴 탄성이 흘렀다.
아름답고 황홀했다.
친구의 단골인 횟집에서 맛있는 음식으로 만찬까지 끝내고 그의 별장으로 향했다.
'썬샤인 힐 제주'였다.
조용하고 깔끔했다.
초현대식으로 설계된 고품격 '타운 하우스'였다.
깜깜한 밤, 열 명은 넓은 목재 테라스에 앉아 제주의 별빛을 헤아리며 한 잔 술에 길고 유쾌한 정담을 이어갔다.
아내들의 완벽한 힐링과 릴렉스에 남자들의 가슴에도 감사와 만족이 진하게 새겨졌다.
심야에 잠자리에 들면서 '친구의 존재와 우정의 의미'를 한번 더 곱씹어 보았다.
우리들이 각각 넓은 목장, 별장, 요트를 직접 소유할 필요는 없다.
우리 주변에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진솔한 삶을 교류하고 깊은 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과 다채로운 개성으로 건강하게 존재하고 있으면 된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친구의 요트를 한번 이용했다고 해서 생색을 내거나 값싼 자랑질을 하고 싶진 않다.
요트와 타운 하우스, 그 자체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눈에 보이는 물질이나 형상은 사실 껍데기에 불과하다.
진짜로 중요한 알맹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과 사랑'에 있다고 믿는다.
나와 당신은, 믿음을 주는 사람인가.
주변 여러 지인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인가.
또한 많은 이들이 죽는 날까지 소중한 인연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인가.
영혼이 맑고 투명한가.
배려와 헌신이 어떤 개념인지를 잘 알고 있으며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인가.
스스로에게 겸허한 마음으로 자문해 보면 결론은 바로 나온다.
이것이 진정한 컨텐츠요, 인생의 바람직한 스피릿이다.
삶에 정답은 없다.
단지, 각 개인들의 선택과 집중이 있을 뿐이고 서원과 기도가 있을 뿐이다.
생각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운명을 낳는다.
그리고 개인의 인생 결과치에 대해선 본인이 당당하게 책임지면 그만이다.
이것이 인생살이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서 나는 고백하고 싶다.
진실된 우정과 신뢰가 인생에서 가장 긴요한 주춧돌이요 기둥이라고.
아름다운 섬,
제주에서 향기로운 추억을 잔잔하게 엮어준 다섯 부부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깊은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
"모두에게 건강과 평안이 언제나 함께 하기를"
첫댓글 멋진 여행을 했네요!고급요트보다 더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해서 그 즐거움이 더 했겠습니다.아무리 좋은게 있더라도 함께 해줄 사람이 없다면 그 의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지요..일정이 안돼 같이 하지 못한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참 멋진 만남이네요. 함께 하는 여행의 진정한 맛이 풍겨 나옵니다. 멋진 우정에 감동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