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히틀러: 총통, 국가사회주의독일근로자당(나치스) 당수, 자살
헤르만 괴링: 대원수, 공군총사령관, 나치스 권력서열 2위, 사형 직전에 자살
하인리히 히믈러: SS 사령관, 게슈타포 총책, 내무장관, 예비군 사령관, 영국군에 잡혀 음독자살
파울 요제프 괴벨스: 선전상, 독일문화회의 의장, 베를린 총통관저 지하호에서 자살
마르틴 보르만: 나치스 부당수, 총무장관, 베를린전투 현장에서 소련군에 의해 사살
로베르토 라이: 독일노동전선 위원장, 뉘른베르크 재판 도중에 자살
칼 홀츠뢰너: 의학박사, 강제수용소 수용자 및 소련군포로 상대로 생체실험, 영국군에 체포되어 자살
1-2.사형선고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 외무상, 1946년 10월 16일 뉘른베르크에서 사형
빌헬름 프리크: 내무상, 나치당 창당멤버, 뉘른베르크에서 사형
한스 프랑크: 나치당 수석 법률고문, 폴란드 총독, 아우슈비츠 건립, 뉘른베르크에서 사형
알프레드 로젠베르크: 나치당 외교부장, 나치즘 최고이론가, 뉘른베르크에서 사형
율리우스 슈트라이허: 나치당 바이마르 지부장, 뉘른베르크 지부장, 뉘른베르크에서 사형
에른스트 칼덴브루너: SS 산하 보안경찰 SD 총책, 뉘른베르크에서 서형
빌헬름 자이스잉크발트: 오스트리아 총독, 네덜란드 총독, 뉘른베르크에서 사형
프리츠 자우켈: 독일 노동부 노동총감, 750만명의 강제노동인력 지휘, 뉘른베르크에서 사형
빌헬름 카이텔: 원수, 독일국방군총사령부(OKW)장관(합참의장 정도), 뉘른베르크에서 사형
알프레드 요들: 육군원수, 국방군 산하 육군참모총장, 뉘른베르크에서 사형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SS부사령관, SD총책, 체코총독, 1942년 6월 5일 체코인 레지스탕스 공격으로 피살
테오도르 아이케: 다하우 강제수용소 초대소장, 전지역의 강제수용소 최고책임자, 전후 처형
아돌프 아이히만: 게슈타포 유태인문제담당국장, 1944년 헝가리유태인 80만을 강제수용소로 보내고 수십만 처형, 1962년 12월 5일 교수형
한스 루돌프 헤스: SS해골부대장,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장으로서 75만명 살해, 1947년 6월8일, 아우슈비츠에서 교수형
프란츠 칠라이스: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장으로서 6만5천명 살해, 전후 교수형
요제프 크라머: 베르겐벨젠 강제수용소장, 3만7천명 살해, 영국군에 체포되어 교수형
카를 코흐: 부헨발트 강제수용소장, 독직과 공금횡령혐의로 1945년 나치친위대에 의해 처형
일제 코흐: 카를 코흐의 아내, 피수용자들 다수를 가학적으로 고문살해, 종신형 선고받고 자살함
유르겐 슈트로프: SS소장, 1943년 4~5월 바르샤바게토 유태인들의 봉기 진압, 그리스정부에 의해 교수형
안톤 도슈틀러: 독일 제75군단장, 1944년 1월 이태리에서 미군특공대원 13인 처형, 1945년 10월 12일 사형
지그문트 라셔: SS소장, 다하우, 오베르부크르 수용소 등에서 피수용자 생체실험 지휘, 히믈러에 의해 사형
서독, 동독 정부에서 실시한 비나치화 재판으로 나치잔당 처벌
1-3.종신형 & 징역형
발터 풍크: 나치당 협력 사업가, 독일중앙은행, 라이히스방크총재, 뉘른베르크재판에서 종신형 선고
에리히 레더: 1차대전 당시 해군함장, 1928년 독일해군참모총장, 1943년 수상함대 활용문제를 놓고 히틀러와 의견충돌하여 사임, 뉘른베르크에서 종신형 선고
