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계, 인권위 농성 시도 “탈시설조례 폐지, 막아달라”
서울시의회 개최 이틀 앞두고 인권위에 ‘긴급 시정 권고’ 요구
경찰에 가로막혀 건물 진입 못 해
서울시의회 임시회에서 ‘조례폐지안’ 발의 예정
19일에 송두환 인권위원장 면담 약속하며 해산
인권위가 입주해 있는 나라키움저동빌딩 입구를 막아선 경찰. 출입구가 봉쇄되어 있다. 사진 강혜민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은 17일 오후 2시, 인권위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피플퍼스트 활동가들이 “내 인생을 시설에 가두지 마라” “탈시설은 인권이다. 나와 시설이용인 자립 막지 마”라고 알록달록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 서울시의회 개최 이틀 앞두고 장애계, 인권위 농성 시도
서울시의회 임시회 개최 이틀을 앞두고 장애계가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점거 농성을 시도했다. 19일에 열리는 임시회에 서울시의회 의장 명의로 ‘서울시 탈시설조례’ 폐지를 담은 조례안이 발의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17일 오전 7시 30분경, 중증장애인들이 ‘서울시 탈시설조례’ 폐지에 대한 긴급 시정 권고를 요구하기 위해 인권위를 찾았다. 그러나 경찰이 이미 건물을 둘러싼 채 막아서고 있었다. 인권위가 입주해있는 나라키움저동빌딩 측에서 경찰에 시설 보호 요청을 한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새벽 6시부터 대기했다고 한다.
건물 안으로 우연히 들어간 활동가 대여섯 명은 엘리베이터를 멈춰 세웠다. 이들은 14층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점거하고 A4 크기의 스티커를 벽면에 붙였다. 스티커에는 “중증장애인을 시설에 감금하고 격리하지 마라” “탈시설은 권리다. 서울시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안을 폐기하라”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외 활동가들은 경찰 방패에 막혀 건물에 진입하지 못한 채 바깥에 있어야 했다.
17일 오전 8시, 인권위 14층 엘리베이터를 점거한 장애인 활동가들. 사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아래 탈시설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등은 오후 2시, 인권위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인권위에 서울시의 탈시설조례 폐지에 대한 긴급 진정을 하고, 인권위의 반인권적인 행태를 규탄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장애인들은 인권위 농성을 선포했다. 기자회견이 열리는 인권위 건물 앞에는 침낭과 깔판이 준비되어 있었다.
기자회견 시작 직전, ‘건물 보안팀장’이라고 밝힌 중년 남성이 사회자에게 다가와 신신당부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오가고 안전에 위험이 있으니 여기서 텐트를 치거나, 노숙하면 절대 안 된다. 여기는 사유지다”라고 강조했다. 해당 건물은 기획재정부 소유의 건물이다.
농성을 위한 침낭과 깔판이 쌓여 있다. 사진 강혜민
- 서울시 탈시설 정책의 근거가 된 ‘탈시설조례’ 폐지 위기
이날 탈시설연대 등이 인권위를 찾은 이유는 지난 3월 21일, 서울시의회가 수리한 ‘서울시 탈시설조례 폐지조례안’ 때문이다. 서울시의회 의장은 수리한 날부터 30일 이내에 의장 명의로 주민청구조례안을 발의해야 한다. 따라서 오는 19일 열리는 서울시의회 임시회에서 폐지조례안이 발의될 예정이다. 장애계는 임시회 개최 이틀을 앞두고서 이를 막아보고자 긴급 시정 권고를 요청하며 인권위를 찾은 것이다.
탈시설연대 등은 “서울시 탈시설조례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과 헌법에 기반한 조례이자, 서울시가 10여 년 넘게 수행해 온 탈시설 자립생활 정책의 법적 근간을 마련하고자 제정한 조례”라면서 “주민조례발안법 4조에는 ‘법령을 위반하는 사항은 주민조례청구 제외 대상이 된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서울시의회 의장은 조례폐지안을 수리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가 입주해 있는 나라키움저동빌딩 입구를 막아서고 있는 경찰. 그 앞에 휠체어 탄 장애인 활동가가 서 있다. 사진 강혜민
기자회견 사회를 본 정민구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윤석열 대통령과 오세훈 시장의 콤비로 인권의 시간이 뒤로 가고 있다. 지금 서울시는 탈시설을 위한 최소한의 근거(탈시설조례)조차 없애려고 한다”면서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인권위는 왜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있나”라고 규탄했다.
정 활동가에 따르면 인권위에는 장애인 차별과 관련한 중요한 다수의 사안이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계류되어 있다. 장애차별시정기구인 인권위가 전혀 일을 안하고 있는 것이다. 전장연 등은 작년만해도 인권위에 7개의 사안을 진정했다. 여기엔 지하철 출근길 선전전에서 발생한 서울교통공사‧경찰의 과잉진압,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의 장애비하 발언, 오세훈 시장의 탈시설 왜곡 발언 등이 포함된다. 올해는 서울시 탈시설조례 폐지에 대한 긴급 진정을 포함해 서울시의 반(反) 탈시설 정책에 대한 2개의 진정을 한 바 있다. 정 활동가는 “작년과 올해 총 10개의 사안을 인권위에 진정했으나 인권위는 묵묵부답”이라며 갑갑함을 표했다.
발달장애인이자 탈시설장애인 당사자인 박경인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발달장애인이자 탈시설장애인 당사자인 박경인 탈시설연대 대표는 “시설에서는 ‘안 된다’는 소리를 너무 많이 듣고 자랐다. 시설은 제 허락도 없이 저를 이 시설, 저 시설에 보냈고, 저는 사람들한테 ‘안녕’이라는 말도 못한 채 헤어져야 했다.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었다”면서 “저는 완벽한 사람이 아닌데 시설 선생님들은 ‘완벽한 사람’이 되길 제게 요구했다. 그게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제가 (정신)병원에 들어간 이유는 시설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건강한 사람이었다”면서 “언젠가 다시 시설로 돌아가야 할까 봐 무섭고, 어느 순간 사람들이 없어질까 봐 여전히 무섭고 불안하다. 인권위가 우리 목소리를 잘 들어주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오후 2시 30분, 탈시설연대 등은 박진 인권위 사무총장과 1시간 30분가량 면담을 진행했다. 면담 결과, 장애계는 서울시의회 임시회가 열리는 오는 19일에 송두환 인권위원장과 면담하기로 했다. 서울시 탈시설조례 폐지에 대한 긴급 진정에 대해 인권위는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인권위원장과의 면담이 잡히면서 이들은 애초 예정된 농성은 하지 않기로 하고, 오후 4시 20분경 해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