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고대 그리스에는 수백개의 도시국가(Polis)가 있었습니다. 그중 대표라 할 수 있는 두 개의 도시국가는 스파르타(Sparta)와 아데네(Athens)로 이들은 같은 Greece에 있으면서도 다른 점이 퍽 많았습니다. 스파르타에서는 최고의 선을 건강과 육체의 힘에 두고 모든 국민을 강한 전사(戰士)가 되도록 교육시키고 훈련 시켰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Greece의 대표적인 강한 나라가 됩니다. 그러나 한 편 그 옆에 있던 아데네에서는 육체보다 정신적인 힘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였습니다. 그래서 국민 모두가 학문을 사랑하고 정신문명을 아름답게 꽃 피웠습니다.
외관상으로는 스파르타가 강한 것 같았지만 그러나 결국은 아데네가 그리스를 주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알렉산더 대왕은 오랫동안 위협의 대상이었던 페르샤군을 주전 333년 격퇴시키며 역사상 가장 광대한 제국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그리스의 문화는 세계사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되는데 이것을 가리켜 “헬레니즘(Hellenism)”이라 합니다. 그래서 주전 27년 로마제국이 군사력을 통해 그리스를 지배하게 되지만 그러나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헬레니즘의 지배를 받으며 황금기를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그 로마제국은 395년에 동서로 분열되고 급기야 476년 패망하고, 헬레니즘 또한 역사의 한 아름다웠던 모습으로만 남게 됩니다. 그런데 세계사에는 그러한 헬레니즘 말고 또 다른 문명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을 가리켜 헤브라이즘(Hebraism)이라 합니다. 지중해 연안의 작은 나라, 이스라엘은 일찍이 하나님을 깨달아 알면서 모든 지식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 외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최고의 선을 부여 하였습니다.
이 나라는 그렇게 훌륭한 군대의 힘도 없었고 찬란한 문화도 없었습니다. 그저 한 가지 “하나님 신앙”에 모든 것을 걸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추구하고 그 말씀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복 받는 길이고 나라가 부강해 지는 길이라 믿으면서 살아갑니다. 이웃에 있는 강대국들은 이러한 나라를 그냥 두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에는 침략과 파괴, 억압이 그치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헤브라이즘의 나라 이스라엘은 그러한 외세 속에서 패망하는듯 하다가는 다시 나타나고, 없어지는듯 하다가는 다시 역사의 앞에 우뚝 서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헤브라이즘”에 뿌리를 둔 “메시아 신앙”을 추구하는 나라들이 오늘 세계의 선두에 서 있음을 보게 됩니다. 지금 미국은 세계 최강국으로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오늘의 미국에게서 옛날 알렉산더 대왕의 마케도니아 제국이 보여지고, 또 찬란했던 로마제국의 모습도 보여집니다. 세계의 역사는 우리에게 한 가지 확실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군사력이 아무리 강대하고 문화의 힘이 아무리 찬란해도 그 모든 것은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은 어떠한 나라입니까? 17세기 “하나님 제일의 신앙”을 추구하던 청교도들에 의해 세워진 나라입니다. 그들은 이 신앙을 기초로 모든 사람이 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함께 자유와 평등, 평화, 기쁨을 누리는 나라가 되게 한다는 일념으로 이 나라를 세웠습니다.