발두르 폰 쉬라하: 히틀러 유겐트 설립자, 교육장관, 뉘른베르크에서 20년형 선고
알베르트 슈페어: 군수장관, 뉘른베르크재판에서 자신의 모든 죄를 인정하고 반성, 20년 복역 후 1966년에 출소
콘스탄틴 폰 노이라트: 외무상(~1938.2), 체코 총독(1938.3~1941.9), 징역 15년형, 병보석으로 출감했으나 2년후 사망
빌헬름 샤하트: 바이마르공화국 시절부터 재무상을 지내며 독일경제 재건, 징역 10년형
한스 프리체: 선전상 관료, 무죄 석방되었으나 비나치화 재판에서 유죄, 모든 공민권 박탈
프리츠 티센: 1923~1939년 나치당에 협력하고 거액의 정치자금 제공, 1931년 나치당 입당, 1939년 반나치가 되어 스위스로 탈출, 1941년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종전시까지 강제수용소에 구금
거의 모든 독일군 장성들이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고 공민권이 박탈되었다. 나치에 협력했던 자본가 크루프재벌, 쿠르트 폰 슈레더, 칼 베헤슈타인, 알베르트 페글러 등은 자기 소유기업이 해체되고 지분도 완전히 몰수되어 소시민으로 살았다. 나치당 윗대가리와 중간급 간부들은 사형 내지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하급당원도 공민권 박탈됨. 강제수용소 근무자는 일개 사병도 실형을 살았다.
전후 독일은 나치시대에 협력하지 않은 사람들, 반나치 운동가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분야를 장악하여 철저한 반나치, 비나치화 시대를 구축하였다.
콘라트 아데나워: 쾰른 시장, 가톨릭중앙당 실력자, 1944년 히틀러암살계획에 가담하여 강제수용소 구금, 전후 서독의 초대 총리, 기독교민주당 당수
쿠르트 키징거: 변호사로서 반나치활동가들 변호, 나치의 위협으로 은둔, 전후 서독 국회의원, 사민당-기민당 연립내각 총리, 기민당 위원장
빌리 브란트: 1933년 나치를 피해 노르웨이로 망명, 1940년 스웨덴으로 망명, 신문기자 겸 반나치스운동가, 1946년 뉘른베르크재판 취재, 서베를린시장과 사회민주당당수 역임, 1969~1974년 서독 총리, 바르샤바 게토를 방문하여 무릎꿇고 참회, 동독 방문하여 국교 재개, 공산당 합법화, 1971년 노벨평화상 수상
*지멘스사 남경지사장이자 나치당 남경 부지부장인 욘 라베는 1937년 12월 남경의 외국인거주지인 '국제안전구'위원장으로 선출되어 중국인 25만명을 수용했다. 물론 일본군은 안전구에까지 들어와 중국인 수만을 학살했으나 나치당원 직위를 내세운 라베의 활약으로 수만명의 중국인이 살아났다. 한때 그의 집에 수백명의 중국인들이 살았고 라베는 그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다. 1940년 일본의 항의에 의해 독일로 소환되어 게슈타포의 조사를 받았다. 1945년 영국군에 의해 체포되어 공민권이 박탈되었으나, 1948년 비나치화 재판에서 "나치를 싫어했고, 중국인 수만명을 살린 공로"가 인정되어 공민권을 회복하고 지멘스사에서 복직되었다. 1950년 병사
*지금도 독일은 작센하우젠 등의 강제수용소를 원형 그대로 보전하고 있다. 자신들의 조상이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알리고 반성하기 위해
2.일본(1931년~1945년, 13년 11개월간)
2-1.자살
