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정치후진국인가.
후진국(後進國)은,
문물(文物)의 발전이 뒤진 나라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문물의 발전이 뒤진 나라가 아니며
경제규모는 세계10위원 안팎의 국가이며
IT인프라는 세계 최고수준이다.
단지
정치는 의회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지만
그 내용에서는
비민주적인 요소가 많은
정치후진국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정치를 ‘개판’ 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실제 사정도 그러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미
선진국 문턱에 와 있는 나라의 정치가
왜 이토록 혼란스럽고 무질서하며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것일까.
필경
거기에는 상당한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이제는
시기적으로도 우리 모두가
이 점들을 점검하고 개선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되는 싯점에 왔다고 볼 수 있다.
더 늦으면
악순환만 계속될 뿐이며
그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된다.
일천(日淺) 하다는 말이있다.
어떤일이 시작된지 얼마 되지않아서
경험이 부족하고 성숙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있는
정치형태로서의 ‘의회민주주의’ 는
1945년 8월 15일의 광복과 함께
무상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채 100년도 안됐다.
우리가 오랜 시간과 함께
애써서 쟁취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
그게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못하고 있는게 그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건국과정에서 사회주의와의 싸움에서
이념적인 혼란이 더해져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학습’ 이
제대로 안된 치명적인 원인도 있다.
서구의 민주주의가
그 기원을
아테네의 원시민주주의에 뿌리를 둔다면
그건
이미 3000여년의 긴 역사를 가진다.
여기에
14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일어났던
‘르네상스’ 와 1789년의 ‘프랑스혁명’을 더해
무너진 ‘봉건사회’ 까지 생각하면
그들의 민주주의는
긴 역사를 통해 쟁취되고 발전해온
‘정치제도’ 인 것이다.
주어진 것이 아니라
피나는 노력으로 얻어낸 것이라는 얘기다.
서구가 정치적 선진국이 된 것은
바로
그러한 역사적인 이유들 때문이기도 하다.
민주(民主)는 나라의 주권(主權)이
국민에게 있다는 뜻이며
민주주의의 준말 이기도 하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국민이 권력을 가짐과 동시에
스스로
그 권리를 행사하는 정치형태이며
대표적인 형식이 곧 ‘의회-議會’ 다.
따라서
‘의회정치’ 란
국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기관인
의회-국회가 국정을 행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정치형태로서 정당정치를 전제로 한다.
헌법이
우리의 정치형태를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민주공화국’ 으로
규정하고 있는게 그 때문이다.
공화제도(公和制度)는
국가의 의사가 (복수-여러사람들에 의해 결정되는
정치형태로서 공화정치라고 부르며
나라의 주권이
한 사람에 의해 행사되지 않고
합의체의 기관에 의해 행사되는 정치제도다.
의회민주주의의
정치제도가 최선의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인간이 만든 것 중에서는
가장 보편적인 것이며
대다수의 나라들이
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것도 그 때문이다.
그 반대가 전체주의이며
과거
대부분의 공산국가들이 이를 채택,
운용하다 붕괴되고 말았다.
그 정치형태가
반인간적이었기 때문이며
북한과 쿠바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전체주의 국가들이며
똑같이 국민들이
독재에 신음하는 세계최빈국들이다.
우리가 정치적으로
후진국인 가장 큰 이유는
우리스스로가 채택하고 있는
‘의회민주주의’ 에 대한
이해의 부족과 학습의 부족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공교육이 붕괴되고
사교육시장이 커진것도
상당한
원인이 된다고 판단할수 있다.
‘민주시민’ 은 공교육을 통해
‘양육’ 되는 것 이기 때문이다.
의회민주주의가 공화제의 정치형태라면
여기에 참여하게되는
여러사람-국민의 서로다른 생각-의사를
집약, 통일, 채택하는 순서에는
‘토론’ 이 절대적인 과정이며
이어 여기에서
도출된 의견들을 투표에 의해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 정도다.
그 상한선이자 하한선이 곧 51대 49다.
따라서
민주주의 요체는 ‘토론’ 과 ‘다수결’
그리고
그 결정에 대한
승복이라고 정의해도 무리가 없다.
지금의 우리정치가 안고있는
가장 큰 문제점의 하나가
‘토론’ 이 빈약하고 부족한 것이다.
토론은
남의 의견도 내 의견처럼
존중하지 않으면 성립될 수가 없다.
나와 다르면
곧 ‘적’ 이 되는 풍토에서
민주주의는 자리를 잡을수도,
성장발전 할수도없다.
언제나
‘다수결’ 이 전제하는 것은
결과에 대한 ‘깨끗한 승복’ 이다.
승복(承服)은 납득하여 쫓는 것이다.
