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탁 / 나를 찾는 법(참선법)
거짓과 날뛰는 갈망으로 몽롱하게 사는 듯 한 세상에는
나쁜 습관과 수치도 모르는 양 벌거벗은 더러움만 있나니
사람을 속이고 남을 헤치려는 자들로 떠들고 웃음 치며
인과를 경시하며 따르지 않는 악에 젖은 모습으로 가치 없어라.
선량한 젊은이들아 나를 찾는 법에 어찌 기쁘고 즐겁지 않으랴.
다만 나는 어디서 왔으며 나를 어떻게 찾고 사후엔 어디로 가는가.
내 안에 있는 선정에서만 나를 찾는 유일한 바른 길이 있나니
이 세상 윤회를 벗어나려 한다면 죄를 고백하고 선을 행하라.
이 세상의 욕망과 쾌락은 부질없음을 알고 나를 찾는 법에 힘을 다하고
대자비와 대지혜의 배를 띄우는 일이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나니라.
세상은 홍안의 악인들이 모여 사는 곳 학문은 가식의 바람 같고 악의 시현 같도다.
그대를 헤치는 일과 환영 같은 망언으로 그대에게 슬픔만 더하게 할 뿐
거룩한 진리 나를 찾는 바른 길에 매진하며 내 안에 있는 선정에서만 배워라
그대의 마음은 어느 곳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 이 윤회 세계 환영 같은 미망으로 있고
또 걸림이 없는 소중한 마음을 지닌 자요 불타가 구현된 자이니라
그대의 마음은 존재의 본질이요 뭇 존재의 근본이요 실상이니라.
고타마 붓다의 진수를 지닌 자요 보리심을 발현한 인천의 스승이 될 자이다
그대의 마음과 의지력과 법의 인연만이 온갖 악념을 극복하고
끊임없이 수행에 매진하여 초월한 법신의 경지에 머무를 수 있지만
불타의 구현보다 중생심이 더 커 간단없이 정진할 수 없나니라.
온갖 악의 원천인 집착심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세상을 보지 말아야 하나니
인생 문제를 비롯하여 일체 문제에 걸림이 없이 바르게 정진해야하느니라
사람 몸 한번 얻어 바른 법 듣기란 천만 겁에 만나기 어려운 일이니
미망의 문을 활짝 열어 제치고 근원임을 옳게 알아 온전히 깨닫는다면
마음이란 곧 모든 뭇 존재의 근원이요 이 몸과 본체가 하나임을 앎은 해탈의 길이다
이것이 바른 이해의 길이요 곧 나를 상서롭게 할 수 있는 길이 되리라.
위없는 보리심으로 신체와 말과 마음과 정신을 모아
살얼음을 걷듯 간절한 마음으로 한생을 바르게 정진해야하느니라
홀로 인내하며 에너지 통로와 생명 에너지를 수련하여
소우주뿐만이 아니라 모든 속박에서 벋어난
일체 이치에 요달 된 불변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돼야 하나니라.
상서로운 진리는 하나이다 자아의 각성과 자아 광명이면
모든 만상을 살라버리는 해탈이지만 마음의 근원을 알기 전까지는
환영과 허깨비로 미망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나니라.
또한 온갖 혼란의 근원은 마음에 있음을 알지니
마음의 본성을 깨닫는 자는 가고 옴이 없는 대광명을 보게 되어
삼라만상의 본질을 바라보는 공과 형상의 평등성을 얻게 되나 니라.
초월적 마음의 본질에 잠심하여 한순간도 흩어짐이 없나니 자신의 공부가 성취 되나 니라.
그는 위대한 명상자라 스승이 어디 따로 있으며 방법이 어디에 따로 있으랴
우리가 죽을 각오로 공부한다면 못 이룰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즐거이 맹세하고 굳건한 의지만 낼 줄 아는 사람은 다 깨달을 수 있나니라.
항상 본질에 눈을 뜨고 생각을 초월한 무위로 행동하여 본질을 찾아라.
언어를 초월한 경지만 있으면 지금껏 알지 못하던 도의 대성취가 이루어진 것이나
신심 분심 의심 이 세 마음을 합하여 상서로운 진리를 생각하여야 공부를 성취할 수 있나니라.
신심만 철저하면 그대에게 화답하여 오고 감이 없는 대광명 세계의 성취가 곧 있게 되나 니라.
