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아버지와 그 기대에 못미쳤던 아들. 그 둘 사이에는 화해할 수 없는 갈등과 대립만이 존재했다. 그것은 하나의 시한폭탄처럼 터질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했다. 결국 패륜 범죄까지 저지르게 된 아들 J군의 범죄 심리는?
지난 6월10일 오후 1시30분경 경기도 분당소방서에 화재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분당 W아파트 가정집에서 발생한 불이었다. 신고한 사람은 아파트 경비원이었다. 소방관들이 즉각 출동했다.
집 밖으로 불꽃이 활활 이는 큰불은 아니었다. 베란다와 창문으로 시커먼 연기가 꾸역꾸역 새나오고 있었다. 베란다쪽으로 연기가 심하게 나와 소방관들은 현관쪽으로 진입하기로 했다. 출입문은 안으로 잠겨 있었다. 문의 경칩을 뜯어내고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시작했다. 불은 바깥으로 번지지 않고 내부 집기들을 태우고는 20여분만에 진화됐다. 거기서 소방관들이 깜짝 놀랄 상황이 발생했다. 60여평 아파트의 주방과 거실이 이어진 바닥에 두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경찰이 달려들었다.
불에 탄 두 사체에서는 각기 다른 흉기에 수차례씩 찔린 상흔이 발견됐다. 수사팀(분당경찰서 강력계)은 어렵지 않게 사건의 앞뒤를 추리했다. 누군가 두 사람을 살해하고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불을 지른 것이었다.
그러면 누가 범행을 저질렀나? 외부인인가, 내부인인가. 초동수사에서 경찰이 내린 잠정적 결론은 내부인 혹은 그 집을 잘 아는 면식범의 소행이었다. 경찰이 조사해 보니 집안의 현금과 거액의 예금이 들어 있는 통장이 그대로 있었다. 외부침입 흔적도 없었고 특히 현관 출입문은 밖에서 열쇠로 ‘제대로’ 잠겨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또 그날 새벽 2시쯤 “위층에서 쿵쾅거리는 소리를 들었다”는 아래층 거주자의 진술도 그같은 판단에 도움이 됐다.
사망한 두 사람은 집주인 L(48·K대 교수)씨와 모친 C(71)씨였다. 두 사람은 L씨의 장남인 J(22·S대 영문과 휴학)군과 함께 그 집에서 3식구가 살아왔다. 경찰은 곧 휴대폰으로 J군을 불렀다. 경찰에 나온 그는 담담하게 가족과 주변상황 등을 진술했다. 으레 하는 조사 절차에 따라 경찰은 그의 시간대별 행적을 따져 물었다. 앞뒤가 잘 맞지 않았다. 살인사건이 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그날 새벽 2~3시경 J군은 “강남의 친구 집에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이 행적을 계속 추궁하자 자신의 범행이라고 자백했다. 아들이 아버지와 할머니를 살해하고 불을 질러 범행을 은폐하려 한 이 사건은 그렇게 해서 범행 발생 24시간만에 해결됐다.
오렌지족 박한상의 엽기적 부모 살해사건, 경기도 과천에 사는 명문대생 L군이 부모를 살해하고 사체를 토막내 유기했던 사건의 섬짓한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는 가운데 또 다시 대학생 아들이 아버지와 할머니를 무참히 살해하는 패륜적 범행이 자행된 것이다.앞의 두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 역시 다툼의 와중에 벌어진 우발적 살인이 아닌, 살해에서 사체유기까지 저질러진 계획적 범행이었다는 점 그리고 범행후 불을 질러 범행 사실을 은폐하려 했으며 더욱이 남들 보기에 모든 것이 갖춰진 ‘있는 집’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에서 세간에 충격을 주고 있다.
