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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6: 52 서로 다투어 - 요 6: 55 양식과 음료
7. 속죄 신앙 ( 6: 52-59 )
52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59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요 6: 52 서로 다투어 -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
예수께서는 앞 절에서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세상의 생명을 위해 자신의 살을 줄 것이라고 암시하셨는데, 유대인들은 그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다투었다.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하는 곳에는 일치와 단합이 있지만, 그 진리를 이해하지 못할 때에는 언제나 의견 충돌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라고 말하였다.
1]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유대인들이 서로 다툰 원인은, 그들의 의견이 서로 다른 데 있었다.
그들 중 어떤 자들은 예수님의 속죄 교훈을 믿었으나, 어떤 자들은 믿지 않았다.
믿지 않은 자들은 예수님의 살이 세상 사람의 생명이 된다는 말씀(51절 끝)에 걸렸다.
2]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그들은 메시야가 죽어서 속죄하시는 진리를 왜 믿지 못했던가?
그 진리는 이사야 53장에 명백히 예언되지 않았는가?
요 6: 53 인자의 살과 피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표현은 그의 말씀의 진리성을 한번 더 강조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자신을 ‘인자’(人子) 곧 ‘사람의 아들’이라고 표현하신 것은 자신의 인성(人性)을 강조하신 것이다. 그는 인간의 본질, 즉 인간의 영과 육체를 가진 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영이시며 인간과 같은 육체가 없으시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인간의 본질을 가지셨으므로 물질적 육체를 가지고 계신다. 그는 살과 피를 가진 인간의 몸을 가지고 계셨다.
성찬식에서 상징적으로 표현되는 대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이 영생의 길이다. 속죄의 주님을 믿는 믿음이 영생에 이르는 믿음이다. 속죄의 주님이 없이는 아무도 영생을 얻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의 진노와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고 영생을 얻을 수 없다. 참 믿음은 속죄 신앙이다. 속죄 신앙은 영생에 이르는 신앙이다. 속죄의 주님을 믿는 자는 죄 사함과 영생을 얻는다.
1]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세 이르노니
예수께서 자신의 살과 피를 우리를 위하여 주신다는 말씀은 그가 십자가 위에서 살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실 것을 암시한다.
2]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주께서는 마지막 유월절 식탁에서 제자들에게 “[이 떡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 눅 22: 19-20 - 19 또 떡을 가져 감사기도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그것은 구약 제사 제도를 생각하게 한다. 구약의 짐승 제물은 피를 흘려 죽고 불태워졌다. 피는 생명이므로 피 흘림을 통해 죄가 속해진다는 것이 성경이 계시하는 원리이다.
* 레 17: 11 -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예수님의 살과 피는 바로 그의 십자가의 속죄의 고난과 죽음을 가리키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신다는 표현은 매우 강하게 들리지만, 비유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는 것, 곧 속죄 신앙을 가리켰다.
우리가 음식을 먹고 마실 때 그 음식이 우리의 몸에 살이 되고 피가 되듯이, 우리가 우리를 구속(救贖)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는 우리에게 영생이 되신다.
속죄 신앙은 성찬식에서 생생하게 표현된다. 성찬식에서 우리가 먹는 떡과 마시는 포도즙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한다.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을 때 성찬에 참여하는 의미가 있다. 우리의 속죄 신앙은 성찬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떡을 먹고 포도즙을 마실 때 바르게 표현된다.
여기서는, "인자의 살"이란 말에 "인자의 피"란 말을 더하여 말씀하신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었인가?
(1) 그것은 살과 피는 인간성을 모두 가리키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인간성 전체가 우리의 속죄 제물이 되셨으니, 그것은 우리 구원의 완성을 위하신 것이다.
(2) 피를 첨부하여 말씀하신 또 다른 이유는,
피는 특별히 생명을 의미하는데, 그것을 흘리셔서 속죄 제물을 성립시키기 때문이다.
* 창 9: 4 -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 레 17: 11, 14 – 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14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떤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것의 피인즉 그 피를 먹는 모든 자는 끊어지리라.
* 출 12: 7-8 – 7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8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 레 1: 5 -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 히 9: 12, 20 –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20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살을 먹으며 피를 마신다는 말씀은 문자적 의미보다 비유적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생활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는 것은, 곧, 그의 살과 피를 먹으며 마시는 행위와 같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나 자신의 분깃으로 만드는 실제적 행위이다.
신앙은 이론 뿐이 아니다. 이 말씀에 근거한 기독교 성찬 교리에 대하여, 불트만(Bultmann)은 그것이 헬라 신비 종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Theology of the New Testamant I, p.148).
