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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의 뜻
♣ 아리랑의 언어적 실체
“아리랑”은 사랑, 그리움, 슬픔, 같은 관념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리랑”은 해, 달, 별처럼 우리선조들이 쓰던 실체가 있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리랑”의 실체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
그 해결방법은 “아리랑”에 대한 언어학적 접근방법일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아리랑”에 관련된 우리말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다.
관련 문헌으로는 “삼국사기 원성왕 본기”에 “알천”이라는 말이 나오며, 정선아리랑의 가사는 구구절절 강물이 흘러가는 이별의 애절함을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한강과 송하강을 “아리수”라 했다는 것과 제주도의 한천 하류에 “아라리(아라동)”라는 마을이 현존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리랑”은 “강”과 깊은 관련성을 가진 말이라고 볼 수 있어 물이 흘러가는 물길의 명칭을 찾아 조사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삼천리금수강산 골짜기 마다 물이 흐르는 물길 “알(개울)”이 있다.
물길에는 깊은 산골짜기나 밭고랑 사이로 흐르는 “고랑물”, 논밭사이나 마을안길 따라 흐르는 “도랑물”, 도랑물이 합쳐 흐르는 “거랑물(큰 도랑물)”, 마을 밖으로 흐르는내(川)라고 하는 “알(아리)”이 있다. 이것을 정리하면 물은 고랑 - 도랑 - 거랑 - 알(아리)을 거쳐 바다로 간다. 그런데 “알(아리)”의 주변은 우리 선조들이 수렵생활을 할 때 이웃이 함께 모여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던 삶의 터전이었다.
따라서 “江”도 “아리랑”, 마을도 “아리랑”이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물길의 명칭을 조사하면서 중요한 단서를 찾았다면, 물이 흐르는 물길에는 모두 물이 졸졸 흐를 물결“랑(浪)”을 붙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조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알(아리)”에도 당연히 “랑(浪)”을 붙였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잊어버리고 목말라 찾던 “아리랑”인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수렵생활을 하면서 “아리랑”에서 살았기 때문에 삶의 터전인 마을 이름도 “아리랑”, 고개도 “아리랑,” 노래도 “아리랑”, 온통 “아리랑”이었을 것이다.
그곳이 어머니가 계시던 고향이요, 그리움과 삶의 애환이 묻어나는 “아리랑”이다.
♣ 알천과 아리랑
삼국사기 원성왕 본기에
“及宣德薨 無子 群臣議後 欲立王之族子 周元”
자식이 없는 선덕왕은 사후 신하들로 하여금 김주원을 왕으로 옹립하기를 바랐다.
“周元 宅於 京北二十里 會 大雨 閼川水漲 周元不得渡” 주원의 집은 경주북쪽 20리에 있었는데 큰비로 “알천”이 넘쳐 주원은 입궁하지 못하였다. 고 하였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알천”을 통하여 “아리랑”을 찾아보고자한다.
“알천”은 지금의 경주 북천이다.
경북일보 2016. 4. 28.(알천과 북천) 및 경북일보 2020. 7. 22.(삼국유사 오디세이)에
“양주동 박사는 여기에 나오는 “알천”이 “아리랑”의 어원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한강을 “아리수”라고 부르는데 이것도 알천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였다.“
즉 “아리랑”이라는 말의 모태가 “알천”이며, “알천(냇물)”이 “아리랑”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리랑”을 잊어버릴까 이를 증명이라도 해주듯 제주도의 한천 하류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아라동(아라리)”이라는 강변마을이 현존하고 있다.
이것은 “아라리(아라동)”가 한천(아리랑)의 강변마을 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강릉 사람들은 물이 “알”로 간다고 말을 하고 있다.
이것은 물이 아래로 간다는 말이 아니라
물이 “알(川)”이라는 명사 즉 “알(아리)”로 간다는 말이다.
강릉에는 “알”을 향찰로 “월(月)”자를 차용하고 있는데, “沙川(사알)”을 沙月이라 말하고 있고, “알천”을 향찰로 “月川(달래)”이라고 하는데, 강릉과 양양의 경계(지경)에 있는 상월천과 하월천이 그렇고 삼척군 원덕읍의 가곡천 하류의 월천이 그렇다.
