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피란민 몰린 가자 남부 공습… 지상전 확대 ‘새 국면’
민간인 등 200만명 밀집한 지역
“은신한 하마스 지도부 제거 작전”
개전 이후 최대규모 50곳 공습
美 “대규모 민간인 피해 가능성”… 佛도 “하마스 궤멸 10년 걸려” 우려
이스라엘軍, 가자 남부 대규모 공습… 지상전 확대 예고 2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에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인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스라엘은 임시휴전 7일 만인 1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휴전협정 위반을 이유로 대규모 공습에 나섰다. 피란민이 밀집된 가자지구 남부에 개전 이후 최대 공습이 이뤄지면서 민간인 피해가 한층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가자지구=AP 뉴시스
이스라엘이 임시 휴전이 깨진 후 가자지구 남부에 10월 7일 전쟁 발발 이래 최대 규모의 공습을 가해 최소 240명이 숨졌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전했다. 이스라엘이 그간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본거지였던 가자지구 북부에 공격을 집중해 통제권을 쥔 뒤 남부로 총구를 돌리면서 빚어진 일이다.
이스라엘은 11월 24일∼12월 1일의 임시 휴전 기간 동안 가자지구 북부에 머물던 하마스 지도부가 남부로 이동했다는 점을 남부 공격의 이유로 들고 있다. 하지만 가자지구 남부의 거점 도시 칸유니스 일대에는 북부 피란민 100만 명을 포함해 민간인 약 200만 명이 밀집해 있다. 대규모 민간인 피해가 예상되면서 전쟁이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평이 나온다.
● 이 “하마스 지도부 제거하려면 불가피”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2일 “(1, 2일 이틀간) 가자지구 전역에서 400곳이 넘는 목표물을 공격했다”고 밝혔다. 특히 가자시티 등 가자지구 북부 거점 도시에 집중됐던 과거 공습과 달리 이번 공격에는 칸유니스 등 남부 지역 내 50개의 목표물 공격도 포함됐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개전 이후 공격하지 않은 지역을 이틀 동안 타격했다.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타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자지구 전역의 민간인에게 구체적 장소를 거론하며 대피령도 내렸다. 이날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북부 주민은 다라즈, 투파의 쉼터로 대피하라. 남부 주민은 (가자지구 최남단으로 이집트와 국경을 맞댄) 라파의 쉼터로 이동하라”고 경고했다. 칸유니스에 머무는 피란민 일부는 로이터통신에 “공포의 밤이었다”고 전했다. 현지 방송 채널12는 “칸유니스에서 대규모 지상전이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이번 전쟁을 주도한 하마스 고위 간부 예히야 신와르 등이 불특정 다수의 전투원과 함께 칸유니스 지하 터널에 숨어 전쟁을 지휘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에 따라 하마스 완전 소탕을 위해 남부 공격도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10월 27일 가자지구에서 지상작전에 돌입한 뒤 북부 최대 도시인 가자시티를 비롯해 북부 전역을 사실상 장악했다. 하마스 지휘본부가 있다고 알려진 알시파 병원은 물론 하마스 주요 군사시설 상당수를 파괴하거나 수색했다. 하지만 신와르 등 핵심 지도부는 잡지 못했다. 이에 이스라엘의 다음 전략은 하마스 지도부 제거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 당국자를 인용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최근 보좌진에게 “신와르를 제거하도록 군을 독려하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 국제사회 “이스라엘 자제하라”
피란민이 몰린 가자지구 남부에 공격이 확대되면 대규모 민간인 피해가 예상된다. 이 때문에 반(反)이스라엘 여론 또한 고조되고 있다. 전쟁 발발 후 줄곧 이스라엘을 지지해온 미국 고위 관계자들도 잇달아 경고성 메시지를 보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2일 미 캘리포니아주 ‘레이건 전미 방위포럼(RNDF)’ 연설에서 “이런 싸움에서는 무게중심이 민간인에 있다”면서 “이들을 적들의 수중으로 몰아넣는 것은 전술적 승리를 위해 전략적 패배를 감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스틴 장관은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격퇴 작전을 지휘한 미 중부사령관 출신으로, 이스라엘이 이번 작전으로 전투에서 승리할지 몰라도 전쟁에서 패배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美 무슬림 지도자들 “바이든 낙선 운동”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주요 경합주의 무슬림 지도자들이 2일 미시간주 디어본에서 이스라엘 지원 정책을 펴는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낙선운동에 나선다고 밝혔다. 단상에 ‘바이든을 버리라(Abandon Biden)’는 문구가 걸려 있다. 디어본=AP 뉴시스
지난달 30일 전쟁 발발 후 네 번째로 이스라엘을 찾은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역시 “이스라엘은 국제인도법과 전쟁법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며 “이는 테러집단(하마스)과 대치할 때에도 마찬가지”라고 경고했다. BBC는 이를 두고 “미국이 분명한 ‘레드라인(금지선)’을 설정한 것”이라고 평했다.
2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도 이스라엘 규탄장이 됐다. 그간 이스라엘을 지지했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하마스 완전 궤멸에는 최소 10년은 걸릴 것”이라며 이스라엘이 전쟁 목표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마스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이란의 COP28 대표단은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의 총회 참석에 항의하며 회의장에서 철수했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