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청년 장준하 연습현장을 다녀와서
박한용(민족문제연구소 상임연구원)
표정에 결의, 절도는 있어야 되고
8월 7일 토요일 낮 뮤지컬 “아! 장준하” 연습실을 찾아 나섰다. 이날은 24절기의 하나인 입추. 가을이 길목에 들어서는 날이다. 그런데 웬걸, 리허설장 입구인 세종문화회관 광장의 분수마저 온천수로 느껴지는 염천이었다. “어제는 단원 한 명이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최악이죠. 다른 단원들도 목이 쉬고.” 연습실로 가면서 장준하기념사업회 이준영 사무국장이 단원들의 열정을 이렇게 전한다. 공연을 준비하는 세종문화회관 5층 서울시무용단 연습실은 냉방이 되어 있지만, 수십 일 이상 강훈련을 하다보니 일어난 사태이다. 더위보다는 열정이 더 뜨거웠다는 얘기이다. 연습실 문을 열자 단원들이 삼삼오오 짝지어 연습을 하고 있었다. 총검술을 하는 단원들, 춤동작을 맞추는 이들, 혼자 왔다 갔다 하면서 노래를 하는 이. 저마다 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1. 표정에 결의 1. 절도 있어야 되고 2. 힘(Energy) 끊어 치기 3. Three 박자 명확하게·예민하게“
조연출의 메모장을 슬쩍 훔쳐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장준하, 불꽃의 민족주의자를 생각하며
아! 장준하(작·연출:조한신)”는 청년 장준하(역 조승룡)가 평생의 반려 김희숙(역 임유진)를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해 일본군에 입대했다가 마침내 일본군을 탈출한 후 중경 임시정부 광복군이 되어 분단 조국에 돌아오는 과정을 극화한 뮤지컬이다.
기자는 해방 후 장준하의 삶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다. 이승만·박정희 독재권력과 분단현실을 거부하고 자주와 민주 그리고 평화통일을 위해 목숨마저 조국의 제단에 바친 불꽃의 민족주의자 장준하. 그러나 ‘운명의 적’ 박정희와의 대결은 너무나 험난했다. 일본군 장교출신과 광복군 장교 출신의 대결, 독재와 민주주의의 투쟁, 분단세력과 통일세력의 충돌이라는 한국 현대사에서 화해할 수 없는 두 줄기 물결이 부딪친 것이었다.
이를 두고 누구는 체육관대통령과 재야대통령의 싸움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1975년 장준하는 약사봉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한국 현대사의 한 거인은 그렇게 더운 피를 이 땅에 적시며 쓰러졌다. 박정희가 역사에서조차 지우고 싶었던 이름이 바로 장준하였다.
일장기는 걸리고 단원은 울먹여
기자가 잠시 이런 상념에 젖어있을 때 ‘짝’ 박수 소리가 나며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극은 장준하의 신천소학교 선생님 시절부터 시작했다. 장준하는 부임하자마자 학생들의 댕기머리를 댕강 잘라버리고 과수원을 뒤집어 학교건물을 이곳에 새로 짓는다. 옳다고 생각하면 밀어붙이는 그의 뚝심에 마을 사람은 질린다. “하루도 편할 날이 없어” 마을사람들은 당황해 하면서도, 장준하를 ‘도사선생’이라고 불렀다. 불가능 해 보이는 일들을 마치 도사처럼 잘 풀어낸다는 뜻이다. 신천소학교는 발랄한 처녀 김희숙과 장준하의 첫 만남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발랄하고 희망찬 신천소학교는 일본 경찰이 학교로 들이닥치면서 먹구름이 깔린다. 일경은 학교에 일장기를 걸라고 강요한다. 일경의 강요에 장준하의 친구 김용묵(역 서동하)은 천근같은 발걸음으로 일장기를 교사에 건다. 리허설임에도 연습장은 순간 침묵과 긴장에 휩싸였다. 누군가 한숨을 가느다랗게 쉬었다.
