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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좀 봐주소 / 김지명
최태수가 퇴근하면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구름은 삼복더위도 잊은 채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찌는 듯한 더위에 지친 야생초 이파리가 수양버들 가지처럼 축 늘어져 꼼작도 하지 않고 먼지하나 날리지 않았다. 태수는 검붉은 색깔의 그랜져승용차로 퇴근하다가 한적한 외곽도로로 달리고 있었다. 굉음을 내며 달려가던 붉은 색깔의 소형 승용차가 달려가는 그랜져 앞에서 갑자기 멈춰섰다. 태수가 놀라 블레이크를 밟았으나 속도에 의해 밀리면서 앞차와 약간 부딪치고 말았다. 차에서 내려 갑자기 세우는 이유를 물었다. 괴한들은 말도 하지 않고 무조건 잡아끌고 승용차 안으로 옮겨놓고 마취제가 묻은 손수건으로 코를 막았다.
태수는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알지 못해도 마취에서 깨어나 의식이 돌아왔다. 정신은 혼미한데 팔다리가 묶인 채 포대 안에 담겨져 있어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파도가 배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와서 어디론가 이송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의식이 돌아온 태수는 손발이 묶이고 입은 테이프로 봉해졌다. 겨우 콧구멍으로 숨 쉬며 오래도록 쭈그려있었기에 다리가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아주 고통스러워마비상태에 이르렀다. 외딴 섬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어디인지 전혀알 수가 없었다. 작은 부두에 도착한 쾌속선은 엔징소리가 멈추더니 태수를 자루에서 꺼내주었다. 자루에서 풀려나도 함흑의 시간은 계속되었다. 눈을 막은 테이프를 벗겨주자 세상은 캄캄한 밤이었다. 오래도록 접혀진 다리에 피가 통하지 않아 굳어져마비 상태였다. 섬에 왔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어두운 밤이라 어디인지 전혀 알바는 아니지만 알 수가 없었다. 입에 붙은 테이프와 다리에 끈은 풀어주었지만, 양손은 풀지 않았다. 태수는 세상을 다시 볼 수 있었지만, 다리가 마비되어 걸을 수 없었다. 오랜 시간에 만지고 주물러서 겨우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이슬비가 내리는 어두운 섬에 안개마저 짙어오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양팔이 묶인 채 괴한을 따라 희미한 가로등 불빛 밟으며 한참을 걸었다. 높은 곳에 외등은 대성산업이라는 간판을 밝히고 있었다. 괴한은 강아지를 몰고 가듯 태수를 뒤에서 재촉했다. 돼지가 도살장에 끌려가듯 불안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어 온몸은 떨리기만 했다. 담장은 보이지 않고 삼층 건물을 둘러싼 철조망이 2중으로 아주 높았다. 태수는 포로수용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문에서 만난 사내는 꿈에 보일까 두려울 정도로 무서웠다. 등치 좋은 젊은 사내가 몹시 우락부락하게 생겼으므로 너무나 긴장하여 디스크 춤을 추듯이 다리가 흔들거렸다. 팔목에 근육은 허벅지처럼 굵게 보였다. 온몸을 덜덜 떨면서 안내자 따라가다가 정문에 잠시 맡겨놓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산에서 호랑이를 만난 것처럼 몹시 긴장하여 주저앉고 말았다. 경비대장이 다가와 일어나라고 명했다. 태수는 일어났지만, 극심한 두려움에 바지에 오줌을 찔찔거리며 심하게 떨었다. 사내가 상하로 째려보더니 아저씨 힘 좀 쓰겠는데 하면서 묶인 팔을 풀어주고 말을 붙였다.
“아저씨! 어디서 왔소?”
“네? 부산에서 왔습니다.”
“이젠 한 식구니 겁내지 마소!”
“네 알겠습니다.”
태수는 바람에 문풍지 떨리듯이 다리가 몹시 휘청거렸다. 덩치 좋은 경비대장은 야! 나랑 여기서 근무하자, 정문에서 근무하고 싶다고 인솔자에게 말해라며 농담을 했다. 태수는 주눅이 들어 온몸에 소름이 끼치다 못해 마비가 생겨나듯 굳어지는 느낌이다. 근무자는 총을 가졌기에 더욱 그렇다. 안내자가 오더니 가자고 하면서 탈출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고 했다. 태수가 말문이 막혀 대답도 하지 못했다. 보기엔 교도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태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건물 안으로 따라가니 생활용품을 찍어내는 플라스틱 공장이었다. 공장에는 야간에도 수십 명의 근로자가 일하고 있었다. 안내자가 여기 근로자들은 모두 호적이 없다고 했다. 태수는 온몸이 떨려 참을 수가 없었다. 공장 내부로 따라가니 통로로 이어지는 땅굴은 개미 집처럼 만들어졌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가니 또 다른 공장같이 넓은 장소가 보였다. 고약한 냄새가 나도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안내자는 숙소에서 모두에게 인사시키고 여기서 행동을 같이하라고 말하고는 헤어졌다. 근로자들은 태수에게 안심시키려고 이젠 한 가족이 되었다고 억지로 웃으면서 반겨주었다. 태수는 긴장하여 밤을 지새우며 아침을 맞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군대생활 하는 것처럼 동작은 민첩하게 다른 동료들과 일거 일동을 함께 해야만 했다. 방에서 방으로 땅굴이 연결된 곳으로 무슨 포대에 담긴 물건을 운반하였다. 공장에서 창고로 이어지는 터널은 개미집을 방불케 했다. 오로지 일개미처럼 열심히 노동하면서 명령에 움직였다.
