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이상하고도 미묘하며 헷갈리기도 하는
동시 복합 감정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살아있는 인간임을 입증하는 Sophisticated Feelings!
Strange Emotions of being a Human Being!
은퇴의 삶이 주는 느긋한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심란해
인근 성모 발현 농장에 들러 자연의 적막함속에
내 마음의 복잡함을 맞겨본다.
한동안 발들여 놓을 틈조차 없을 만큼
사람들로 붐비었던 곳이 수십년이 지난 지금은
적막강산의 고저늑한 발현(Apparition) 응접실의
빈 의자들의 가운데 앉아 있으니,
마치 낮시간에 정신없이 왁자지껄 분주했던
학교나 사무실의 밤 시각의 텅빈 복도나
아이들 놀이터에 혼자 들어설 때 오는 느낌과 유사한
영어로 Kenopsia란 그리이스 어원의 단어가 생각난다.
옛 구도자들이 마음을 비우고 우주의 마음을
채우는 단어 Kenosis처럼 신선한 공허함이 있다.
(*kenopsia is the eerie, forlorn atmosphere of a place that's usually
bustling with people but is now abandoned and quiet.)
성모의 발현을 체험했다고 주장한 그 여인,Mary Flowler,는
희대의 사기극을 벌였다고 비판한 사람들 때문인 지
양심의 가책 때문인 지
지금 심각한 정신병에 시달리고 있다니
이상한 연민과 쾌감이 동시에 든다.
이를 독일어로 Schadenfreude라고 할까?
(*schadenfreude is the pleasure that we feel when we see others suffer.
and the misfortune was somehow deserved.)
한때 가톨릭 수도승으로
그 길고 긴 시편 150편을 라틴 원문으로 줄줄 외었던
과거의 나의 신심은 어디론가 다 사라져버리고
그 흔한 성모송조차 기억이 알송달송해지는 지금,
예전의 내 모습을 기억해 보려 하지만
길고 어두운 미로을 뚫고 지나온
햇살 환한 이 순간에
나는 지나온 과거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이 시원 섭섭하고도 Bittersweet한 복합 감정을
불어에서 온 Énouement이라 부를까…?
(*Enoument is the bitter-sweetness of arriving at the future,
seeing how things turned out,
but not being able to tell your past self)
장궤틀 앞에 수북히 쌓여져 있는
스페니쉬 성경( la Biblia)의 작고 빽빽한 문장을
한참 들여다 보고 있자니 눈이 캄캄해져
책을 덮고 눈을 감자 곧 졸음이 엄습한다.
꾸벅 꾸벅 졸다보니
내가 내 신체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 같은 착각에
갑자기 이 육체가 감옥처럼 답답해지는
이 복합 감정을 Onism이라고 말할까…?
(*Onism is defined as the frustration of being stuck in just one body at any time,
unable to experience more than one thing or be in more than one place,
knowing that there are a million things you won’t be able to do before you die.)
오니즘이란 Monism과 Onanism의 합성어가 아니든가!
하나의 현상 세계(Monism)과 상상의 세계(Onanism)속에서
마치 내가 상상의 여인(Anima, A spinning lady)을 떠올리며
자위 행위(Masturbation)을 하는 것처럼
매 일상의 삶(현실과 공상)에서 오는
복합 감정들 때문에 갈팡질팡 헷갈린다.
마치
비트켄슈타인의 고백처럼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상의 한계이다’라고 했듯이
표현할 수 있는 것과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모두 동시다발적으로 우연과 필연이 동시에
엮어지는 희한하고도 미묘해서 더욱 헷갈리는 것이
또한 인생인가보다.
해서
삶이 참으로 슬픈 것이고 어이없는 것인가?
그러면 슬픔이란 무었인가?
영어 'Sadness'는
라틴어 Satis에 온 ‘충만함, Fulness’의 기원처럼
모든 체험들로 충만해진(Satisfaction) 것을
인지하는 상태를 의미했다
이 단어가 오늘날에는 '절망(Despair)'으로
그 의미가 전락해 버렸지만
진정한 슬픔은 이와 정반대로 삶의 이중성이 주는
희열과 충만함을 모두 담고 있는
종결론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If you are lucky enough to feel sad,
It means you care about something enough
to let it upset you. Isn’t it?!
무관심하다면 슬플할 일도 없듯,
기대가 없는 데 실망이 있을리 없지 않는가?!
해서 삶은 이중적이고 복합감정이 가득한
슬프고도 아름다운 것(비애미, 비장미)라고 하는 게 아닐까!
은퇴 제 일탄 버킷 리스트로 중국 일주를 계획해왔는 데
최근의 중국 감염 방지 정책에 뒤로 미루고
몽골리아로 눈을 돌리니
다른 수많은 계획들과 경험 가능성의 문들이
코앞에서 닫혀 버린다.
단 하나의 몸과 단 한발자욱씩 움직일 수 밖에 없는
갖혀진 존재이면서도
자유로이 훨훨 얼마든 지 어떤 곳이든 지
선택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한다.
하지만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에 다른 모든 것은
결코 체험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마는 것을 간과한다.
어제 나사에서 발표한 제임스 왭 천체 사진들을 보면서
우린 실제로 얼마나 적게 우주를 보다가 가는가?!
남들과의 대화에 뒤지지 않으려고 얼마나 많은
우주와 별들의 천체 이론들을 아는 체 하는가?!
불과 몇 십년동안 살아온 내 집이
정말 나의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게 얼마나 이상한가?
나는 나에 대해서 또 당신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길레 안다고 생각하는가?
솔찍히
내가 알면 얼마나 알 것이며
내가 살아 생전에 두루 보았으면
도대체 얼마나 보았겠는가!
해서 내가 죽어 불려 간 저승사자가
살아 생전에 뭘 보고 뭘 생각했는 지 물어본다면
내가 뭘 말할 수 있겠는가?
이 말 밖엔
“몰라, 몰라, 몰라"
"You tell me if you can!"
이런 이상한 감정을 가진 나의 생각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황당하고 이상한 생각들…
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늘 건강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