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을 보면서 의문이 가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우선 몇가지만 중점적으로 비교하면서 보겠읍니다.
내용이 길지만 대부분 스캔자료라 부득이 하게 많아져서 길어졌읍니다.
이글의 취지는 왕조실록은 편집교열되었다고 말하고자 함 입니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보고있는 실록은 태백산본이며
그것도 원본이 아닌 일제에 의해 간행된 영인본입니다.
실록은 한문을 할줄알지만 한자를 예쁘게 쓸줄모르는
또는 정확히 쓸줄 모르는 서양세력이 교정했거나.
(왜냐하면 한자는 연습이 무지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글자를 외우고 문장을 만들고 쓰는 것은 할수 있어도
예쁘게 쓴다는 것은 정말 별개의 일입니다.
수많은 서체가 나오며
명필이라는 칭호가 있고 문필가들은 멋진글자를 쓰기위해 수없는 연습을 합니다.)
또는 실록 교정일정에 쫒긴 일제에 의해 마지막에 급히 만들어진듯합니다. 또는 둘다...
물론 실록이 교정되었다는 심증과 증거는 많으나
여기서는 단편적인 것만 살펴보았읍니다.
일전에 조선일보2011년 5월 18일자 A2면에 기사화된 초조대장경 기사를 보다가
그 글꼴의 반듯함과 정교함에 무척 놀랐읍니다.
목판에 새겨 찍어낸 그 솜씨에 감탄을 했는데
그것은 지금부터 1000년전인 고려때의 것이었다.
물론 거국적인 행사로 만들어서 최고의 전문가들이 만든 솜씨였을 것입니다.
이와 비교해 보면 500년뒤에 만들어진
조선왕조 실록은 그 글꼴의 정교함이나 아름다움이 훨씬 떨어지고,
왕명에 의해 만들어지는 지극히 엄중한 작업임에도
그 것을 감독 감시하는자들이 제 정신이였는지 어쩌구니가 없기도 爛求�.
실록은 사초에 의거해 왕이 죽고난후
후임에 의해 작업이 시작되는데
국가의 내노라 하는 문장가와 서예가(모두가 서예에 뛰어났을것임)
그리고 수많은 조각가 인쇄작업자 등 최고의 전문가들이 동원되는 작업으로
통상 2-3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예를들어 중종실록 편수관 명단을 살펴보면 입이 벌어집니다.
그것을 감독하는 과정에서 조그마한 오자/ 탈자 글꼴의 어긋남등은 무조건 걸려지게 되어있읍니다..
예를 들면, 아래는 중종실록 편수관 명단입니다 엄청납니다.
중종실록 편수관 명단
가정(嘉靖) 29년 9월 일,
춘추관(春秋館)에서 삼가 교지(敎旨)를 받들어 찬(撰)한 전후관(前後官)을 아울러 기록합니다.
○감사(監事)
추성 협익 병기 정난 위사 공신 대광 보국 숭록 대부(推誠協翼炳幾定難衛社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 좌의정 겸 영경연사(議政府左議政兼領經筵事) 풍성 부원군(豐城府院君) 신(臣) 이기(李芑)
추성 협익 병기 정난 위사 공신 대광 보국 숭록 대부(推誠協翼炳幾定難衛社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 우의정 겸 영경연사(議政府右議政兼領經筵事) 온양 부원군(溫陽府院君) 신 정순붕(鄭順朋)
추성 정난 위사 공신 대광 보국 숭록 대부(推誠定難衛社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 좌의정 겸 영경연사
(議政府左議政兼領經筵事) 청천 부원군(靑川府院君) 신 심연원(沈連源)
○지사(知事)
추성 정난 위사 공신 숭록 대부(推誠定難衛社功臣崇祿大夫) 행 예조 판서 겸 판의금부사
(行禮曹判書兼判義禁府事) 영평군(鈴平君) 신 윤개(尹漑)
숭정 대부(崇政大夫) 행 이조 판서 겸 판의금부사 지경연사(行吏曹判書兼判義禁府事知經筵事) 신 상진(尙震)
추성 정난 위사 공신 숭정 대부(推誠定難衛社功臣崇政大夫) 의정부 좌찬성 겸 지경연성균관사 홍문관 대제학 예문관 대제학(議政府左贊成兼知經筵成均館事弘文大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 영성군(靈城君) 신 신광한(申光漢)
추성 협익 정난 위사 공신 숭정 대부(推誠協翼定難衛社功臣崇政大夫) 의정부 우찬성 겸 지경연사
(議政府右贊成兼知經筵事) 상락군(上洛君) 신 김광준(金光準)
정헌 대부(正憲大夫) 의정부 좌참찬 겸 동지경연사(議政府左參贊兼同知經筵事) 신 임권(任權)
정헌 대부(正憲大夫) 형조 판서 겸 홍문관 제학(刑曹判書兼弘文館提學) 신 정사룡(鄭士龍)
정헌 대부(正憲大夫) 공조 판서(工曹判書) 신 윤사익(尹思翼)
자헌 대부(資憲大夫)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신 김인손(金麟孫)
추성 정난 위사 공신 자헌 대부(推誠定難衛社功臣資憲大夫)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 동원군(東原君) 신 최연(崔演)
자헌 대부(資憲大夫)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 신 안현(安玹)
자헌 대부(資憲大夫) 지중추부사 겸 오위 도총부 도총관(知中樞府事兼五衛都摠府都摠管) 신 송겸(宋㻩)
자헌 대부(資憲大夫) 지중추부사 겸 동지경연성균관사(知中樞府事兼同知經筵成均館事) 신 홍섬(洪暹)
○동지사(同知事)
자헌 대부(資憲大夫) 의정부 우참찬 겸 지경연의금부사 오위 도총부 도총관
(議政府右參贊兼知經筵義禁府事五衛都摠府都摠管) 신 박수량(朴守良)
추성 정난 위사 공신 자헌 대부(推誠定難衛社功臣資憲大夫) 호조 판서 겸 지의금부사 호산군
(戶曹判書兼知義禁府事壺山君) 신 송세형(宋世珩)
가의 대부(嘉義大夫) 형조 참판(刑曹參判) 창양군(昌陽君) 신 조광원(曺光遠)
추성 정난 위사 공신 가의 대부(推誠定難衛社功臣嘉義大夫)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 광평군(光平君)
신 김명윤(金明胤)
가선 대부(嘉善大夫) 호조 참판(戶曹參判) 신 남세건(南世健)
가선 대부(嘉善大夫) 형조 참판 겸 오위 도총부 부총관(嘉善大夫刑曹參判兼五衛都摠副府摠管) 신 강현(姜顯)
가선 대부(嘉善大夫) 예조 참판(禮曹參判) 신 김만균(金萬鈞)
