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 암컷, 어린놈… ‘막말 경연장’ 된 출판기념회
단기간 집중 반복 野 인사들 막말 행진
개인적 실언 아닌 특정그룹 집단정서 가능성
‘저질 정치’ 막으려면 막말 방치 안 돼
심리 전문가 “막말 대처, 바바리맨 대처와 비슷”
더불어민주당 전·현직 국회의원들의 출판기념회에서 막말이나 비속어 발언이 줄을 잇고 있다. 출판기념회장의 분위기 그리고 막말·비속어(이하 막말)가 반복되는 패턴을 보면 어느 개인의 생각이라기보다는 특정 그룹의 집단정서, 실언이라기보다는 의도된 발언으로 볼 여지가 많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9일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이런 건방진 놈이 어디 있나. 어린 놈이 선배를 능멸했다”며 한동훈 법무장관을 겨냥한 거친 표현을 쏟아냈다. 6일 뒤에는 최강욱 전 의원이 바통을 받았다. 광주에서 열린 민주당 민형배 의원 출판기념회 도중 윤석열 정부 국정 운영을 비판하면서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도 보면 그렇게 암컷들이 나와서 설치고 이러는 거는 잘 없다”고 말했다. 당시 그 자리에 있던 민 의원과 같은 당 김용민 의원은 제지를 하는 대신 키득키득 웃으며 ‘무언의 동조’를 했다.
지난달 30일 열린 추미애 전 민주당 대표 출판기념회에서는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고문 함세웅 신부가 추 전 대표를 추켜세우는 과정에서 보기 민망한 손짓까지 해가며 “방울 달린 남자들이 여성 하나보다 못하다”고 말했다. 당시 이해찬 민주당 전 대표를 비롯해 황운하 김용민 의원 등 민주당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한 현장에서는 요란한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만 당사자들은 대체로 뭐가 문제냐는 반응이다. 특히 최 전 의원의 경우는 당 지도부가 대신 나서 사과까지 했는데도 정작 본인은 지난달 28일 한 유튜브 채널에 나와 “내가 그렇게 빌런(악당)인가”라고 되물으면서 자신의 발언을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최 전 의원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의견도 나왔다. 남영희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비록 하루 만에 사과하기는 했지만 “(김건희 여사가) 학력 위조를 사과하면서 내조만 하겠다고 하고선 얼마나 많은 행보를 하고 있느냐”며 “더한 말도 하고 싶은데 저도 징계받을까 봐 말을 못 하겠다”고 최 전 의원을 징계한 당 지도부에까지 불만을 드러냈다.
공인에 대한 감시와 견제, 비판은 야당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김건희 여사는 공직에 직접 선출되거나 임명된 것은 아니라고 해도 대통령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열외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비판과 막말은 다르다. 막말은 오히려 비판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 뿐이다.
정치는 곧 말이고, 말이 곧 정치라고 한다.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깊이 천착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최 전 의원의 암컷 발언에 등장한 ‘동물농장’의 저자 오웰이다. 그는 ‘정치와 영어’라는 에세이에서 언어의 몰락을 초래하는 궁극적 원인 중 하나로 정치를 꼽았으며, 사고가 언어를 타락시킨다면 언어 역시 사고를 타락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오웰의 소설 ‘1984’에는 선전과 보도를 담당하는 진리부가 ‘자유는 노예다’ ‘전쟁은 평화다’ ‘무지는 장점이다’와 같은 프로파간다를 퍼뜨리는 내용이 나온다. 독일의 작가인 악셀 하케는 이 부분을 이렇게 해석했다. “기존의 단어에 완전히 새로운 반대 의미를 부여하여 고유의 뜻까지 잃게 된다. … 이 과정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면 빅브러더에 대항하는 이들은 더 이상 아무 언어도 갖지 못하게 된다.”
우리가 오웰의 통찰과 하케의 해석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정치가 무언가 나쁜 것으로부터 오염되는 것을 막으려면 말의 오염을 절대 방치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말을 지키는 것이 정치의 추락을 막는 길이다.
민주당이 당 차원에서 “막말과 설화(舌禍), 부적절한 언행을 엄격히 검증해 내년 총선 공천심사에 반영하겠다”는 방침을 내놨지만, 국민과 유권자가 경계심을 풀어선 안 된다. 최 전 의원에 대한 솜방망이 징계를 보면 민주당이 얼마나 진심인지를 알기 어렵다.
더구나 심리학 분야에는 막말은 특정한 정치 성향을 공유하는 그룹 안에서 발언의 공감대를 넓히고 메시지를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적지 않다고 한다. ‘개딸’과 같은 강성 지지층의 환심을 사려는 정치인들에게는 막말에 대한 끊임없는 유혹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인지심리학자인 아주대 김경일 교수에 따르면 막말에 대한 대처법은 ‘바바리맨’에 대한 대처법과 비슷하다고 한다. 흔히 무시나 무반응이 효과적일 것 같지만, 반대로 막말이나 바바리맨의 행위를 더 기승부리게 한다는 것이다. 결국 단호한 비판과 제재, 표를 통한 심판만이 정치가 막말에 오염돼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천광암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