아나미 고레치카: 육군장관, 1945년 8월 할복자살
우시지마 미쯔루: 육군중장, 육군사관학교교장, 오키나와주둔군 총사령관, 1945년 6월 22일 할복자살
오니시 다카지로: 육군중장, 필리핀주둔 제1항공함대 사령관으로 가미카제전술 고안, 1945년 8월 할복자살
2-2.사형선고
도죠 히데키: 관동군사령관, 육군장관, 수상, 1944년 7월 18일 사임, 1945년 9월 자살시도, 1948년 도쿄국제군사재판에서 유죄선고, 사형, 활발한 복권 움직임
히로타 고키: 주소련대사, 외무상, 수상, 중일전쟁 결정, 남방침략을 국책으로 결정, 1948년 도쿄재판에서 사형
마쓰이 이와네: 육군대장, 상해파견군과 중지나파견군 사령관, 남경에서 중국인 30만명 학살 지휘
도이하라 겐지: 육군대장, 일본군 첩보총책, 만주국의 기획자, 도쿄재판에서 사형
이타카키 세이시로: 육군대장, 지나파견군 참모장, 조선군사령관, 제7방면군 사령관, 육군상, 도쿄재판에서 사형
기무라 헤이타로: 육군대장, 육군차관, 버마파견군 사령관, 태평양전쟁 기획, 도쿄재판에서 사형
무토 아키라: 육군중장, 육군성 군무국장, 중지나파견군 참모장, 제14방면군 참모장, 도쿄재판에서 사형
야마시타 도모유키: 말레이시아파견군 사령관, 싱가포르와 보르네오 점령, 필리핀주둔군 사령관, 사형
하세 히사오: 일본육군 제6사단장으로서 1937년 12월 남경대학살 지휘, 중국 국민당정부에 의해 사형
2-3.기타 전쟁참여자들
히가시구니노미야: 1945년 패전 직후 내각총리대신
시데하라 가주로: 전 외무대신, 히가시구니의 뒤를 이어 내각총리대신
요시다 시게루: 귀족원 의원, 전후 내각총리대신
시게미쯔 마모루: 1932년 윤봉길에 의해 안구 상실, 주중대사, 외무대신, 종신형선고, 1955년 석방, 전후 외무대신
아시다 히토시: 전후 내각총리대신
하토야마 이치로: 내각 서기관장으로서 자유주의자 대탄압, 연합국에 의해 정치적 추방령, 일본민주당 당수, 자민당 당수, 내각총리대신
기시 노부스케: 군국주의 지지 신관료파의 영수, 만주국 수석고문, 도죠내각의 상공대신, 국무대신, A급 전범이나 1948년 석방, 자민당 간사장, 당수, 내각총리대신
이케다 하야토: 대장성 국장, 전후 중의원 의원, 재무장관, 샌프란시스코회담 전권대표, 자민당정조회장, 총재 겸 총리
사토 에이사쿠: 철도청장, 기시의 동생, 전후 자민당 간사장, 총재 겸 총리대신
오히라 마사요시: 자민당 극우파 주류, 중의원 의원, 관방상, 외상, 통산상, 재무상, 내각총리대신
시나 에쓰사부로: 외무대신, 자민당 부총재
미키 다케오: 1937년 중의원 의원, 전후 자민당 간사장, 통산상, 외상, 내각총리대신
후쿠다 다케오: 자민당 간사장, 정조회장, 농무상, 재무상, 외상, 부총리, 내각총리대신 역임
나카소네 야스히로: 인도네시아 파견군 장교, 중의원 의원, 내각총리대신
*참고로 731부대장 이시이 시로는 유기징역형 같은 처벌도 받지 않았으며 고향에서 편히 지내다 72세를 일기로 후두암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731부대의 주요 간부, 군의관, 실험관들 역시 처벌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전후 일본사회의 주요 엘리트들로 부상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녹십자병원장, 일본외과학회 회장, 올림픽위원장 등으로 활약한 바 있습니다.
첫댓글 이거 퍼가도 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