섬에서 운영되고 있는 공장은 겉으로는 생필품 제조 공장으로 허가받아 영업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공장 안에 또 다른 공장에서 의문의 약품을 제조하고 있었다. 몇 개월이 흐르자 동료들에게 이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여기서 만들어진 제품은 마약인데 세계 각국으로 수출한다고 덧붙였다. 태수는 깜짝 놀라 소름이 확 끼쳤다. 끌려가는 날부터 마약을 운반하며 노예처럼 살았다. 태수는 체격이 유사한 사내와 가까이하면서 삶을 의논하고 싶어도 처형될지 의심하여 말할 수 없었다. 일꾼 중에 행동이 이상하거나 반항적인 말을 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총살당한다고 했다. 태수는 공포 속에서 몇 년째 노예 생활로 이어지고 있었다. 지독한 놈은 수년 동안 은밀히 접근하더니 하나로 뭉치자고 제의했다. 탈출을 시도할 다섯 명을 구성하고 계속 기회만 노린지가 일 년이 지났다. 화장실에도 녹음기와 CC-TV가 설치되었다. 어디서도 두 사람의 작당은 이루어질 수 없도록 군데군데 감시카메라가 지켜보고 있었다. 도주계획을 사전에 방지하는 장치로 보였다.
말복이 지나고 입추가 되던 날 태풍이 세상을 뒤집고 있었다. 역대 최고 강풍인 허리케인보다 열 배로 더 무서운 강풍이 남해안으로 무섭게 밀려들었다. 비바람이 얼마나 세차게 몰아치는지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날아갔다. 이곳으로 밀려오는 태풍은 강한 기세로 생사를 바꾸고 있었다. 막사는 비바람에 창문이 날아가고 안으로 빗물이 흘러들었다. 태수는 탈출을 조직한 다섯 명에게 사인을 보냈다. 정문 경비실에는 유리창이 다 깨지고 출입문이 바람에 날려가 버렸다. 전주가 넘어져 정전까지 되어 불안한 밤은 시작되었다. 태수는 평생에 단 한 번 오는 기회가 지금이라고 따르는 대원에게 알렸다. 대원들은 태수의 명령에 무조건 따랐다. 태수는 두 명에게 침실에서 모포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몸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말고 모두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이동한다고 명했다. 대원들은 하나같이 팬티마저 벗어 던진 채 목숨 건 탈출을 시도했다. 폭우가 쏟아지는 틈을 이용하여 태수가 탈출할 때 경비원이 막사 앞을 순찰하고 있었다. 갑자기 태수 앞에 나타나자 응급 결에 바닥에 몸을 낮추었다. 경비원이 살그머니 오더니 총을 가슴에 대려고 했다. 그 순간 태수의 손은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총 끝을 잡고 옆으로 돌렸을 때 뒤에서 지독한 놈이 삽으로 경비원의 목등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경비가 기절하자 곁에 있던 대원이 다가와 죽임을 확인 했다. 죽은 놈을 끌어 건물 뒤편에 숨겼다. 또 다른 경비는 비바람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어 보지 못하고 스쳐 간 틈을 이용하여 행동을 개시하였다. 모포를 펼쳐 철조망을 덮었다. 모두 번갯불을 피하여 울타리 같은 철조망을 넘었다. 철조망을 넘어간 대원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포구 쪽으로 뛰었다. 모포는 바람에 의해 울타리 밖으로 날아갔다. 네 명도 홀랑 벗고 태수와 한몸처럼 행동했다.