내 의견과는 다르지만
그것이 여러사람들에 의해
다수결로 결정되었다면
승복하는 것이 당연하며
지금의
우리 정치판이 난장판인 것은
승복이 부족하거나 없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이후의 온갖혼란이 그 증거다.
그런 의미에서는
대선에서 패한쪽이
비겁하고 비열하다고 할 수 있다.
의회민주주의의 정치형태에 대해
가장 분명하게 이를 저해하는 것이
다수결에
승복하지 않는 사악한 심성과 태도다.
토론문화가 없는것과
다수결에
승복하지 않는 풍토가 개선되지 않는한
정치선진국은 요원한 얘기다.
정치적으로
후진국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의회정치의 순기능’ 이 살아나지 못해
국민들이 고통을 받기 때문이다.
어떤 역사에서도
정치적 발전과 안정없이
경제가 발전한 국가는 없었다.
우리가
3만불의 벽을 넘지못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의회민주주의 정치는 곧 ‘정당정치’ 라고 했다.
정당(政黨)은 글자 그대로
정치에 대한 주의주장이나
정책에서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
그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조직하는 정치적단체라고 정의할수 있다.
따라서
정당의 ‘요체’ 는 ‘이념-정책’ 이다.
우리나라 정당들의 가장 큰 취약점은
나름대로의
‘이념-정책’에서 크게 빈약한 것이다.
의회정치의 본산인 국회안에서,
망치, 전기톱, 빠루, 최루탄이 터지고
서로가 멱살을 잡고 피터지게 싸우는것도
모두
‘이념-정책’ 의 빈곤에서 비롯된 것이며
정치를 육탄전으로 대신하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이합집산(離合集散-흩어졌다 모였다 하는) 하는것도
분명한 정치적 이념보다는
자기잇속, 패거리의 잇속,
자기당의 잇속을 먼저 챙기려는
정치모리배가 많기 때문이다.
그들에게서
나라를 생각하고,
국민을 생각한다는 기대를
가질수 없는게 그 때문이다.
자기들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 사람들 인지를
본인 스스로가 전혀 모르고 있다.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학습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를
오직 권력으로만 생각하는 폐단이
바로 그것이다.
공천(公薦)이라는 정치용어가 있다.
공천은, 여러사람의 합의에 의한 천거,
공정한 추천,
정당에서 선거에 출마할 당원을
공식적으로 추천한다는등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적어도 지금까지는
모든 선거에서 정당의 ‘공천’ 은
당선을 담보하는 중요한 정치수단의 하나다.
문제는
‘공천권’ 의 행사가 공정하기 보다는
정파, 계파, 패거리들을 만들고
그것은
그대로 후진정치의 악습으로
남게된다는데 있다.
선거구의 유권자에 의해
직접투표로 선출되는 대의원-국회의원들이
국회안에서
‘국민의 대표자’ 로서의 기능을 상실하는
원천적인 이유도 바로 이 공천에 있다.
후보자 였을때는
유권자들을 하늘처럼 모실 것 같지만
일단 공천으로
당선이 되어 국회에 입성하면
그때부터
유권자는 눈에 보이지않고
오직 자기를
공천해준 ‘공천세력’ 의 졸개가 되어
거수기로 전락하고 만다.
이게 지금까지의 슬픈역사다.
그동안
우리 유권자들이 신물이 나도록 겪어온
부패,타락정치의 원흉이 바로 이 공천이다.
공천의 폐해는 그렇게도 크고 질기다.
3선의원으로 12년간 의정활동을 했던
원희룡의 얘기를 들어보자.
‘나는 한국정치를 3류도 만들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중
하나를 현재의 공천방식에서 본다.
19대 국회의원을 기준으로
300명의 의원중
정당에 소속되어 있지않은 사람은 총3명,
비율로 1%에불과하다.
우리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국회의원이 되기위해서는
정당의 후보가 되어야 한다.
당의 후보가 된다는 것은
그 정당으로부터 공천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은
한정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당내 후보공천에 불나방처럼 달려든다.
정당의 공천권은
특정인을
중심으로 한 특정세력으로부터 나온다.
바로 그들이, 시스템이
우리정치를 3류로 만드는 가장 큰 이유다.
당내권력은
대통령이라는 절대권력과 차기대권주자,
그리고
이를 보좌할 당 대표와
사무총장(원내대표)에게 집중된다.
일종의
이너서클인 이들은
당의 가장 중요한 권력인
국회의원후보 공천권을 사실상 독점하게된다.
결국
이들이 가진
공천권이라는 힘을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된다.
공천권의 힘은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공천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 것이지에 대한 경고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정직하게
유권자들인 우리가 스스로를 살펴볼 차례다.
우선 내가속한
선거구의 출신 국회의원이 누군지 알고있는가.
