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판이네" 소리 나오는 갯벌, 낙조는 덤입니다
농게와 칠게, 짱뚱어, 낙지가 지천에... 무안군 청계면 복길마을
이돈삼
▲복길마을 앞 갯벌에서 만난 수컷 농게. 한쪽 집게발이 압도적으로 크다. ⓒ 이돈삼관련사진보기
"게판이네."
지난 17일 전남광주특별시 무안군 청계면 복길 마을의 갯벌.
함께 간 지인의 말이다.
사실 그랬다.
갯벌에 농게가 지천이다.
압도적으로 큰 한쪽 집게발을 치켜든 수컷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집게발이 야구 글러브 같다. 글러브를 오른쪽에 낀 것도 있고, 왼쪽에 한 것도 있다.
개체마다 다르다. 글러브를 끼지 않은 다른 쪽 집게발은 조그마하다.
바닷물이 빠진 갯벌에서 수컷이 집게발을 들었다가 내리기를 반복한다.
암컷의 시선을 끌기 위한 유혹의 춤이다.
글러브를 끼지 않은 암컷은 수컷의 프러포즈에 관심 없다는 듯, 식사에 여념 없다.
살짝 곁눈으로 볼 뿐이다. 매력 있는 짝을 찾으려는 본능이다.
암컷은 좌우 똑같이 생긴 두 발을 번갈아 움직이며 갯벌의 유기물을 찾아 입에 넣는다.
이른바 양손잡이다.
수컷은 큰 집게발을 프러포즈용으로 쓰고, 작은 발로만 유기물을 찾는다.
한손잡이다.
수컷의 밥 먹는 속도가 암컷보다 느릴 수밖에 없다.
흥미진진하다.
그럼에도 몸집은 수컷이 훨씬 크다.
농게는 물론 고둥도 지천
▲복길마을 앞 갯벌. 농게가 지천이다. 한쪽 집게발이 큰 것이 수컷이고, 좌우 똑같은 발을 지닌 것이 암컷이다. ⓒ 이돈삼관련사진보기
▲복길마을 앞 갯벌. 농게는 물론 칠게와 고둥도 지천이다. ⓒ 이돈삼관련사진보기
갯벌에 농게만 있는 건 아니다.
칠게와 짱뚱어, 고둥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낙지도 무수히 살고 있다.
부드럽고 다리가 가느다란 '세발낙지'다.
낙지는 갯벌이 가져다주는 인삼으로 통한다.
바닷가에 기다란 대나무 기둥도 무더기로 쌓여 있다.
저만치 갯벌과 바다 경계선에 솟아 있는 기둥도 빼곡하다.
전통의 지주식 김 양식 흔적이다.
바닷물에 띄워 양질의 김을 다량으로 생산하는 부유식과는 다른 양식법이다.
지주식은 하루 두 번 바닷물이 빠지면 김발이 모습을 드러난다.
햇볕을 쬐고 바람을 맞는 시간이다.
자연 상태에서 잡균을 없애며 친환경 김을 만든다.
지주식 김은 두껍고 거칠어 보이지만, 씹을수록 구수하고 향도 진해 최고급 대접을 받는다.
▲갯벌에 대나무 지주를 꽂은 지주식 김 양식장. 복길마을 앞 바다 풍경이다. ⓒ 이돈삼관련사진보기
▲갯벌을 파랗게 채색한 파래. 여름파래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복길방조제 앞 갯벌 풍경이다. ⓒ 이돈삼관련사진보기
갯벌 파래도 색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갯벌 위에 펼쳐진 초록색 카펫 같다.
바닷속 영양 염류를 먹고 자라는 파래도 갯벌 생태계의 한 축을 맡는다.
낙지나 농게, 칠게 같은 갯벌 생물의 쉼터로도 쓰인다.
오염되지 않은 갯벌과 햇볕, 들물과 날물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만들어낸다.
하지만 갯사람들에게 여름 파래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올여름엔 유난히 갯벌 파래가 가득하다.
기온이 가파르게 오른 탓이 크다.
