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소아응급실’도 의사들 떠나… 주7일 진료→5일로 축소
13년간 매일 24시간 소아환자 진료
의사 7명중 3명 사직-휴가-사의
“의사 부족, 월-화요일 환자 못받아”
“보상 늘리고 소송위험 덜어야” 지적
“전문인력 부재로 인한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소아응급실) 진료 불가능.”
4일 오전 8시 충남 천안시 순천향대 천안병원이 지역 소방당국 등에 메시지 한 통을 발송했다. 이 병원 소아응급실을 지키던 의사 7명 중 3명이 줄줄이 그만두거나 사의를 밝히자 ‘앞으로 월요일, 화요일에는 환자를 받을 수 없다’며 환자 수용 불가, 일명 ‘바이패스(Bypass)’를 통보한 것. 이 병원은 2010년 전국 최초로 소아응급실로 지정된 뒤 반경 100km 내 중증 소아 응급환자 진료를 책임지는 지역의 중추적인 의료기관이었다. 하지만 필수 의료 인력난을 피해 가지 못하면서 지역 의료 공백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반경 100km 응급 공백 우려”
순천향대 천안병원은 4일부터 당분간 주 2일(월·화요일)은 소아응급실에 새 환자를 받지 않는다고 알렸다. 지난달 말 이 병원 소아응급실 소속 의사 총 7명 중 1명이 그만뒀다. 이어 다른 2명이 장기 휴가를 내거나 사의를 밝혔다. 진료 가능 의사는 4명만 남았다. 병원 관계자는 “그나마 환자가 몰리는 주말에 진료 공백을 피하려 휴진일을 평일로 정했다”고 전했다.
순천향대 천안병원은 2010년 9월 서울아산병원과 함께 전국 1호 소아응급실 운영 기관으로 지정됐다. 소아 환자 전용 병상과 수유실 등을 갖추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24시간 상주 진료한다. 이후 13년간 중단 없이 365일 진료를 이어 왔다. 현재 소아응급실은 전국에 10곳이다.
순천향대 천안병원은 소아 진료가 가능한 일반 응급실이 부족한 충청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기 때문에 주 2일 휴진만으로도 지역 내 응급체계에 파장이 있을 거란 우려가 나온다. 천안시에는 야간 진료가 가능한 달빛어린이병원이 2곳 있지만 모두 오후 11시에 문을 닫는다. 중앙응급의료센터 관계자는 “순천향대 천안병원 소아응급실은 그간 서쪽으로는 태안군부터 동쪽으로는 충북 충주시까지 반경 100km 내 중증 소아 응급환자를 책임져 왔다”며 “응급 대응에 차질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 보상 적고 위험 큰 소청과, 잇단 의사 이탈
의료계에선 이번 사태를 ‘상대적 보상은 적은데 소송 위험은 큰’ 소아응급 분야의 고질적인 문제 때문으로 보고 있다. 어린 환자는 성인보다 치료도 복잡하고 투입되는 인력도 많지만 수입이 충분치 않고 의료분쟁에 휘말리면 합의금이나 보상액도 크다. 환자의 여생에 비례해 손해액을 산정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내년부터 소아응급실 전문의 1명당 인건비 지원액을 현행 1억 원에서 1억4400만 원으로 올리려 했지만 관련 예산은 삭감됐다.
최근 응급의료 관련 법령이 엄격해지자 의사들이 부담을 느꼈다는 분석도 나온다. 복지부는 일손이나 병상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응급환자를 수용하지 않으면 의사를 처벌하는 내용의 응급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검토 중이다. 한 소아응급 전문의는 “지난달 20일 금고 이상의 실형을 받은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개정 의료법이 시행되자 ‘거리에 나앉느니 개원하는 게 낫겠다’며 그만두는 동료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결국 소아응급 등 필수 의료 의사의 이탈을 막으려면 정부가 나서서 보상을 높이고 응급 상황에서 법적 책임을 덜어 주는 제도를 만들어야 할 뿐만 아니라 특정 병원에 응급환자가 쏠리지 않게 조율하는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지부 관계자는 “사실관계를 파악해 대책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