강릉의 지명유래를 통하여 “浪,(良)”을 살펴보자.
고구려 때는 물(강)이 서쪽에서 흐르는 곳이라 하여 “河西浪(하서랑)”이라 하였고,
백두대간 동쪽 벌판으로 6현(거문고)의 알천(아리랑)이 흘러내려 아름다운 호수를 펼쳐놓은 곳이라 하여 “河瑟羅(하슬라)”라 하였다.
이처럼 우리선조들은 물이 흘러가는 모양을 보고 지명을 작명하는 지혜가 있었다.
특이 할 사항은 우리선조들이 물길에다가 물이 졸졸 흐를 “浪(랑)”을 붙여
“고랑”, “도랑”, “거랑”, “아리랑“, ”하서랑“이라는 아름다운 말을 남겼다는 것이다.
“알(川)”을 살펴보자.
“알”은 “아리”에 준말이며, 파생어로 “아리 아리 알아리(아라리)”라고도 쓴다.
“아리”는 물이 흐르는 물길이니 “아리”에 “浪(랑)”을 붙이면 “아리랑”이 된다.
즉“아리랑”은 물이 흘러가는 냇물(川)이며, “강”이라는 것이다.
“강(물길)”에 대한 명칭은 시대에 따라 변천하였다.
북간도의 송하강도 한때 “아리수”라 하였고. 고구려는 청천강을 “살수”라고 하였듯이
“아리랑”도 그랬을 것이다. 지금은 (한강,낙동강,압록강,두만강)등으로 부르고 있다.
“아리랑”은 정말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 근거 자료
1). 현존해있는 언어로 이랑, 고랑, 도랑은 지금도 통용 되고 있지만 도랑보다 큰 “거랑”은 사라지기 직전의 언어이며 “알”은 다행하게 도 아직 강릉사투리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즉 도랑물이 알(아래) 로 흐른다. 라고 하지 않고 도랑물이 알(냇물)루 간다. 고 한다. 이 처럼 강릉 사투리에서는 알(川)에 대한 두 가지 의미에 따라 서로 다른 동사(간다. 와 흐른다.)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어법상 도랑물 이 알루 간다. 와 흐른다. 는 “알”에 대한 그 의미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즉 “흐른다”는 말은 “알”이 아래(下)라는 의미지만 “간다”는 말은 “알”이 냇물(알)이라는 장소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도랑물이 “알”루 간다는 것은 도랑물이 냇물(川)로 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즉 강릉 사투리 “알”은 냇물(川)이라는 말이다. 이에 대한 물증이 강 릉지역에 아직 남아있는데, 강릉의 사천(모래 내)을 “사월”이라한다. 이것은 “사알”을 향찰로 “沙月”이라 표기했기 때문이다. 이밖에 경 주의 북천을 삼국사기에는 “알천”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아리수”는 현재 각종 문헌에서 종종 발견되고 있다.
서울시는 한강을 “아리수”라고 홍보하고 있다.
2). 강릉지역 사투리를 조사하다가 “거랑”이라는 말과 “알”이라는 말 을 듣게 되었고, 강릉의 옥계면 산계리와 울진군 온정리, 그리고 경상북도 안동 내륙에서 “거랑”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고랑”, “도랑”, 다음의 말이 “거랑”이었다.
그리고 경주 보문에 흐르는 북천을 “알천”이라 하고, 제주도 한라 산에서 흐르는 “한천” 하류에 있는 마을명칭이 “아라동(아라리)” 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3). “浪”이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였지만 고랑, 도랑, 거랑, 아리랑, 하서랑, 에서의 “랑”은 물이 흘러가는 물결“浪”인데 물이 흘러가 는 물길의 명칭에 모두 “랑”을 붙였다는 것이다.