파도는 산마루 높이로 치솟고 있었다. 쾌속선은 파도에 위험하지만, 쪽배는 안전하다고 했다. 쪽배는 파도에 높이뛰기하고 있었다. 대원들은 밧줄을 풀어 배에 싣고 모두 배를 밀면서 양쪽에 두 명씩 붙었지만, 태수는 뒤에서 조정했다. 대원들의 물속에 몸을 가리고 헤엄치면서 배를 밀었다. 쪽배는 파도 위에서 한 잎의 낙엽 같아 바람에 잘 날려가고 있었다. 다섯 명이 한마음으로 일사불란하게 배를 밀면서 헤엄쳤다. 다섯 명의 생명을 낙엽 같은 배에 의존하면서 산마루처럼 높이 올랐다가 깊은 계곡으로 쏟아지는 느낌은 수없이 반복하였다. 태수의 대원을 번갯불에 의해 발견하자 놈들은 사격을 했다. 칠흑 같은 밤이지만, 번갯불을 이용하여 위치를 확인하고 사격을 계속했다. 배를 뒤집혀 밑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파도 등에 올랐다. 때마침 번갯불이 번쩍거리면서 위치가 발각되어 저격수로 이루어진 경비원은 자동소총으로 연발 사격을 시행했다. 한 명이 총에 맞았다. 소발에 쥐 밟히듯 운 없게 등에서 심장으로 총알이 스쳐 갔다. 붉은 피가 바닷물을 벌겋게 물들이고 이었다. 몇 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시신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태수는 높은 파도 등에 올랐을 때 멀리서 쫓아오는 배를 보고 대원들에게 알렸다. 그때 섬에서 우리를 잡으러 오는 배를 보고 대원들은 몹시 놀랐다. 태수는 모두 배 밑으로 숨자고 했다. 모두 뒤집힌 배 밑에 매달려있었다. 보스 다음가는 지휘자는 경비대장과 가끔 입씨름 했다. 오늘도 예외가 아닌 듯 도망자를 놓고 생각이 엇갈렸다. 지휘자를 따라 모두 쾌속선에 승선하고 도망차를 따라 빠르게 달렸다. 작은 보스는 쌍안경으로 쪽배를 아무리 살펴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파도에 휩쓸려 다 죽은 줄 알고 돌아가자고 했다. 경비 대장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작은 보스의 가슴에 총알을 날렸다. 작은 보스가 죽자 경비대장은 지금 뭍으로 탈출하니 모두 대장을 따르라고 했다. 대장은 쾌속선을 운항하여 탈출을 시도했다.
경비대장은 도망친 놈들이 배밑에 숨어있을 거라고 판단하고 태워서 함께 도망가자고 했다. 경비원들은 기분이 좋아 총을 바다에 던져버리고 좋아서 춤추듯 날뛰었다. 쪽배가 가까워지자 누가 내려가서 불러오라고 했다. 서로 내려가려고 옷을 벗었다. 그때 갑자기 몰아치는 돌풍을 피하지 못하여 쾌속선은 넘어지면서 바로서지 못하고 바다 밑으로 침몰하고 말았다.
태수는 아무리 기다려도 총소리가 나지 않아 밖으로 나왔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쾌속선은 흔적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쾌속선은 빠르게 달려오다 운전 미숙으로 배가 뒤집혀 침몰한 것으로 보았다. 쾌속선의 선원들은 모두 실종되었지만, 태수의 대원들은 적들이 사라졌다고 좋아했다. 탈출과정에서 지나친 에너지 손실로 몸이 굳어 또 한 명이 실종되었다. 감시하는 요원으로 보이는 승용차가 급커브 언덕길로 지나가다 바람에 날려 절벽으로 떨어졌다. 처박힌 차는 바위에 몇 번 튕기어 물가에 거꾸로 섰다. 승용차 안에 산 사람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태수는 그놈들이 죽어야 우리가 안전하게 살 수 있다고 하느님과 부처님에게 빌었다.
최태수가 배를 조정하여 바람의 흐름 따라 수십 킬로미터 떠내려갔다. 사투가 네 시간이나 계속되는 과정에서 세 명을 잃었다. 태수가 실종자들에게 명복을 빌었다. 내가 살기 위해 너를 구하지 못하여 미안하다고 기도했다. 비바람은 휘몰아치지만,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는 두 사내는 모질게 살아남았다. 태수는 지독한 놈과 양쪽 날개처럼 배를 잡고 파도에 밀려나고 있었다. 산마루 같은 높이로 치솟았을 때 쪽배가 다시 뒤집혔다. 바람에 힘없이 지져버린 두 사람은 배를 바로 세울 수 없었다. 생명이 끈질긴 두 사내는 뭍에 도착하기 직전에 생을 포기하려고 했다. 서로가 마주 보면서 놈들을 잡아야 하므로 반드시 살아야 한다고 했다. 지독한 놈은 마지막으로 용기를 주면서 살아남자고 앞니를 물었다. 파도는 산더미처럼 밀려오고 남은 두 명은 배를 뒤집지 못했다. 뒤집힌 배 안에 매달려 파도에 난류의 흐름 따라 떠밀려갔다. 육지가 가까워지자 태수와 지독한 놈은 배를 버리고 헤엄쳐 육지에 닿았다. 엄청난 활동으로 힘에 지쳐 세 명은 눈에서 멀어졌지만, 지독한 놈과 태수는 십 년을 살아온 것 같은 고통의 시간이 흐르고 육지에 닿았다. 육지에 도착한 태수와 지독한 놈은 팬티도 없이 알몸으로 바위틈에 바람을 피해 죽은 오징어처럼 푹 퍼졌다. 태수와 지독한 놈은 죽은 문어처럼 축 늘어져 조금도 걸을 수 없었다.
