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인기와 더불어 실력에 대해서도 '넘버1'이라고 할 수 있는 메이저리그 초울트라 슈퍼스타 자리에서 90년대를 보낸 켄 그리피 주니어.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소름끼치는 스윙을 지닌 천재성인 지닌 타자인 동시에 빠른발과 스파이더맨을 방불케하는 수비능력 등 공수주를 모두 갖춘 완벽한 선수의 상징인 '5Tool'플레이어이다.
신시내티 이적 후는 고질적인 부상으로인해, 그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시간대를 보내고있는 그리피 주니어도 벌써 35세가 되어 젊은이를 끌어들여 가는 존재가 되었다.
부친인 시니어는, 빅 레드 머신으로 불린 레즈의 일원으로 월드시리즈2연패에 공헌한 스타 선수였다.
그 부친의 모습을 보고자란 그리피는, 신시내티의 모일러 고등학교에 진학해, 야구와 풋볼을 겸임하면서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했는데...
야구에서는 1986,1987년 2년 연속, 몸담고있던 리그의 올해의선수로 선정되며 그아버지에 그아들임을 전미국인에게 인식시킨다.
그리고, 마침내 1987년 드래프트로 시애틀 매리너스로부터 전미 "톱"으로 지명받으며 화려하게 프로에 입성하게된다.
당시 그리피의 나이 17살 여름때의 일이다.
지명된 그 해, 싱글A 에서 플레이해, 54경기에 출장해, 타율 .313, 14홈런, 40 타점, 13 도루를 기록해, 역시란 찬사를 들으며 차세대 슈퍼스타란 칭호를 들으며 성장해간 그리피였다.
다음해인 1988년은 한단계 위인 싱글A 산바디나에서 개막을 맞이했다.
당시 그리피는, 아버지 시니어의 아들이라고 하는것이 상당한 부담감과 압박을 받았다고 하는데 주위로부터 받는 압력이 끊어지지 않자 자살까지도 심각하게 고려했었노라고 후에 밝힌바있다. 그리피가 받은부담감을 짐작해볼만한 대목이라 할수있겠다.
그러나 마음을 다잡은 그리피는 58 경기에 출장해, 타율 .338, 11홈런, 42 타점, 32 도루는 숫자적으로도 훌륭한 것이었으며, 시즌 종반에는 더블A 버몬트로 승격하게 되었다.
1989년, 19세의 나이로 그리피는 초청 선수로 매리너스의 스프링 트레이닝에 참가해, 26 경기에 출장하며 15경기 안타를 포함해 타율 .359, 2홈런, 21 타점이라는 좋은 성적을 올려 개막전 메이저입성에 성공했다.
당시 그리피의 나이19세로 엄청난 일이 아닐수없었다.
메이저 데뷔는 4월3일 오클랜드 어슬렉틱스로 상대는 20승투수 데이브 스튜어트였으며, 그리피는 첫타석에서 2루타를 날리며 최고의 데뷔를 장식했다.
메이저 데뷔해에 그는 127경기에 출장해 타율 .269, 16홈런, 61 타점을 기록하며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성숙하지 못한 약관 19세의 나이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적을 거두게된다.
1990년 프로2년차인 당시 그리피는 지금의 포지션인 중견수 자리를 사수하며 수비에서 '제시바 필드'의 통산 200호 홈런이 될 타구를, 펜스를 밟고올라 강탈하는 플레이도 있었다.
훗날 그리피의 이러한 홈런성 타구를 '강탈'하는 플레이가 빈번하게 일어나자 한 기자는 '죽음, 세금, 그리고 그리피의 골드글러브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것들'이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리피는 올스타 팬 투표에서도 당당히 선발되어 사상2번째로 젊은나이로 중견수로 처음으로 선발 출장했다(사상 최연소 올스타 출전은 1955년 20살 나이의 알 케이 라인이다.)
그리고 이 해의 하일라이트는 시즌 종반이었다.
아버지 시니어가 레즈에서 방출되며 아들이 있는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하며 8월 31일 캔자스시티 로얄스 전에서는 父子가 스타팅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는 사상최초의 사건을 이룩했다.