추성 협익 정난 위사 공신 가선 대부(推誠協翼定難衛社功臣嘉善大夫) 공조 참판(工曹參判) 서원군(瑞原君)
신 윤원형(尹元衡)
가선 대부(嘉善大夫) 호조 참판(戶曹參判) 신 신영(申瑛)
가선 대부(嘉善大夫) 예조 참판(禮曹參判) 신 김광철(金光轍)
가선 대부(嘉善大夫)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 신 나세찬(羅世纘)
가선 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 도총부 부총관(同知中樞府事兼五衛都摠府副摠管) 신 정만종(鄭萬鍾)
가선 대부(嘉善大夫) 공조 참판(工曹參判) 신 유진동(柳辰仝)
가선 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 도총부 부총관(同知中樞府事兼五衛都摠府副摠管) 신 박우(朴祐)
가선 대부(嘉善大夫) 공조 참판(工曹參判) 신 권찬(權纘)
추성 정난 위사 공신 가선 대부(推誠定難衛社功臣嘉善大夫) 덕은군(德恩君) 신 송기수(宋麒壽)
가선 대부(嘉善大夫) 이조 참판 겸 동지의금부성균관사(嘉善大夫吏曹參判兼同知義禁府成均館事)
신 조사수(趙士秀)
가선 대부(嘉善大夫) 호조 참판(戶曹參判) 신 정유선(鄭惟善)
가선 대부(嘉善大夫) 이조 참판 겸 동지의금부사(吏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 신 심광언(沈光彦)
가선 대부(嘉善大夫) 호조 참판(戶曹參判) 신 채세영(蔡世英)
가선 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 장(同知中樞府事兼五衛將) 신 이찬(李澯)
가선 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신 임호신(任虎臣)
가선 대부(嘉善大夫) 호조 참판(戶曹參判) 신 주세붕(周世鵬)
가선 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 겸 동지성균관사(同知中樞府事兼同知成均館事) 신 이명(李蓂)
가선 대부(嘉善大夫) 행 첨지중추부사 겸 오위 장(行僉知中樞府事兼五衛將) 신 한두(韓㞳)
○편수관(編修官)
통훈 대부(通訓大夫) 홍문관 직제학 지제교 겸 경연 시강관(弘文館直提學知製敎兼經筵侍講官) 신 심통원(沈通源)
중훈 대부(中訓大夫) 수 홍문관 직제학 지제교 겸 경연 시강관
(守弘文館直提學知製敎兼經筵侍講官) 신 정언각(鄭彦慤)
통훈 대부(通訓大夫) 홍문관 직제학 지제교 겸 경연 시강관(弘文館直提學知製敎兼經筵侍講官) 신 원계검(元繼儉)
통훈 대부(通訓大夫) 홍문관 직제학 지제교 겸 경연 시강관 신 이세장(李世璋)
통훈 대부(通訓大夫) 홍문관 직제학 지제교 겸 경연 시강관 신 경혼(慶渾)
통훈 대부(通訓大夫) 홍문관 직제학 지제교 겸 경연 시강관 승문원 참교
(弘文館直提學知製敎兼經筵侍講官承文院參校) 신 정유길(鄭惟吉)
통훈 대부(通訓大夫) 홍문관 직제학 지제교 겸 경연 시강관 승문원 참교 교서관 교리
(弘文館直提學知製敎兼經筵侍講官承文院參校校書館校理) 신 홍담(洪曇)
통훈 대부(通訓大夫) 통례원 좌통례 지제교(通禮院左通禮知製敎) 신 박충원(朴忠元)
통훈 대부(通訓大夫) 통례원 좌통례(通禮院左通禮) 신 안위(安瑋)
통훈 대부(通訓大夫) 통례원 우통례 겸 교서관 판교(通禮院右通禮兼校書館判校) 신 노한문(盧漢文)
통훈 대부(通訓大夫) 군기시 정 지제교(軍器寺正知製敎) 신 이원손(李元孫)
통훈 대부(通訓大夫) 군기시 정 지제교 신 민기(閔箕)
통훈 대부(通訓大夫) 사재감 정(司宰監正) 신 김충렬(金忠烈)
통훈 대부(通訓大夫) 예빈시 정 지제교(禮賓寺正知製敎) 신 장옥(張玉)
통훈 대부(通訓大夫) 사복시 정(司僕寺正) 신 김반천(金半千)
통훈 대부(通訓大夫) 장악원 정 지제교(掌樂院正知製敎) 신 윤현(尹鉉)
통훈 대부(通訓大夫) 사복시 정 지제교(司僕寺正知製敎) 신 이영현(李英賢)
통훈 대부(通訓大夫) 사도시 정(司䆃寺正) 신 성세장(成世章)
통훈 대부(通訓大夫) 사복시 정 겸 교서관 교리(司僕寺正兼校書館校理) 신 박공량(朴公亮)
통훈 대부(通訓大夫) 선공감 정(繕工監正) 신 김개(金鎧)
통훈 대부(通訓大夫) 제용감 정(濟用監正) 신 김확(金擴)
통훈 대부(通訓大夫) 예빈시 정 지제교 겸 승문원 참교(禮賓寺正知製敎兼承文院參校) 신 남응룡(南應龍)
통훈 대부(通訓大夫) 사재감 정(司宰監正) 신 조광옥(趙光玉)
통훈 대부(通訓大夫) 예빈시 정(禮賓寺正) 신 유강(兪絳)
중직 대부(中直大夫) 수 사복시 정(守司僕寺正) 신 김천우(金天宇)
중직 대부(中直大夫) 수 내자시 정(守內資寺正) 신 백인영(白仁英)
중직 대부(中直大夫) 수 예빈시 정(守禮賓寺正) 신 윤우(尹雨)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홍문관 전한 지제교 겸 경연 시강관(行弘文館典翰知製敎兼經筵侍講官) 신 민전(閔荃)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군기시 부정 겸 승문원 참교(行軍器寺副正兼承文院參校) 신 이택(李澤)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성균관 사성 겸 승문원 참교(行成均館司成兼承文院參校) 신 남응운(南應雲)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사복시 부정(行司僕寺副正) 신 이무강(李無疆)
중직 대부(中直大夫) 사복시 부정 겸 승문원 참교(司僕寺副正兼承文院參校) 신 송찬(宋贊)
봉정 대부(奉正大夫) 수 홍문관 전한 지제교 겸 경연 시강관(守弘文館典翰知製敎兼經筵侍講官) 신 윤옥(尹玉)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의정부 사인(行議政府舍人) 신 윤부(尹釜)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의정부 사인 신 정유(鄭裕)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홍문관 응교 지제교 겸 경연 시강관 승문원 교감
(行弘文館應敎知製敎兼經筵侍講官承文院校勘) 신 우상(禹鏛)
봉렬 대부(奉列大夫) 성균관 사예(成均館司藝) 신 안방경(安方慶)