“며칠 전 일장기를 걸 것이냐 아니면 걸지 말 것인가를 두고 단원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졌습니다. 20대 젊은 배우들은 절대로 걸지 말자고 주장했죠. 30대 이상 배우들은 걸어야 한다, 식민지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한 거죠. 결국 배우들끼리 투표를 해서 걸기로 결정을 본 겁니다.”
이준영 국장이 알려주는 비화이다. “일장기를 걸기로 결정하자 젊은 배우들 가운데는 울먹거리고 사람도 있었어요.” ‘아하, 그랬구나.’ 기자가 고개를 끄덕일 즈음 장준하의 독창이 들려온다. “아무리 외면해도 아무리 잊으려 해봐도 / 나를 항상 따라다니는 걸 피할 수 없어” 장준하의 독창이 기자의 가슴에 아프게 스며들었다.
추악한 친일 군상, 살고 싶으면 고개를 숙여라
1941년 장준하는 김용묵과 동경 유학을 떠난다. 동경은 전쟁의 광기가 피비린내처럼 풍겨나고 있었다. 살인자가 영웅이 되는 시대. 전쟁의 광기에 휩싸인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집단 무용과 노래가 살벌하다. 그들은 조선인들에게 요구한다. “살고 싶으면 말없이 고개를 숙여라.” 일제의 강요에 의해 마침내 장준하는 학병을 ‘자원’한다. 학병 때문에 2년 만에 돌아온 조선에는 고향의 내음이 사라졌다. 역겨운 친일군상들의 광태만이 식민지 한반도를 뒤덮고 있었다. 기자 본디 친일문제에 관심이 높은지라 작은 눈과 어두운 귀를 치켜세웠다.
“아름다운 웃음으로 내 아들과 남편을 전장에 보내자 ···· 대동아 새 언덕을 쌓으렵니다 우리는 동방의 여인들” 내노라하는 ‘친일여성지도자’들이 발표한 글들이 노래로 재현되어 꾀꼬리처럼 울린다. 이광수, 최남선, 서정주, 주요한 등 거물친일파들의 망언들이 터져나온다. “민족의 등불로 자부하였던 신문”들의 추악한 행태 그리고 “누군지 말 안해도 아실 분은 다 아시는” 일본군 장교도 등장한다.
해설자(역 박완규)는 “천황을 위해 지껄이던 더러운 입”들이 “나중에 대한민국을 망쳐놓았다”고 준엄하게 질타한다. “살인자와 배신자는 존경을 받고 / 광야를 달리던 사람들은 쓸쓸히 사라져” 간 현실이 오늘의 대한민국이며, 해방 후 장준하 또한 비참하게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준영 국장은 실제 무대에서는 이들의 친일 행각이 배경 화면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고 귀뜸을 해주었다.
못난 조상이 되지 말기를
리허설의 무대는 중국으로 바뀌었다. 1943년 학병으로 평양에 끌려간 장준하는 자원해서 중국 서주의 쓰카다부대에 배속받았다. 중국에 있어야 탈출도 쉽고 그가 가고자 했던 임시정부도 더 가까워지기 때문이다(계산이야 그렇지만 실제 장준하는 쓰카다부대에서 중경까지 장장 6000리 즉 2400킬로미터를 걸어가야 했다). 서주 탈출에서 파촉령 넘기 그리고 중경 임정에 이르는 과정은 무대 장치 없이 진행된 리허설임에도 감동과 극적인 장면 그리고 명대사와 명곡이 이어졌다(곡은 송시현과 김대성이 만들었다). 장대한 중국 대륙을 배경으로 팔로군과 신사군 그리고 국부군 지역을 넘나들며 일본군의 추적을 따돌리는 아슬아슬한 장면, 제비도 넘지 못하고 일본군마저 진군을 멈추었던 파촉령을 넘는 과정. 그리고 파촉령의 눈보라 속에서 서로의 몸을 부비며 생사를 넘나드는 숨 막히는 밤. 뼈를 깎는 추위 속에 장준하의 독창이 심금을 울렸다. “친구들 오늘 이 밤을 잊지를 말자 / 맨살을 에이는 차가운 바람을 잊지를 말자 /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 내 나라를 다시는 빼앗기지 않기 위해 / 이 고통 묵묵히 견디며 나가자” 비정한 파촉령의 밤. 문득 무대는 장준하와 김희숙의 이중창으로 이어진다. 파촉령의 밤을 그들은 함께 이겨내고 있는 것이다. 몸은 헤어져 있지만 사랑이란 끈으로·····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하여