한술더떠 9월 14일에는 부자 연속 홈런도 기록했다.
결국 그해 그리피는 155 경기에 출전해, 타율 .300, 22홈런 , 80 타점을 기록하며 20살 나이의 젊은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성적를 남긴다. 또, 그의 중견수 커리어 첫 골드 글러브상도 수상한다.
1991년은, 자신의 커리어 최고 타율인 .327을 마크했고 타점수도 처음으로 100타점을 돌파하며 확실히 경험이 쌓을수록 나날이 성장하는 자취를 남기게 된 그리피였다.
이당시 그리피는 중거리 타자에 가까운 이미지였지만, 전년도 2루타 28개에서, 42개까지 증가하며 장타력 또한 파워가 실리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덧붙여서 그리피의 아버지 시니어는 1991년 까지 활약하며 아들과의 팀메이트 생활을 접기도한 해이다.
1992년에 그리피는 데드볼에 의해 손목을 다쳐 메이저 승격후 첫 부상자 명단에 들어가며, 142경기에 출장해, 타율 .308, 27홈런, 107 타점을 마크 하며 될성부른 떡잎임을 유감없이 과시하게된다.
70개의 장타(2루타 39개, 3루타3개 포함)는 리그3위의 기록이며, 장타율 .535도 리그4위, 서서히 슬러거로서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더욱이 이해 샌디에고에서 벌어진 올스타전에서는 당시 시카고 커브스 소속이던 그렉 매덕스로부터 홈런을 쳐내는등 3타수3안타를 기록하며 올스타 MVP를 수상하기도 한다.
그의 아버지 시니어도 1980년에 올스타 MVP를 수상한적이 있어, '사상최초의 2대 올스타 MVP'가 탄생 되는순간이었다.
1993년이 되면서, 그리피는 마치 신들린듯한 방망이 솜씨로 홈런을 양산하며 7월 후반에는 8경기 연속 홈런이라 하는 메이저리그 타이기록을 마크하며 최고의 선수로 발돋움 하게된다.
당시 그리피의 홈런 타이기록순간은 상당히 극적이었는데 기록이 인정되는 경기의 마지막 타석에서, 높은 볼을 퍼올리며 스탠드에 꽂아넣었다.
이 해 그리피는 타율 .309, 45홈런,109 타점을 기록했으나. 당대 최고의 타자중 한명인 후안 곤잘레스가 46홈런을 기록했기 때문에 아쉽게 1개차이로 홈런왕 타이틀은 놓쳐 버렸다.
계속 성장하는 그리피의 모습을 본 당시 시애틀 매리너스 루 피넬라 감독도 "이제껏 내가 본 선수중에서 최고" 라는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1994년은 개막부터 기록적인 홈런 양산 페이스로, 1961년에 작성된 '로저 매리스'의 시즌 61홈런 기록을 깰 후보로 첫번째로 손에 꼽힌것이 그리피 였다.
그 기대의 현상때문인지 올스타 팬 투표에서는 역대 최고인 약608만 표로 몰표를 받으며 여유있게 최다득표선수가 되었다.
그이전 최다득표 기록이 1977년때 로드 크루가 보유한 429만표 였으니 당시 그리피의 인기는 굉장했음을 짐작할수 있다.
그러나, 팬들의 기대는 무너져, 악몽의 선수노조 파업으로인해 8월 12일을 기해 시즌이 종료되 버린다.
당시까지 그리피의 성적은 타율 .323, 40홈런, 90타점 이라는 기록을 남기며 생애 처음으로 홈런왕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만약 시즌이 끝까지 치뤄졌다면 로저 매리스의 기록은 맥과이어가 아닌 그리피가 먼저 달성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남을만큼 아쉬운 결과가 아닐수없다.
당시 그리피의 인기가 얼마만큼이었는지 짐작할수있는 일화를 소개하자면 어느날 타격연습중에 그리피 주니어가 모자를 거꾸로 쓰고 타격연습을 하고있었다.
그것을 본 당시의 양키스 감독이던 '군기반장' 벅 쇼월터 現텍사스 감독이 그리피를 비난 하는 발언을 한적있었는데 흥미로운사실은 그 다음날 매리너스 선수 전원이 모자를 앞뒤로 바꿔쓰고 연습을 했다고 한다.
