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99)
파리에서의 일정은 매우 타이트했다. 영미로서는 처음 온 파리는 정말 새로운 세계였다. 그동안 일본이나 중국은 다녔지만, 유럽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모든 것이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파리 시내의 도시 자체가 역사였다. 건물도 오래 되어서 매우 고풍스러웠다.
공식적인 회의나 미팅이 끝나면 맹 사장은 다른 직원들은 호텔에서 회의 준비나 서울에 있는 본사와의 업무 연락을 하도록 지시하고, 영미만 데리고 시내 관광을 다녔다.
첫 번째 방문한 곳이 루브르 박물관이었다. 영미는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졌다. 세상에 이런 작품들이 한 곳에 소장되어 있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우선 규모에 놀랐다. 가이드를 따라 다니지 않으면 어디가 어딘지 방향 자체를 알 수 없었다.
그 다음 오르세 미술관을 관람했다. 맹 사장도 매우 진지하게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관람하고 있었다. 퐁피두 현대 미술관과 오랑주리 미술관까지 많은 시간을 내서 작품들을 찬잔히 구경하고 감상했다.
맹 사장과 영미는 개선문, 생트 샤펠 성당, 베르사유 궁전, 퐁텐블로 궁전, 생 드니 대성당, 샹티이 성, 콩피에유 성 등을 두루 돌아보았다. 느껴지는 것이 너무 많았다. 바스티유 감옥까지 보았다.
맹 사장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코스 중에 영미는 노트르담 성당을 보고 싶었다. 2019년 4월 14일 화재로 인해 첨탑이 무너진 곳이다. 메트로 4호선 시테역 바로 부근에 있었다. 한참 복구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노르트담은 ‘성모 마리아’라는 뜻이다. 고딕 건축물의 대표로서, 잔 다르크의 명예회복재판이 열렸던 곳이다. 나폴레옹이 대관식을 이곳에서 거행하였다. 세느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관광을 한 다음 에펠탑에 올라가서 식사를 했다.
영미는 호텔로 돌아오면 방에서 그날 그날 보았던 것과 느꼈던 감상을 노트에 적었다.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 같았다.
일주일 내내 맹 사장은 공식적인 비즈니스에 주로 신경을 쓰고, 일정이 빌 때에는 영미를 데리고 파리의 문화, 역사, 미술 등을 보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영미는 행복했다. 회사 비용으로 이런 호강을 하다니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한국의 일은 모두 잊어버리고 있었다. 김 과장은 얼굴도 생각나지 않았다. 아버지 보증 문제도, 전세금 차압문제도 까마득하게 잊혀졌다.
지금 이 시간, 영미는 비즈니스를 타고 온 한국의 상류층 인사로서 파리에서 프랑스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고 있는 것이었다.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하더라도 영미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였고, 파리에서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