장준하의 그의 동지들은 중국대륙 6천리를 헤맨 끝에 마침내 중경 임시정부에 당도했다. 김구 주석이 끝내 환영사를 마치지 못하고 눈물 젖은 안경을 닦는다. 장정 대원들도 모두 통곡한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장면이었다. 장준하 일행은 중경에서 일본군에서 광복군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일장기 대신 태극기 아래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을 위해 장준하는 국내 침투를 자원했다. 그가 국내 침투를 자원한 것은 막연한 애국심의 소산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자신을 기다리는 부모형제와 그리고 사랑스런 연인이 있다. 장준하의 외침은 절절하다. “우리가 그들을 지키지 않는다면 누가 그들을 지켜주겠는가.” 장준하가 주위의 만류를 끝까지 뿌리치며 국내 침투를 자원한 것은 오직 단 하나의 이유, 그곳에는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애국심이란 적에 대한 적개심이 아니라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에 대한 사랑 아니던가. 장준하는 국내침투를 위해 OSS특수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국내 침투를 앞두고 일본이 항복함으로써 그 작전은 무위가 되고 말았다. 내 손으로 찾지 못한 조국. 김구주석의 비서로 귀국한 장준하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허리가 동강난 슬픈 조국을 보았다. 장준하는 외친다. “이건 아냐” “마지막 장면이 감정이 가장 복받쳐요. 장준하가 꿈에 그러던 조국에 돌아온 후 미국과 소련에 의해 한반도가 분할 점령된 사실에 분노하고 절규하는 대목이죠.“ 16년 연기 관록의 조승룡은 이 대목에서 아예 있는 대로 성질을 다부리고 난장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386세대로 공감이 가는 부분이거든요. 가슴에 와닿는 조국의 현실이라 이 대목을 부를 때는 핏대가 올라요.” 사실 리허설임에도 “이건 아냐”를 부르면서 조승룡은 얼굴 전체가 시뻘개지도록 “악”을 썼다. 저러다 목이 가는 게 아닌가 싶어 이국장과 조한신감독도 안절부절 할 정도였다.
감성로드뮤지컬입니다
흔히 사극은 무겁고 상투적이기 십상이라 지겨울 수 있다. 그러나 역사극임에도 2시간의 리허설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리허설이 끝난 후 인터뷰를 가지면서, 기자는 극이 재미있고 감동적이라고 느낌을 밝혔다. 그러자 이국장이 “감성로드뮤지컬”이라 그렇단다. 감성로드뮤지컬이라니? “장준하의 장정을 독립운동 측면에서만 파악하면 엄숙하고 무거워요. 때문에 이 뮤지컬은 장준하와 김희숙이라는 청춘 남녀가 함께 어우러지는 사랑 얘기를 큰 줄거리로 잡았습니다. 인간적인 고뇌, 연인의 그리움 등 감성적 측면을 강조해 인간의 사랑을 씨줄로 하고 여기에 항일투쟁을 날줄로 엮은 것이죠. 이야기의 무대도 한반도에서 일본 그리고 중국 대륙 6000리 등 방대하죠. 이러한 방대하고 긴 역정을 일일이 재현한다면 지루하죠. 생략할 부분은 생략하고 강조할 부분은 강조하면서 속도감 있게 무대를 이동시킵니다.” 무지한 기자는 이 말을 그냥 ‘멜로적 요소와 스피디한 전개의 극’이라고 통속적으로 이해해버렸다. ‘재미있게 만들었다’는 말 아니겠는가. 그래도 뮤지컬이란 ‘망사스타킹 신고 바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거시기한 것’으로 이해하는 딱한 기자로서는 창작뮤지컬 그것도 우리 현대사를 다룬 것은 큰 모험 아니냐고 물었다. 조승룡이 답했다. “뮤지컬은 가장 상업적인 쟝르의 하나입니다. 그만큼 관객을 의식해야 하고 마케팅이 중요합니다. 때문에 뮤지컬은 즐겁고 ‘판타지’한 것들을 많이 다루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근현대사를 창작뮤지컬로 다루면 워낙 불행한 역사가 많아 잔혹극이 되기 쉽죠. 그러나 쉽고 안전한 브로드웨이식 뮤지컬을 수입하는 거죠.” 기자 더 궁금했다. 그런데 왜 창작극을 올렸냐고? “파란만장하게 살아 온 한 선배의 청년시절 얘기를 진솔하게 들어보는 기회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워낙 이 시대 우리는 본받을만한 원로가 없으니. 장준하라면 적어도 우리가 알아야 할 사람 아닌가요?” 그렇다. 우리들은 인간에 대해 굶주리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존경하고 사랑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 있다면,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의 힘으로 만들어서 우리 관객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게 조승룡의 절실한 바램이었다.