다섯 가지 근간이 오염된 무분별한 인간이라면
내세에는 다시 인간 몸을 받기가 어렵나니
공부하는 사람이 제일 주의해야 할 것은 모든 보옥과 제물은 다만 환영이요
모든 가족 일가친척 친구들은 한때뿐이요 속임수라 스승조차 미망이요
꿈과 같은 것이니 나를 완성할 방해임을 생각해야 하나니라.
이제야 깨달으니 마음 어디에 인가가 있고 자칭 선지식이 있으랴
언어유희를 초월한 진리 세속의 주장들이 진리를 휩쓸어 가리라.
이 법은 언어가 끊어지고 마음길이 멸한 곳에서 발견되는 도리라
다만 내면이 밝아져 논리와 사색을 멀리 떠난
마음이 텅 빈 본성을 응시할 때가 아니면 이룰 수 없는 도리이니라.
공부는 발심으로 삼는 표준이라 마음을 꿰뚫어 관찰할 것은 없으나
치성한 욕망이나 집착을 부추기지 말아야 할지니라.
참선수행은 누가 도와주는 언구나 공부가 아니요,
만물을 창조하는 법 곧 만상은 마음으로 드러나나니
순수한 지혜로 더 이상 다른 정견을 찾을 필요가 없나니라.
창조와 소멸을 초월한 무념처에서 얻은 지혜광명은 지식을 초월하나니라
일체 중생은 날 때부터 오감의 언어를 씀으로 말미암아
붓다의 몸도 없고 지혜도 없고 열반도 없는 진여를 지녔건만 깨닫지 못하는 것이니
공부하는 사람은 한결같은 일미행을 행해야 하느니라.
심오한 선정으로 본래 공성의 정견에 들되
깨달음이 빛나는 내면에서 오감의 경험이 녹아내려야 나를 발견하나니라.
온갖 관념들이 녹아 만법의 거대함 속에서 나는 소멸되어야 하기에
최후의 성취로 나아가 불타 경지 구하기 전에는
명징한 거울같이 샛별처럼 반짝일 만큼 나의 존재를 없애야 하나니라.
나를 완성시키는 관념을 초월한 지혜 대지혜를 알게 되는데
그것은 번뇌를 정복한 선정과 지혜의 힘이니라.
세체를 초월한 사람은 불변의 진리를 기쁨으로 만끽하는 것이니 그 도의 힘이다.
궁극적 실체를 깨달으려하는 일체의 사람들이 환영일 뿐인 세상에서
이것저것 분별하기를 좋아하니 보리심을 발하지 못하는 것이니라.
중생을 초월하여 진리의 본질에 머물고 온갖 만물을 마음이 창조하는 법이거늘
어찌 사람이 도인이 될 수 없으며 어찌 도인이 나는 땅이 특별히 있을 것인가.
그리고 만법을 분별하지 않는 마음보다 더 강한 것이 어디 있으랴
참선을 하여 가고 옴이 없는 대광명을 보게 되면
다생억겁의 생각은 헛 그림자일 뿐이요 온갖 지은 죄가 또한 그러하나니
그 때는 사생 육도에 헤매는 그릇된 관념이 모두 사라지느니라.
참선을 하며 도를 닦는 사람 중에 삼라만상의 본질을 바라보는 자가
공과 형상이 하나 되어 평등성이 이루어지게 되면 대아는 저절로 이루어지나 니라.
참선하는 사람은 옛 부터 있었지만
구경의 진리에선 견해조차 없나니 이것이 마음의 본질이니라.
화두참선법은 생각을 초월한 본질을 찾는 법이니
흩어짐 없이 명상에 몰두하여 본질에 눈을 뜨게 데는데
그때라야 부모님은혜 부처님은혜 스승의 은혜를 다 갚게 되느니라.
이 몸이라는 것은 환영과 허깨비요 마침내 사라지는 것이다
이 정신도 영혼도 마음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근원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고. 의심을 지어 가야
마음속 기도실 안에 깨달음의 등불이 있음을 알게 되나니
장대를 세워 깃발을 매단 자는 가고 옴이 없는 대광명을 보게 되나 니라.
참선하면서 내 환신의 집에서 사념을 청소하거나
무수한 미망 세계를 관찰하거나 외눈박이 악마를 섬기듯 한다면
미망의 감옥에 더욱더 갇힌 것이니 아주 큰 백지로 돌아가야 하나니라.