중훈 대부(中訓大夫) 행 홍문관 부응교 지제교 겸 경연 시강관 승문원 교감 교서관 교리
(行弘文館副應敎知製敎兼經筵侍講承文院校勘校書館校理) 신 김주(金澍)
봉렬 대부(奉列大夫) 홍문관 부응교 지제교 겸 경연 시강관(弘文館副應敎知製敎兼經筵侍講官) 신 이사필(李士弼)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예빈시 첨정 겸 승문원 교감(行禮賓寺僉正兼承文院校勘) 신 강위(姜偉)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장악원 첨정(行掌樂院僉正) 신 홍춘년(洪春年)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내섬시 첨정(行內贍寺僉正) 신 남경춘(南慶春)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종부시 첨정(行宗簿寺僉正) 신 노경린(盧慶麟)
중직 대부(中直大夫) 행 장악원 첨정(行掌樂院僉正) 신 이건(李楗)
봉정 대부(奉正大夫) 행 군기시 첨정 지제교(行軍器寺僉正知製敎) 신 이추(李樞)
○기주관(記注官)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홍문관 교리 지제교 겸 경연 시독관(行弘文館校理知製敎兼經筵侍讀官) 신 유잠(柳潛)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예조 정랑(行禮曹正郞) 신 임내신(任鼐臣)
중훈 대부(中訓大夫) 행 병조 정랑(行兵曹正郞) 신 이영(李瑛)
봉렬 대부(奉列大夫) 행 예조 정랑(行禮曹正郞) 신 고맹영(高孟英)
조산 대부(朝散大夫) 행 이조 정랑(行吏曹正郞) 신 정준(鄭浚)
조산 대부(朝散大夫) 행 예조 정랑(行禮曹正郞) 신 정종영(鄭宗榮)
봉정 대부(奉正大夫) 행 이조 정랑(行吏曹正郞) 신 박영준(朴永俊)
조산 대부(朝散大夫) 행 예조 정랑(行禮曹正郞) 신 박대립(朴大立)
조봉 대부(朝奉大夫) 행 예조 정랑 지제교(行禮曹正郞知製敎) 신 권벽(權擘)
조봉 대부(朝奉大夫) 행 예조 정랑 겸 승문원 교리(行禮曹正郞承文院校理) 신 이감(李戡)
조봉 대부(朝奉大夫) 행 예조 정랑(行禮曹正郞) 신 이수철(李壽鐵)
통덕랑(通德郞) 예조 정랑(禮曹正郞) 신 함헌(咸軒)
통선랑(通善郞) 이조 정랑(吏曹正郞) 신 이탁(李鐸)
봉직랑(奉直郞) 수 공조 정랑(守工曹正郞) 신 강억(姜億)
중훈 대부(中訓大夫) 행 홍문관 부교리 지제교 겸 경연 시독관(行弘文館副校理知製敎兼經筵侍讀官)
신 원호변(元虎變)
조봉 대부(朝奉大夫) 행 홍문관 부교리 지제교 겸 경연 시독관(行弘文館副校理知製敎兼經筵侍讀官)
신 윤춘년(尹春年)
조봉 대부(朝奉大夫) 행 홍문관 부교리 지제교 겸 경연 시독관(行弘文館副校理知製敎兼經筵侍讀官) 신 권용(權容)
○기사관(記事官)
통훈 대부(通訓大夫) 행 예조 좌랑(行禮曹佐郞) 신 정순우(鄭純祐)
봉정 대부(奉正大夫) 행 홍문관 수찬 지제교 겸 경연 검토관(行弘文館修撰知製敎兼經筵檢討官) 신 남궁침(南宮忱)
조봉 대부(朝奉大夫) 행 성균관 전적(行成均館典籍) 신 이억상(李億祥)
통덕랑(通德郞) 행 예조 좌랑(行禮曹佐郞) 신 신여종(申汝悰)
통덕랑(通德郞) 행 성균관 전적(行成均館典籍) 신 이지신(李之信)
통선랑(通善郞) 행 이조 좌랑(行吏曹佐郞) 신 한지원(韓智源)
통선랑(通善郞) 행 이조 좌랑 신 심수경(沈守慶)
통선랑(通善郞) 행 이조 좌랑 지제교(通善郞行吏曹佐郞知製敎) 신 허엽(許曄)
통선랑(通善郞) 행 호조 좌랑(通善郞行戶曹佐郞) 신 황준량(黃俊良)
봉직랑(奉直郞) 행 공조 좌랑(行工曹佐郞) 신 강욱(姜昱)
봉직랑(奉直郞) 행 병조 좌랑(行兵曹佐郞) 신 임여(任呂)
봉직랑(奉直郞) 행 공조 좌랑 신 김적(金適)
승의랑(承議郞) 홍문관 수찬 지제교 겸 경연 검토관(弘文館修撰知製敎兼經筵檢討官) 신 이우민(李友閔)
승의랑(承議郞) 병조 좌랑(兵曹佐郞) 신 이언충(李彦忠)
승의랑(承議郞) 병조 좌랑 신 이중경(李重慶)
승의랑(承議郞)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 신 이광진(李光軫)
승의랑(承議郞) 공조 좌랑(工曹佐郞) 신 고경허(高景虛)
승의랑(承議郞) 성균관 전적 신 기대항(奇大恒)
선교랑(宣敎郞) 수 병조 좌랑(守兵曹佐郞) 신 김규(金虯)
선교랑(宣敎郞) 수 성균관 전적(守成均館典籍) 신 황호(黃祜)
봉정 대부(奉正大夫) 행 예문관 봉교(行藝文館奉敎) 신 최언수(崔彦粹)
조봉 대부(朝奉大夫) 행 예문관 봉교(行藝文館奉敎) 신 민지(閔篪)
조봉 대부(朝奉大夫) 행 예문관 봉교 신 이순효(李純孝)
승훈랑(承訓郞) 행 예문관 봉교(行藝文館奉敎) 신 김익(金瀷)
선교랑(宣敎郞) 행 예문관 봉교(行藝文館奉敎) 신 이문형(李文馨)
선무랑(宣務郞) 행 예문관 봉교(行藝文館奉敎) 신 정사량(鄭思亮)
선교랑(宣敎郞) 행 예문관 봉교(行藝文館奉敎) 신 김질충(金質忠)
무공랑(務功郞) 예문관 봉교(藝文館奉敎) 신 목첨(睦詹)
무공랑(務功郞) 예문관 봉교 신 강사안(姜士安)
무공랑(務功郞) 예문관 봉교 신 이지행(李之行)
무공랑(務功郞) 예문관 봉교 신 강섬(姜暹)
선교랑(宣敎郞) 행 홍문관 저작 겸 경연 설경(行弘文館著作兼經筵說經) 신 유순선(柳順善)
계공랑(啓功郞) 행 예문관 대교(行藝文館待敎) 신 이명(李銘)
통사랑(通仕郞) 예문관 대교(藝文館待敎) 신 김귀영(金貴榮)
봉훈랑(奉訓郞) 행 예문관 검열(行藝文館檢閱) 신 유신(柳信)
승의랑(承議郞) 행 예문관 검열(行藝文館檢閱) 신 이관(李瓘)
승사랑(承仕郞)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 신 이희백(李希伯
한번 나온 판각과 인쇄본은
평생을 문필에 걸어온 이들의 수많은 결재와 검토를 거칠것이고
이를 잘못 수행하면 곤장 100대쯤 맞고 다시 해야할것입니다.
그 밑에 조각 인쇄하는 자들도 최고의 전문집단입니다.
아래는 고려때의 초조대장경인데 사진확대가 되지않아 그대로 붙입니다 .
그래도 그 글꼴의 아름다움과 단정함은 한눈에 알아볼수 있읍니다.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글자간격 글자비율크기가 어긋남이 없읍니다.
