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따금씩 황학동 벼룩시장이나 청계천의 중고서점들을 들러 누렇게 변색된 오래된 수필집들을 사들고 오곤 한다. 그 수필집을 통해서 오래 전에 죽은 시인을 만나기도 하고 판사를 만나기도 한다. 그들은 죽었지만 자신의 수필집 속에서 영원히 살아서 세상에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노천명 시인은 초등학교 때 동명이라는 잡지에 자신의 시가 입선된 걸 얘기했다. 진명학교 때는 이광수나 김동인 등 한국인이 쓴 소설을 읽고, 이화여전 영문학과 시절은 일본소설과 러시아 소설을 많이 읽었다고 했다. 한번은 전차 안에서 도스토엡스키의 ‘죄와 벌’을 읽고 생각에 잠겼다가 종로 네거리의 전차 정류장에서 내린다는 것이 용산의 일본군 연병장까지 갔었다고 한다. 소설 ‘테스’를 읽고 마음이 산란해져서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시인과 기자로 산 그녀는 일생 가난했던 것 같다. 지하방에서 다른 여자들과 합숙을 하며 살기도 했고 바닷가 판자집에서 스산한 바람소리를 들으며 쓸쓸해하기도 했다. ‘단상’이라는 그녀의 글을 보면 그 시절 삶의 단면이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바람이 분다. 뒤집어쓴 이불 사이로 장마철 물 내려가는 소리같이 바람소리가 들린다. 밤새도록 불었으면 이 아침에는 잠잠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맹렬한 기세다. 지금 도대체 몇 시나 되는지 모르겠다. 아직 어둡다. 닭 우는 소리가 들리고 산사의 종소리가 은은히 파문을 일으키며 여울져 온다. 나는 이 성냥갑 같은 작은 방 안에서 혼자 얼어죽을까 두렵다. 이불 속에서 얼굴을 내놓기 싫다. 나는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고교시절 그녀의 시 ‘사슴’을 국어교과서에서 읽었다.
사도법관이라고 불리던 김홍섭의 수필을 청계천에서 구입한 적이 있다. 그 중 어떤 글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12월의 구름 덮인 스산한 어느 일요일 그가 성당에서 미사가 끝난 후 신부가 그에게 다가와 부탁했다.
“지난 밤 소천한 교우가 있는데 먼저 가서 도와주십시오.”
김홍섭 판사는 서대문 산 쪽의 미로 같은 길을 따라 올라가 허름한 작은 집 앞에 도착했다. 함석 문을 열고 손바닥만한 좁은 마당으로 들어갔다. 작은 마루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작은 방이 있었다. 왼쪽방의 창호 문의 둥근 무쇠고리를 잡고 문을 열었다. 어둠침침한 방안 구석의 요 위에 한 여인이 죽어 있었다. 남편도 자식도 없는 외로운 죽음이었다. 벽에는 앉은뱅이 책상이 있고 그 위에 몇 권의 책이 놓여 있었다. 김홍섭 판사는 무심히 그 책으로 눈길이 갔다가 죽은 여인이 노천명 시인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는 죽은 시인의 시신을 깨끗이 닦아주고 천국으로 가는 옷을 입혀 주었다. 8년 후 김홍섭 판사도 하늘나라로 갔다.
인간이란 잠시 생겼다가 없어지는 물거품이라고 한다. 영혼이 멀리 떠난 시인과 판사는 수필집 속 시간의 바다 위에서 영원히 존재하고 있었다. 저 세상으로 건너간 분들의 수필집을 읽으면 보석같이 많은 메시지들이 내게 전해져 온다. 그들은 내게 좀더 인생을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즐기다가 오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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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교시절 국어책에서 "목아지가 길어 슬픈 사슴이여!"라는 노천명 시인의 글을 읽고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일제시대 진명여고를 나와 이화여전 영문과를 나왔다면 당대에는 최고 학벌이며 출신 가문도 대단한 집안이았을것이다.
지금 외무부 장관을 하는 강경화보다 더 월등하다고 본다.
그랬던 그 녀가 저런 비참한 삶을 살았을까?
목아지가 길어서 슬픈것 만은 아닌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