생각이란 마음속에 날뛰는 갈망이며 윤회로 이끄는 안내자이다
또한 사람이 자신에 도취되어 끝없이 되풀이하는 갈망의 껍질이다
껍질을 좋아하는 것은 윤회의 발목을 잡는 것인데
수행하는 명상자는 갈망의 껍질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명상에서 녹여 버려야한다
인간의 자아반성 가운데 이러한 바람직한 특성은 불타의 경지 성취할 때까지
수행자의 갈망을 강력하게 멈추도록 한다.
내성적인 내 성격은 가르침을 배우는 시간과
진리를 따르는 시간 동안 필요 이상으로 나를 도왔다
사람들이 진리 자체의 정직한 시녀가 될수록 윤회 세계를 벗어날 기회를 갖는다.
깨달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수록 끝없이 되풀이되는 윤회 세계를 떠돈다.
거룩한 진리를 배우는 사람들과 명상자들은 너나없이 수행을 홀로하고 있다.
열정과 진리를 배우는 공부는 끊임없어야 되는 것이다.
세속적인 사람이 도인되기가 무척 어렵듯이 도인 또한 세속적인 사람 되기가 무척 어렵다
나라는 사람은 열정이 마음속에 모질게 날뛰었다 이것이 내 장점이자 약점이다.
아무튼 나는 단순히 살기위해서가 아니라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믿는다.
위대한 명상자들은 항상 이런 생각을 하며 산다.
갈망 녹일 수 있는 바른 견해를 갖고 있으며 보리심의 발현도 뛰어난데
다만 이런 은총의 시원한 그늘 속이 없다고 말이다
나는 매일 불타의 경지 성취하기를 맹세했다
에너지 통로와 생명 에너지를 수련할 때면
내적인 소우주에서는 조화로운 일을 만나 놓칠 수 없는 장관이 펼쳐졌다.
색깔과 빛이 중첩되어 붉은색과 흰색의 우주처럼 펼쳐지는 기적이었다.
이 순수한 소원이 만나게 된 황홀한 공간의 일이다
지고한 깨달음이 깊어지는 가운데
이 축복받은 곳 내밀한 비밀 교의로 나 자신 홀로 길을 가는 것이다.
이 편의적인 미망과 바로 작별이다.
지금도 내가 가는 윤회의 길목마다 대광지혜 큰 빛을 밝히고 있다
윤회계란 욕망에 이끌림을 통해 또다시 이 세상에 떨어지고 말
평상적으로 회전하는 바퀴와 같은 것이다
나는 지복의 궁전을 보고 도취했다. 존귀한 공삼매의 우주적 도취였다.
그 즉시 행법을 행하며 깨달음의 길로 내 의식을 인도했다
마치 누군가 해탈대도로 안내하는 것 같았다
혼란과 미망을 믿지 말아야 했다.
각성에 의지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선정의 길로 나아가야 했다.
현명해야 했다 오독의 산적도 많았고 다시 가야 하는 고달픈 수렁도 많았다.
이 수렁은 해탈의 마른 땅을 향하고서야 비로소 안락하게 되었다
해탈의 문은 언제나 닫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존의 실체가 드러나 공성 보좌에 앉아 있기에 나는 더욱 기쁘고 행복하기도 했다
한편 만상은 나의 법신 안에서 변하고 있었다.
삼보에 귀의한 좋은 곳이자 역동적이고 평등적인 깨달음의 대도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사무량의 꽃술을 가진 자비의 광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혜의 연꽃위에 앉아마자 아름다운 모습의 광휘는 사라지고 말았다.
이와 동시에 홍안의 마녀들 사는 곳 오탁의 슬픈 시대를 지나
가슴속에 감로수의 진리를 지니고
험난한 윤회의 바다를 건너 대자비와 대지혜의 배를 띄우고 있었다.
언어유희 초월한 경지에 머무는 삼매의 힘으로 모든 요소를 정복한 결과이었다.
그 순간부터 온갖 기적을 목격하였지만 선정은 내 정신과 삶의 전부를 차지한다.