제일아래사진이 신문에 난 기사인데 확대해도 별 것이 없어서 그냥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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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왕조실록을 살펴보겠읍니다
편의상 각 왕들의 기록중 2-3개를 발췌하여 보았읍니다.
비교기준을 위해 1월1일 것만 뽑았는데
그곳에는 명/청의 년호 가 같이 있기 때문입니다.
왕조실록을 굳이 목판을 만들고 4부만 찍는 이유는
소실을 방지하고 왜곡을 막고 또한 필사로 4부를 만들때
배껴쓸때 생기는 오/탈자 등의 문제을 막기위해서입니다.
길이 후대의 왕들에게 귀감이 되기위해서이니 얼마나 고귀하고 그 뜻이 엄정합니까?
편수관의 숫자와 그 직위에서 보듯이
실록을 쓸때는 반듯이 형식적인 원칙이 있었을것이고
그것은 계속 이어졌을 것입니다.
다음왕이 다시 편찬을 할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다시 원칙을 반복해서 만들었을리는 없었을것입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것은 글꼴인데
이것은 목판이라 그냥 넘겨볼 수도 있으나 반듯시 그렇지는 않읍니다.
초조대장경에서 보듯이 얼마든지 잘 조각할 수 있읍니다.
대개 글을 잘쓰는 자가
종이에 조각할 글을 써서 윗사람에게 검토를 받고 승인이 나면
그걸 나무판에 뒤짚어 붙여서 조각을 시작하는데
이때 글자를 따라 그대로 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글꼴이 커지거나 작아지거나 치우치거나 비뚤어 질 수가 없읍니다.
이렇게 판각이 끝나면 인쇄를 해서
다시 잘나왔는지 검사를 받고 하는 과정이 반복될것입니다.
그러한 일에 관혀하는 자가 편수관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읍니까?
그래서 오자 /탈자는 나올수도 없고
엉성한 서체와 조잡한 글자는 나올수도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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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로 태조 원년기록입니다.
마킹란 에서 보듯이 원년및에 작은 글씨로 명이라는 말이없이 그낭 홍무25년입니다.
그리고 가을 7월(음력이겠죠?) 즉. 년도/년호/계절/월/일 의 순서입니다.
참고로 글꼴들을 보면 ' 어' 하는 느낌이 듭니다.
좌우 상하가 가지런하지않고 크기도 중구난방입니다.
삐뚤어진 것도 있읍니다.
첫장부터 김이 샙니다.
한자에 익숙하거나 잘 쓰시는 분들은 한눈에 알아 볼 수있읍니다.
왕명/권제===태조 강헌대왕 권제3 (권제 라는 글자가 삐뚤합니다.)
햇수/년호/계절/월/일=== 2년 명 홍무 26년 봄 1월 1일 ( '明'이라는 이름이 추가되었읍니다.)
이페이지도 좌우상하 크기의 일관성이 없읍니다.
한자에 익숙한 솜씨가 아닌것 같읍니다.
국조보감에서는 태조고황제라 말합니다. 고황제는 이성계입니다.
태조 지인계운 응천조통 광훈영명 성문신무 정의광덕 고황제
(太祖 至仁啓運 應天肇統 廣勳永命 聖文神武 正義光德 高皇帝)
고황제는 무조건 주원장으로만 알고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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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3년
태조2년의 형식과 같읍니다.
그러나 유심히 보면 년호 明洪武 글자는 태조 2년것과 완전히 같아보입니다.
위치가 조금어긋난것 뻬면 이렇게 똑같이 쓸 수 있을까요?
이페이지는 한사람이 썼다면
오른쪽에서 9번째줄 하단에 있는 洪武라는 글꼴과는 차이가
너무 많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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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定)종입니다 실록에서는 공정왕(恭靖)이라 표시합니다.
태종 이방원의 형이라는 사람인데 방원에게 쫒겨나다시피해서 기록자들이 무시한 것인지....
이분은 왜 연호가 따라오지 않았을까요?
또 태종이방원의 시호도 공정(恭定)대뢍입니다
고려의 마지막왕 공민왕(시호) 공자와 같은 자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어떠한 연속성이 있는것은 아닌지?
마치 고려의 충**왕 씨리즈 처럼......
그러나 정종의 공식 시호는
정종 의문장무 온인순효 대왕(定宗懿文莊武溫仁順孝大王)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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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태종 원년입니다.
햇수/년호/계절/월/일 ---> 년호앞의 명 에서 대명(대명건문3년)으로 바뀝니다.
첫줄 하단의 황제 다음글자는
皇帝賜諡曰恭定, 本國上諡曰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 廟號太宗。인데
그 뜻은 다음과같읍니다.
-->명나라 황제가 시호(諡號)를 주기를 “공정(恭定)”이라 하고,
본국(本國)에서 시호를 올리기를
“성덕 신공 문무 광효 대왕(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이라 하고,
묘호(廟號)는 “태종(太宗)”이라 하였다.
따라서 太宗恭定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 이 정식으로쓰이는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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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말년입니다.
태종 공정대왕 /권제 시호중 성덕 신공 문무 광효 대왕(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 이 빠져 있읍니다.
18년/대명 영락 16년 봄 1월 ----> 18의 8자가눈에 띄게 어긋나있고
대명영락이라는 글자도 몹시 엉성합니다.
于자가 세군데 나오는데 모양애 다틀립니다,
한사람의 필적이 맞지않읍니다.
(글씨감정을 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보기에도 확연합니다.)
군데군데 어긋난 글자가 많아서 보기 않좋읍니다.
내가 편수관의 감독관이라면 줄줄이 줄빠따감입니다.
여기서 이상한것은 묘호를 왜 피휘를 하지 안않나 하는 점입니다.
피휘라는것은 임금이나 그 가족의 이름은 민간에서 사용못하고 함부로 쓸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태조의 묘호에 들어가는 똑같은 太를 묘호로 쓰는것은 무슨이유일까?
아마도 태조의 묘호는 이와 다르기 때문일까>
高皇帝는 이성계의 묘호이기때문이라면 가능합니다.
그런데 고황제라면 무조건 주원장을 의미하는것으로 알고있으니...
그러나 고황제가 이성계라고 말하는 문장이 전체 고전DB에 딱한군데 나옵니다. 국조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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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영웅 세종입니다.
장헌대황 이라는데..........
정식시호는
세종 장헌 영문예무 인성명효 대왕(世宗 莊憲 英文睿武 仁聖明孝 大王 입니다.
정식시호를 써서 시작해야 함에도 장헌대왕이라고 약식으로 쓰고 있읍니다.
첮줄 장현대왕 /권제 3 에서 卷 자가 몹시 틀어져 있읍니다.
햇수/년호/계절/월/일 =>원년/대명 태종 문황제 영락 17년/봄/일월
특이하게도 년호에 '대명 태종 문황제 영락 17년' 이라고 하는 전체 실록중
유일하게 이기사에만 쓴 방식입니다.
이렇게 형식상의 일관성이 없다는것은
조선에서 예법을 중시하는 관행에서 본다면 큰 논란거리입니다.
