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사상> 신작시
2024가을호 창간30주년 기념호
울, 너머로
김세영
사지 근육이 약해지고
직립 균형이 약해지고
심장 박동이 약해지고
신경 전달이 약해지고
불안한 날들이 쌓이고
불면의 밤들이 쌓이고
무념의 시간이 쌓이고
무상의 공간이 쌓이고
언제부터인가 야윈 가슴통을
탱자나무 울이 둘러싸고 있다
이 울이
최후의 전신갑주全身甲冑가 되고
세상으로부터 도피처가 될 수 있을까?
이 울이
위리안치圍籬安置의 거처가 되고
종신형의 독방이 되는 것인가?
덫 속의 짐승처럼 바동거리다
나갈 의지도 잃어가고
나갈 길도 잊어가고 있다
때로는
고용량 알프라졸람1)의 안락함 속에 빠져보기도,
망각의 압착기 속에 머리를 넣어보기도 한다
고달팠던 기억 저장, 가득
가슴 아픈 기억 저장, 가득
후회스런 기억 저장, 가득
즐거웠던 기억 저장, 조금
마른 해마의 주머니 속에 담겨 있다
육신의 인연에 얽매이지 말자
불안과 두려움의 단어는 잊자
손바닥에 마지막까지 쓸 수 있는 글자, 잊지 말자
용서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들숨과 날숨을 멈춘 후
탱자나무 줄기로 염을 하면
마른 육포의 미라
무덤이 되겠지.
자유혼아, 기화되어
중력의 울을 헤치고 나와
공명의 기파를 쫓아가자
우주의 새로운 거처,
영성 세계로 가자.
1) alprazolam:알프라졸람은 벤조디아제핀계열에 속하는 약물로 뇌에서
신경흥분을 억제하여 불안, 공황장애 등의 치료에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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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영:
『미네르바』 시 등단(2007). 『포에트리슬램』 평론 등단(2023)
시집: 『하늘거미집』 외 4권, 시론 시평 산문집: 『줌, 인 앤 아웃』
시전문지 『포에트리 슬램』 편집인, 상징학연구소 기획자문,
한국의사시인회 회장 역임, 시산맥시회 고문
미네르바 문학상(2016), 한국문협 작가상(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