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금기가 많을수록 백성은 더욱 가난해진다."
天下多忌諱而民彌貧
"다스림이 꼼꼼할수록 백성은 더욱 망가진다."
其政察察其民缺缺
- 노자 「도덕경」
오랫동안 노장사상에는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유가나 법가처럼 현실을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세상을 구제하려는 사상이 아니라 현실도피적인 사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고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작년에야 드디어 도덕경을 읽었다.
솔직히 말해서 아무리 읽어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대목들이 많았다. 그러던 중 제57장에
이르러 무릎을 쳤다. "세상에 금기가 많을수록 백성은 더욱 가난해진다(天下多忌而民彌貧)”는
구절 때문이었다. 이 책의 번역자 이석범 교수는 원문의 '기휘(忌諱)'를 '금기(禁忌)'라는 말로
옮겼지만, 나는 이를 '규제'나 '간섭'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
에서는 '기휘'의 뜻을 첫째 꺼리고 싫어함. 둘째 꺼리거나 두려워 피함. 셋째 나라의 금령
(禁令)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만약 세 번째 뜻으로 해석할 경우 규제나 간섭이라는 의미와
통한다. 나라의 규제와 간섭이 많을수록 백성은 더욱 가난해진다! 느낌이 왔다.
이 구절을 보니 최근 보도 기사가 생각났다. 개정 최저임금법에 따라 2015년부터 최저
임금제를 아파트 경비원들에게도 100퍼센트 적용하도록 하자. 이에 부담을 느낀 아파트 단지
측에서 경비원들을 대량 해고하고 있다는 기사였다. 넉넉하지는 못해도 나이를 감안하면
그나마 괜찮은 월급을 보장해주던 경비원 자리에서 밀려난 노인들은 어디로 갈까? 보나마나
먹고 살기 위해 어쩌면 그보다 열악한 일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한
국가의 간섭(법률)이 그들을 오히려 더 가난하게 만든 꼴이다.
규제와 간섭이 많으면 나라도 가난해진다. 자국의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갖은 규제를
100년 가까이 유지해온 남미 국가들은 아직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활동은
물론 인간의 사고까지 규제하면서 '새로운 인간형'을 만들겠다고 큰소리쳤던 옛 공산주의
국가들은 가난 속에서 버둥거리다가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이 구절은 바로 그 다음 이어지는 제58장 "다스림이 꼼꼼할 수록 백성은 더욱 망가진다
(其民察察 其民缺缺)"는 구절과 기막히게 상응한다. 번역자는 '찰찰(察察)'의 의미를
“통치의 그물을 촘촘히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풀이한다. 이 역시 규제와 간섭으로 충분히
해석할 수 있겠다.
여기서 눈길이 가는 것은 뒤에 나오는 "기민결결(其民缺缺)"이라는 대목이다. '결(缺)'은
'이지러지다' '그릇이 깨지다' '무너지다'라는 의미다. 따라서 "其政察察 其民缺缺"은 “규제와
간섭이 과도하면 백성들의 삶은 무너진다(어려워진다)"고 풀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구절을 접하는 순간 다음 해석이 떠올랐다. "정부가 국민들의 삶에 간섭하기 위해 갖가지
규제를 만들수록 국민들의 심성은 나빠진다."
생각해보자. 정부의 규제와 간섭이 촘촘해질수록(察察) 국민들은 그걸 피해가기 위해 이런저런
약은 꾀를 내게 되고, 이 과정에서 부정부패가 만연하게 된다. 그러면서 법과 제도에 대한
존중심은 약해지고, 국민들의 심성도 망가지게 된다(訣訣). 그로 인한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온다. 관료들이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보호주의 체제, 정부의 권한이 막강한 권위주의
체제, 국가가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공산주의 체제에서 부정부패가 극심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러한 구절들을 「도덕경』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노자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이 '무위자연(無爲自然)’이기 때문이다. 그런 정신은 어떤 의미에서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도 통할 것이다. 「도덕경」이나 「장자」를 읽다 보면 '동양적 자유주의 사상의 보물섬'
이라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동양의 고전을 읽으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자유정신'을
발견하는 건 참으로 상쾌한 경험이었다. 이 구절을 '내 마음에 꽂힌 자유주의 한 구절'로
소개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 배진영 / 월간조선 차장
- 살림 간, 복거일 남정욱 엮음, ‘내 마음 속, 자유주의 한 구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