전체적인 기록상의 필체는 사람 짜증나게 만드는 서체입니다.
하나 하나 띁어보면
글자에 능숙하지 않은사람이 쓴것이 틀림이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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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10년 첮기사입니다.
세종 장현대왕 /권제 13 에서
世宗 자가 떨어져 있고 憲 자는 기울어져 있으며 卷 자가 몹시 틀어져 있읍니다.
햇수/년호/계절/월/일 =>10년/대명 선덕 3년/봄/일월 에서
十자는너무크고 大자는 균형을 잃은 작은 글씨입니다.
마치 한자배울때 내가 겪었던 그 느낌입니다.
다른 부분을 보면 그냥 구겨서 버리고 싶을 만큼 악필입니다.
(내가 무지해서 서체를 몰라서 하는 맗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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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30년 입니다.
위의 10년기사와 같은 형식입니다.
그러나 이페이지도 개판5분전의 글씨입니디.
내가 편수관이면 모두 파면 감입니다.
아니면 유배 삼천리 감입니다.
심하게 말하면'
내가써도 이정도는 쓰겠다' 발로쓴글씨인지 졸면서 쓴 글씨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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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다음이 문종인데 실록은 첨부하지 않고 대신 흥미로운기사 하나만 올립니다.
문종 2년 임신 (1452, 경태3)
9월 1일(경인)○閏九月, 皇帝遣常膳監左監丞金宥、右丞監金興, 賜祭賜諡曰恭順。
윤9월에 황제가 김유와 김흥을 보내어 사제하고, 시호를 하사하다
윤9월에 황제가 상선감 좌감승(尙膳監左監丞) 김유(金宥)와 우감승(右監丞) 김흥(金興)을
보내어 사제(賜祭)하고, 공순(恭順)이란 시호(諡號)를 하사(下賜)하였다.
김유와 김흥 이란 자는 명나라사람인가요 조선사람인가요?
성만 보면 틀림없는 조선인인데 ...
명나라에도 김씨가 있었나요??/
김유와 김흥을 보낸 황제는 조선의 황제가 틀림없읍니다.
명의 실체가 의문스럽습니다.
문종 시호를 恭順 이라 하는데
고려의 恭愍왕, 정종인 恭靖왕 태종인 恭定왕같이 뭔가 있는거 같읍니다
(공민왕 : 처음 이름은 기(祺), 몽고식 이름은 빠이앤티무르(伯顔帖木兒백안첩목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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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실록
단종에 관한 것입니다.
세조에 쫒겨나서 묘호도 얻지못해 노산군으로 쓰이고 있읍니다.
실록도 아니고 일기로...
햇수/년호/계절/월/일 = 대명 경태4년/봄/일월 --> 햇수는 없이 바로 연호가 나옵니다. (희한한케이스)
이 페이지도 꼴불견입니다.
나중에 단종 공의온문 순정안장 경순돈효 대왕(端宗恭懿溫文純定安莊景順郭孝大王)라는 시호를
추증받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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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
세조10년
정식시호는 세조 혜장 승천 체도 열문 영무 지덕 융공 성신 명예 흠숙 인효 대왕
(世祖惠莊承天體道烈文英武至德隆功聖神明睿欽肅仁孝大王) 인데 여기서도 빼먹고 쓰고 있읍니다.
첫줄 세조 헤장대왕 실록 권제 에서 卷 자가 가장 잘써진 글자처럼보입니다.
물론 서체란 취향이기는 하는 이런 문서에는 해서체를 씀이 답입니다.
10년/대명 천순 8년/봄/일월 ---> 형식에 맞추어 쓴것처럼보입니다.
그러나 八年이란 글자가 유난히 우스꽝스러워 보입니다.
다섯째줄의 하단에 있는 鄭麟趾 의 麟지가 병나보이고 그옆줄의 賜자도 덩달아 이상합니다.
7째줄에 있는 升殿歌舞는 이 페이지에서 별나보이는 단아한 필체입니다.
다른필체로보입니다
하여간 이곳도 답답한 느낌입니다.
세조14년 기사
세조혜장대왕 / 世祖라는 글자는 처음부터 춤을 추고 있읍니다.
14년/대명 성화 4년/봄/일월 ---> 형식에 맞추어 가고있읍니다.
여기서 궁금한것이 세조는 묘호인데 세종이라는 묘호의 世를 같이써도 되는지 궁굼합니다.
54명이나되는 편수관에는 기라성같은 문인 벼슬아치들이포함되있읍니다.
신숙주,한명회,강희맹,최항,양성지,이승소등 고위직과 김종직등 하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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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실록
성종6년
성종 강정 인문 헌무 흠성 공효 대왕(成宗康靖仁文憲武欽聖恭孝大王)가 시호로써 약식으로
성종강정대왕 실록 으로 쓰고있읍니다. 법도에 어긋난 표기입니다.
이곳에서 實錄이란 글자가 유난히 어울리지않는 필체입니다.
6년/대명성화11년/ /일월 ==> 보통은 춘정월이나
여기서는 春을 빼고쓰고있읍니다
대명성화 11년은 글꼴이 멋대로 입니다.
성종실록의 공통된사항입니다
.六年이란 글자가 균형을잃은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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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6년기록에 나오는 강정대왕실록이라는 글꼴과 완연히 다른글씨입니다.
물론 다른사람이 쓸수도 있겠지만.....
25년/대명 홍치7년 /정월 ---> 여기서도 봄춘 자가 누락되었으니다.
전체적인 좌우정열/상하맞춤은 엉망이고 글자도 삐뚤어진 것이 많읍니다. 쓰레기통으로...
어떻게 94명이나되는 편수관들은 한결같이 이러한 서체들 좋아했을까 그당시 유행이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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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중종2년
묘호는 中宗 시호가 공희 휘문소무 흠인성효 대왕( 恭僖 徽文昭武 欽仁誠孝 大王)로
제대로 시작합니다.
2년/대명 정덕2년/정월 ---> 이곳에서도 춘정월이 아니고 정월이네요
전체적인 좌우맞춤 글꼴이 불만스럽습니다.
중종20년 입니다.
편수관의 수가 145명입니다.
조정의 명사들은 모두포함된 엄청난 명단입니다.
이페이지는 정말 가관입니다.
년도가 바뀌면 첮줄부터 쓰면서 묘호시호를 쓰고서 나오는
기존의 형식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읍니다.
갑자기 중간에서 시작합니다.
중종실록만 유독 그러합니다.
어쩨거나 20년/대명 가정 4년/정월 로 부분적인 형식은 맞추었으나 역시 봄춘자가 빠져있읍니다.
그밖에 다른것은 말항 필요를 못느낍니다.
보시면 금방 알 정도로 개판인 페이지 입니다.
초등학생 글자같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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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
명종10년, 편수관77명
명종 헌의소문 광숙경효 대왕(明宗獻毅昭文光肅敬孝大王) 이라고
묘호 와 시호를 붙여서 시작되어야 함에도
명종대왕 이라는 묘호만으로 달랑 시작합니다.
편수관중에는 중종실록에도 참여했던 자들이 상당히 많은데 그냥넘어간것 이상합니다.