정말 그러한 나라가 되려면 군사력 이전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과학문명을 자랑하기 전에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뜻을 추구하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나라는 점점 하나님의 뜻 보다 인간의 뜻을 쫓고, 하나님을 자랑하기보다 과학문명을 자랑하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 군사력에 의존하여 세계를 마음대로 움직이려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이 나라는 어디에 있는 나라입니까? 멀리 바다 건너에 있는 나라입니까? 아니지요. 우리가 발을 붙이고, 우리의 뼈를 묻을 각오를 하고 있는 나라 아닙니까? 만약 이 나라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면 그 때 우리는 어디에 있을 건가요? 옛날의 군사문화는 일찌감치 쇠퇴하였습니다. 그 찬란했던 헬레니즘도 이젠 옛날이야기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제일로 생각하며 그 신앙으로 살고자 하는 헤브라이즘은 영원합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이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어떠한 것이겠습니까? 이 나라의 건국이념이 되는 청교도 정신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국민들이 먼저 하나님을 경외(두려운 마음으로 섬김)하고 과학문명보다 하나님을 자랑하고 인간의 뜻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하는 나라로 되돌아가도록 기도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신앙인이 되어봅시다. 이 나라가 옛날 강대국의 전철을 밟지 않고 정말 하나님의 축복으로 자국민의 복리증진만을 위하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계평화를 위해, 세계 모든 사람의 행복한 삶을 진정 위해 일 할 수 있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헤브라이즘의 본질은 무엇인가?
서구문명을 형성한 다양한 요소들 중에서도, 헬라철학과 히브리 종교와 로마의 법체계 3가지 요소를 말하곤 한다. 헬라철학적 정신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사유체계 속에서 고전적으로 정립되었고, 히브리적 종교정신은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등 구약예언자들 정신 속에서 원형적으로 정립되었다. 그리고 갈릴리 복음 속에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에 의하여 한 번 더 정화 되어 신약성경의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되었다.
역사적 종교로서 1세기에 출현하여, 4-5세기경에 그 정통교리적 틀을 정립한 그리스도교는 지중해 연안지역을 풍미하던 헬레니즘의 토양 속에 히브리적 정신씨앗이 떨어져 싹이 트고 거목으로 자라난 생명나무라고 은유적으로 말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엄밀하게 말하면 씨앗과 토양은 상호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므로, 헬라철학적 사유체계와 히브리 예언자들의 종교적 영감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그리스도교와 서구문명을 풍요롭게 형성해 왔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갈릴리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과 초대교회 제자들의 복음전파 속에서 무엇이 그들의 중심 혼이며 정열이었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단연코 히브리적 사유 곧 헤브라이즘의 정신이었다고 보아야 옳은 것이다.
헤브라이즘의 정신은 구약성경 특히 예언자들의 정신 속에서 활화산처럼 이어왔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경전 중에서 구약성경을 제거하면 그리스도교의 핵심적 정신을 그 뿌리에서 단절시키는 것과 같고, 강물의 진원지인 호수를 흙으로 메워버리는 것과 같다. 요즘, 도올 김용옥교수가 구약성경 폐기론을 주장하는 의도는 구약의 율법주의나 성경해석에서 경직된 문자주의, 그리고 유대 민족주의 선민사상이 끼치는 피해를 경계하는 과장어법이면 모르되, 그의 주장대로 구약성경을 폐기하자는 것이라면 그런 주장은 헤브라이즘의 인류문명사적 의미와 가치를 소홀히 생각하는 매우 잘못된 주장인 것이다.
설혹 과장어법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과장어법은 적절하지 않고 도올의 ‘구약폐기론’ 주장은 철회되거나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헤브라이즘의 본질은 무엇인가? 특히 헬라 철학적 사유체계와 어떤 점에서 다르며, 헤브라이즘이 인류문명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미치는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가?
첫째, 헬라적 실재관과 헤브라이즘의 실재관이 다르다. 헬라철학적 실재관은 근본적으로 합리주의적 정신을 본질로 한다. 우주와 인간사 모든 것은 어떤 합리적 법칙이나 원리로서 질서 지워져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인간의 정신은 그 합리적 질서를 발견하고, 그 질서에 맞도록 인성을 도야함으로서 폴리스 국가처럼 이상적 인류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헤브라이즘의 실재관은 열려진 실재관이며 창발적으로 만물은 새로움을 향하여 전진한다고 본다. 헤브라이즘은 본래 유목생활과 유랑생활을 경험하는 백성이기 때문에, 역사적 실재란 약속이나 비젼이 실현되어가는 ‘과정적 실재’라고 확신한다.
