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 80년대 수묵화 운동
1. 자아의 인식과 한국화
우리 미술사에 있어 ‘한국화’라고 하는 명칭의 본격적인 사용은 역시 80년대에 접어들면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동기가 되었던 것은 종전의 ‘동양화’라고 하는 어휘가 일본식의 표기였다는 것과, 그 범주가 막연히 ‘서양화’에 대한 대칭 개념일 뿐, ‘한국’이라는 주체적인 의미에서의 명칭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 비롯되어졌다고 간략히 정리하여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물론 화단과 문화계 전반에 걸친 ‘자기회복’과 ‘자성의 재인식’이라는 대명제 하에 야기된 일련의 『예술주체 운동』의 일환이었다고 볼 수 있겠으며, 그에 상응하여 기존의 우리 동양화단에 전체적인 혁신의 계기를 삼을 수 있는 변환을 일으켰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청강 김영기(晴江 金永基)가 ‘韓國畵論’을 화단과 정부 각 기관에 발표 건의한 1971년 그의 주장을 잠시 살펴 보도록 하겠다. 청강의 저서 『동양미술론』 뒷편에 “나의 한국화론과 그 비판해설 ”이라는 제목이 있는데, 그중 서두에서 기존적으로 쓰이고 있는 ‘동양화’의 명칭에 대해 다섯가지로 공략하여 말하기를 1) 일제식민지시대의 잔재사상의 표현이다. 2)자주독립된 민족의식의 주체성이 없다는 표시이다. 3)민족예술의 특성을 보일만한 풍성(風性)이 없는 회화란 뜻이다. 4)동방아시아 여러 나라 중의 한 국가 한 민족의 그림(회화)이란 뜻이다. 5)서양화에 대하여 대조적으로 말할 때만 써야할 명칭이다 라고 하였다. 청강의 논리는 즉각적인 호의적 반응을 얻지 못한 채로 그후 10여년의 시간이 지난 80년대에 와서야 비로소 그 결실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민족의 자존과 시대적 상황의 관점에서 동양3국의 민족회화를 잠시 살펴보면, 중국은 20세기 초두에 들어오면서 서구의 현대미술 사조가 유입되는 과정에 있어 중국인들은 그에 대칭되어지는 자민족 회화의 명칭을 ‘중국화’라고 정함으로써 ‘서양화’에 대칭되어지는 동양회화의 대표적 성격을 부여하였다. 그것은 자기민족의 회화관에 대한 중국민족만의 대단한 긍지였으며, 그들은 동양의 회화는 곧 중국의 회화라고 하는 의식이 그 저변에 잠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편 일본은 그들 역시도 중국의 회화에 그 연원을 두고 있긴 하였으나 이미 일본화 되어진 양식을 정립하여 ‘일본화’로 명명함으로써 그들대로의 독특한 자기민족 양식을 존립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구미나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찾아보기가 힘든 자민족 회화에 대한 강렬한 자존의 현상임을 느끼게 한다. 이제, 80년대에 들어서서 사용되어지고 있는 ‘한국화’의 명명 또한 그 본래 의도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면 그 본질적인 원인은 민족자존의 의식이 우선적인 의도에서 출발한 것임은 두말한 나위도 없다고 본다.
‘한국화’라는 명칭에 대하여 최병식은 “ 「한국화」라고 하는 모든 진실의 핵심이야기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세대들이 전반적인 문화의 차원에서 겪어나가고 있는 ‘자기회복’이라고 하는 자성적인 본질을 내표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 한 쟝르를 표현하는 어휘의 역량은 표면에 나타난 극히 일각의 문제일지 모른다. 아무리 훌륭한 명칭이 주어져도 그에 합일할 수 있는 의식의 감각과 그 느낌으로부터 드러나는 방법적 제시가 뒤따르지 못한다면 그것은 ‘모순’이 될것이다. 역사상 영원한 세기의 언어와 감성을 남기고 갔던 수 많은 선인들의 작품이 민족미술의 명사(名詞)아래서 제작되어진 것은 결코 아니었으나 결국에는 하나로 만나는 공감대를 이루고 있었던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가장 진실된 민족회화요, 후세가 학습해야할 ‘한국화’의 실체일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즉 일시적 명칭보다는 우리 회화가 이어져 가야할 기나긴 역사속에 합리적 공감대를 갖는 언어가 사용되어져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2. 수묵화 운동