4). 참고문헌으로는 1993년9월 동아출판사 발행 “대조선 제국사” 20 쪽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말 ”아리수“를 음역, 의역을 한 한문식 표기인 阿利水, 阿禮江, 列水 등은 모두 긴 강을 의미 한다. 또한 압록강, 두만강, 대동강, 한강, 낙동강과 만주의 송 하, 요하, 난하, 등을 향찰,이두 문으로 쓴 옛 이름을 찾으면 모 두 ”아리수“라 하였다. 또한 강변에는 씨족집단이 모여 살았 는데 그곳을 “나루”라고 하였으며, 후일 차츰 그 의미가 변하여 “라루-라라-나라”로 발음이 변하면서 “국가”를 뜻하게 되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5). 물이 흐르는 물길에 대한 말은 다양하다. 살펴보면 고랑, 도랑, 거 랑, 알, 아리, 알천(경주북천), 아리수, 河(요하, 송하, 황하), 列水, 살수(청천강), 가람, 내, 川, 江, 개울, 실개천, 등이 있다. 이 말은 “아리랑”을 고증할 만한 귀한 자료라고 할 수 있겠다.
6). 제주도에 한천(대천) 하류의 마을을 “아라” 또는 “아라리”라 부르 고 있다. 정말 다행스럽다. 왜냐하면 이것은 “아리랑”이라는 말 을 찾을 수 있는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7).“알천”을 향찰로 “月川(달래)”이라 하였고, 강릉의 沙川(모래내)을 “沙月”이라 하는데 이것은 내(川)를 “알”이라 했기 때문에 사천을 “사알”이라 하였고, 향찰로 “沙月” 이라 표기하였다. (제보자:김순 정) 그 이유는 앤뙐을 향찰로 內月(안달)이라 하였고, “알천”을 향찰로 “月川(달래)”이라 하였기 때문이라 부언할 수 있다. (제보 자: 유제원) 그리고 “월천”이라는 명칭은 영동지방의 내(川)를 이 르는 말이다. 월천은 강릉과 양양의 경계(지경)에 “상월천(웃달 래)” 과 “하월천( 아랫달래)이 있다.
영동지방에는 큰 강(아리수,아리랑)이 없고, 대부분 작은 개울이 나 내(알,아리)가 있으므로 “알” 또는 “아라리”라는 말을 많이 사 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강릉을 “아라리” 고장이라 한다.
8). “고랑”의 물은 “도랑”으로 가며, “도랑”의 물은 도랑보다 큰 물길 “거랑”으로 가고 “거랑”보다 큰 물길은 “큰 거랑”으로, “큰 거랑” 의 물은 “내(川)”로 간다. 그리고 “내(川)” 보다 큰 물길을 “가람 (江)” 또는 “閼(아리)”이라하며 이보다 큰 물길을 “하(河)” 라고 한 다. 때문에 “아리랑”과 “아리수”는 내(川)보다 큰 물길 “강”이다.
9).고랑, 이랑, 도랑, 거랑, 아리랑에 공통으로 붙어있는“랑”은 무었 일까? “랑”은 접미사로서 그 의미가 다양 할 수 있겠지만 물이 흘 러가는 물길에다 물이 졸졸 흐를 ”浪“이라는 접미사를 붙여 물이 흘러가는 물길의 명칭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다.
10). “알”은 “아리”에 준말이며 강릉에서는 내(川)를 “알”이라고 한다.
1960년대 이전에 태어난 강릉사람들에게 물이 어디로 가느냐고 물 으면 모두가 “알”루 간다고 말한다. 이것은 물이 아래로 간다는 말 이 아니라 알(川)로 간다는 말이다. 그리고 “알(아리)”을 반복하여 소리 내면 “아리 아리 알아리”라는 취임새가 만들어지는데 강릉지 방의 농요 오독떼기의 후렴이 그렇다.
11). 물길의 명칭을 살펴보면 고랑, 도랑, 거랑, 알, 아라리, 알천(경주 북천), 아리수(한강,송하강), 河(요하, 송하, 황하), 列水, 살수(청천 강), 가람, 내, 川(남대천,옥천), 江(한강,대동강), 개울, 실개천, 등 다양하다. 여기서 “랑”이 붙은 물길을 눈여겨 살펴보자.
“랑”이 붙은 물길 즉 고랑 - 도랑 - 거랑 - 큰거랑 - 알(아리)은 “아리랑”을 찾는 근거가 되는 말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된 다. 이처럼 우리선조들은 물길에 물이 졸졸 흐를 “浪”을 붙여 물길 의 이름을 아름답게 만들어 썼다는 것이다.