교수 아버지 살해범은 장남
한국과 미국의 ‘일류 코스’만을 거쳐 서울 유수 대학의 교수·학자로 명망을 얻고 있는 아버지, 역시 한국의 일류 대학을 나온 어머니, 그런 부모 밑에서 경제적으로나 가정적으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자라며 서울의 대학에까지 들어간 아들, 겉으로 보아 문제는 없었다. 도대체 그 무엇이 이 가족을 끔찍한 파국으로 몰아갔을까. 무엇이 문제였을까. 사건의 전말 그리고 이들 부자관계를 포함한 이 가족의 보다 안쪽으로 들어가 보자.
경찰에 따르면 J군은 아버지가 미국유학중일 때, 그러니까 미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학업을 마치고 자리를 잡아 귀국할 때까지 그는 미국에서 성장했다. 초등학교 5학년까지 미국에서 생활하다 6학년때 한국으로 들어왔다. 초등학교·중학교 과정을 한국에서 마쳤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초·중학교를 다니는 동안 그는 학교생활에 거의 적응하지 못했다고 한다. 미국의 자유로운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국내 교육방식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학업성적도 좋지 않았고, 친구도 거의 사귀지 못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J군의 성격은 내성적인 쪽으로 치우치게 됐다는 것이다.
중학교 졸업후 J군은 국내에서의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시간을 보내다 검정고시를 거쳐 일단 고교학력증명서, 말하자면 고교 졸업 자격을 땄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생활에 적응하기 어렵다며 미국행을 희망해 1997년 캐나다 밴쿠버로 옮겨갔다. ‘자기가 태어난 물’로 돌아간 셈이었다. 그곳에서 학원을 다니며 대입시험을 준비한 그는 이듬해 그곳의 한 전문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이미 학교생활에는 취미를 잃은 듯했다. 학교생활을 등한시하는 대신 그는 주변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데 시간을 허비했다. 한국에서도 일류 대학, 미국에서도 명문 대학을 나온 아버지의 못마땅함과 꾸중이 집중적으로 시작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가뜩이나 눈에 차지 않는 대학에 들어가고도 여전히 정신을 못차리는 아들을, 아버지 L씨는 다시 집으로 불러들였다.
사실 J군에게 한국행은 정말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그나마 아버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기회마저 이제는 박탈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에 들어가게 되면 병역 문제가 골치아파질 것이었다. J군 입장에서 병역문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심각한 일이었을 것이다. 또 그로 인해 심적 고통을 겪게 되고, 그것이 사건당일 ‘범행 결심’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도 있다.
1998년 여름 J군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과는 달리 (J군에게는) 답답한 한국에서, 더욱이 아버지의 엄격한 통제를 받으며 생활하게 된 것이었다. 실제로 아버지 L씨는 아들을 못미더워하며 자주 꾸중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J군은 그런 가운데 “억지로 한국으로 불러들인 아버지가 야속했고 실제로 현실이 정말 답답했다”고 한다(진술조서).
2000년 3월 J군은 S대에 입학했다. 영어를 잘 해서 영문과에 특례입학한 케이스였다. 마침 두 동생(남동생과 여동생)이 미국으로 유학가는 바람에 어머니도 그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떠났다. 아버지와 장남이 갈등을 빚는 터에 그 완충 역할을 맡아줘야 할 어머니와 동생들이 떠나버린 것이었다. 집에서 J군과 ‘따뜻한 관계’를 유지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까이 하기 어려운 엄한 아버지와 말이 잘 통하지도 않는 할머니 그리고 J군 세 사람이 껄끄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 것이다.
그나마 가슴을 열어놓을 친구도 거의 없었다. 한국과 외국을 오가다 보니 오래 사귄 불알친구나 동창(同窓)이 있을 리 만무했다. 어울리는 친구들이라고 해야 주로 외국에서 알게 됐다가 한국에 돌아와 만났거나, 혹은 학교 안팎의 교환학생이나 유학생 등이었다. 그가 범행을 저지른 뒤 알리바이 조작을 부탁했던 강남의 친구도 그런 친구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엘리트 아버지와 망나니 아들
대학에 입학했다고는 하지만 이미 학교생활은 그에게 맞지 않았다. 공부에는 취미가 없었다. 더욱이 두 동생은 공부를 잘해서 단계에 맞는 진학 코스를 착착 밟아 나가는 반면, 자신은 그렇지 못한 상태였다. 당연한 결과로 아버지의 꾸중과 통제는 장남 J군에게 집중됐고 또 그 횟수도 잦아졌다.
