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韓流)의 원동력은 유교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한글, 국악(아리랑), 한옥, 한복, 한식(비빔밥, 김치), 한지,
한아비(한글, 아리랑, 비빕밥) 세계를 빛으로 이끈다
한국이 세계문화를 이끌어가는 토양이 사람을 가장 소중히 하는 문화이다
조선의 건국이념이 홍익인간, 이화세계, 광명정대, 대동단결 이다
배움을 가장 소중히하는 단동십훈으로 사람다운 사람을 기르고
모든 사람이 깨달음을 얻는 이화의 세계‘같이 깨달음의 언덕에 이루자’
배워 깨달아 사는 사람은 빛나고, 밝고, 바르게, 크게 마음으로 산다
마음에는 선교, 불교, 유교, 기독교를 받아들어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삶을 아름답게 보는 눈을 길렸다
마음이 맑고(淸) 밝고(光) 깨끗하니 생각(思)이 아름다워(美) 다 아름답고 좋게 보인다
心淸意自閒 無魂於心
삶은 참되고 진실하고(眞), 선하고 인자하게 최선을 다해 살면(善), 아름다워 지는 것이다(美) 善美
삶은 기쁘고(說 悅), 즐겁고(樂) 아름다운 것이다(美)
머무르는 자리가 아름답도록 다정다감하게 살아라
삶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예를 갖추는 것이다
마음에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학문은 올바른 것을 늘 생각하고(學問之道無他)
마음을 지키는 것으로 마음을 찾는 것이다(求其放心而已矣)
참 주인이 된 사람은 자기에게 예의를 다한다 (人不可以無恥 無恥之恥 無恥矣)
내 삶의 주인이 된다(隨處作主)
내가 딛고 선 자리는 참된 곳이다 (立處皆眞)
삶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예를 갖추는 것이다 공자
삶을 기쁘고(說 悅), 즐겁고(樂), 아름답고(美) 향기롭게(品)산다
삶을 참되고 진실하게(眞), 선하고 인자하게(善) 아름답게 살자(美)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맹자, 윤동주
양심에 부끄럼 없는 삶을 살자
자기 자신에게 예의를 다하는 것이다
한글, 아리랑, 비빕밥의 한아비 문화가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배움의 빛 한글, 이화세계 깨달음으로 광명정대 아리랑, 함께 같이 사는 비빕빔밥의 대동단결
K-문화를 만들었다
한류는 자기 잔신에게 예를 갖추는 것이다
오늘날 지구촌을 휩쓰는 '한류의 원동력은 정녕 무엇일까'
망국과 광복 그리고 분단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세계의 최빈국으로 전락했던
우리 한국이 어떻게 모두가 부러워하는 잘사는 나라로 급성장했는지,
그 저변의 정신문화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한류의 원천은 유교정신'이었다.
한류의 초창기 대명사는 드라마 '대장금'(大長今)이었다.
'대장금'은 조선 중종 때 활동한 의녀(醫女) 장금(長今)의 삶을 재구성한 픽션이다.
궁중 암투에 휘말려 부모를 잃고 수라간 궁녀로 들어간 장금이
왕의 주치의인 최초의 어의녀(御醫女)가 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렸다.
이 드라마가 2005년부터 홍콩의 안방극장을 사로잡기 시작했을 때
중화권 언론은 격앙된 내심을 감추지 못했다.
한 논객은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자강(自强)을 이뤄낸 한국의 역사를 반영한 것“
"유교 전통문화의 정수가 진열된 박물관을 참관하는 느낌“
유교의 종주국인 중국의 지식인들이 발견한 한국문화 속의 유교이다.
드라마 '대장금'은 전세계로 파급되며 한류의 열풍을 이끌었다.
세계인들은 왜 '대장금'에 흠뻑 빠졌을까.
드라마는 한국의 역사와 사상적 가치가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 공감을 얻었다.
'대장금'의 시대적인 배경은 16세기이다.
당시는 훈구파(勳舊派)와 사림파(士林派)의 정치적 갈등과 혼란이 극심했던 위기와 혼돈의 시대였다.
드라마는 수랏간을 무대로 한 최상궁-금영 계열과 한상궁-장금 계열의 대립구도로 시작한다.