비바람을 피하여 동굴 같은 바위틈에서 잠시 눈을 감았는데 많은 시간이 흘렀다. 세상에 깔린 먹물은 안개처럼 희미하게 사라졌다. 긴장 속에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행동을 개시하였다. 더 쉬고 싶었지만, 날이 밝아오기 전에 도망쳐야 하는 딱한 심정이었다. 오솔길 지나 비포장도로로 맨발로 달려갈 때 산모퉁이 돌아오는 자동차 불빛이 길게 누워서 멀리까지 어둠을 부수고 화살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태수와 지독한 놈은 얼른 숲속으로 깊숙이 숨어들었다. 배를 땅바닥에 깔고 엎드려 있다가 자동차가 사라진 후 비바람을 헤치며 다시 맨발로 뛰었다. 알몸으로 몇 시간을 비바람과 싸우면서 뛰다가 걷다가 통영시 산양읍 미남리 해변까지 왔다. 세상을 덮었던 먹물이 점점 가라앉자 어둠은 묽어지기 시작했다. 발바닥은 찢기어 피를 흘리며 발목은 골절하여 부어올랐다. 하는 수 없이 도로 언저리에 주택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억센 비바람이 대문이며 울타리를 모두 휩쓸어 버렸다.
발바닥은 찢기어 피를 흘리며 발목은 골절하여 부어올랐다. 담 넘어갈 필요가 없어 인근 주택은 인적기가 없었다. 빈집에 들러 몸에 맞는 옷을 하나씩 골라 입었다. 마을에서 구호를 요청하고 싶지만, 다 된 밥을 엎지를까 싶어서 접근하지 않았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신고하여 보상금을 받기 위해 물들어진 사람들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남마을 해변의 주택가에 승용차가 눈에 띄었다. 최태수는 지독한 놈에게 운전할 수 있겠는가 하고 물었다.
"당연하지 전공이잖아."
"아하 그렇구나."
지독한 놈은 군 생활 때 수송부에 근무했다면서 자신이 넘쳤다. 제대한 후에도 지독한 놈은 자동차 정비공장 공장장이었다. 태수가 굵은 돌로 천둥소리와 동시에 차의 삼각 유리창을 깼다. 지독한 놈은 깨어진 틈으로 손을 넣어 자동차 뒷문을 열어 안으로 들렀다. 깨어진 유리 조각을 집어 들고 운전석에 앉아 날카로운 조각으로 전선 껍질을 벗겨 합선하더니 시동을 걸었다. 태수와 지독한 놈은 승용차를 훔쳐 부산 방면으로 급하게 달렸다. 태수와 지독한 놈은 거가대교를 지날 때는 약한 바람에도 차가 날아갈 듯 휘청거렸다. 두 사람은 거제대교로 달려가다 바람이 거세게 불었더라면 통영 앞바다에 물귀신이 될 뻔했다. 거가대교를 지나 부산으로 달렸다. 최태수가 지독한 놈에게 부산광역시 지방검찰청으로 가자고 했다. 새벽이 다가오지만, 헤드라이트의 불빛은 길게 누워 전방을 살폈으나 개미 새끼 한 마리 얼렁거리지 않았다. 태수와 지독한 놈은 아픔도 잊은 채 목적지까지 논스톱으로 달렸다. 서면을 지나 거저리 검찰청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안에 잠겼다. 물에 빠진 생쥐 모습으로 태수와 지독한 놈은 초라한 모습으로 검찰청 문을 두들겨 경비원을 불렀다.
"무슨 일인가요?"
"신고하러 왔어요."
"무슨 신고요?"
"마약을 제조하는 공장을 알려주려고요."
"뭐! 공장이 있다고요?"
"네 그래요."
경비원은 청 내 문을 열었다. 거구처럼 생긴 태수와 지독한 놈은 태연하게 숙직실 안으로 들렀다. 숙직하는 검사는 야심한 밤에 등치 좋은 두 사내가 나타나자 놀랐다. 태수가 말하는 신상정보를 조회한 결과 죽은 자로 밟혔다. 지독한 놈은 행방불명자로 나타났다. 태수가 섬유회사 영업과장이라고 이야기하고 살아나온 전모를 털어놓았다. 검사는 조회하여 섬유회사 영업과장은 삼 년 전에 살해당해 죽었다고 했다. 태수는 사건을 소상히 알려주었다. 태수와 죽은 그놈을 바꾸어 놓았다고 알렸다. 태수는 섬으로 납치되었다. 주택도 아파트도 없는 무인도 같아 보였지만, 공장 내에서는 수십 명이 일하고 있더라고 했다. 태수가 끌려간 그곳을 상세하게 가르쳐주면서 그놈들을 일망타진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검사는 지문을 조회하더니 주소지 구청 숙직하는 공무원에게 그런 사람 있는지 물었다. 검사는 사실을 확인하니 그곳에도 죽은 자로 기록되었다고 했다. 의심은 꼬리를 물었지만, 지문으로 다시 확인하라고 했다. 검사는 지문을 모두 조회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검사 앞에 태수가 살아남기 위해 급하게 오느라고 길가에 세워둔 승용차를 주인의 허락도 없이 가져왔다고 실토했다. 검찰청 숙직원은 멍하니 두 사람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생사를 건 탈출이 이렇게 끝나자 긴장이 풀려 두 사람은 피로에 지쳐 소파에 쓰러져 잠에 취했다.
