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노동자가 된 선생 들의 고난[정재학 칼럼]
민주당에 드리운 반역의 그림자
스승이 사라진 사회만큼 암울한 사회도 없다.
밝은 곳으로 인도하는 자애로운 스승과 믿고 따르는 제자가 사라진 사회는 半目과 불신의 늪에 빠지기 쉽다.
믿지 못하여 싸우고, 믿고 싶지 않아서 배신과 거짓으로 물들어 가는 사회가 바로 현 대한민국이다.
정말이지 우리는 지금 남을 믿지 못한다. 본받을 만한 사람이 없고, 정직한 스승이 없기 때문이다.
김대중 이후 우리 대한민국엔, 전교조가 면죄부를 받고 교육계 전면에 등장하였다.
전교조의 위험성은 이미 당시에도 충분히 인지된 바 있었다.
그래서 파면이 되었고, 운동권 사범계 출신들은 임용되지 못하였다.
그런 그들이 김대중에 의해 모조리 복직되었다.
전교조의 가장 큰 위험성은 그들이 스승의 위치에서 노동자 신분으로 내려갔다는 점이었다.
스승이라는 이름의 고귀함에서, 돈으로 노동의 가치를 따지는 천박함으로 내려온 전교조는 '참교육'을 부르짖기 시작하였다.
그 참교육이란게, 노동자 농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참세상이란 것이고, 그 참세상을 만들기 위한 교육이 참교육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노동자 농민이 주인이라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지향하는 교육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교단 장악을 위해 교장선생님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얼마나 많은 교장선생님들이 손가락질과 모욕 속에서 떠나갔는지 모른다.
교육 노동자들은 그렇게 교단을 장악했고, 이에 우리 사회에서 스승은 사라져갔다.
교육은 그 본질에서 가치를 바꾸고, 오직 돈과 노동의 교환, 더 나아가 교단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한 좌파인물의 생산기지가 되었다.
스승이 있을 수 없는 사회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 교육 속에서 성장한 학생들이, 이제는 무엇으로 길러졌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한때 군복무를 기피하는 풍조가 일어난 일부터 군복무 기피를 양심에 의한 선택이라는 어느 판사의 판결까지, 우리는 되짚어 보아야 한다.
학생들이 스승을 때릴 까닭이 없다.
학생들은 스승이 아니라 노동자를 때린 것이다.
학생들에게 얻어맞고 주저앉아서 울고 있는 교사들에게 먼저 물어보자.
너는 스승인가, 아니면 노동자인가.
어느 사회든 나라와 민족의 미래는, 지금 우리가 가르치는 현실의 학생들에게 달려있다.
집안도 마찬가지다. 지금 가르쳐 기르는 우리의 자식들이 집안의 미래를 결정짓는 법이다.
나라와 민족과 가족을 위한 희생과 헌신의 정신을 버린 햑생들이 자라났을 때, 단순히 교사들만 얻어맞고 있을 것 같은가.
그리고, 전교조가 최후로 집중했던 교육이 親북한 찬양 교육이었음을 어찌 판단할 것인가.
우리 학생들이 김일성 고향이 만경대라는 것을 알아서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학생들을 親北으로 몰고가던, 그 전교조 출신들을 전국구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모신 정당이 바로 더불어민주당 前身들이었다.
민주당이 전교조를 안고 온 지, 벌써 30년이 넘어간다.
이는 우리 학생들에 의해, 나라에 예의범절이 사라져, 경로효친 같은 전통의 질서 또한 사라졌다.
학교 정문 앞에서 마약을 팔고, 어린 학생들이 마약에 취하고, 흉기를 들고 길거리에서 아무나 찌르는 사회가 되었다.
정치인은 존경받는 스승일 수 있다. 국민을 밝은 곳으로 선도하고, 스스로 모범이 되어 美醜의 기준이 되는 어른. 정치인은 우리 사회의 어른이어야 한다.
그러나 앞서서 거짓말로 일관하고, 거짓말을 뉴스로 만들어 국민을 속이고, 심지어 자료를 조작하는 반역자들. 위안부할머니들에게 보낸 성금까지 등쳐먹은 저질도 있다.
민주의 이름으로, 한 떼의 민주당 사람들이 2024년 22대 총선을 향해 몰려가고 있다.
김대중에 의해 길러진 자들이다.
또한 전교조를 이용하여 나라를 망친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돈과 명예, 권력을 움켜쥐기 위해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태양은 그들의 정체를 안다.
그들의 뒤에 드리워진 태양이 보여준 그림자.
늑대의 얼굴과 붉은 혓바닥, 妖設과 甘言으로 국민을 속이고 살아가는 빨갱이들이 보이지 않는가.
전라도에서 시인 정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