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그 가을의 백두여정>>
2박 3일의 어떤 여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말 못 할 흥분과 기대감으로 심장이 울리기 시작했다. 어느 해 가을, 9월 상순, 부산에서 연길 가는 비행기에 몸을 담는다.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강행군이지만 전혀 피곤을 느낄 수 없었다. 진주에서 창원으로 다시 김해공항으로, 부산에서 김해공항으로, 반가운 얼굴들, 서울에서는 직접 연길로, 세 시간을 날아서 12시쯤 연길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연길은 연변자치주의 주도이다. 자치주는 인구가 50만을 조금 넘는다고 하는데, 면적이 남한땅의 절반이란다. 도시에 들어서면서, 아, 정말 좋구나, 상쾌하구나, 발전의 연속이구나, 그런 느낌들이었다.
순이냉면으로 점심을 먹고서 백두산 가까운 도시 이도백하로 이동한다. 연변은 항일유적지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 곳이다. 지금은 살아 있는 역사 교과서이다. 일제 강점기, 그 이전에도, 그 땅은 우리의 땅이었다. 살기 위해, 살아나기 위해 갈 수밖에 없었던 진정 우리의 땅이었다.
윤동주, 서시, 용정, 이상설, 홍범도 김좌진 그리고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스러진 숱한 독립운동가들이 고난의 투쟁을 벌였던 장소이자 한국인들이, 아니 조선인들이 조선족으로 자존과 자부심을 안고 현재를 살아가는 연결의 무대이다.
두만강으로 가는 길, 도문으로 가는 길에는 옥수수가 천하를 호령하고 있다. 어쩜, 저리도 많은 옥수수가 점령하고 있을꼬, 말로만 듣던 엄청난 규모의 농작물 재배현장을 생생히 목격할 수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옥수수 밭을 뒤로하고서 드디어 도문의 두만강 경계선에 도착한다. 북한과 국경을 마주하는 곳이다. 한중 관계, 남북한 관계의 엄중한 현실을 이곳에서도 목격한다. 가이드는 북한 쪽을 향해 사진을 찍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중국 관광객들은 뗏목도 타고 , 강변에 내려가기도 하는데, 우리들은 멀찍이 떨어져 그리운 강산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노 젓는 뱃사공대신 우리에게 언감생심인 뗏목이 운행되고 있었다. 난전이 여럿 펼쳐 있고, 북한으로 향하는 다리 역시 중국인들만이 접근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 참, 난감했다. 왜 이러지, 그래도 작은 나무들만이 산을 이루고, 색 변한 건물들이 옹기종기 자리한 강 건너 마을엔 밥을 짓는지 연기가 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저 다리 뛰어 건너서, 어찌 사는지, 인사라도, 오분이라도, 오초라도 머물고 싶었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다. 공원엔 조선족 어르신들이 춤도 추고, 장기도 두고, 아이들은 깡충깡충 뛰어다니고 있었다.
첫 밤은 이도백하시 호텔에서 머물렀다. 저녁은 현지 송이버섯 조금 조달해 삼겹으로 해결했다. 고기가 좋았다. 제주산 돼지고기 못지않았다. 호텔엔 냉장고가 없었다. 왜 그런지, 그랬다. 딱히 냉장고를 이용할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랬다. 첫날이라, 좁은 방안에 이십명 가까운 나그네들이 끼어 앉아 소주로, 동숙의 노래(노래 제목임)로, 첫 날밤을 보내고 있었다. 조금 시끄러웠나 보다. 민원이 들어갔다고 후에 알았다.
날이 밝아온다. 알람시간은 새벽 5시다. 어떤 이는 시차(1시간) 혼동으로 새벽 4시에 일어나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 빠른 동작으로 짐정리 하고서 조식현장으로 출동, 엄청난 인파 뚫고서 옥수수에, 밥에, 빵으로 조식을 끝내고서,
꿈에 그리던, 이번 여정의 최고봉인 백두산 여정에 나선다. 최대 화두는 추위였다. 바람이었다. 다들 두터운 외투로 껴 입었다. 공기는 차가웠다. 아, 많이 추운가 보다. 올라가면 엄청 춥겠지. 버스는 백두로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 머지않은 곳에 도착하니, 구름 떼 사람들, 거기서부터는 그곳 차량을 이용해야 한다, 도대체 말이 나오질 않았다. 하루에 3만 명이 이용하다고 하니, 이해는 되는데, 기다리고, 기다리고 그런 시간들이 한참이나 가서야 버스를 탄다.
백두의 원시림을 50분쯤을 달린다. 편도 1차선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다들 눈을 감고 있다. 역시 공기가 시원하다. 폐부를 씻어낸다. 관문이다. 백두산 들어가는 입구이다. 그 사람들, 어디를 가겠는가, 뛰고 뛰고, 일행을 놓치고, 긴장의 연속이다. 그러기를 한참이나 있기를, 드디어 문이 열린다. 10인승 봉고차가 줄을 잇는다. 300여 대의 봉고가 쉴 새 없이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참으로 장관이다.
1700 고지에서 2700 고지까지, 길이다. 언제 닦았는지 모르지만, 2차선 길이 반듯하게 놓여 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기 위해 엄청난 속도로 달린다. 속도감을 느낀다. 오른쪽 왼쪽으로 휘청휘청한다. 그 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옮겨 갔다. 천지로 오르기 시작한다. 사실, 조금이라도 등산을 하지 않을까, 그것은 기우였다. 전혀 산을 타지 않는다. 멀리서 보니 또 장관이다. 행렬이, 빼곡한 행렬이 장엄하게, 신성하게 걷고 있다. 종교집회에서 신을 영접하러 가는 사람들, 바로 그것이다.