최태수가 정신을 차려보니 발에는 붕대를 감고 대학병원 입원실에 누워 있었다. 태수의 말에 검사는 마약공장의 정보를 알아보았다. 그와 유사한 정보를 얻었다. 마약 공장을 압수 수색 하려고 경찰과 의논했다. 병원 창문에 걸터앉은 어둠이 동료를 불러올 때 검찰 직원이 퇴근하면서 태수가 입원한 병실에 찾아왔다. 검찰이 가져다준 의복을 갈아입고 태수와 지독한 놈은 검찰청으로 동행했다. 섬세하게 진술서를 작성하고 검찰청 조사실에서 밖으로 나왔다. 태수는 어둠속을 헤치고 바로 집으로 가기가 두려웠다. 같은 방법으로 당할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태수는 지독한 놈과 이별의 악수로 헤어졌다.
아내 몰래 천장에 설치해 놓은 CC-TV를 확인하려 왔다. 태수가 아내 앞에 갑자기 나타나기가 두려웠다. 형사의 보호를 받으며 아침 일찍 일반 승용차로 태수의 집 앞에 주차하고 차창 밖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아내는 출근하는 사나이의 팔짱을 끼고 대문 밖으로 나와 배웅했다. 심수옥은 남편이 사라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즐겁게 살았다. 바람둥이 수옥은 친구에게 또 다른 남자를 소개받아 사랑에 녹아들었다. 남편이 사라지길 바라던 수옥은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좋아했다. 심수옥의 가슴엔 태수의 생각은 흔적도 없이 지워져 있었다. 태수는 납치된 지 삼 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저렇게 행복해 하다니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태수가 집에 돌아왔으나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내가 몰래 바람을 피우는 모습을 보았기에 집에까지 불러드리는지 의심하고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놓았다. 그 후 납치되어 지금까지 확인할 기회가 없었다. 몇 년이 흐른 후에 집으로 돌아온 태수가 감시 카메라를 확인하기 위해 형사와 함께 대문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집에 있던 수옥은 누구냐? 하면서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죽었다고 초상까지 치렀던 남편이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심수옥은 남편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귀신이다.” 하며 비명과 동시에 실신하였다. 태수는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지만, 멍청하게 서 있을 수 없었다. 쓰러진 아내를 끌어안았다. 비명을 듣고 달려온 미영은 태수 앞에서 치매 환자처럼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태수가 앞집 부인을 보고 반갑다며 인사해도 모른 체했다. 앞집 아주머니 미영은 초상을 치렀기에 사람인지 영혼인지 헷갈려서 말하지 못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달려온 소방구급차 소리에 인근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수옥과 태수를 태우고 가까운 자모병원으로 달렸다. 앞집 친구 미영은 멀어져가는 구급차를 바라보면서 꿈인지 생시인지 혼란스러웠다. 태수는 아내를 응급실로 옮겨 치료했으나 많은 시간이 흘러도 깨어나지 않았다. 아내는 하루가 지나서야 겨우 의식은 돌아왔는데 말문이 열리지 않아 대화하지 못했다. 기절하면서 넘어지는 순간 충격 때문에 뇌 손상이 온 것 같다고 했다. 최태수가 집으로 와도 방에 들지 못하고 아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야하는 딱한 사정이었다.
명희는 의붓아버지에게 연락하여 아빠가 돌아왔으니 집 근체에 얼씬거리지 말라고 경고했다. 형사가 숨어서 기다리고 있으니 살고 싶으면 앞으로 영원히 나타나지 말라고 덧붙였다. 알았다며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은 철통 같이 했지만,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다시 골목에 나타나 주변을 서성거렸다. 아무도 몰래 서성거리다가 명희에게 들켰다. 명희는 아버지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당신이지? 하면서 물었다. 깜작 놀라면서 무슨 그런 말을 그렇게 하는가 하고 되물었다. 그럼 오지 말라고 했는데 왜 다시 찾아왔는지 의아하다며 가차 없이 경찰에 신고 했다.
"그곳이 112범죄 신고 센터지요."
"네 그렇습니다."
"자꾸만 괴롭히는 사내가 있어 신고합니다."
"그곳에 어디입니까?"
"지금은 도망쳤는데 이곳에 잠복근무 부탁합니다."
"몇 번지 라요?"
"남구 사랑로 18번지입니다."
그놈은 새가 빠지게 차를 몰고 줄행랑을 치며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했다.