여기에다 용돈 문제도 J군에게는 적지 않은 스트레스였다. J군은 한국의 안정된 대학교수 아들이라는 입장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자신이 주로 돈을 쓰는 쪽이었다. 그러다 보니 용돈도 많이 필요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만큼’ 용돈을 대줄 리 없었다. ‘뭐가 예쁘다고’ 용돈을 많이 줄까. J군은 다달이 20만원 혹은 30만원을 받아 썼지만 그것은 그의 씀씀이에 턱없이 부족했다고 한다.
‘큰산’같은 아버지의 통제를 받는 생활이 2년여 동안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 J군은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밉고 야속할 때도 많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어릴 때부터의 관념, 즉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은 갖고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를 점점 미워하게 된 배경에 대해 그는 경찰에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할머니가 어렵게 아빠를 공부시키고 또 아빠는 열심히 공부해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인생을 살아오신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모든 면에서 아빠를 존경하는 마음은 늘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저를 혼내는 아빠가 이기적으로만 보이고,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독선적인 모습으로 보이는 거예요.
그러면서 저는 자꾸, 겉으로는 대들지 않아도 아빠하고 멀어지게 되고 반감을 갖게 됐고요.”
아버지의 꾸중이 잦아지면서 아버지에 대한 J군의 반감은 그렇게 커져갔다. 그러는 동안 아들의 마음 속에는 들어서서는 안될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J군은 “아버지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점점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그러던 터에 J군이 결정적으로 아버지를 (속으로)원망하고 미워하게 된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군 입대 문제였다.
미국의 현행법상 미국에서 태어난 남자는 만 18세에 자기 의사에 따라 미국시민권을 가질 수도 있고 포기할 수도 있다. 한국인 2세로 미국에서 태어난 경우 시민권을 포기하게 되면 우리 병역법에 따라 군복무를 하도록 돼 있다. J군의 아버지는 ‘사람이 되려면 군대에 갔다와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미국에서 태어난 J군의 시민권을 포기하게 하고 그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으로 불러들였다. 그 바람에 J군이 대학 2학년을 마칠 무렵 입대영장이 나오게 됐다. 역시 아버지의 의사에 따라 군에 가기로 하고 휴학까지 한 J군은 이 문제로 대단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공연히 미국시민권을 포기하게 하고, 또 그냥 놔뒀으면 군문제도 고민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으로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고 말했다. 또 그는 군입대 문제가 눈앞에 다가온 올초부터 “아버지를 죽이는 상상을 해왔다. 또 수시로 아버지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수차례 했다”고 한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원망이지만, 자유로운 사고와 생활방식에 젖어 성장해온 그에게 군대는 견디기 힘든 커다란 ‘벽’으로 느껴졌을 성싶다. J군의 생각이야 어떻든 “너는 군대에 가야 한다”는 아버지의 ‘방침’은 확고했다.
군 입대 열흘 앞두고 범행
그러는 동안 시간이 흘러 입대 날짜가 다가왔다. 6월20일이었다. 말하자면 J군이 범행을 저지른 시점은 그가 입대하기 딱 열흘 전이었다. 으레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이 그렇듯 J군 역시 입대 날짜가 다가오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밤늦게까지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나 그마저 아버지는 용납하지 않았다. 수사를 맡았던 경찰관의 얘기.