터벅터벅 오르는 길은 예술이다. 아래로는 숲들의 바다이다. 일망무제는 그것을 두고 일컬었을 것이야, 그 바다는 도대체 어디가 끝인고, 천천히 천천히 오르니, 천지의 입구는 난장이다. 한 장의 사진을 위해, 거룩한 성전을 눈에 담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진다. 밀리고, 밀리고, 기다리고, 끈기와 인내가 엄청 필요한 공간이다.
우리는 거기서 잠시지만 보았다. 그 푸른 하늘을, 그 푸른 바다를 보았다. 5천 년의 그 하늘을, 3천 년의 파란 물색을 보았다. 검은 바위들, 붉은 흙들이 감싸주는 곳, 아, 이럴 수가, 나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자꾸 밀어댄다. 현실로 돌아온다. 아차, 빨리 비켜 주어야지, 쫓기듯 걷는다.
와중에 꿋꿋하게 사진발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셀프로 작품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저리 해야 하는데, 저리 느긋해져야 하는데, 현실은 그리 할 수가 없었다. 정상에서의 날씨는 덥다. 윗옷은 벌써 던져버리고 없다.
어마어마한 줄의 행렬 앞에서 느긋한 관광을 접고서 허기진 배의 요기를 때우듯 그리 해야 했지만, 어떤 강렬함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고는 있었다. 너는 한민족이다, 너는 조선인이다, 너는 백두의 아들이다. 그 푸르디푸른 물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일 년에 단 며칠만 허락한다는, 그 화려하고도 완벽한 하늘- 물색의 조화를, 꿈을 꾸듯 채곡 채곡 집어넣고 있었다. 나만 그런가, 아닐 것이다.
내려가자, 가기 싫지만, 다시 기다림과 바쁜 걸음 속에 봉고 타고서 하행길로 접어든다.두 번째 행로인 비룡폭포다. 온천의 수증기가 펄럭이는 모습을, 계란을 삶아내는 신공에 아, 화산이 살아 있는 현장이구나,
그러면서 이미 몸은 폭포로 폭포로 옮겨간다. 장쾌하게 떨어진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천지의 물살이다. 바람에 펄럭인다. 이과수에 버금간다. 멀리서, 멀리서 보고 있는데도, 마치 가까이서 피부 따끔함을 느낀다.
사람들 감탄해 마지않는다. 그렇구나, 저 물 흘러 흘러 휴전선 넘어서고 한라산 백록담까지 구불구불, 느긋하게, 바다도 가로질러, 한라의 오랜 흰 사슴들 맛있게 입맛 다시게 그곳까지 흘러갈 거야, 분명 그럴 것이야,
이제 흥분을 가라앉히고 내려가야 한다. 점심이 늦다. 이도백하의 진달래 식당이다. 한식으로 준비되어 있다. 김치도, 두부도, 옥수수도, 된장도 다들 맛있다고 소리들이다. 특히 옥수수가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 연변의 최대 작물이다. 그 맛이 일품이다.
다시 우리는 돌아간다. 연길로 돌아가야 한다. 가는 길, 곳곳에 우리의 조상들 목소리가 들려온다. 힘들었노라, 하지만 너희들이 자랑스럽노라, 잊지 말거라, 역사를 잊지를 말거라, 화룡의 일송정이, 푸른 솔이 저 멀리 큰 산 위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이제 하나 남은 대성중학이 위품을 자랑한다. 용정우물의 두레박으로 백 년도 훨씬 지난 그때의 물을 퍼 올린다. 서전 들판, 평당 들판의 누런 알갱이들이 연신 박수를 보내고 있다. 아, 저 너런, 누런 들판을 우리 조상들이 다 일구었구나, 한국에서 이십 대 청춘을 다 보낸 가이드의 인생 드라마는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마지막 밤이다. 연길의 양꼬치 구이 집이다. 맛있다. 그간 먹어보지 못한 맛이다. 우리는 비싸서 잘 먹지 못하는 고기다. 그곳서 환갑의 축하 케익도 자른다.
밤이 늦었지만, 피로를 풀기 위해 어깨 주무름 집으로 이동하여 잠시 노곤함을 날려 버리고 콘도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다. 다들 피곤했는지, 곯아떨어지는데 1초도 걸리지 않는다. 밤이 가고 새벽이 온다. 식당에서 한국에서 오신 어르신들을 만난다. 바지를 거꾸로 입고 나오신 한 어르신 덕에 잠자던 개구리 백 마리를 깨우고 만다.
둘째 날은 침향, 마지막 날은 라텍스 쇼핑에 정신들이 없다. 다들 좋은 제품을 만난 듯이 구매의 지갑을 열어 젖힌다. 그리고 12시 30분, 서울팀은 12시, 그 비행기로 돌아온다. 언제 다시 갈지, 가기는 할지, 알 수는 없어도, 마음 한가득, 추억 탱크를 묻어 두고서 그리움의 대형 솥단지는 양손에 들고서 뒤뚱뒤뚱 발걸음을 옮긴다.
이박 삼일의 짧지만, 백두와 천지와 연변 곳곳의 강렬함이 심장을 내 지른다. 그러고서 그 마음 아는지 모르는지, 저 비행기는 쏜살같이 하늘로 하늘로 숨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