1980년대 동화화단에서 가장 두드러진 양상이라면 일부 수묵 계열 작가들에 의해 주도된 이른바 『수묵화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70년대말과 80년대초는 정치, 사회적인 변혁은 물론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일종의 상징적인 시기라 할 것이다. 미술에 있어서도 우리 그림에 대한 ‘정명운동’으로 한국화라는 명칭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을 뿐 아니라 수묵화 운동이라 불리는 집단적 미술운동, 그리고 겸제 정선을 비롯한 진경 산수에 대한 재조명을 통한 실경 산수화 바람, 왜색 시비를 극복하고자 하는 채색화의 새로운 가치관 모색, 그리고 지필묵 위주의 전통적인 재료관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재료들을 혼용하는 이른바 혼합재료라는 새로운 재료관이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1980년대 초반 수묵화운동은 1965년 해체된 묵림회가 펼쳐 보였던 동양화의 적극적인 조형실험 이후 나타난 가장 괄목할 만한 현상이다. 묵림회를 중심으로 1960년대 동양화의 실험적 추세가 동양화의 관념의 탈피와 동양화의 양식의 한계실험이라고 할 정도로 매재의 확대와 의식의 변혁을 내세운 것이라면, 80년대의 수묵화 운동은 수묵을 통한 고유한 정신세계로의 환원을 그 바탕에 깐 것으로,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그 동안 실험을 통해 퇴색해 가기 시작한 동양화의 본래적인 정신을 수묵이라는 순수한 매재를 통해 검증한다는 움직임으로 파악된다. 이 운동은 주로 “홍익대 동양화과 동문들이 그 주축을 이루면서 산발적인 전시를 기획하여 왔는데, 그들의 기존관념이 없다면 역시 그간 전습적인 동양화의 범주로부터 탈피하여 오늘에 적합한 조류의 전환을 꾀하는 데에 있어서 특히 수묵의 재질을 선택, 매우 극단적이리만큼의 표현적 수법까지도 불사하는 경향을 보여왔었다. 그것은 어쩌면 필묵의 감성이 표현되기에 앞서 실험적 ‘자희행위(自戱行爲)’가 우선한다는 ‘직선적 사고’로부터 출발되어지는 서구 모더니즘의 방법이 폭넓게 수용되어진 현상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그들은 필묵의 사용에 있어서 수반되어지는 기존의 발파묵(潑破墨), 오색묵미(五色墨味), 각종의 필법, 전통적인 원근, 즉 시각법(視覺法), 구도(構圖), 즉 전통적 포치(布置) 등 기존의 방법을 고의적이든 타의적이었든 과감한 생략과 부정을 이루어갔으며, 거기에 급격한 재료의 변환과 제재의 선택 등이 가미되어져서 첫번째의 의식적 옥필주의(玉筆主義)가 걸어왔던 사조와는 완연히 상반된 견해를 보여왔다. 특히나 소위 ‘한글세대’로 불리워지는 30대 이하의 청년작가들의 경우에는 그 대다수가 구조적 개념에 치우친 실험의식을 동반하여 ‘수많은 번복의 체득’으로부터 이루어지는 ‘내성적 각오(內性的 覺俉)의 미학’이 갖는 전통적인 동양의 기질에는 크게 상반된 사조를 이루어 왔다. 그러나 이는 물론 그간 몇백년 동안에 걸쳐 답습적인 과정으로 이어져왔던 중국 산수화 일변도의 관념적 사조로부터 새로이 새대적인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서구의 각 사조가 가미되어 가면서 모든 동양 전통적 시지각(視知覺)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의미하는 또다른 지평을 열었다는 데에서는 긍정적 차원으로도 받아들여져야 하겠으나, 역시 그 본성적 심층에 흐르는 표피적 편향성이나 심오한 의식의 결핍 등은 상대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많은 과제를 남겨두고 있는 것만은 사실은 것이다. 이 계역에 속하는 그룹전으로써는 「일곱 작가의 수묵전」, 「묵의 형상전」, 「82전통화전」, 「오늘의 수묵전」, 「수묵의 표정을 찾아서」, 「한국화 오늘의 상황전」, 「서울, 묵전」, 「묵, 여류 7인전」, 「한국의 단면전」, 「한국현대수묵전」, 「묵-젊은 세대 흐름전」 등이 대표적인 경우였다 하겠다.
이 운동의 중심적 작가로는 송수남, 홍석창, 이철량, 신산옥, 박인현, 이윤호, 김호석, 문봉선 등이며, 이 운동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으나 이 시대 수묵화의 다양한 실험적 의식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던 이들로 김병종, 김호득, 이영석, 이길원, 이왈종, 오숙환 등을 들 수 있다.
수묵화 외에 꾸준히 채색 위주의 경향을 지속해 온 원문자, 이숙자, 김진관, 김천영, 서정태, 김보희, 차영규등과 80년대 중반 채색과 수묵의 적극적인 융합을 꾀한 이른바 채묵화의 경향으로는 황창배, 이영수, 장혜용, 전래식, 박남철, 백순실, 이철주, 이윤희, 변상봉, 홍순주, 한풍열, 장상의, 차명희, 심경자, 선학균, 곽석손등을 들 수 있다.
안상철의 영향을 받아 적극적인 매채의 확대를 시도해 보인 박선희, 이설자, 성창경, 김수철등 다소 예외적인 작가군과, 전통적 묵법에 사경과 현실 풍경을 구사하는 일군의 작가들이 또 한쪽에 자리잡고 있다. 김동수, 박대성, 김원, 문장호, 이인실, 송계일, 김아영, 오용길, 이정신, 조평휘, 이열모, 이영찬, 하태진, 임송희, 정명희, 정승섭, 홍용선, 한진만 등이 그들이다.
자료제공-http://simone.netian.com/art/art-main/korean/kore-main.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