최명희는 아빠를 만나러 오면서 앞집 아주머니가 가르쳐준 호실을 기억하고 KIM 방송국 기자에게 연락했다. 방송 기자는 특종을 잡으려고 위치와 호실을 물었다. 명희는 용호동 자모병원에 733호 병실로 찾아오라고 했다. 앞집 아주머니 미영은 남매를 데리고 수옥의 병실을 노크하였다. 방송국 기자도 도착했다. 병실 문이 열리자 놀랍게도 아버지가 엄마 곁에서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 남매는 아빠를 보는 순간 반가워서 말문이 막혀 허리를 안고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철수도 아빠의 허리를 감싸고 눈물을 쏟았다. 병실 안은 울음소리로 변했다. 온 가족은 집에서 연회를 베풀어야 하는데 병실에서 만났으니 어쩔 수 없이 시끄러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주위를 지켜보던 환자와 보호자들은 영문도 모르고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방송국 기자는 상봉하는 가족의 모습을 낱낱이 영상에 담았다. 기자는 태수에게 질문했다.
“헤어진 이유가 무엇인가?”
“납치당했어요.”
“언제쯤인가요?”
“3년 전이었어요.”
“그동안 어디서 살았어요?”
“별천지 같은 곳에서 죽지 못해 살다가 목숨 걸고 도망쳤어요.”
“어떻게 도망칠 수 있었는지 말할 수 있나요?”
“일전에 강한 태풍을 이용하여 목숨 걸고 수 시간에 걸쳐 헤엄쳤어요.”
“그곳이 어디인지 말해줄 수 있겠나?”
“남해의 어느 섬이라고 했다.”
기자는 인터뷰에 응해주신 태수에게 고맙다고 구십 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기자는 급하게 방송국으로 되돌아갔다. 주위에서 듣고 있던 환자들과 그의 가족들은 삶의 행로가 궁금하다며 꼬치꼬치 물었다. 태수는 궁금하여 질문하는 환자의 보호자들에게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잠시 후 오후 다섯 시 뉴스에 최태수가 가족과 상봉하는 장면이 나왔다. 기자가 인터뷰하면서 요즘도 그런 곳이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감춰진 곳을 낱낱이 공개할 거라며 기다려 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태수는 가족 앞에서 얽히고설킨 문제를 해결하려고 의논하였다. 뉴스를 본 검찰은 서둘러 진행하기로 하고 태수에게 협조를 요청하였다. 검찰은 태수를 불렀지만, 가족을 집으로 퇴원시켜놓고 가겠다고 하여 다소 일정이 변경되었다.
얼마의 시일이 흘러 태수는 아내를 퇴원시켜 집으로 데리고 갔다. 대수는 잠시도 아내 곁을 떠날 수 없어 형사를 집으로 불렀다. 대문을 열어주면서 형사를 만나 귓속말로 아내를 대리고 화장실갈 때 액자 뒤에 감시카메라를 뽑으라고 했다. 형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잠시 후 방으로 들어온 태수와 형사는 음료수를 마시며 대화가 이어졌다. 태수는 아내를 휠체어에 싣고 화장실로 갔다. 형사는 태수가 시키는 대로 액자 뒤에 숨겨진 감시카메라의 칩을 뽑았다. 병문안을 마치고 경찰서로 돌아간 형사는 칩을 확인한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범인은 죽은 시신을 옮겨왔는데 얼굴과 머리는 불에 거슬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죽은 자를 침대에 눕혀놓고 어디서 가져온 회사작업복을 입히더니 부엌칼로 옆구리 찌르는 모습도 보였다. 부인은 낫은 사내와 수시로 잠자리에서 즐기는 장면이 샅샅이 알 수 있었다. 형사는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줄 범인들이 카메라에 흔적을 남겨 놓았다고 좋아했다. 범인의 얼굴을 보았기에 쉽게 잡을 수 있었다. 형사가 범인이라고 잡고 보니 실체의 인물이 아니었다. 범인은 가면을 쓰고 행동했다. 또 다른 마약범을 잡아 고문하듯 질문했다. 등치가 좋은 사내 두 명을 보내라고 하면 어디서 구하든 두 명을 골라 납치하여 보내 주었다고 진술했다. 일부 범인을 잡아 자백 받았으나 중간 연락책을 잡지 못하여 실체의 내막을 완전히 알지 못했다.