이런점에서 당시 그리피가 팀메이트로 부터 받는 지지도를 짐작할수있을것이다.
그런 그리피에 최대의 비극이 일어난 것은 1995년도 였다.
1990년부터 매년 골드 글러브상을 수상하며 수비의 명수였던만큼, 위험한 플레이을 많이 행하는 그리피였는데 이것이 화가 되었다.
5월말, 우중간으로 높이 날아가는 공을 쫓아, 캐치 했지만 왼손목을 골절당하며 전치3개월이라는 중상을 당한다.
재활을 거쳐 예정보다 빠른 8월 중순에 그라운드에 복귀한 '슈퍼스타' 그리피가 돌아온 매리너스는 이해 구단 사상최초로 지구 우승을 차지한다.
첫 포스트시즌 진출은 부상이란 아픈 상처를 넘은 그리피 자신에게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
양키스와 벌였던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5개의 홈런을 날려, 팀 승리에 크게 공헌했으며
클리블랜드와의 리그 챔피언쉽 시리즈에서도 홈런을 쳤지만, 팀은 2승4패로 패배해버려, 첫 월드시리즈 진출에는 실패했다.
부상으로 많은날을 결장한 그리피는 시즌 72경기 밖에 출장하지 못했지만 골드글러브는 당연스럽게 수상한 시즌이었다.
1996년은, 본인의 첫 1경기3홈런을 쏘아올리는등 변함없는 페이스로 장타를 뿜어냈지만 6월말에 이번엔 오른손을 골절당해 약3주간의 공백기가 있었다 .
전년도에 이어, 부상으로 올스타게임에 참가할수는 없었다.
그러나 140경기에 출장하며 타율 .303, 49홈런 ,140 타점을 마크하며 본인에게 있어선 최고의 시즌을 보냈지만 팀은 부상자가 잇따라 지구우승은 놓쳤다.
그러나 21살 이란 젊은나이에 수위타자에 오른 '알렉스 로드리게스'라는 걸출한 신예가 등장하며 시애틀로선 내일을 향한 희망을 품으며 시즌을 마감한다.
1997년을 맞이한 그리피는 시즌 개막달인 4월에 무려13홈런을 기록하는 메이저리그 신기록을 수립하고 5월이 끝난 시점에서 24 홈런 또한 신기록이었다.
매리스의 기록인 시즌 62홈런 갱신도 기대되었지만, 막판 부진으로 56홈런으로 아쉽게 시즌을 끝낸다.
그러나 그리피는 147타점을 마크해 홈런과 타점부문 타이틀을 손에 넣는다.
결국, 이 해는 타율 또한 .304도 기록해, 자신의 첫 페넌트레이스 MVP도 수상하며 황금기를 구가하게된다.
그리피는 리그 역사상 9번째 만장일치 MVP를 획득하며 역시나 '안티'가 없는 슈퍼스타임을 증명시키기도 했다.
팀또한 지구 우승을 했지만 디비전 시리즈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즈에게 덜미를 잡혔다.
1998년, 내셔널 리그의 마크 맥과이어, 새미 소사의 홈런 싸움으로 인해 그리피의 모습은 다소 퇴색해 버렸지만, 타율 .284, 56홈런, 147 타점을 기록하며 그리피다운 성적을 남긴다.
2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했으며 3년 연속 140 타점 이상이라는 성적은, 베이브 루스, 루 게릭에 이은 사상 3번째 달성한 대기록 이었다.
그리피는 20개의 도루도 기록해, 사상 3번째로 "50-20"클럽에도 가입하는 겹경사를 누렸다. (1955년 윌리 메이스, 1996년 브래디 앤더슨 달성)
1999년은 부상으로 골치를 썩였지만, 타율 .285, 48홈런, 134 타점으로 3년연속 홈런왕의 타이틀을 방어한다.
첫댓글 8경기 연속홈런...ㅎㄷㄷㄷㄷㄷ
수비 때문에 고생을 정말 많이 하는 선수죠. 하지만 그런 허슬 플레이가 인기를 부르는 선수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