“사건이 일어난 날이 입대 열흘전 아닙니까. 그러면 대개의 경우 술을 마시거나 친구들과 어울리다 늦게 집에 들어가기 일쑤잖아요? 그런데 그날도 늦게 들어왔다고, 아버지가 J군을 몰아붙인 거예요. 그러니 아들도 감정이 있는 사람인데 되게 야속했을 거 아닙니까. 제가 보기에는 평소 아버지에게 죽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다가 입대를 앞둔 상황에서 또 그렇게 꾸중을 듣고 하니까 분노가 폭발한 거죠.”
6월9일 저녁 J군은 여자친구를 만나 맥주를 마시는 등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는 밤 11시40분쯤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그때까지 안 자고 있었다. 집으로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아버지가 그를 불렀다. 아버지는 “너 임마, 도대체 뭘 하다 이제 기어들어오는 거냐”며 손바닥으로 앞에 선 아들의 뒤통수를 서너차례 때리며 꾸중했다. 그리고는 아들을 자신의 서재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2시간 가까이 아버지는 J군을 줄곧 나무라며 훈계했다. 언제나처럼 J는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묵묵히 꾸중을 들었다.
J군은 새벽 1시30분쯤에야 아버지의 훈계와 꾸중에서 풀려나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묵묵히 꾸중을 듣기는 했지만 이미 J군의 심리상태는 “아빠한테 너무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한밤중에 장시간 계속된 아버지의 꾸중에 그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정제로 돼 있는 두통약을 두어개 먹었다. 이따끔 머리가 아플 때 복용해온 T정제였다. 그래도 머리가 아파 자꾸 두통약을 먹었다. 경찰에서 그는 “13개까지 먹었다”고 진술했다.
그래도 잠은 오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자꾸 치밀었다. 그러나 당장 뭘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침대에 드러누워 잠을 자려 했지만 한번 일어선 마음속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자꾸 커져갔다. 그렇게 2시간 가량 뒤척이던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심경.
“이대로는 안되겠다, 이런 현실에서 탈피해야 하는데 유일한 길은 아버지를 죽이는 것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지금 이렇게 결심했을 때가 아니면 앞으로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이다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3시30분경이었다. J는 방에서 나와 거실을 거쳐 주방으로 들어갔다. 머리 속에는 아버지를 죽여야겠다는 생각뿐이었고 이런저런 ‘계획’도 섰다. 그는 싱크대에서 식칼 두자루를 꺼내 방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는 벽에 세워져 있던 스키폴대 끝에 칼을 대고 공업용 테이프로 둘둘 말아 고정시켜 창처럼 만들었다. “혹시 내 옷에 피가 튈까봐 그렇게 했다”고 J는 진술했다. 그렇게 만든 흉기를 들고 그는 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방으로 갔다. 그리고는 범행을 저질렀다.
J는 도망치듯 현장을 빠져나와 (알리바이를 조작할 생각에) 집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때 아버지 방쪽에서 할머니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방에서 잠을 자던 할머니가 이상한 소리에 잠을 깨 L교수의 방문을 열어보고는 놀라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밖으로 나가려던 J는 일단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엉겁결에 할머니까지 살해하기로 하고 주방으로 갔다. 과도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그것을 들고 이번에는 할머니에게 달려들었다.
아버지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살인뿐
두 사람을 살해한 그는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일에 놀라고 맥이 풀려 오전 6시가 되도록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냈다. 6시쯤 날이 밝자 집 부근 목욕탕에서 목욕을 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전철을 타고 서울로 왔다. 여자친구와 오전 8시에 약속을 한 터였다. 여름방학때 해외여행을 계획한 여자친구의 여권 신청을 위해 이날 아침 일찍 만나기로 한 것이었다. J는 태연히 예정된 일들을 보았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 공항터미널에서 여권신청 등 일을 끝낸 그는 여자친구와 헤어져 낮 12시경 귀가했다.
