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벅 꾸벅… 하루 1만번 졸면서 ‘숙면’
[남극 ‘턱끈펭귄’이 둥지 지키는 방법]
알-새끼 보호하기 위해
회당 4초간의 미세수면
하루 11시간 이상 잠들어
하루에 수 초씩 수천 번 잠드는 방식으로 수면을 보충하는 턱끈펭귄.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 제공
남극에 서식하는 턱끈펭귄이 하루에 1만 회 이상의 미세수면(마이크로슬립)을 통해 하루 11시간 이상 잠을 자는 것으로 나타났다. 포식자로부터 둥지를 보호하기 위해 찰나의 졸음으로 버티는 전략인 것으로 분석된다. 지속적인 경계가 필요한 일부 종들도 턱끈펭귄처럼 미세수면으로 생존을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과 폴앙투안 리부렐 프랑스 리옹신경과학연구센터 연구원 공동연구팀은 턱끈펭귄의 독특한 수면 방식을 확인한 연구 결과를 1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턱끈펭귄은 남극대륙에 서식하는 대표적인 펭귄종 중 하나다. 천적은 바다표범이며 물떼새와 갈색도둑갈매기는 알과 새끼를 노리곤 한다. 턱끈펭귄의 알 부화 기간은 약 37일이다. 그동안 암컷과 수컷은 6일을 주기로 번갈아 가며 알을 품는다.
천적으로부터 둥지와 새끼, 알을 보호해야 하는 턱끈펭귄은 오랜 시간 잠을 잘 수 없다. 수일 동안 알을 지키면서 턱끈펭귄이 어떻게 수면시간을 확보하는지는 그동안 학계의 수수께끼였다.
연구팀은 턱끈펭귄의 독특한 수면법의 비밀을 풀기 위해 턱끈펭귄 집단의 수면 행동을 연구했다. 2019년 12월 2주에 걸쳐 알을 품고 있는 턱끈펭귄 14마리를 관찰했다. 수면뇌파(EEG)와 비침습적 센서를 사용해 펭귄의 수면 행동을 기록했다. 녹화 영상이나 직접적인 관찰을 통해 턱끈펭귄의 생태를 지속적으로 조사했다.
분석 결과 이들의 수면 행동에서 독특한 패턴이 확인됐다. 턱끈펭귄들은 하루에 1만 번 이상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때마다 평균 4초 동안 느린 파동의 뇌파 패턴이 관찰됐다. 수면 뇌파는 수면 단계에 따라 특징적인 파형을 보이는데, 턱끈펭귄이 짧은 시간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깊은 수면 상태인 서파 수면(slow-wave sleep)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하는 뇌파가 관찰됐다.
또 뇌의 절반은 쉬고 절반은 정신을 차린 상태인 반구형 저속 수면(USWS) 패턴과 뇌 전체가 잠에 빠진 상태인 구형 저속 수면(BSWS)도 관찰됐다. 반구형 저속 수면은 돌고래나 새와 같이 수면 시간을 단축해야 하는 생물들에게 종종 나타난다. 구형 저속 수면은 비행 중에 수면상태에 빠지는 군함조와 같은 조류에서 관찰된다.
어떤 방식으로든 턱끈펭귄과 같이 아주 짧은 시간 수면 상태에 빠지는 것을 미세수면이라고 한다. 미세수면은 인간의 일상 생활 속에서도 쉽게 경험할 수 있다. 졸음운전처럼 짧게 잠드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다만 그간 연구에서 미세수면은 수면의 회복 기능을 제공하기에 너무 짧은 것으로 여겨졌다. 실제로 인간의 경우 미세수면은 졸음, 눈 감김과 함께 이어지는 몇 초간의 각성 중단, 수면과 관련한 뇌 활동에 대한 영향 등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턱끈펭귄의 수면과 행동 방식을 관찰한 연구팀은 턱끈펭귄의 미세수면이 수면의 회복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결과적으로 뇌에 하루 11시간 분량의 수면이 축적된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이 같은 미세수면은 턱끈펭귄이 처한 지속적인 경계 상황에서 일부 종에 대한 적응 전략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계속해서 천적을 살피면서도 효율적인 수면 전략을 취한다는 것이 연구팀의 분석이다. 연구팀은 “턱끈펭귄의 독특한 수면법은 이 펭귄들의 번식 성공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정연 동아사이언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