둘째, 헬라철학 정신과 헤브라이즘은 인간이해에서 큰 차이가 난다. 헬라철학의 영향으로 빚어진 헬레니즘의 인간이해는 스토아철학에서 처럼 인간의 본성을 이성 혹은 로고스라고 본다. 이성은 신적인 것이고, 절대적 진리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규정하고, 실천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이해한다. 이성적인 것과 신적인 것은 본질적으로 같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헤브라이즘의 인간관에 의하면 이성도 역사적․ 문화적 제약성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상대적이고 인간자아의 이기심을 위해 복무하는 하인노릇을 한다고 본다. 헬라철학은 인간비참의 원인이 지성의 무지(ignorance)라고 보지만, 히브리적 인간관은 의지의 오만(pride)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헤브라이즘은 인간의 이성기능을 절대적인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도리어, 인간의 본질은 ‘유한하지만 자기초월적 자유의지’ 라고 본다. 인간의 자기초월능력은 창조적일 수도 있지만 교만과 허세와 자기과장과 무한 탐욕 속에서 악마성을 드러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타락과 죄의 가능성은 계몽되지 못한 이성이나 생물학적 본능욕구에 자리하지 않고, 매우 역설 같지만 인간의 자기초월능력 곧 자기 의지가 행사하는 오만한 자유능력의 남용에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정신의 자기초월능력은 인간이 구상하는 모든 질서․ 제도․ 이념적 가치체계를 뛰어넘고 심판하며 불안해하면서 자기중심적인 이기적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집단에서 이기적 자기중심성은 기하급수적으로 강화되어 오늘날 미국정권력의 집단적 오만에서 보듯이 평화가 깨어지는 재앙의 근원이 된다.
셋째, 헬라철학자들의 폴리스정치와 헤브라이즘의 예언자사상은 바람직한 공동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견해에서 크게 다르다. 헬라인의 이상공동체 폴리스는 본질적으로 귀족정치이며, 인간들은 이념적으론 로고스를 지녔기에 평등하다고 말하지만 현실적으론 차등 있는 것이 당연하고 정의롭다고 까지 생각한다. 그리고, 헬라 법정신은 차등적 폴리스가 혼동과 무질서로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경찰기능 이다. 민주정치는 헬라철학 정신에서 보면 가장 저급한 하등정치체계이다.
그러나, 히브리적 예언자들의 정치사상은 철저히 ‘자유와 평등’이 입 맞추는 공동체의 평화실현에 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평등하고 존엄하며, 왕일지라도 평민의 인격존엄성과 권리를 박탈 할 수 없다고 본다. 헤브라이즘의 우상타파 정신은 종교적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구약의 계약사상과 법정신, 모세 율법정신은 강자의 권익을 보장하고 지켜주는데 있지 않고, 철저하게 ‘사회의 약자들’ 보호하고 그들의 생존권과 인간존엄성이 권력이나 이념체계에 의해서라도 침해당하지 않도록 수호하려는데 있다. 민주정치는 정의를 갈망하는 인간능력 때문에 가능하고, 불의에 빠지는 인간의 경향성 때문에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헤브라이즘은 자본주의적 사회의 자유로운 창의성과 사회주의적 이념이 꿈꾸는 정의로운 평등성을 동시에 살려낸 사회를 꿈꾸는 인류의 영원한 유토피아적 희망의 원천으로서 항구적 열정의 근원이 된다.
첫댓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만남이 에큐메니칼로 만날 수 있느냐? 결코 만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근본주의나 원리주의로 만날 수 있느냐 아닙니다. 문명의 충돌 밖에 없습니다.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은 십자가를 통한 복음주의에서만 가능합니다. 역사는 지금 그 길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순수한 초대교회로 돌아갑시다. 십자가 희생을 통한 순교 신앙만이 역사의 승리를 가져옵니다. 죽음으로 사는 예수님의 길을 가는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