실록쓰는 매뉴얼이 없었던걸까?
의전과 형식 예법이 생명같았던 이들이 그걸 놓칠까?
첮줄 명종대왕실록 '卷之第 18'로 시작되는 모양도 수상합니다,
특히 몇번째책인가를 나태나는 권지제 18 에서 그동안 전대왕들에서는
'卷第18'로 쓰이던 형식인데 갑자기 卷之第18 로 바뀝니다.
의미는 같지만 ...이상합니다.
10년/대명 가정34년/정월 ---> 여기서도 봄춘자가 빠져있음니다.
전체적인 서체의 모양이나 자간간격 좌우맞춤 상하정열등 모든것이 엉망입니다.
글 속으로 들어가서 차분히 보면 한심합니다 글쓰기 연습한것 같읍니다.
명종20년...
첮줄의 마지막 卷之第 31의 之자가 유난히 자간 을 벗어나고
같은 페이지에 있는 다른 之자와 비교하면 옆으로 긋는 선이 경사가 심합니다.
대개는 수평을 이루는데 비해서...
이페이지의 글자가 작은것은 일종의 주석을 단 것인데 주석이 이리많으면 수상합니다,
뭔가를 설명해야할 것이 많다는 것인데... 그리고 그 글꼴들이 엉망입니다.
좌측끝 두줄의 글은 주석이아닌데...
졸필의 극치를 보는것 같읍니다.
77명의 편수관들은 폼만잡고 검토도 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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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실록
선조 1년입니다.
편수관 227명이라는 최대의 인원이 동원됩니다.
그건 병화를 겪으면서 기록이 유실되고
제대로 기록을 못해서 채집하기위한 일도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선종 소경 정륜입극 성덕홍렬 지성대의 격천희운 현문의무 성예달효 대왕
.[宣宗昭敬正倫立極盛德洪烈至誠大義格天熙運顯文毅武聖睿達孝大王]이 정식 묘호 및 시호입니다.
묘호는 선조가 아닌 선종입니다. 왜 선조라고 부르는지?...
개인문집에보면 그냥 宣廟로도 표기합니다.
첫줄에나와야할 묘호시호가 페이지 밖에 나와 있읍니다.
전체 실록중 유일하게 선조실록만 그렇읍니다.
그것도 간략하게 宣宗昭敬大王' 실록 권지제 2 ' 애서 권제 가 아닌 권지제입니다
서체가 주요내용과 완전히다른것은 후일에 추가로 찍었다는 것인데 이것이 가능한 일인지 ...
편수관들이 이러한 것을 넘어갔을까요?
통상 찍어야할 것을 종이에 정서해서 판각넘기기전에
상관들에게 검토 감독 교정을 수도없이 많이 받았을 터인데..물론 열람을 엄격히 제한하고
내용이 많은사람들에게 알려지는것이 조심스러워
최종에는 몇몇사람들만 참여했겠지만 수상한 정황입니다
. 아마도 조작세력이 있었다면 ..
다 판각하고나서보니 이부분이 빠져 궁여지책으로 추가로 기워넣은듯합니다
.(대담하든가? 아님 다시작업할 시간이 없었던가...
누군가는 이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서...)
페이지 밖에있는 묘호부분의 서체가 본문보다 훨씬 내공이 있어보입니다.
적어도 이정도는 되어야할 듯한데...
둘째줄 통상해오던 햇수/년호/계절/월 일/ 의 형식이 여기서는 뒤바뀝니다.
년호가 가장 끝으로 내려갑니다. 파격적입니다.
이것도 선조실록이 유일합니다.
원년/정월/신해/삭/대명 융경2년/ --> 원년/대명융경2년/춘/정월/신해삭 이여야하겠지만..
첫장부터 난장판 글씨들입니다..판각의 문제는 아닙니다.
선조41년 마지막해입니다.
선조실록에서 년호는 원년에 딱 한번나오고
그 후로는 했수도 없고 년호도 없고 계절도 없고 그냥 월일만 나옵니다.
어느부분을보고 년도를 짐작이나 할수 있을런지
당시사람들은 60간지에 익숙하여 척보면 알았기 때문일까?
물론 이곳스캔자료에는 없지만 페이지밖 윗부분에 간지가 적혀있읍니다.
그런것은 전체 실록이 다 그렇기 때문에 별난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형식과 절차가 중요하던 그당시
더구나 왕들의 실록을 이렇게 맘대로 쓸수는 없었겠지요...
광해군때 편찬을 한것이니 난리중도 아닙니다.
역시나 글꼴들이 볼만합니다.
천자문 익히고 글 몇번 써보고 이제 습작으로 한 솜씨 같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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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실록
인조원년입니다.
편수관 67명
인조는 실록에서 묘호에 祖자를 붙이는 마지막 왕입니다.
조선 통털어 왕조실록에서 태조 세조 인조
이 세분만 祖자 묘호를 갖고있읍니다.
나머지 선조/영조/정조/순조 는
선종/영종/정종/순종 입니다.
왜 우리는 지금 이 네분을 그렇게 부르고 있는지 모르겠읍니다.
학창시절 배룽때는 조 는 건국하거나 난리를 겪은 왕들한데쓰고
나머지는 종을 쓰며 쫒겨난 왕에는 군을 쓴다고 배웠는데...
영조.정조/순조는 무슨 난리를 겪었는지 모르겠읍니다.
인조조실록총서에서는
인조 헌문열무 명숙순효 대왕(仁祖憲文烈武明肅純孝大王)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다른기록 국조보감에서는 인조 개천조운 정기선덕 헌문열무 명숙순효 대왕
(仁祖開天肇運正紀宣德憲文烈武明肅純孝大王)이러고했읍니다.
무언가 개국시조같은 느낌입니다.
이페이지에서는 통상적으로쓰면' 仁祖憲文烈武明肅純孝大王 실록 권제일 '라고해야되는데
'인조대왕실록'이라고 제목을 달고
옆에다 仁祖憲文烈武明肅純孝大王라고 부언하고 있읍니다,
다른 실록에는 없는 장사지낸곳까지 표기했읍니다. 장릉이라고...
또한 실록 卷第 도아니고 卷之第도 아니고 卷之 가 처음 등장합니다.
그다음 나올 '햇수/년호/계절/월/일' 이 파격적으로 또 바뀝니다.
"년호/년/계절/월일"순서입니다.
원년이라는 표현도 없읍니다.'
천계3년/계해년/춘/삼월/13일 '라고 시작되어 기준으로 삼았던
"원년/대명 천계3년/춘/삼월/'과는 너무다릅니다.
또한 천계가 어느나라의 년호인지 밝히지 않고있읍니다.
더욱이 天啓三年癸亥春三月 이라는 서체는 본문의 다른 글꼴들과 완연히 다른느낌입니다.
인조10년입니다.
여기서도 인조대뢍으로시작합니다.
시호는 안쓰고있읍니다.
둘째줄에서는 다시 새로운 표기방식입니다.
인조원년만 다르게 쓰고 나머지는 모두 이러한 방식입니다.
년호 /햇수/년/월 =='숭정15년/상20년/임오/정월' 인데
기준으로보면 20년/대명숭정15년/임오/춘/정월/이되어야합니다.