바닷물 순환도 예전 같지 않다는 방증이다.
기후 위기를 알려주는 경보다.
농게와 칠게, 짱뚱어, 낙지가 갯가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갯벌의 풍미를 즐기려는 외지인도 불러들인다.
마을에 음식점이 들어선 이유다.
해 질 무렵 바다와 갯벌, 하늘과 사람을 온통 빨갛게 물들이는 낙조는 덤이다.
▲복길마을과 포구 풍경. 김 양식을 위한 대나무 지주대가 쌓여 있다. ⓒ 이돈삼관련사진보기
▲복길마을과 포구. 복길마을 앞 갯벌이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자원이다. ⓒ 이돈삼관련사진보기
이 갯벌을 품은 마을이 복길(伏吉)이다.
복이 길게 엎드려 있는 마을, 복을 불러오는 길목이다.
전남광주특별시 무안군 청계면에 속한다.
복길마을은 농게와 칠게, 낙지와 고둥, 김과 파래가 어우러진 삶터다.
복길마을 사람들은 갯벌에 지주대를 세워 김 양식을 하고 낙지와 농게, 칠게를 잡으며 살아왔다.
갯벌과 갯벌 생물, 마을과 사람들이 하나로 엮인다.
복길마을 가온누리에 복길항이 자리하고 있다.
복길항은 크고 화려한 항구는 아니다.
자그마한 어선들이 갯벌 위에 닻을 내리고 있다.
바닷물이 들면 바다로 나아갈 배들이다.
썰물 때 드러나는 갯벌은 생태계의 보물 창고다.
람사르 습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복길항 상징 조형물. 그 아래로 바닷물과 배가 오간다. ⓒ 이돈삼관련사진보기
▲86인 순교비. 복길마을 도로변에 있다. ⓒ 이돈삼관련사진보기
아름답고 평화로운 복길항과 마을에도 가슴 찢어지는 역사가 남아 있다. 한국전쟁 때였다.
이념 대립의 피바람이 불어닥쳤다.
인민군 점령기에 우익 인사와 지주, 그 가족이 희생당했다.
교인들도 이념의 광기에 희생당했다.
국군과 경찰이 돌아온 뒤엔 '부역자'라는 이유로 보복 학살을 당했다.
복길 앞바다와 갯벌이 학살 현장이었다.
가슴에 서린 한과 원망으로 마을과 바다가 숨죽이는 나날을 보냈다.
아픔을 치유로 바꾸는 자리에 기독교장로회 복길교회가 있었다.
복길교회는 원한을 원한으로 갚는 대신, 사랑과 용서로 이끌었다.
교회는 갈라진 마을사람들의 상처를 보듬는 치유 센터가 됐다.
가해자와 피해자 가족이 함께 손을 잡고 눈물 흘리며 화해했다.
깊은 아픔마저 세월과 믿음의 바닷물로 씻어냈다.
교회 마당과 마을 도로변에 86인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몇 년 전 세운 교회 설립 100주년 기념 조형물도 있다.
▲갈라진 마을사람들의 상처를 보듬어준 복길교회. 마을과 포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관련사진보기
▲복길마을 전경. 바다와 갯벌을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관련사진보기
복길마을 앞바다에서 노을을 바라본다.
한때 붉은 피로 물들었던 바다와 갯벌이 황금빛으로 반짝인다.
갯벌을 쉼 없이 누비던 농게와 칠게, 낙지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포구에 떠 있는 작은 배들도 한가롭다.
마을 뒤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노거수와 교회 종탑이 평화롭기만 하다.
칠게와의 만남으로 가볍게 시작한 마을 나들이가 묵직하게 마무리는 시간이다.
바다와 갯벌에 어둠이 내려앉으면서 집집마다 불이 켜진다.
금세 바닷바람이 선선해진다.
발걸음을 식당으로 옮긴다.
이제 칠게와 농게, 세발낙지를 입으로 만날 차례다.
▲복길항 노을. 해가 저물면서 바다와 갯벌에 어둠이 내려앉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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