여기서 “알”은 “아리”의 준말이므로 “아리”에 물이 졸졸 흐를 “浪” 이 붙여진 말, 이 말이 “아리랑”이다.
12). “아리랑”을 찾다보면 “쓰리랑”이라는 말이 나온다.
“쓰리랑”이란 말은 “아리랑”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누구나 한번쯤 갖을 수밖에 없다.
“쓰리랑”은 19세기 들어 “진도아리랑”과 “밀양아리랑”이 창작되는 과정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 만들어진 “신종어” 즉 노래 후렴의 추 임새이다.
13). 1896년 미국의 선교사 헐버트가 채보해 만든 서양식 악보가 “구 조 아리랑” 악보인데, 헐버트는 아리랑을 한국인의 “포크송”으로 소개하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리랑”은 조선인에게 쌀과 같은 노래다. 조선인들은 서정적이며 교훈적이고 서사적이며 이런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사람들이 다. 이들이 부르는 노래 ”아리랑“은 즉흥의 명수인 조선인에 의해 수없이 즉흥곡으로 변주되지만 그 후렴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불려 진다.”라고 말하였다.
14). 중국 연변 정암촌(청주가 고향인 실향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의 “청 주 아리랑”은 노래 가락이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 “본조 아리랑”과 그 가락이 흡사한 면이 많다.
15). 지금 부르고 있는 “아리랑”은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나운규가 1926 년 개사하고 단성사 빅터악단이 작곡 반주한 영화 “아리랑”의 주제 가이다. 이 노래가 우리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본조 아리랑” 즉 “경기 아리랑”이다.
16). ≪삼국사기≫ 악지에 보면, 덕사내(德思內)라고 하는 강릉 향토민 요가 소개되어 있는데, 바로 이 민요가 한국 아리랑의 효시였다. 당시 강원도 문화의 중심지였던 강릉의 이 덕사내 가락이 대관령 을 넘어가 평창아리랑을, 삽당령을 넘어가 정선아리랑을 재생산하 게 되었던 것이다. (중앙대학교 김선풍 교수)
♣ 경기아리랑
우리민족의 얼이 담긴 노래이다.
“아리랑”의 실체는 찾지 못하였지만, 나운규는 청진에서 회령까지의 철길 공 사 노동자들이 부르는 구슬프고 한이 서려있는 노동요 “아리랑” 곡조를 듣 고, 일제강점기(1926년)에 “아리랑” 영화를 제작(조선 키네마 프로덕션이 제 작한 흑백 무성영화)하여 단성사에서 개봉할 당시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를 창작하여 노래는 김연실이 불렀고, 반주는 일본의 빅터 악단이 했었는데, 빅 터 악단의 실수로 노래 제목이 “아르렁”이 되었다고 한다. “구 경기아리랑” 이 바탕이 되어 창작되었다고 하여 “신 경기아리랑”이라고도 하는데, 이 노 래가 전국에 유행되자 일제는 “금창령”을 내렸다.
이 노래가 우리나라 백성들이 일제 강점기 때 애국가처럼 부르던 국민의 노 래, 지금의 “아리랑”이다.
♠ 신 경기아리랑
“신 경기아리랑”은 작사*작곡 미상의 곡이 아니다.
“아리랑” 영화감독 나운규가 철길 공사 노동자들의 노동요를 바탕으로 하여
“구 경기아리랑”을 개사하여, 단성사 빅터악단이 작곡한 곡이라고 한다.
(1절)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2절)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풍년이 온다네 풍년이 온대요. 이강산 삼천리 풍년 온다네.
(3절)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산천초목은 젊어가건만 우리네 인생은 늙어 지네
(4절)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청천하늘엔 별도 많고 우리네 살림살인 말도 많다.
♠ 구 경기 아리랑 가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 넘어 아라수를 건너 아리랑 아리세계 찾아가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우리내 인생이 짧다고 해도 이어지면 천년이요 손잡으면 만년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사람에 한평생 사연도 많고 이어지면 천년이요 손잡으면 만년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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