한상궁이 죽은 후 숱한 고난을 이겨내고 장금이 승리를 이뤄내는 과정은,
당시 개혁의 화신이었던 조광조가 희생된 후 사림세력이 세조의 왕위찬탈로 형성된
훈구파의 시대를 극복하는 것과 유사하다.
드라마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적 배경은 결국 유교적 이상주의였다.
우리가 '조선을 망하게 한 공리공담(空理空談)'으로 치부했던 그 유교였던 것이다.
하지만 유교는 결코 그렇게 단순한 사상이 아니다.
'유교는 천(千)의 얼굴을 가진 문화현상'이라고도 한다.
인간과 우주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동양적 사유체계이다.
특히 남명 조식(南冥 曺植)과 퇴계 이황(退溪 李滉)의 유학은 역동적이고 실천적이었다.
우리가 조선의 유교관과 역사관을 이해하기 위해 영어 공부 시간의 1/100이나마 할애했더라면,
조상들의 역사와 철학을 그토록 부정하고 폄훼하는 못난 후손으로 살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명과 퇴계는 혼란에 빠진 16세기의 조선을 사상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한국 정신사의 거목이었다.
특히 남명의 개방성과 실천성은 놀랍다.
불교와 노장사상을 포용하며 병법과 천문 지리까지 섭렵했다.
남명의 등장으로 관념적·정태적 경향의 주자학이 역동성과 다원성 그리고 실용성을 확보한 것이다.
그러나 인조반정(仁祖反正)이 남명의 유학정신을 역사의 무대에서 밀어내고 말았다.
퇴계 또한 당면한 조선의 현실에 대해 깊이 고뇌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꿈꾼 혁신사상가였다.
퇴계는 소수 엘리트에 의한 급진적인 개혁에 한계가 있음을 절감했다.
잇따른 사화(士禍)와 조광조의 실패가 남긴 교훈이었을 것이다.
퇴계는 학문과 교육을 통한 신진 개혁세력의 저변 확대에 주력했다.
퇴계가 주자학의 '이기론'(理氣論)에 주목한 것도 개혁의 방편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퇴계는 혼탁한 시대 문제의 본질을 '인간'으로 봤다.
그래서 '이기론'을 인간의 심성에 적용할 때 드러나는 논점에 대해 치열하게 고뇌하고 논박한 것이다.
퇴계는 위기와 질곡의 시대를 타개하기 위해 주자학을 창조적으로 변용했다.
'기발이약'(氣發理弱)의 세태를 타파하기 위해 '기발이승'(氣發理乘)이란 미지근한 논리를(일원론)
'이발기수'(理發氣隨)로 수정․보완하며 '이'(理)개념에 생명력과 능동성을 부여했다.(이원론)
그러나 막상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한 사림은 당쟁(黨爭)과 공리(空理)에 매몰되었다.
조선의 유학은 개혁성과 실천성을 잃으면서 형해화의 길을 걸었다.
기어이 '망국의 사상'이란 빌미를 제공하고 만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유교정신을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는 나라와 백성을 위한 공론(公論)으로 재활용하지 못하고,
끝없는 이기(利己)와 탐욕의 수단으로 악용한 지배층의 공론(空論) 탓이었다.
유학의 본령은 그래도 사라지지 않았다.
16세기 조선의 유학은 17,18세기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시대적인 요구에 따라 실학(實學)으로 거듭났고,
다산은 서구 과학문화를 받아들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다
서구문명과 마주하며 천주교를 자발적으로 수용했다.
기독교 문화를 수용하여 사람이 중심이 되는 르네상스를 만들었으며
자유, 평등, 평화의 인본중심의 민주사회를 만들어 세계인의 이목을 받게 되았다
19세기 민초들의 함성과 함께 동학(東學)으로 흐르던 유학은 제국주의가 창궐하던 20세기 전반에는
독립운동의 동력이 되었다.
실사구실의 향약정신이 더불어 잘 사는 새마을 운동으로 빛의 세상을 만들었다
1970년대의 경제성장과 80년대의 민주화를 이끈 정신적인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90년대는 문화의 첨단인 지식정보의 반도체로 2000년대는 정보통신으로
2010년대는 우수한 전통문화로 문명시대를 열어가면서 세계문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문화는 역경과 고난 속에서 피어나는 꽃으로
인류의 참된 삶과 괘를 같이한다
독특한 한국 문화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K-문화는 세계를 지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