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부터 작은 어머님이 혈압으로 입원을 하셨다. 한 열흘이 넘었는데도 찾아뵙지 못하다가 이미 어제 퇴원을 하셨다면서
바쁜데 궂이 올것 없다 영수증은 팩스로 보내 주마 하셨지만 그럴 수없어 책읽을 시간도 벌겸 어차피 서울에서 모임도 있고
겸사겸사 전철을 이용했다.
작은 어머님은 걱정 햇던 것보다 좋아 보이셨다. 한 시간쯤 여유가 있고, 미리 간다고 전화를 했기에 보름은 지났지만
좋아하는 오곡밥이나 먹여 보낸다고 일부러 오곡밥까지 지어 놓고 계셨다.
이구 저러시는데 안왔으면 ...
오곡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 나 지난 보름에 달전 갔다왔다. 작은 아버님은 시골 동창생들과 친목계가 있어
해마다 보름이면 내려 가신다. 주로 내가 모시고 갔었는데 이번엔 말도 없이 혼자 다녀 오셨나보다.
왜 이번엔 말씀도 안하시고 혼자 가셨어요?
응 너 바쁜것 같고, 그날 또 주일이고 하길래 1부예배 드리고 그냥 혼자 갔다왔다. 네! 하는데
누워 계시던 작은 어머님이 벌떡 일어나 앉으시며 하는말,
얘, 글쎄 그 동네도 뻘거벗은 여자들이 와서 춤을 추더란다. 예? 그게 무슨 말이예요? 난 속으로 누가 정신이 좀 이상해져서
옷을 벗고 춤을 추며 돌아 다녔나 하는 생각을 하며 두분을 번갈아 보니 작은 아버님,
아녀 내가 그냥 당신 놀릴려고 쬐끔 보탠거지 아, 얼어죽을려고 빨개벗어 하신다 무슨 소린데요 하니
이제 그 동네도 다 되었더라. 양반은 무슨...
아! 이제야 머리가 돌아간다. 아! 무슨 기생이라도 불렀어요? 하자 그래, 청년들이 부른 모양이더라. 청년?
(후후 작은 아버님 입장에서 보면 청년, 나보다 무려 3~4년 선배님들인데. 우리 목사님 또래들인데, 그럼 난 어린앤가?)
아무튼 그 나이들은 청년들이 기생들을 불러 왔는데 아주 벗은 것은 아니고 대충 입을건 다 입었는데
그 추운데 와서 노래하고 춤추고 야단 들인데 남자들은 그냥 비잉 둘러서서 박수 하나 칠 줄도 모르고 맹숭맹숭 서서 바라들만 보고
부인네들은 또 회관 안에서 문틈으로 빼꼼 빼꼼 안 보는척 하면서 볼건 다 보고있고 기생들 불쌍해서 기생부른 장본인 청년 하나와
권사님이신 작은 아버님이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원없이 실컨 놀다 오셨단다
그 소리를 들으며 푸 하하 난 그만 이 대목에서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어련들 하실라고 하하하 22C인 지금도 이런 동네이거늘.
멈춰지지 않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서울 갈 시간이 촉박하니 일어서 나와 전철을 탔는데도 나의 옛 추억과 함께 그 광경이
떠올라 웃음이 도무지 수습이 안된다.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라 하면 맛이 덜 난다. 국민학교 5학년 딱 이맘 때 쯤이었다.
정월 대보름이 막 지난 어느날 하교길에 학교 앞에서 친구들이 어디론가 몰려가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물으니 이 동네
청년들이 철렵을 한단다. 그래 나도 얼떨결에 친구들을 따라 산으로 올라 갔다.
학교 옆산, 누구네 집 산소앞에 자리잡은 청년들이 기생을 불러다가 술도 마시고 장구치고 춤도 추며 노는데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춤들을 추면서 정말 신명나게 들 놀고 있었다.
그 당시에도 학교가 있던 그 동네는 민촌이라 불리우기도 했지만 아마 학교가 있어서인지 조금 앞서 가고 있었다.
어느땐 동네 아주머니들도 마당에 모여 장구치고 춤추며 노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으니까. 우리 동네에선 상상조차 할 수없는
풍경들이었다.
