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첫 해외 미술관 분관, 기대와 우려… 미술계 반응 갈려 "전시·어린이 미술교육·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 복합적으로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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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피두에 장소만 내주는 격… 수익성 떨어지면 철수 우려도"
'예술 도시' 파리에서 현대미술을 보려면 반드시 가야 할 곳이 있다. 거대한 관 모양 에스컬레이터부터 배관까지 노출해 공사 중인 것 같은 건물. 도심 보부르 지역에 있는 국립 퐁피두센터다. 1977년 건축가 렌조 피아노와 리처드 로저스가 설계한 이 건물 안 파리 국립현대미술관(MNAM)은 늘 관광객으로 활기 넘친다. 센터 내 어린이 미술관 '키즈갤러리'와 청소년 교육시설'스튜디오13/16'은 가족 관객으로 만원이다. 40년 동안 '파리의 문화 엔진'으로 세계 현대미술을 이끌어온 퐁피두센터가 내년 3월 서울에 분관 '퐁피두센터 서울'을 연다〈본지 11일자 A1면 참조〉.
◇국내 미술계 자극제 vs 일방향 문화수입
'퐁피두센터 서울'은 한국에 들어서는 첫 해외 미술관 분관이라는 점에서 이목을 끌고 있다. 최근 국내 미술계에선 구겐하임미술관, 루브르박물관 등 세계적 미술관이 한국에 진출할 계획이라는 소문이 무성했으나 구체적인 결실은 없었다.
미술계 반응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은 "정체된 국내 미술관들에 자극제는 되겠지만, 퐁피두의 인기 소장품을 일방적으로 소개하는 방식이라면 장소 제공 말고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했다. 한 사립미술관 학예실장은 "'퐁피두'라는 브랜드가 MoMA(뉴욕현대미술관), 영국 테이트미술관과 함께 현대 미술에선 워낙 파워풀하기 때문에 관객 반응은 빨리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콘텐츠 운영 방식이 성패 좌우
영국 예술 전문 매체 '아트 뉴스페이퍼'가 지난 4일 퐁피두 관계자를 인용해 밝힌 서울 분관의 청사진은 '퐁피두센터의 미니어처 버전'이다. 퐁피두센터는 센터 내 국립현대미술관을 통한 미술품 전시뿐만 아니라 어린이 교육센터, 영화, 퍼포먼스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복합적으로 소개하는 문화 기관에 가깝다. 퐁피두 측은 융·복합 문화기관으로서의 퐁피두 모델을 분관을 통해 확장하겠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서울 분관 관장으로 개관을 준비 중인 서순주 박사(전시기획자)도 "샤갈의 '와인잔을 든 이중 자화상', 피카소와 칸딘스키 주요 작품 등 100여 점으로 구성된 소장전과 기획전 외에 특히 어린이 미술관에 역점을 두고 있다"며 "영화, 퍼포먼스도 복합적으로 보일 예정"이라고 했다.
성패는 운영 방식과 콘텐츠에 달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서울 분관은 공공미술관이 아닌 사립 미술관 형태다. 서 박사는 "국내 기업의 투자를 받아 독자적 사립미술관 형태로 운영할 방침"이라고 했다. 퐁피두 측에 지급하는 연간 로열티 150만유로(약 20억원), 기존 건물 리노베이션 비용 등을 포함해 개관에는 약 100억원의 비용이 소요될 전망이다. 퐁피두가 지난해 3월 첫 해외 분관으로 만든 스페인의 '퐁피두센터 말라가'와는 다른 형태다. 말라가 분관은 피카소의 고향인 말라가 시(市) 정부가 전액 투자해 분관을 유치한 경우다. 피카소, 르네 마그리트, 프리다 칼로, 알베르토 자코메티 등 퐁피두 소장품 90여 점을 대여해 전시하고 연간 로열티는 100만유로(약 13억원) 정도를 지급한다.
지속성도 관건이다. 현재 서울 분관은 우선 5년간 운영되며 추가 연장될 계획이다. 서순주 박사는 "퐁피두 측에선 해외 진출의 전초기지로 서울 분관을 삼고 있기에 장기적으로 운영한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술평론가 정준모씨는 "구겐하임미술
관이 스페인 빌바오에 이어 UAE 아부다비와 핀란드 헬싱키에도 분관을 짓고 있고, 루브르박물관도 아부다비 분관을 짓고 있다"며 "해외 유명 미술관의 프랜차이즈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아직 성공 사례는 구겐하임 빌바오 정도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결국 브랜드 확장과 재원 확보다. 수익이 없으면 보따리 싸들고 나갈 수도 있다는 걸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