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될 사람은 도유식을 치러야했습니다. 향기 나는 기름을 붓는 예식을 통해, 왕이 되었습니다.
‘한 여자’가 식사하시는 예수님께 기름을 붓습니다.(마26:7) 식사하시는 예수님께 기습적으로 기름을 부은 여자는 이름이 소개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죄를 지은 한 여자’라고 소개하면서, 어떤 죄를 지었는지 소문이 났을 만큼 유명짜한 여자였음을 암시합니다.(눅7:37,39) 아마, ‘막달라 마리아’일 것이라 추측하기도 합니다. 막달라는 로마군이 주둔하는 디베랴의 위성 도시이며, 마리아는 로마의 군인들에게 몸을 맡겼던 여인으로 추측됩니다. 사정이야 있었겠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부정한 여인으로 낙인찍힌 사람입니다. 주홍글씨가 새겨진 사람입니다. 거룩한 제사장이 아니라, 주홍글씨 찍힌 여인이 예수님에게 기름을 붓습니다.
지금, 도유식이 거행되는 공간은 나병환자의 집입니다. 레위기에 의하면, 나병환자는 갇혀 있어야 합니다.(레13:4,5) 갇혀 있어야할 나병환자의 집에 예수께서 오시고, 제자들도 나병환자의 집에 함께 있고, ‘한 여자’가 방문해 향기 나는 기름을 붓습니다. 장차 예수께서 왕이 되실 때, 세상의 모습입니다. 격리되었던 ‘나병환자’의 집이 궁궐이 되고, 음녀로 손가락질 받는 여자가 제사장 노릇을 합니다. 왕이신 예수께서 세우고자 하시는 나라는, 이 땅에 설 수 있을까요?
예수께서 왕이 되어 통치하시는 나라는 전혀 새로운 나라입니다. 당시 유대를 다스리고 있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인정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마26:3~4)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보기에, 예수는 체제 전복을 꾀하는 사람입니다. 이제, 예수에게 왕의 즉위를 전제하는 도유식까지 치러졌으니 다른 길은 없습니다. 혁명입니다.
혁명을 도모하여 왕이 되려는 자는 부득이 사람을 죽여야 합니다. 혁명이 아니더라도, 왕이 바뀔 때에는 피가 흐르기 마련입니다. 옛날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의 왕위를 물려받을 때에도 아버지 다윗과 함께 했던 실세들을 죽여야 했습니다.(왕상1:34,2:13~46) 권력은 흐르는 피 위에 세워집니다. 예수께서 왕이 되어, 나병환자같이 격리되고 죄를 지은 여자같이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신다면, 피를 피할 수 없습니다. 현재의 권력과 실세를 죽여야만 새로운 나라를 세울 수 있습니다. 죽여야 합니다. 그런데.
죽겠다 하십니다. “이 여자가 내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마26:12) 왕이 되기 전 도유식을 행하고, 새로운 왕의 등장을 기대하는 열기가 채워져야 할 출정식 자리에 찬물을 끼얹으십니다.
예수의 혁명은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죽는 것입니다. 반동 세력을 제거하고 새로운 왕을 세우고자 하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반동 세력까지 포함하여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해 자신을 제물 삼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신성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신성입니다. 버림받은 사람을 사랑하고, 버리는 사람까지 사랑하는 것이 신의 성품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햇빛을 비춰주시고, 비를 내려주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입니다.(마5:45)
하나님께서 악인과 선인 모두에게 해를 비춰주시고,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 모두에게 비를 내려주시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기를 기대하시기 때문입니다.(벧후1:4)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지닐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하나님이요, 사람은 사람”이라는 신학적 명제를 참으로 인정한다면,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갖는 건 불가능합니다. 사람으로 오신 예수께서도 하나님의 성품에 닿는 걸 버거워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도하셨지요.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26:39) 왕이 되는 것을, 예수님은 원치 않으신 겁니다. ‘하나님의 성품’으로 통치하는 왕이 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죽여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원치 않는 일을 해야 할 때 일어나는 하나님과의 충돌입니다. 인간의 의지와 하나님의 뜻이 부딪히는 자리에 기도 소리가 울립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리한 칼 같고, 인간의 의지는 거친 돌 같습니다. 예리한 칼과 거친 돌이 충돌하는 것이 기도입이다. 기도는 고통스럽습니다. 인간의 의지는 높은 산이 되고자 하나, 하나님의 뜻은 낮은 골짜기를 메우는 것이라, 기도는 에너지를 많이 소모해야 하는 피곤한 노동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 잠들어 있는 이유입니다.(마26:40)
예수께서는 틈을 내어 꼭 기도하셨습니다.(마14:23)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고, 사람들의 지도자로 우뚝 설 수 있을 때에 무리를 흩으시고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를 통해 인간 본성이 품고 있는 권력의지를 하나님의 뜻으로 변환시키셨습니다. 기도하시는 예수는 조금씩 조금씩 인간의 의지를 하나님의 뜻으로 대체해 가십니다. 이 땅에 세워야할 새로운 나라가 무엇인지,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어떤 혁명을 도모해야하는지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방식을 깨달아 가십니다
예수의 혁명은 지성소가 있는 예루살렘 성전을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나병환자의 집을 지성소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권력의지는 산헤드린을 포섭해 대제사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라 손가락질 받는 한 여자를 제사장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나병환자의 집이 지성소가 되고, 죄인이라 소문난 여자가 제사장이 되는 것, 이것이 낮은 골짜기가 메워지는 것입니다.
나병환자의 집에서 기습적으로 예수의 몸에 향기 나는 기름이 부어졌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십니다. ‘골짜기’를 지나는 이에게 기름을 부으십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주께서...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2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