또
그가 국회안에서
어떤 의정활돌을 하고있는지
관심을 가져본 일이 있는가.
어떤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직접 전화를 하거나 이메일등을 통해
자기의 의견을 피력해 본 일이 있는가.
의정활동의 견제, 감시자로서
그의 치적이나 부패에 대해 객관적인 근거에 의해
SNS등에 그 내용을 올려본 일이 있는가.
아무리
지역구의 직접선출에 의해 선출된
국민의 대의원, 국회의원이라 해도
유권자가 무심하면
자기도 유권자에 대해 무심해 지는게 현실이다.
관혼상제에 얼굴을 내 밀고,
언론에 나타날때만
잠시 모습을 보이는 ‘사기꾼’ 이 되는 것이다.
유권자들을 두려워 할줄 아는 국회의원,
그렇게
국회의원을 몰고갈줄 아는,
깨어있는 유권자 없이 정치발전은 불가능하다.
지금처럼 선거가 끝나면
서로 무관하게 지내는 정치풍토에서는
개선될 여지가 전혀 없다는 얘기다.
이점 깊이 유의할 필요가 있다.
1963년이면 지금으로부터 51년 전이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우리와는 아주다른,
놀라운 정치풍토를 체험한 일이있다.
직장안에서 나와 절친했던 미국인 친구는
‘민주당’ 의 지지자였고
그의 어머니는
‘공화당’ 의 열열한 지지자 였는데,
그 어머니가
미국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안에
자기들 지역구 출신인 ‘민주당 의원’ 이
의정활동에서
어떤 잘못된 판단을 했다는 내용의
신문지면을 함께보내왔다.
그 신문기사를 꼼꼼하게 읽어본 이 친구는
바로
그 지역구 출신의 국회의원에게
항의편지를 보냈으며
얼마후
그 국회의원으로부터
정중한 답장이 오는 것이 아닌가.
1960년대의
우리 정치수준으로는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으며
미국이 왜 강한지를 알것같았다.
결론은 간단한 것이다.
지금의
무능하고,
비겁하고,
비열하고
부패한 패거리들을
누가 뽑아서 국회에 보냈는가.
그게 바로 우리들이 아닌가.
후진정치의
주인공은 결국 우리들 자신인 것이다.
정말
이제는 삼류, 사류정치는 졸업할때가 됐다.
그 일 역시
우리의 책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들이 주권자들이고
한표를 행사하기 때문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아주 중요한 정치발전의 방법에 대해 얘기해 보자.
민주주의가 제대로 운용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민주시민’ 이 있어야 된다.
우리사회가
이토록 혼란스러운 것은
민주시민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의회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사로다른 의견에 대해 토론하고,
어떤 사안을 가지고 모의국회도 해 보는
일련의 커리큘럼을 통해
건전한 민주시민을 길러내야
지금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교육’ 은 사교육시장엔 없다.
사교육시장이 양산해 낸게 바로 백수들이다.
그래서
우리의 미래가 암담한 것이다.
‘교육이 미래다’ 라는
표어는 사실 의미심장한바 있다.
국가의 내일은 진정 교육에 달려있다.
공교육을 일으켜 세워 탄탄히 해야하는
시급한 이유가 그것이다.
분명한 정체성,
주관적인 신념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
자기일에 대한 전문성은 모두가
오직 제대로된
공교육을 통해서만 얻을수 있다.
그만큼
훌륭한 교사들을 양성하는 일도
똑같이 중요하다.
지금의 우리교육은
넓은바다에서 건강하게 자라야 할 아이들을
가두리양식장에 가두어 놓고
항생제가 잔뜩 들어있는 사료로
사육하는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거기에서
어떻게 ‘건전한 민주시민’이 나오겠는가.
실로
우리모두는
우리의 ‘선진정치’를 위해 깊이 반성해야 한다.
시민이 정치를 감시하지 않으면 정치가 시민을 우롱한다.
-서양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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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생님 건강하시기를 빌고요.
눈 뜨임 되는 고마운 게시글은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체성 없이 어지러운 모습들이
'이합집산(離合集散-흩어졌다 모였다 하는) 하는것도
분명한 정치적 이념보다는
자기잇속, 패거리의 잇속,
자기당의 잇속을 먼저 챙기려는
정치모리배가 많기 때문이다.
그들에게서
나라를 생각하고,
국민을 생각한다는 기대를
가질수 없는게 그 때문이다.'
예
잘 알겠습니다.
토론 문화의 부재도 문제라는 것도 공감합니다.
그리고 또
' 분명한 정체성,
주관적인 신념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
자기일에 대한 전문성은 모두가
오직 제대로된
공교육을 통해서만 얻을수 있다.'
에도 공감도 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많이 배우고 갑니다.
다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