신형탁 / 나를 찾는 법(참선법)
거짓과 날뛰는 갈망으로 몽롱하게 사는 듯 한 세상에는
나쁜 습관과 수치도 모르는 양 벌거벗은 더러움만 있나니
사람을 속이고 남을 헤치려는 자들로 떠들고 웃음 치며
인과를 경시하며 따르지 않는 악에 젖은 모습으로 가치 없어라.
선량한 젊은이들아 나를 찾는 법에 어찌 기쁘고 즐겁지 않으랴.
다만 나는 어디서 왔으며 나를 어떻게 찾고 사후엔 어디로 가는가.
내 안에 있는 선정에서만 나를 찾는 유일한 바른 길이 있나니
이 세상 윤회를 벗어나려 한다면 죄를 고백하고 선을 행하라.
이 세상의 욕망과 쾌락은 부질없음을 알고 나를 찾는 법에 힘을 다하고
대자비와 대지혜의 배를 띄우는 일이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나니라.
세상은 홍안의 악인들이 모여 사는 곳 학문은 가식의 바람 같고 악의 시현 같도다.
그대를 헤치는 일과 환영 같은 망언으로 그대에게 슬픔만 더하게 할 뿐
거룩한 진리 나를 찾는 바른 길에 매진하며 내 안에 있는 선정에서만 배워라
그대의 마음은 어느 곳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 이 윤회 세계 환영 같은 미망으로 있고
또 걸림이 없는 소중한 마음을 지닌 자요 불타가 구현된 자이니라
그대의 마음은 존재의 본질이요 뭇 존재의 근본이요 실상이니라.
고타마 붓다의 진수를 지닌 자요 보리심을 발현한 인천의 스승이 될 자이다
그대의 마음과 의지력과 법의 인연만이 온갖 악념을 극복하고
끊임없이 수행에 매진하여 초월한 법신의 경지에 머무를 수 있지만
불타의 구현보다 중생심이 더 커 간단없이 정진할 수 없나니라.
온갖 악의 원천인 집착심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세상을 보지 말아야 하나니
인생 문제를 비롯하여 일체 문제에 걸림이 없이 바르게 정진해야하느니라
사람 몸 한번 얻어 바른 법 듣기란 천만 겁에 만나기 어려운 일이니
미망의 문을 활짝 열어 제치고 근원임을 옳게 알아 온전히 깨닫는다면
마음이란 곧 모든 뭇 존재의 근원이요 이 몸과 본체가 하나임을 앎은 해탈의 길이다
이것이 바른 이해의 길이요 곧 나를 상서롭게 할 수 있는 길이 되리라.
위없는 보리심으로 신체와 말과 마음과 정신을 모아
살얼음을 걷듯 간절한 마음으로 한생을 바르게 정진해야하느니라
홀로 인내하며 에너지 통로와 생명 에너지를 수련하여
소우주뿐만이 아니라 모든 속박에서 벋어난
일체 이치에 요달 된 불변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돼야 하나니라.
상서로운 진리는 하나이다 자아의 각성과 자아 광명이면
모든 만상을 살라버리는 해탈이지만 마음의 근원을 알기 전까지는
환영과 허깨비로 미망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나니라.
또한 온갖 혼란의 근원은 마음에 있음을 알지니
마음의 본성을 깨닫는 자는 가고 옴이 없는 대광명을 보게 되어
삼라만상의 본질을 바라보는 공과 형상의 평등성을 얻게 되나 니라.
초월적 마음의 본질에 잠심하여 한순간도 흩어짐이 없나니 자신의 공부가 성취 되나 니라.
그는 위대한 명상자라 스승이 어디 따로 있으며 방법이 어디에 따로 있으랴
우리가 죽을 각오로 공부한다면 못 이룰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즐거이 맹세하고 굳건한 의지만 낼 줄 아는 사람은 다 깨달을 수 있나니라.
항상 본질에 눈을 뜨고 생각을 초월한 무위로 행동하여 본질을 찾아라.
언어를 초월한 경지만 있으면 지금껏 알지 못하던 도의 대성취가 이루어진 것이나
신심 분심 의심 이 세 마음을 합하여 상서로운 진리를 생각하여야 공부를 성취할 수 있나니라.
신심만 철저하면 그대에게 화답하여 오고 감이 없는 대광명 세계의 성취가 곧 있게 되나 니라.