왜 갑자기 인조실록에서만 년호를 먼저쓰고있는지 .... 쓰는사람 마음인가???
인조실록은 그래도 서체가 단정하고 바른것 같읍니다.
인조27년 마지막 해입니다.
이때는 명나라가 망해서 그런지 년호가 등장하지 않읍니다.
己丑 다음에 上之二 十七年 이란 글자는 황당합니다.
다른페이지의 쓰임과 다르게 한칸이 빗나가 있읍니다.
이해할수 없는 장면입니다.
우째이런일이... 하기야 이것보다 더한 장면이 있읍니다.
기가막힌..인조실록에와서 비교적..제대로된 서체를 보는것 같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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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실록
효종원년
효종 선문장무 신성현인 대왕(孝宗 宣文章武 神聖顯仁 大王) 이 라는 칭호로 시작되어야 하나
효종대왕으로 시작하고있읍니다.
여기서도 實錄 卷之 입니다.
일련번호매기는 순서인데
매 기록마다 빈번히 바뀌어서야 어느것이 정통인지모르겠읍니다.
둘째줄에서는 다시 기준대로 元年/淸 順治七年 /春正月/乙卯/ 로 시작합니다.
갑자기 온고지신하여 바로잡은것일까
아니면 어쩌다 쓰다보니 우연히 일치 한 것인가?
인조실록을 따르면 順治七年/上之元年/正月/... 일테죠.
효종실록의 서체도 비교적 단정합니다.
현종입니다.
우측부터 1년 /10년/ 15년 1월 1일 기록입니다.
현종조부터 서체가 그전 까지와는
완전히 다르게 방정한 모습으로 되었읍니다
좌우/상하/글간간격/크기 등이 안정되었고 글꼴도 내공이 있어보입니다.
전형적인 해서체입니다.
묘호시호는 현종 순문숙무 경인창효 대왕(顯宗 純文肅武 敬仁彰孝 大王)인데
제대로 쓰이면서 첮줄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국조보감에는 현종 소휴연경 돈덕수성 순문숙무 경인창효 대왕
(顯宗昭休衍慶敦德綏成純文肅武敬仁彰孝大王) 입니다.
훨씬길죠 어느게 맞는것인지?
현종조에는 특이하게 년호가 없읍니다.
또한 즉위기간도 없읍니다.
효종은 년호를 썼는데
갑자기 안쓴것은 무슨 이유인지 사연이 있을 듯합니다.
청이라는 나라가 실제 한 것인지 궁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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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실록
숙종원년.. 시호는 숙종 현의광륜 예성영렬 장문헌무 경명원효 대왕
(肅宗顯義光倫睿聖英烈章文憲武敬明元孝大王)인데 첫줄부터 시원하게 시작하고있읍니다.
다른왕들처럼 숙종대왕이 아니고...그러나 국조보감에서는
숙종 현의광륜 예성영렬 유모영운 홍인준덕 배천합도 계휴독경 정중협극 신의대훈 장문헌무
경명원효 대왕(肅宗顯義光倫睿聖英烈裕謨永運洪仁峻德配天合道啓休篤慶正中恊極神毅大勳章
文憲武敬明元孝大王)이라는 긴 묘호+ 시호를 갖고 있읍니다.
숙종실록에서도 년호를 쓰지않고있읍니다.
즉위기년과 년/월만 기록하고있읍니다.
현종/속종은 청나라를 무시한것일까?
그렇지는 않을텐데 왜 년호를 관행대로 쓰지 않은걸까?
이것도 사연이 있을법한데..
숙종40년
년호없이 서체는 방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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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종실록
경종실록에서 다시 년호가 등장합니다.
좌측은 4년. 우측은 원년기사입니다.
그런데 여기도 독특한 형태입니다.
한번도 없었던 양식인데
인조실록에서 보였던 上之 年의 형식을 취해 햇수/년호/년/월/ 현태를 취합니다.
일간 비슷한 것같지만 햇수를 표시하는 즉위기년에 上之 年의 형식을 취합니다
上之元年/康熙六年/辛丑/正月 上之元年/雍正二年/甲辰/正月 등으로 전혀다른 방식입니다.
국명 淸이 빠진것도 다른면입니다.
서체는 방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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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조선사에서 영정조 시대라 부를만큼 현군이라 칭송받는 임금입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영조가 아닌 영종입니다.
실록에서 엄청난 시호응 갖고있는데 첮줄부터 시원하게 시작합니다.
영종 지행 순덕 영모 의열 장의 홍륜 광인 돈희 체천 건극 성공 신화 대성 광운 개태 기영 요명 순철
건건 곤녕 익문 선무 희경 현효 대왕(英宗至行純德英謨毅烈章義弘倫光仁敦禧體天建極聖功神化
大成廣運開泰基永堯明舜哲乾健坤寧翼文宣武熙敬顯孝大王)
그러나 또다른 기록인 국조보감에서는 이보다 더긴....아래와 같은 시호입니다.
영조 지행순덕 영모의열 장의홍륜 광인돈희 체천건극 성공신화 대성광운 개태기영 요명순철
건건곤녕 배명수통 경력홍휴 중화융도 숙장창훈 정문선무 희경현효 대왕(英祖至行純德英謨毅烈
章義弘倫光仁敦禧體天建極聖功神化大成廣運開泰基永堯明舜哲乾健坤寧配命垂統景曆洪休中和隆道
肅莊彰勳正文宣武熙敬顯孝大王) 엄청깁니다.
둘째줄 양식은 다시 기준으로 돌아간 듯합니다.
元年/淸雍正三年/正月/ 국명이 년호에 추가되었읍니다. 청이 있었던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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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청 건륭9년
50년 청 건륭39년
건륭제가 50년이상 장기집권하고
영조도 50년이상 장기집권했는데 은근히 오버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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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정조원년
실록에서 정조의 원래시호는 正宗文成武烈聖仁莊孝大王이다 과연 그렇게 첮줄은 시작하고있읍니다.
둘쩨줄 형식은 '元年/淸國乾隆四十二年/春/正月' 하여 기준이되는 표기법을 따르며 영조와 같읍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년호에 淸 다음에 國 자를 추가했읍니다.
같은 왕조의 사람등이 썼다고 하기에는 미심쩍읍니다.
간단한 표기법하나가지고 왜이렇게 왕마다 다른지 알수 없읍니다.
또다른 기록 국조보감에서는 놀라운 기록이 있읍니다.
정조 경천명도 홍덕현모 문성무열 성인장효 선황제(正祖敬天明道洪德顯謨文成武烈聖仁莊孝宣皇帝)
실록의 시호에 敬天明道洪德顯謨 가 더 있고 대왕 대신에 선황제가 자리잡았읍니다.
국조보감은 모조품입니까?
아니면 왕조실록이 모조품입니까?
왜 선황제일까?
정말로 정조는 황제였던거고 왕조실록은 짜집기의 교열의 결과물인가?
저는 그렇다고 확신합니다.
정조13년.. 왜 하필13년기록일까? 제가 다른 역사적 기록을 추적하다
13년기록을 보게되었고
그 기록에는 수많은 의문투성이의 기록이 점철되어 있읍니다.
