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6일(금)
* 시작 기도
주님...
내 안에서 끊임없이 솟구쳐 나오는 정욕은 세상을 향한 나의 욕망 때문입니다.
진흙과 더러운 것을 솟구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처럼 말입니다.
이런 나는 바람에 나는 먼지와 같은 자요 키질할 때 날아다니는 겨와 같은 자입니다.
이런 내가 어떻게 중심을 잡고 주님 품에 거할 수 있겠나이까?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는 가벼워 안 될지라도 오직 주님의 중심으로 주님의 품으로 인도하사 그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온전히 덮으사 세상에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하시고 내 눈을 닫아 주님만 보게 하시며 내 눈을 막아 주의 소리만 듣게 하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세상이 아닌 주의 말씀을 듣고자 달려가는 주의 종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약 4:1-10
제목 : 정욕을 이기기 위하여 마귀를 대적하는 방법.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5.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 나의 묵상
야고보서를 통해서 당시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먼저 교회와 사도들은 시험 중에 있었다.
게다가 세속적인 신앙의 위협이 그들 앞에 있었다.
그리고 교회의 지도자들이 사람들을 외모로 판단하여 부자는 융숭하게 대접하는가 하면 가난하고 남루한 이들은 차별하기도 하였다.
교회 안에서는 시비와 다툼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는 선생이라 자처하는 지도자들이 그 주요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3:1절에서는 자신을 포함한 선생 된 자들에게 무릇 선생이 된 자는 더 큰 심판 받을 것을 알아서 선생이 많이 되지 말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제 4장에서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다툼과 분쟁에 대하여 심도 있게 다룬다.
욕심을 내어 빼앗으려고 해도 얻지 못하고 그것으로 인하여 시기와 심지어 살인까지 할지라도 원하는 바를 능히 얻지 못하고 그래서 다투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다투고 싸워서 그것을 빼앗으려고 했던 아주 나쁜 심성(정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야고보사도는 이렇게 지적을 한다.
너희가 얻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을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믿는 자들 중에 간음이 난무했던 당시를 사도는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이는 비단 간음한 여인들에게만 메시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음란한 여자들과 함께 간음을 자행한 남자들을 포함하며 또한 육체로 간음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들의 마음으로 영으로 이미 간음한 남녀를 가리켜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이다.
또한 남녀 간에 간음이 아닐지라도 세상에 마음을 빼앗겨 세상과 짝하고 친하게 지내는 자들은 이미 간음한 것인데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과 원수 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골로새서 3:5절에서 말하는 땅의 지체 중 탐욕이며 탐욕은 곧 우상숭배라고 하였다
(골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악한 정욕과 사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곧 우상숭배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아닌 다른 제3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면 상대방은 그 허탈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사람과의 관계만 아니라 우리를 만드시고 아들의 생명으로 낳으신 하나님도 동일하시다.
나의 생명을 포함한 모든 소유권이 주께 있는데 이것이 내 것인 양 내 마음대로 사용하고 그것도 모자라 나의 신랑되신 주님을 떠나 다른 그 무엇에게 마음을 준다면 나의 완전한 신랑 되신 주님께서 얼마나 마음 아파하시겠는가?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원수를 맺는 지름길이다.
(4b-5)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주의 영, 성령께서 나를 사모하여 나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신다.
늘 내가 가는 곳에 함께 하시며 내가 어디를 가든지 동행하신다.
그런데 주님과 함께 거하기 좋은 곳이 아니라 내 정욕대로 나의 탐욕으로 인하여 간다면 성령님이 나를 떠나지는 않으시지만 내 안에서 어떻게 거하실 수가 있겠는가?
송장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하고, 시궁창 썩는 냄새로 가득 채워진 그 자리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배려한다면 그런 자리에 어떻게 갈 수가 있겠는가?
그 안에 계시는 성령님은 코를 막고 견뎌하기 힘들어 하실 것이다.
성령께서는 그래도 참으시고 그런 나를 위하여 기도하신다.
그런 곳으로 들어가지 말기를 말이다.
그래도 계속 들어갈 때 성령님은 시기하기까지 나를 붙잡기 위하여 사모하신다.
나는 욕심과 말씀이 서로 부딪히는 경우 너무도 쉽게 욕심에 굴복하여 넘어지는 나의 모습을 본다.
내 안에서 싸움이 벌어지지만 결국 욕심 쪽으로 기울고 만다.
