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컬쳐] 검열과 정치 탄압이 키운 풍자 예술
정치는 어떻게 풍자의 축제가 되었을까
배설을 넘어 저항으로, 풍자의 날을 갈다
2016년의 ‘촛불 정국’은 한국 정치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 참담한 시기였다.
동시에 ‘정치 풍자’의 전성시대이기도 했다.‘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성토하는 촛불집회에선 현 정권에 대한 비판과 조롱, 야유, 풍자가 봇물 터진 듯 쏟아졌다. ‘촛불’로 대변되는 대규모 평화 시위와 축제와도 같았던 집회 분위기, 그 안에서 펼쳐진 촌철살인의 손팻말과 퍼포먼스는 우리의 수준 높은 정치 감각을 일깨운 ‘살풀이’ 한마당이기도 했다.
미국 아티스트 윌리엄 듀크와 브랜든 그리핀이 롤링스톤즈 앨범 재킷에서 착안해 프랑스 파리 ‘세인트 크리스토퍼스 인 호스텔’내 바 남자 화장실을 배경으로 도널드 트럼프의 얼굴을 합성한 작품(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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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의 어둠을 타고 불붙는 풍자의 축제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박근혜 퇴진” “내가 이러려고 대한 민국 국민이 됐나, 자괴감 들어.”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박근혜 대통령의 ‘유체이탈’ 사과에 대한 ‘1000만(누적 인원) 촛불’의 분노는 조롱과 야유에만 그치지 않았다. “박근혜 없어지소” 문구를 등에 붙인 ‘하야소’가 서울 광화문광장을 활보하고 “씹고 뜯어보자”는 ‘최순실 후라이드 치킨’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그 옆을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과 현빈을 코스프레한 시위 참가자가 지나갔다. “하야하그라”라는 구호가 적힌‘한국 고산지 발기부전 연구회’ 깃발이 군중 속에 나부꼈다.
촛불시위가 별다른 논란 없이 석 달 가까이 진행된 데는‘저항과 놀이, 정치와 문화의 융합’이라는 집회 문화의 힘이컸다. 국민들은 헌정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국가권력을 사유화한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와 절망 때문에 광장으로 나섰다. 하지만 집회 현장은 문화 축제의 장으로 변모했다. 비장한 분노와 유쾌한 풍자가 한데 어우러져 또 다른 저항의 자양분이 됐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는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의 분노가 패러디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정치에 대한 관심이 계속 환기됐고 풍자를 통해 정권에 대한 분노라는 공감대가 계속 확산했다”고 분석했다.
‘촛불민심’이 지핀 풍자의 ‘불씨’는 방송가로 옮겨붙었다. MBC '무한도전'을 필두로 KBS2 '개그콘서트 ', SBS '웃찾사', tvN 'SNL코리아8', jtbc '말하는 대로'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현 국정농단 사태를 다루고 있다. 지난 9년여간 거의 고사되다시피 한 정치 풍자 개그가 국회의 현직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계기로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이다. 고(故) 김형곤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과 최양락의 ‘네로 25시’로 꽃피웠던 정치 풍자 전성기를 떠올리게 했다.
(좌)제43대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를 풍자한 ‘DOPE’ 포스터(Jeff Rankin, 2009, 출처: 위키피디아)는 미국의 아티스트 셰퍼드 페어리가 디자인한 버락 오바마 ‘HOPE’ 포스터를 패러디한 것이다. (우) 제45대 미국 대통령 당선인인 도널드 트럼프는 정치 풍자의 단골 인물이다(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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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세대, ‘집단 풍자’의 새길 열다
‘무늬만 풍자’인 패러디의 범람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최순실로 분장한 집주인을 등장시켜 ‘프라도’ 신발과 “신발놈이”를 외친 'SNL코리아'는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이라는 본질 대신 명품 구두와 선글라스라는 표피적 이미지만 건드 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DJ DOC의 '수취인 불명'과 홍성담 화백의 신작 '똥의 탄생'은 여성혐오 논란에 휩싸였다.
한국에서 정치 풍자가 개인을 넘어 집단적 저항의 무기로 발현된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다. ‘광우병 촛불집회’가 시작이었다. 10대들은 2008년 5월 서울 청계광장에 삼삼오오 모여 촛불과 ‘미친 소, 이명박 너나 쳐드삼’이라고 적힌 손팻 말을 치켜들었다. 망가진 마우스를 질질 끌고 다니며 “MBOUT”을 외치기도 했다. 출범한 지 100일도 안 된 서슬 퍼런정권이 청소년들의 거침없는 풍자와 재기발랄한 퍼포먼스에 속절없이 권위를 잃어갔다.
MBC '재미있는 라디오'와 tbs '9595쇼'의 박찬혁 작가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시사 풍자는) 권력과 돈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대다수 사람들이 마당놀이처럼 우리만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한국형 정치 풍자 원조는 마당놀이였다. 탈을 쓰고 지배계층의 탐욕과 몰상식을 비판하고, 민초의 흥을 돋우고 애환을 달랬다. 근대 민화나 판소리, 별신굿은 현대 의 만평과 풍자화, 판타지 소설로 이어졌다.