드나드는 사람이 없는 집은 새벽의 범행 당시 상황 그대로 어질러져 있었다.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는 아버지와 할머니를 보면서 그는 “무섭고 후회됐다”고 한다. “그 모든 것들을 기억에서 싹 지우고 싶어서” J는 범행현장과 사체들을 불태워 버리기로 작정했다. “집 주변에서 휘발유를 사면 나중에 수사가 벌어졌을 때 걸릴까봐” 그는,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아버지의 마르샤 승용차를 몰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서울 송파까지 갔다. 그곳에서 주유소 세곳을 돌며 1.5ℓ 페트병으로 하나씩, 모두 4.5ℓ의 휘발유를 구입해 오후 1시경 귀가했다.
그리고는 아버지와 할머니의 사체에 휘발유를 붓고 1회용 라이터로 불을 질렀다. J는 서둘러 자신의 피묻은 옷가지와 범행 흉기 등을 가방에 넣고 집을 나왔다. 흉기가 든 가방을 먼저 집에서 좀 떨어진 야산에 버린 그는 강남의 친구에게 연락, 그의 집으로 가 옷가지 등이 든 가방을 그곳에 놓아두고 ‘알리바이’ 증언을 부탁했다.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던 그는 앞에서 본 것처럼 경찰의 연락을 받고 조사에 응했다. 거짓말로 자신의 알리바이를 조작하려 했지만 어설플 수밖에 없었다. 경찰에 불려온 지 10시간만에 J군은 결국 고개를 떨구고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심리분석을 위해 6월14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J군을 만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심리분석 전문가 K씨는 “이번 사건은 두가지 측면에서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고 전제하고 “크게는 신세대의 가족의식·윤리의식이 극단적으로 희박해졌음을 보여주고, 작게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권위 있는 가장(家長)의 자리를 차지해온 ‘아버지’가, 본래 의미의 ‘아버지’보다 이제 자녀들의 ‘친구’가 돼줘야 할 것임을 보여준다”고 정리했다.
그는 ‘박한상사건’과 ‘과천 L군의 부모 살해사건’ 그리고 이번 사건을 비교해 “세 사건의 구조가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비슷하다”면서 “특히 계획적으로 부모를 죽이고, 범행후 태연히 범행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방화·토막유기 등 제2의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기 가족을 죽이고 그것을 태연히 ‘처리’할 정도로 신세대의 가족의식은 마비상태까지 갔다”는 것이다.
아들에게는 너무 버거웠던 아버지의 존재
나아가 그는 “한순간 잘못된 생각으로 범행을 저지를 수는 있지만 지금 신세대는 그런 범행을 저지른 뒤 뉘우치기는커녕 그것을 태연히 숨기고 감추려고 하는 공통된 양상을 보인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자기들 생각대로 일을 저질러 놓고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책임회피 풍조도 이제 위아래 할 것 없이 사회적으로 일반화된 것 같다”며 씁쓸해 했다.
특히 그는 과천 L군의 부모 피살사건과 이번 사건을 비교하면서 “가정에서 아버지의 적절한 무게”를 거듭 강조했다.
지난해 5월 발생한 L군 사건에서 명문대생이던 L군이 부모를 살해한 직접적인 동기는 “자신을 꾸짖고 등록금을 안대줬기 때문”이었지만, “군 출신인 아버지가 오랫동안 집안을 군대식으로 이끌어 오고 가정교육도 군대식으로 해온 데 반감을 품은 것”이 원인(遠因)이었다. 아버지의 과도한 무게가 아들을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행위로 몰고간 것이었다. 이번 사건 역시 사회적으로 ‘명문’배경을 가진 아버지가 아들에게 무거운 기대를 걸었던 것이 원인(遠因)으로 지적되고 있다.
K씨는 “보수적인 시대를 살아온 아버지들은 새로운 시대에 성장한 자녀들의 ‘가벼움’을 용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거꾸로 자녀들은 그런 아버지의 ‘무거움’을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여기서 오는 갈등을 해소하고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양자간의 대화가 자주 오가야 한다. 다만 그 대화가 일방의 훈계로 흐르지 않고 진정한 ‘대화’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