그러나 헬라 신비 종교에서 그 의식에 참여한 자들이 신(神)을 먹는다고 한 것(그들의 신으로 표상된 소위 고기 같은 것을 먹는 것)은, 범신론 사상과 마술적 사상에 근거한 것이다.
따라서 그 먹음에 참여하는 자가 신(神)이 된다는 그릇된 주장도 거기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성찬은 그와 정반대로서 유신론적인 속죄의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기독교의 성찬은, 구약에 있는 유월절 잔치의 후신(後身)이다.
예수님께서 성찬을 제정하실 때 바로 유월절 만찬을 잡수시면서 그것을 성찬으로 변전시키신 것 뿐이다.
* 눅 22: 7-23 – 7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날이 이른지라. 8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9 여짜오되,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0 이르시되,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11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12 그리하면 그가 자리를 마련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준비하라. 하시니 13 그들이 나가 그 하신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준비하니라. 14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15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1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7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기도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1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9 또 떡을 가져 감사기도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21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22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23 그들이 서로 묻되,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하더라.
요 6장에서 신자들이 그의 살을 먹으며 그의 피를 마실 필요성에 대하여, 그가 강조하신 때도 유월절이 가까운 시기였다(4절). 그뿐 아니라, 유월절 잔치의 영적 의미가 성찬의 그것과 같다.
(1) 유월절 잔치를 먹는 것이 이스라엘에게 구속을 준 것처럼, 성찬을 먹는 것이 기독 신자에게 그런 의미를 가진다.
* 출 12: 13 –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2) 유월절의 만찬이 애굽을 떠나 먼 길을 가는 이스라엘에게 양식이 된 것처럼, 성찬은 기독자에게 영적 양식이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사실들을 보면, 성찬과 헬라의 신비 종교와는 전연 관계가 없다. 헬라의 신비 종교들 중 다요니시스(Dionysys)란 신을 예배하는 제사에서는, 거기 참여하는 자들이 그들의 신을 상징하는 소의 고기를 생으로 먹었다.
그들은 그렇게 하므로 그들 자신이 신화(神化)한다고 믿었던 것이다(Machen, The Origin of Paul's Religion, pp. 281-282). 이런 사상은 범신론(汎神論)으로서, 유신론(有神論)인 기독교와 반대된다.
3]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예수의 말씀을 들었으나 그들의 심정에는 믿음이 없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예수의 생명이 함께할 수가 없었다.
요 6: 54 먹고 마시는 자 -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
속죄 신앙을 가진 자는 이미 영생을 소유한 자이다.
신자도 불신자처럼 죽어 장사되지만 신자는 마지막 날 다시 살리심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죽은 자의 몸의 부활을 믿는다. 우리는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날 것을 믿는다.
사도 바울은 증언하기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 했다. (고전 15: 51-52).
1]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헬라 원어에 의하면, 여기 "먹고"란 말(*)이 이때까지 사용된 먹는다는 말(*)과 다르다.
여기 사용된 말은 맛있게 먹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받아 누림에 대한 적합한 술어이다.
이 구절 말씀은, 기독 신자가 이 세상에서부터 영생을 얻고 내세에는 몸의 부활까지 받는, 구원의 복락 전부를 가리킨다.
2]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이 세상에서는 모두 죽는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끝나는 날에 이르러서야 영생에 이르는 부활과 변화를 통하여 다시 살게 된다.
요 6: 55 양식과 음료 -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
이 세상에서 우리가 먹고 마시는 모든 양식과 음료는 우리를 죽지 않게 하지 못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그렇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로 죽지 않고 영생하게 하는 양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참으로 우리의 양식과 음료이시다.
세상의 모든 양식은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건져낼 수 없는 양식이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내어 영생을 주시는 양식이다. 이 세상에 영생의 양식과 음료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1]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여기 "참된"이란 말이 사용된 목적은 이렇다.
만나와 같은 물질적 양식에 비교하여, 예수님의 살과 피(속죄의 은혜)는 참되다는 것을 표시하려는 것이다.
곧, 물질적 양식은 그림자와 같고 불완전하나, 예수님의 속죄의 은혜는 실물이요 영원히 살리는 효과를 가진 것이다.
2]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피는 생명을 의미하며,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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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은 남에게 나눠 줌으로써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을 나눔으로써
채워지는 신비로운 것입니다. 베푸는 만큼 행복의 양도 그만큼 많아 집니다.
오늘 하루도 주위 사람들에게 베푸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