(좌)오노르 도미에의 1831년 작 '가르강튀아'. (우)팝 아티스트 이하의 작품 '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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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비판의 무기, 풍자의 오랜 역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풍자의 칼끝은 항상 권력자를 향했다. 풍자(satire)는 ‘갖가지 과일이 가득 담긴 접시’라는 뜻의 라틴어 ‘lanx satura’에서 유래한다. ‘문학이나 삽화를 통해 현실의 부조리나 모순을 비웃는 행위’를 말한다. 풍자를 일컫는 또 다른 단어 ‘sarcasm’은 ‘개처럼 신랄하게 살을 물어뜯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sarx’에서 왔다. 중국 '시경'에 나오는 풍자(諷刺)는 하(下)의 ‘바람 같은 말’(諷)로 상(上)의 폐부를 ‘찌르는’(刺) 행위라는 대목에서 따왔다.
서구 풍자의 시초는 “나는 왕이다, 너는 누구냐”는 알렉산더 대왕의 물음에 “나는 개다. 사악한 이들을 물어뜯는 개”라고 맞받아친 고대 철학자 디오게네스라는 설이 유력하다. 풍자는 봉건사회를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허무맹랑한 기사도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비튼 미겔 데세르반테스(1547~1616)의 '돈키호테', 프랑스 신분제를 비판한 극작가 보르마셰(1732~1799)의 '피가로의 결혼'은 한결같이 당대 최고 지배층의 탐욕과 위선, 폭력을 겨냥했다.
프랑스 화가 오노레 도미에(1808~1879)는 루이 필리프 1세를 탐욕스러운 괴물로 묘사한 '가르강튀아'(1831)를 통해 1848년 프랑스 혁명의 신호탄을 쏜 것으로 평가된다. 독일 태생의 다다이스트 존 하트필드(1891~1968)는 1920년대 히틀러와 나치 정권의 잔혹성을 풍자한 포토몽타주 작품을 잇따라 발표했다. 팝아트의 선구자인 앤디 워홀(1928~1987)은 1972년작 '리처드 닉슨'에서 당시 연임을 노리던 닉슨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를 악마처럼 묘사한뒤 “(조지) 맥거번(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투표하라”고 독려했다.
(좌)팝 아티스트 이하의 작품 'Shaman Korea'(2016). (우)옛날 가수 미미 자매(?)를 비선 자매로 패러디한 손민정 작가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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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 수감, 회계감사… 정치 탄압을 넘어서
살아 있는 권력을 겨냥한 탓에 풍자가는 늘 정권의 탄압을 받았다. 도미에는 '가르강튀아'를 발표한 뒤 벌금과 수감이라는 이중고를 겪었고 해당 잡지사는 문을 닫아야 했다. 워홀 역시 닉슨 대통령의 재임 성공 이후 죽을 때까지 해마다 미 국세청의 회계감사를 받아야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이후에도 자신의 인선 등을 비꼬는 코미디・버라이어티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에 대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방송”이라며 날을 세우고 있다.
한국은 말할 것도 없다.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에 빗댄 걸개그림 '세월오월'을 그린 홍성담 화백은 작품을 광주비엔날레에 전시하지 못한 채 보수단체의 고발과 당국의 세무조사에 시달려야 했다. 2012년 대선 즈음 'SNL코리아'의 코너 ‘여의도 텔레토비’는 박근혜 후보를 욕쟁이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대통령 취임 5개월 뒤 직・간접적인 정권의 압박으로 폐지됐다. 이명박 정부 말인 2011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포스터에 쥐 그림을 넣은 박정수 씨는‘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회부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분노와 혐오가 아닌 새로운 소통으로
“역사적으로 풍자가 기승하는 시대는 탄원도, 읍소도 무력한 소통 불가능의 역행적이고 퇴행적인 시대와 겹친다.”
작가 류재화는 책 '권력과 풍자'에서 “상식과 법도가 통하지 않는 시대, 반이성이 폭주하는 시대, 풍자는 사회의 이상 현상을 알리는 경계 신호”라고 진단했다. 풍자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지배자(권력자)를 향해 꺼내 들수 있는 기묘한 무기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풍자와 조롱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조롱이 풍자의 대표적 방법이긴 하지만 그 대상과 지향점은 크게 다르다. 풍자는 ‘권력자들의 부정과 폭압적인 권력 행사에 맞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저항의 도구’이지만 조롱은 ‘사회적권력관계와 상관없이 모든 사안을 비웃는 배설 행위’로 치부된다.
희곡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통렬한 죽음'으로 199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다리오 포(1926~2016)는 풍자와 조롱의 차이를 “권력을 가진 자는 풍자에 대해선 분노와 검열로 반응하는 반면 조롱에 대해선 선의의 익살로 받아들인다”고 설명했다.
홍성담 화백의 '세월오월'은 촌철살인 풍자로 호평받 았지만 '똥의 탄생'은 “편견에 길든 가난한 상상력”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촛불 정국에서 가수 한영애의 '조율'과 윤복희의 '여러분'이 양극단의 평가를 받는 것도 그 대상과 방향성에 대한 공감 때문일 것이다. 디지털・모바일 시대, 전근대적 대통령을 만나 힘겹게 부활한 풍자 한마당이 방향 없는 분노와 근거 없는 혐오를 넘어 새로운 소통과 연대를 통한 사회 발전의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
글 송민섭, ⓒ 세계일보 디지털미디어국 소셜미디어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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