다섯 가지 근간이 오염된 무분별한 인간이라면
내세에는 다시 인간 몸을 받기가 어렵나니
공부하는 사람이 제일 주의해야 할 것은 모든 보옥과 제물은 다만 환영이요
모든 가족 일가친척 친구들은 한때뿐이요 속임수라 스승조차 미망이요
꿈과 같은 것이니 나를 완성할 방해임을 생각해야 하나니라.
이제야 깨달으니 마음 어디에 인가가 있고 자칭 선지식이 있으랴
언어유희를 초월한 진리 세속의 주장들이 진리를 휩쓸어 가리라.
이 법은 언어가 끊어지고 마음길이 멸한 곳에서 발견되는 도리라
다만 내면이 밝아져 논리와 사색을 멀리 떠난
마음이 텅 빈 본성을 응시할 때가 아니면 이룰 수 없는 도리이니라.
공부는 발심으로 삼는 표준이라 마음을 꿰뚫어 관찰할 것은 없으나
치성한 욕망이나 집착을 부추기지 말아야 할지니라.
참선수행은 누가 도와주는 언구나 공부가 아니요,
만물을 창조하는 법 곧 만상은 마음으로 드러나나니
순수한 지혜로 더 이상 다른 정견을 찾을 필요가 없나니라.
창조와 소멸을 초월한 무념처에서 얻은 지혜광명은 지식을 초월하나니라
일체 중생은 날 때부터 오감의 언어를 씀으로 말미암아
붓다의 몸도 없고 지혜도 없고 열반도 없는 진여를 지녔건만 깨닫지 못하는 것이니
공부하는 사람은 한결같은 일미행을 행해야 하느니라.
심오한 선정으로 본래 공성의 정견에 들되
깨달음이 빛나는 내면에서 오감의 경험이 녹아내려야 나를 발견하나니라.
온갖 관념들이 녹아 만법의 거대함 속에서 나는 소멸되어야 하기에
최후의 성취로 나아가 불타 경지 구하기 전에는
명징한 거울같이 샛별처럼 반짝일 만큼 나의 존재를 없애야 하나니라.
나를 완성시키는 관념을 초월한 지혜 대지혜를 알게 되는데
그것은 번뇌를 정복한 선정과 지혜의 힘이니라.
세체를 초월한 사람은 불변의 진리를 기쁨으로 만끽하는 것이니 그 도의 힘이다.
궁극적 실체를 깨달으려하는 일체의 사람들이 환영일 뿐인 세상에서
이것저것 분별하기를 좋아하니 보리심을 발하지 못하는 것이니라.
중생을 초월하여 진리의 본질에 머물고 온갖 만물을 마음이 창조하는 법이거늘
어찌 사람이 도인이 될 수 없으며 어찌 도인이 나는 땅이 특별히 있을 것인가.
그리고 만법을 분별하지 않는 마음보다 더 강한 것이 어디 있으랴
참선을 하여 가고 옴이 없는 대광명을 보게 되면
다생억겁의 생각은 헛 그림자일 뿐이요 온갖 지은 죄가 또한 그러하나니
그 때는 사생 육도에 헤매는 그릇된 관념이 모두 사라지느니라.
참선을 하며 도를 닦는 사람 중에 삼라만상의 본질을 바라보는 자가
공과 형상이 하나 되어 평등성이 이루어지게 되면 대아는 저절로 이루어지나 니라.
참선하는 사람은 옛 부터 있었지만
구경의 진리에선 견해조차 없나니 이것이 마음의 본질이니라.
화두참선법은 생각을 초월한 본질을 찾는 법이니
흩어짐 없이 명상에 몰두하여 본질에 눈을 뜨게 데는데
그때라야 부모님은혜 부처님은혜 스승의 은혜를 다 갚게 되느니라.
이 몸이라는 것은 환영과 허깨비요 마침내 사라지는 것이다
이 정신도 영혼도 마음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근원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고. 의심을 지어 가야
마음속 기도실 안에 깨달음의 등불이 있음을 알게 되나니
장대를 세워 깃발을 매단 자는 가고 옴이 없는 대광명을 보게 되나 니라.
참선하면서 내 환신의 집에서 사념을 청소하거나
무수한 미망 세계를 관찰하거나 외눈박이 악마를 섬기듯 한다면
미망의 감옥에 더욱더 갇힌 것이니 아주 큰 백지로 돌아가야 하나니라.