검찰은 마약 공장 현장을 기습하기 위해 기상이 아주 좋은 날 태수와 함께 섬으로 가려고 모든 준비를 끝냈다. 태수는 그곳엔 무장한 저격수들이 많으니 모두 완전무장 하라고 대장에게 알렸다. 대장은 쉽게 생각하였다가 저격수들이 무장했다는 말을 듣고 즉시 완전군장을 명했다. 장마가 끝난 바다에는 파도마저 고요하였다. 넓은 바다 위에 솟아있는 섬은 아주 평화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해경은 두 대의 배로 섬을 돌면서 탈출을 감시하였다. 경찰특공대원 두 중대는 완전 무장하고 헬기 1대를 투입하였다. 해경은 섬의 포구를 지키며 출입을 통제하였다. 하늘에서는 경찰 헬기가 아래로 내려다보며 섬을 주시하였다. 태수가 섬에 공장은 개미집과 같으니 어느 구멍으로 나올지 모른다고 했다. 경찰 중대가 고요한 섬으로 들러서 산길 따라 한참을 걸었다. 산은 온통 녹색으로 뒤덮여 싱그러움을 자랑하는 팔월 하순이었다. 부두에서 공장으로 이어지는 길 따라 걸어갈 때 높은 곳에 초소가 보였다. 수용소 같아 보여 아주 긴장한 모습으로 접근했다. 정문 경비는 무장한 경찰력이 온다는 것을 모니터를 향에 알고 있었다. 정문 근무자는 전투태세로 사격하려고 했으나 공장장의 만류에 예의 주시하였다. 상공에서 헬리콥터가 보였기 때문이다. 주위가 산으로 쌓여 외부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고개 넘어 공장으로 보이는 건물 앞 정문에는 대성산업이라는 간판이 걸려있었다. 정문이 가까워지자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경계가 삼엄해 보여 경찰 두 중대는 공장을 에워쌌다. 경찰 지휘자는 특공대원에게 공장에서 경비하는 자가 반항하면 모조리 사살하라고 했다. 열다섯 명의 경호원이 지휘자를 보호하며 그림자를 밟았다.
최태수가 경찰 특공대 대장에게 건물 내부를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대장을 비롯한 경찰특공대원과 태수가 정문으로 들어서니 경비원이 재재하여 못 들게 했다. 경찰 간부가 공장장을 불러달라고 했다. 특공대원은 경비원에게 주어진 총을 모조리 뺐으려고 하자 시비가 붙었다. 덩치가 크고 억세게 생긴 놈이 공장장이라며 나타났다.
“어서 오세요?”
“여기가 무슨 공장이요?”
“생활용품을 만들어내는 공장입니다.”
“경비원이 총을 소지했네요?”
“탈출자에게 위협을 주려고요.”
“총은 불법이니 압수하겠다.”
“경비는 뭐하는 사람인가 쏴라?”
경비실에서 벨을 누르자 동굴 속에서 여러 명이 총을 들고 올라왔다. 특공대원은 경비원을 주시하고 총으로 조준하고 있었다. 경비원이 쏘려고 총구를 들어 올리려는 순간 특공 요원이 먼저 경비원을 모조리 사살했다. 경비원이 올라온 터널에 수류탄을 던져 터널 안을 폭파했다. 서로 총격전이 벌어지고 일분도 되지 않아 모두 사살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도 보이지 않고 강렬하게 쏟아지는 햇빛은 경비실 앞 미루나무 우덤지를 감싸 안았다. 공장장은 경찰 특공대원이 왔으니 종말이 왔다고 판단하고 고개 숙였다.
공장장을 체포하여 쇠고랑을 채우고 공장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공장장에게 불을 켜라고 하고 대장은 대원을 앞세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불이 밝혀진 곳으로 들러보니 공장으로 보이며 규모는 중소기업 정도로 보였는데 근로자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비상벨이 울릴 때 모두 사라진 것 같아 공장장에게 물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대장은 말하지 않는 공장장의 팔을 날려버리라고 했다. 특수요원은 공장장의 왼팔에 총알구멍을 냈다. 최태수가 실내 전등불을 켜고 주위를 살펴보았으나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작업했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근로자가 일하던 자리에는 따뜻한 열기가 감지되었다. 공장 내부는 숨소리마저 울릴 정도로 적막감에 쌓였다. 태수는 지휘자를 데리고 공장 내부를 돌다가 더 안쪽으로 갔다. 공장장은 앞서가는 태수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려고 하자 태수는 발을 멈췄다. 그 순간 공장장은 태수의 머리를 내려치려고 쇠고랑 찬 손을 높이 들었다. 공장장은 마약 공장을 알려주는 태수를 저지하려다 남은 팔에도 총알구멍을 났다. 특공대원은 공장장의 양팔에서 피가 흘렀지만, 손대지 않았다. 공장장은 양팔에 총알구멍이 생겨 팔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공장 안은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태수가 여기는 마약제조 공장이라고 대장에게 알렸다. 문을 열려니 잠겨있어 열리지 않아 공장장에게 열어달라고 했더니 고개만 저었다.