그날 그 학교 옆 산에서 우리는 처음 듣는 노래와 역시 처음 보는 신식춤을 배워왔다. 배우는데는 별 어려움 없이
그냥 해보니까 재미있고 몸에 익어 버렸다. 그해 남은 겨울과 봄을 내내 친구들과 그 노래와 춤을 추며 재미있게 보내고
5월 15일 스승의 날이 돌아왔다.
우리는 좀 컸다고 선생님 몰래 방과 후 남아서 스승의 날 잔치 준비를 했다.
새로오신 여 선생님께 배운 솜씨로 예쁜 카네이션을 만들고 집에 있는 멀쩡한 얼기미를 부셔서 얼기미바퀴로 화환도
그럴싸 하게 만들고 의자들을 붙이고 선생님 큰 의자를 가운데 올려 알록 달록 예쁜 책보들을 걷어다가 의자에 씌워
왕자도 만들고, 집에서 각자 편지 봉투로 한봉지씩 쌀도 가져다가 학교앞 가게에서 과자도 사고 제법 잔치준비를 하여
선생님을 학교에서 제일가는 왕으로 모셔 앉혀놓고 우리는 재롱을 떨기 시작했다.
그 동안 갈고 닦고 연마한 노래와 춤솜씨를 맘껏 뽐내면서
선생님 앞에서 발을 비틀고 궁뎅이를 흔들어 가며 랄라라 랄라라 라라라 하면서 트위스트를 추고
울 동네 아이들 여섯명이 나와 둘씩 짝을지어서 반 친구들이 불러 주는 오동추야 달이밝아~~ 노래에 맞추어 돌리고 돌리고
제법 그럴싸 하게 춤을 추며 놀았다
선생님 께서는 왕좌에 앉으셔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시며 미소를 지으셨다 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기도 하시고 즐거워 보이셨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시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니 기특도 하시겠지. 우리는 더욱 신이 나서
랄라라 랄라라 랄라라아~~ 오동추야 달이 밝아를 연신 해대며 한시간 동안 신이나게 놀고나니
선생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일어나셔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 그런 노래와 춤을 어디서 배웠니?
예 저기 동네 청년들이 기생불러다 철렵하는디서유 하하
선생님은 아까의 미소는 언제 거두셨는지 엄한 얼굴로 조용히 타이르셨다.
오늘은 선생님 즐겁게 해줄려고 너희가 연습까지 해서 한 일이니 선생님이 고맙게 생각한다.
그런데 이 시간 이후로 그런 노래나 춤을 추면 안된다
그건 어른들 그것도 별로 점잖치 못한 어른들이나 추는 춤이다 이 다음에 어른이 되고 대학생이 되면 그 때 정식으로 배워서
멋있게 추고 놀아라 하셨다.
어른이 되면 하라고 하셧는데 그 날 이후로 아직 한번도 못해봤네 아직 녹슬지 않았을 것 같은데...
오동추야 달이밝아 오동동이냐~~ 자꾸만 입속에서 맴돌며 비죽비죽 웃음이 터지려하는데 수습할 길이 없다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입술을 깨무는데 서울역이란다. 모임에서 식사를 하는데 입술을 얼마나 깨물어 댔는지
입술이 얼얼한게 쓰라려 고기에는 청량고추가 제일인데 먹기가 좀...하하하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오동동 술타령이 오동동이냐 ~ 아니요 아니요 궂은비 내리는 낙숫물소리,,,후후후
누구 불러다 춤도 한번 춰 볼까~
선생님도 뵙고싶고 가슴 저미도록 그립다. 삐쩍 마르고 쬐끄많다고 깔짬이란 별명도 지어주시고
지휘봉으로 창밖에서 내 갈래머리를 잡아당기며 장난도 치시고 이뻐 해 주셨는데
나 같은 음치한테 피리(리코더)도 가르쳐 주시고 그랬는데...
예수님을 아셨을까?
천국에는 가셨을까?
난 선생님 때문에 난생 처음 무릎꿇어 기도 했었는데
풀밭에 엎드려 선생님 돌아 오시게 해 달라고 그렇게 간절히 기도 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내 입에서 난생 첨으로 하나님을 부르게 하신 분이 선생님이셨네...
진정 천국에 가셨을라나 ~~
오동추야 달이밝아 오동동이냐~ 오동동 오동동, 듣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