생각이란 마음속에 날뛰는 갈망이며 윤회로 이끄는 안내자이다
또한 사람이 자신에 도취되어 끝없이 되풀이하는 갈망의 껍질이다
껍질을 좋아하는 것은 윤회의 발목을 잡는 것인데
수행하는 명상자는 갈망의 껍질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명상에서 녹여 버려야한다
인간의 자아반성 가운데 이러한 바람직한 특성은 불타의 경지 성취할 때까지
수행자의 갈망을 강력하게 멈추도록 한다.
내성적인 내 성격은 가르침을 배우는 시간과
진리를 따르는 시간 동안 필요 이상으로 나를 도왔다
사람들이 진리 자체의 정직한 시녀가 될수록 윤회 세계를 벗어날 기회를 갖는다.
깨달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수록 끝없이 되풀이되는 윤회 세계를 떠돈다.
거룩한 진리를 배우는 사람들과 명상자들은 너나없이 수행을 홀로하고 있다.
열정과 진리를 배우는 공부는 끊임없어야 되는 것이다.
세속적인 사람이 도인되기가 무척 어렵듯이 도인 또한 세속적인 사람 되기가 무척 어렵다
나라는 사람은 열정이 마음속에 모질게 날뛰었다 이것이 내 장점이자 약점이다.
아무튼 나는 단순히 살기위해서가 아니라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믿는다.
위대한 명상자들은 항상 이런 생각을 하며 산다.
갈망 녹일 수 있는 바른 견해를 갖고 있으며 보리심의 발현도 뛰어난데
다만 이런 은총의 시원한 그늘 속이 없다고 말이다
나는 매일 불타의 경지 성취하기를 맹세했다
에너지 통로와 생명 에너지를 수련할 때면
내적인 소우주에서는 조화로운 일을 만나 놓칠 수 없는 장관이 펼쳐졌다.
색깔과 빛이 중첩되어 붉은색과 흰색의 우주처럼 펼쳐지는 기적이었다.
이 순수한 소원이 만나게 된 황홀한 공간의 일이다
지고한 깨달음이 깊어지는 가운데
이 축복받은 곳 내밀한 비밀 교의로 나 자신 홀로 길을 가는 것이다.
이 편의적인 미망과 바로 작별이다.
지금도 내가 가는 윤회의 길목마다 대광지혜 큰 빛을 밝히고 있다
윤회계란 욕망에 이끌림을 통해 또다시 이 세상에 떨어지고 말
평상적으로 회전하는 바퀴와 같은 것이다
나는 지복의 궁전을 보고 도취했다. 존귀한 공삼매의 우주적 도취였다.
그 즉시 행법을 행하며 깨달음의 길로 내 의식을 인도했다
마치 누군가 해탈대도로 안내하는 것 같았다
혼란과 미망을 믿지 말아야 했다.
각성에 의지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선정의 길로 나아가야 했다.
현명해야 했다 오독의 산적도 많았고 다시 가야 하는 고달픈 수렁도 많았다.
이 수렁은 해탈의 마른 땅을 향하고서야 비로소 안락하게 되었다
해탈의 문은 언제나 닫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존의 실체가 드러나 공성 보좌에 앉아 있기에 나는 더욱 기쁘고 행복하기도 했다
한편 만상은 나의 법신 안에서 변하고 있었다.
삼보에 귀의한 좋은 곳이자 역동적이고 평등적인 깨달음의 대도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사무량의 꽃술을 가진 자비의 광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혜의 연꽃위에 앉아마자 아름다운 모습의 광휘는 사라지고 말았다.
이와 동시에 홍안의 마녀들 사는 곳 오탁의 슬픈 시대를 지나
가슴속에 감로수의 진리를 지니고
험난한 윤회의 바다를 건너 대자비와 대지혜의 배를 띄우고 있었다.
언어유희 초월한 경지에 머무는 삼매의 힘으로 모든 요소를 정복한 결과이었다.
그 순간부터 온갖 기적을 목격하였지만 선정은 내 정신과 삶의 전부를 차지한다.
첫댓글 나를 찾는 법을 읽고 듣고 생각해 봅니다.
속세에 묻혀 사는 사람이 어찌 집착없는 눈으로 사물을 볼 수 있겠습니까만
이치를 듣고 고개를 조아려 봅니다.
고운 글을 감사히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