특공 대장은 대원에게 사격 자세로 취하라고 명했다. 한 대원이 총을 쏘아 문고리를 부수고 모두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마약 냄새만 났다. 근로자들은 비상벨이 울릴 때 땅굴 속으로 숨어버렸는지 이곳 마약 공장에서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최태수가 개미집처럼 만들어진 공장 내부를 소상히 설명했다. 공장 내부를 샅샅이 뒤지다 마약을 발견하고 주위를 철저하게 조사했다. 마약 책임자는 마약제조 공장으로 들지 못하게 기계실에서 정전하였다. 갑자기 어두워지자 경찰 특공대원은 긴장하여 엎드려 사격 자세를 취했다.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렸다. 공장장은 정전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도망치려고 튀었다. 특수요원이 헤드라이트를 밝히면서 공장장의 허벅지와 등을 쏘았다. 태수는 이곳으로 가면 밖이 보인다고 대장에게 알렸다. 특수요원은 구석진 곳으로 한참을 포복하다가 빛이 비치는 곳을 발견하였다. 경찰특공대원은 되돌아 나오다 태수가 오른쪽 벽을 살펴보라고 했다. 금이 간 틈이 보인다고 하자 그곳을 밀라고 했다. 특공대원은 벽 전체를 힘주어 밀었다. 벽이 밀리면서 안으로 통하는 통로가 열렸다. 창고에는 마약을 외국으로 보내려고 저장해 놓은 곳이다. 태수가 경찰특공 대장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밖에는 반드시 경호원이 포구를 지키고 있다고 하자 여기도 선착장이 있는지 물었다. 마약을 운반하는 장소기 때문에 경계를 하면서 주위를 살피라고 했다. 그때 앞바다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경찰특공대원들은 엎드려 사격자세로 취하고 사태를 예의주시했다.
마약범들이 섬 언저리에 바위로 은폐된 곳에 숨겨놓은 배를 타고 도주를 시도했다. 해경은 섬에서 나타난 도주하는 배를 발견하고 뒤를 쫓았다. 해경은 도주하는 선박을 잡기 위해 작은 쾌속선으로 따라붙었다. 그때 마약을 운반하는 쾌속선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괴한이 쏜 총에 맞아 해경이 쓰러지자 마약 밀항선과 총격전이 벌어졌다. 은폐할 곳이 없는 경찰 쾌속선은 요리조리 피하면서 마약범들이 쏜 총에 맞아 세 명이 사살되었다. 쾌속선으로 도주하는 배를 따라가 마약범 다섯 명 사살하고 세 명을 생포하였다.
“왜 사람을 죽이는가?”
“Help me! Help me!”
“어느 나라 사람이야?”
“필리핀 앤드 마카오.”
이들은 한국인이 아니다. 마약을 밀매하려고 동남아에서 날아온 필리핀 보스와 마카오 마약 판매부장이다. 총은 왜 가졌는지 의아하다고 했다. 외국인은 총이 없었지만, 안전요원들이 다른 배로 옮겨줄 때까지 무장하고 다녔다고 했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가 끝났다.
해경은 그들이 탈출한 곳을 찾아가 보았다. 전면에서는 큰 바위가 가로막아 포구가 보이지 않았다. 바위 뒤쪽으로 들러보니 작은 동굴이 보였다. 동굴 밖에는 특공대원이 손을 흔들며 환호하고 있었다. 섬의 내부는 개미집처럼 대다수가 동굴로 이루어졌다. 바위틈에는 공장에서 마약을 포구로 옮기는 통로였다. 터널 속에는 근로자들이 덜덜 떨면서 모여 있었다. 특공대 요원들이 마약 공장근로자와 플라스틱공장 근로자를 선별하였다. 특공대원은 공장에서 일하던 근로자를 모두 마약 한 포대씩 들고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특공대원은 공장 간부와 직원이라고 하는 자들을 샅샅이 선별하여 가져온 자일로 굴비 엮듯이 줄줄이 양손을 묶었다. 체포한 근로자 중 일부를 데리고 마약이 저장된 창고로 갔다. 마약을 모두 포구로 옮겨 해경경비선에 선적했다. 총기와 국제간의 마약 거래명세서 등 다수의 증거물을 압수했다. 해양경찰과 특공대원들은 섬에서 모두 철수했다. 최태수가 두 번 다시 그곳에 오지 않겠다고 했지만, 복수를 위해 다시 찾았을 땐 안내자가 되었다. 그놈들의 흔적은 조금도 남김없이 배에 실었다. 태수는 악마의 소굴이 관광명소로 유명해지길 기대했다. 독초의 꽃을 뽑아버린 자리에 화초를 가꾸어 아름다운 꽃으로 진한 향기 풍겼으면 좋겠다.
태수는 삼 년이란 세월을 허공에 날렸지만, 다시 만난 가족과 기쁨도 한순간 바람난 아내의 병간호로 곁에 있으면 짜증만 냈다. 간병인을 붙여놓고 다시 회사로 출근했다. 태수는 애인을 불러 간병하라고 하고 회사 부근에 원룸을 얻어 집을 떠났다. 수옥은 여러 명의 애인을 불렀지만, 남편이 돌아왔다는 소문에 아무도 오지 않았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수옥은 오로지 죽음만이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라며 옥상에서 허공으로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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