앞으로 이것에 관한것은 별도로 작성할 예정입니다.
1,2 줄의 표기법은 똑 같읍니다.
서체도 정말 가지런합니다.
교열여부를 떠나서 적어도 실록의기록 서체는 이정도는 되야하지 않읍니까?
정조24년.. 제가 깜짝놀란 문제의 기록입니다.
둘째줄의 二十四年/請國嘉慶五年/ /'淸'이아니고 '請'(청할청)입니다.
제가 오버하는겁니까?
그럴수도 있다고 ?
그러나 수십 수백명의 편수관과 그것을 직접쓰고 판각하고 검토하는 사람들이
이것을 잡아내지 못했다는건 말도 되지않읍니다.
이정도의 오타는 넘어갈 만하다고 말 할수 없읍니다.
이 글자 하나가지고 전체를 부정하기에는 너무작은 증거라고 할 수도 있읍니다.
정황으로보면 조작자들은 업무분장을하여 여러곳에서 각기 작업을 시작했을수 있읍니다.
시나리오 총책인자는 대본을 써주던가 아니면 전문가들이 작업할당을 받고
주기적으로 모여 서로 스토리가 상충되는것은 조정하고...
그것을 각기태조부터 세종까지는 누구
영조/정조는 누구 하는식으로 제각각 작업을했을 가능성입니다.
그리고 언제까지 완료기한을 통보하고... 제가 소설을 쓰고 있는것 같읍니다(ㅎㅎㅎ).
그러나 정조13년 기록을 보면 그런 의심이 많이듭니다.
마치 일기숙제를 못 마친 학생이 몰아서 한달치 쓰듯이 "오늘은 일어났다 밥을먹고 나가서 놀았다
참 재미있었다'. 등 반복되는 그런류의 기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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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실록
순조원년 순조로 알고있는데 실록에는 순종이라합니다.
왜 그렇게 부르게 되었는지 궁굼합니다,
구한말 마지막 순종때문에 그런가요?
왜 구한말 순종은 묘호를 피휘하지 않았을까?
순종 연덕 현도 경인 순희 문안 무정 헌경 성효 대왕
(皇祖純宗淵德顯道景仁純禧文安武靖憲敬成孝大王)
그런데 왜 그냥 대왕이니 순조니하고 간단히 부르고 있읍니까?
또다른 기록 국조보감에서는 아래와 같이 엄청난 시호와 함께...숙황제 라 합니다
순조 연덕현도 경인순희 체성응명 흠광석경 계천배극 융원돈휴 의행소륜 희화준렬
대중지정홍훈철모 건시태형 창운홍기 고명박후 강건수정 계통수력 건공유범
문안무정 영경성효 숙황제(純祖淵德顯道景仁純禧體聖凝命欽光錫慶繼天配極隆元敦休懿
行昭倫熙化峻烈大中至正洪勳哲謨乾始泰亨昌運弘基高明博厚剛健粹精啓統垂曆建功裕範
文安武靖英敬成孝肅皇帝) 맞습니다 순조는 肅皇帝입니다.
순조라고 불리운다해서 그냥 제후왕은 아닌것 같읍니다.
과연 이시대는 우리가 뱌운 대로 외척이 발호하고 안동김씨 풍양조씨....
매관 매직을 하고 대리청정이 횡행하고 부조리가 들끓었던 사회 인지 궁굼합니다.
여기서 이 풍양조씨의 정체도 사실은 의문투성이입니다.
다시 둘째줄의 10년/청도광15년/춘정월 에서 표기법은 기본에충실하나
여기서는 정조실록에서 쓰이던 년호에 國 자가 빠져있읍니다.
뭔가 일관성이 없다는 것은 제각각 썼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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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종실록
헌종 원년
시호 및 묘호는 헌종 경문위무 명인철효 대왕(憲宗經文緯武明仁哲孝大王)으로
첫줄은 제대로 쓰고있읍니다.둘째줄도 기준에 맞게 쓰고있읍니다.
그러나 또다른 기록 국조보감에서는...
헌종 체건계극 중정광대 지성광덕 홍운장화 경문위무 명인철효 성황제
(憲宗體健繼極中正光大至聖廣德弘運章化經文緯武明仁哲孝成皇帝) 입니다.
헌종은 成皇帝) 입니다.
시호는 실록에 있는것에다 體健繼極中正光大至聖廣德弘運章化 가 더 추가되어 있읍니다
이것도 어느것이 진실인지 모르겠읍니다.
황제가 대왕을 대신하는 말같기도 하고
그렇다면 조선의 왕들은 모두 대왕이니 모두 황제입니다.
또는 황제란 것이 알고있는것과 다르게 제후를 뜻하는 것인지 ... 그것도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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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실록
철종10년
시호는 철종 희륜 정극 수덕 순성 문현 무성 헌인 영효 대왕
(哲宗熙倫正極粹德純聖文顯武成獻仁英孝大王)으로 첫줄에 잘 표기되있읍니다.
그러나 국조보감에는..
철종 희륜정극 수덕순성 흠명광도 돈원창화 문현무성 헌인영효 장황제
(哲宗熙倫正極粹德純聖欽明光道敦元彰化文顯武成獻仁英孝章皇帝) 라고 다르게 써있읍니다.
이글에서 문제라고 말한것들이 저의 정확치 못한 지식에 의해 오류가 있을수도 있읍니다.
잘못된것은 기꺼이 수정하겠읍니다.
끝
첫댓글 이글은 조선왕조실록 영인본 일부를 올린건데 이정도 왜곡했다면,
원본 전체는 어떨지 짐작이 가네요..
조선왕조실록 조작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강단사학자넘들 뭐하는지 모르겠읍니다.
강단 사학자들이 이병도 제자인 김원룡 제자들..현재 5세까지 새끼를 쳐서
70년간 왜곡된 자료를 가지고 역사를 가르치고 있겠지요
중요사실은 전부 거짓역사라 보면 맞겠지요
또 뉴라이트 학자와 사회 지도층 뉴라이트 회원들도 친일파들..
자한당.바른당 80%는 한국인으로 개명한 왜놈 후손이거나 친일파라고 봅니다
민주당일부와 국민당도 마찬가지겠지요
철수도 친일파 자손
제인 부친도 일제시대 북한에서 공직에 근무했는 모양
지배층 1%중에 80%는 왜놈 자손이거나 친일파라고 봅니다
적폐청산도 시간만 끌다가 꼬리 자르고 끝낼지 모르지요
왕조실록 외에 지리지..기타 중요 역사서는 전부 왜곡 했다고 봅니다
원본공개후 다시필사해야
@pchamp 조센징이라는 말의 유래를 생각해 보세요.
이말이 수십년간 국민들한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생각해 보세요..
http://cafe.daum.net/sisa-1/f8lD/761
대륙에 있었던 우리 조선의 황궁
대동기문 이라는 책에는
숭례문이란 명칭이 섬서성 자오곡 고개 정상에 있다고 나온다.
장안의 정남이고 장안에서 천리나 떨어졌다고 한다. (그림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