이것은 싸움이랄 수도 없다.
아예 나 자신을 그 욕심 앞에 갖다 바치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나의 욕심과 정욕을 조장하는 마귀를 대적하라고 한다.
그러면 그 마귀가 피할 것이라고 말이다.
마귀를 대적하는 것은 일명 대적기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마귀는 내게서 떠나갈지어다.”
이런 류의 기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 중 최고의 기도, 대적하는 기도 중 최고의 대적기도는 다름 아닌 이미 마귀와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신 주님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
정욕과 탐욕이란 주님의 말씀 외에 또 다른 그 무엇으로 공허함을 채우고 배불리려는 마음이다.
이제 그 공허함을 다른 그 무엇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양식인 예수 그리스도로 채우기를 원한다.
그것은 곧 주의 말씀으로 채우는 것이며 그 말씀이 생명의 말씀이요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가 아닌가?
이 참된 양식을 먹고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고 늘 주님과 함께하여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거하는 연합의 신비를 경험하게 된다.
그 안에는 십자가와 부활의 고난이 포함되지만 이런 고난도 내가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덮고 계시고 내 안에서 나를 지키시는 주님께서 감당하시기 때문에 더 이상 나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주의 품안에 있는 동안에는 내게 닥치는 고난이라도 그것은 이미 주님의 고난이 되는 것으로 주님과 내가 하나 되는 연합의 신비를 맛보게 된다.
나는 오늘도 하나님의 아들을 양식으로 먹기 원한다.
왜냐하면 세상에 묻혀 죽어가는 자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양식인 아들을 먹으므로 살기 원해서이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사는 인생이 최고로 복된 인생이 아니고 무엇이랴?
샘은 한 구멍에서 단 물이든 쓴 물이든 한 가지만 뿜어낸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정한 마음과 부정한 마음을 동시에 쏟아내기도 한다.
이는 내가 목사이기 이전에 성도요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치 않은 일이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다시 한 번 내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며 통회한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세상의 쾌락과 향락을 좇아 살던 나는 이제 슬퍼한다.
이는 나의 더럽고 추한 죄악상을 적나라하게 들추어내기 때문이다.
애통하며 울라고 하시는 말씀처럼 그런 나의 죽기에만 합당한 죄를 보면서 애통해 하고 운다.
쾌락을 좇아 웃던 자가 이제 그 추하고 더러운 나의 적나라한 죄의 모습 앞에서 절망하며 애통해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렇게 죽는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로 다시 일어난다.
나의 즐거움이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내가 원하던 것이 잘 되고, 통장에 돈이 쌓이며, 건강의 예후가 여실하게 드러날 때 그리고 자녀들이 잘 되는 것을 볼 때 즐거워하지 않았나?
물론 이런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이런 현상으로 인하여 나 자신을 높이지 말고 오히려 주 앞에서 낮추라고 명하신다.
그럴 때 주님께서 진정으로 높여주신다고 약속하신다.
(9-10)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죄악된 나의 실체를 똑바로 직시하고 가슴을 치며 애통한다.
정말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다.
늘 솟구치는 진흙과 더러움과 같이 정욕과 탐심으로 나를 일으키려 했던 자였다.
그로 인하여 내 마음을 쥐어뜯으며 대성통곡한다.
죄에 오염될 뿐 아니라 죄 그 자체로서 죄의 실체를 직시한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바로 이런 자가 복된 자라고 하신다.
(마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또한 주의 은혜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신을 낮추는 자를 주님께서 그 날, 곧 주님의 때에 높여 주실 것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내 속은 언제나 진흙과 더러운 것을 솟구쳐 내는 바다와 같고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흩날리는 겨와 같나이다.
내가 먼지로 지음 받았을 뿐만 아니라 내 심령이 죄로 오염되었기 때문이며, 나의 육체가 여전히 아담 안의 본성인 옛 사람으로 죄의 세력의 지배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 안에 거하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그 자리가 나의 안전한 피난처가 되게 하시고 바로 그곳에서 쉐키나의 영광을 보게 하옵소서.
말씀이 있는 아둘람, 그곳이 아버지의 나라임을 믿나이다.
나를 긍휼히 여기사 주께서 주시는 참된 양식을 먹고 오늘 하루도 살게 하옵소서.
양식이 존재를 결정하오니 나는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는 자입니까?
주의 말씀이 나의 양식입니다.
주여, 나를 도우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