떠나는 마음과 기다리는 마음
‘감성스타’ 임유진에게 질문을 돌였다. 김희숙여사가 살아계셔서 연기하기 부담스럽지 않느냐고. “저보고 당신하고 닮아서 좋대요. 얼굴이 동그래서 좋다고 하시면서.” “음, 그렇다면 김희숙여사께서 대단한 미인이란 자부심을 가지신 거네요.” 김희숙 여사를 뵌 적이 있는 기자는 문득 두 여인을 비교해보았다. 팔순에도 여전히 소녀같은 김희숙여사와 이제 청순하게 피어오르는 임유진을. 전체적으로 극에 대한 소감을 물어보았다. 뜻밖에도 다음에는 김희숙이 주인공이 된 극으로 바꾸어서 공연을 하고 싶단다. 왜? “그분(김희숙여사)께서 말씀은 안하시지만 장선생님 때문에 속도 많이 상하셨을 것 같아요. 젊은 시절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장선생님이 워낙 목숨을 건 선택만 골라서 하셨으니... 한편으로는 원망스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남편을 격려하고 기도하는 여성의 삶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건 틀림없이 김희숙 여사의 속내와 같을 것 같다. “극 중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노래는 뭐였나요?” “[기다리는 마음]이요.” 장준하가 쓰카다부대를 탈출해 불로하라는 곳에서 몸을 씻으며 조선의 아들로 새로 태어나는 순간, 김희숙이 국내에서 노래하는 대목이다. “나라 잃은 고통은 그들만이 아니라 조국에 남겨진 가족들도 마찬가지였죠. 어머니와 아내들은 아들과 남편의 안녕을 기원하며 숨을 졸였고, 일제의 탄압 속에 온갖 고통을 겪어야만 했죠. 이 뮤지컬이 장준하 일행만 다루지 않고 조국에 남은 가족들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균형을 잃지 않은 점이 좋았어요. [기다리는 마음]이 이를 잘 표현해요.” 아쉬운 점도 크단다. 출연진이 70여명이 넘고 무대 장치만 해도 ‘헐리우드급’인 초대형 국내 창작극 “아! 장준하”는 8월 18일부터 8월 21일까지 불과 나흘만 공연하기 때문이란다. 막말로 하면 집 몇 채를 사서 나흘만 살고 그냥 나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스탭과 배우들은 이 나흘 동안 모든 것을 불사르겠다고 한다. 취재를 마치면서 기자는 “내 인생에서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있는 분들은 꼭 이 뮤지컬을 보기를 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허설과 대담을 마친 후 70여명의 대인원이 고깃집으로 향했다. 기자도 따라나섰다. 태반이 여성인 이들이 지난번에 돼지고기를 무려 140인분이나 먹어치웠다는 ‘경이적인 식욕’을 이 눈으로 다시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대배우 임동진씨도 이날 나왔다. 그는 김구역을 맡았다. 그날 너무 더운 탓에 기자의 차림이 영 예의가 아니어서 인터뷰는 다음에 미루었다. 기자는 염치없게도 임유정에게 임동진씨의 사인을 두 장 부탁했다. 임유진은 임동진의 딸이자 연극 동료이다.)
2004-08-14 오후 4:15: ⓒ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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