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의 산
나주 덕룡산(492m)
알려지지 않은 나주의 포근한 덕룡
숲 그늘 상쾌한 반나절 산행지, 불회사 인근 볼거리 많아
나주 덕룡산 주변은 볼거리가 많다. 특히 불교 관련 유적지가 많다. 욹창한 비자나무숲에 깊숙이 묻혀 1,600년 세월을 지켜온 불회사와 다성 초의선사(1786~1866)가 출가한 운흥사, 칠불석상으로 유명한 미륵사가 있다. 또한 고려 초기에 건립된 정자 만호정과 남도의 전형인 반촌 도래마을 등이 산재해 있으니 박물관이 따로 없다. 문화답사를 겸한 반나절 산행지로 적합하다.
덕룡산이 있는 나주시 다도면은 지명에서 알 수 있을 차와 관련이 깊다. 고려 말부터 차를 만들어 임금께 진상할 만큼 차 재배지로 유명했다. 1915년 남평군 다소면이 통합된 곳으로 '다소(茶所)'라는 명칭 자체가 차 생산의 대명사였음을 말한다. '천년 전 전차(錢茶)를 발견. 오직 옛 기록에서만 볼 수 있는 동전 모양의 귀한 돈차를 나주 불회사에서 발견했다'는 1938년 11월18일 동아일보 단신이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지금도 운흥사와 불회사에서는 야생차를 전통기법으로 만들면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깉은 이름을 가진 강진 덕룡산(432m)이 더 유명하지만 바위산이라 땡볕인 한여름에는 산행이 곤혹스럽다. 이에 반해 나주 덕룡산은 완만하고 포근한 육산이다. 햇볕 한 점 없이 그늘산행을 즐길 수 있다. 산줄기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진 산세로, 한글 '오'자 모양을 연상하면 된다. 굳이 앞뒤를 구분한다면 철천리 한치재에서 덕룡재 능선은 정문에 해당되고 불회사 깃대봉 능선은 후문으로 봐도 좋을 듯하다.
국토지리정보원 발행 5만분의 1 지형도에는 376m봉이 덕룡산 정상이라 되어 있으나 산행의 실질적인 정상은 492m봉이다. 높이나 산세로 봐도 덕룡산 정상으로 마땅한 곳이다. 다만 산행의 경우 원점회귀의 어려움이나 교통편, 등산로 미정비 등의 문제로 492m봉 정상을 거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체로 불회사를 기점으로 하는 깃대봉 원점회귀산행을 많이 한다. 불회사는 시작부터 숲이 좋다. 일주문에서 1km 정도 걷다 보면 눈이 지루할 새가 없다. 쭉쭉 뻗은 편백나무와 비자나무 가로수 길은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하다.
일주문에서 불회사 방향으로 500m쯤 가면 가장자리에 중요민속자료 11호로 지정된 돌장승(벅수)이 있다. 오른쪽 머리에 혹이 있는 것이 할아버지이고 왼쪽 수평머리는 할머니다. 사찰이나 마을의 수호신, 이정표로 세우는데 현존하는 석장승 중에는 가장 큰 규모로 추정되며, 1719년에 제작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같은 모양의 석장승이 산 뒤편에 있는 운흥사 입구에도 2기(중요민속자료 12호)가 있다.
석장승에서 100m쯤 더 오르면 왼쪽 비탈에 나무뿌리는 다르지만 성장하면서 서로 엉켜 붙은 연리목을 볼 수 있다. 마치 돌침대 위에서 사랑을 나누는 남녀의 형상을 하고 있다. 연리목은 수령 600년 된 느티나무로 전국 어디서도 보기 힘든 희귀한 모습이다. 연리목을 봐야 나주 덕룡산에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ㅂ물회사는 북쪽으로 깃대봉이 바람을 막아주고 따스한 빛이 깊게 내리쬐는 정남향으로 터를 잡은 사찰이다. 이곳에선 '춘불회 추내장' 이라고 할 정도로 나주의 명소로 손꼽힌다. 봄 경치는 불회사가 으뜸이며, 가을 경치는 내장사가 최고라는 것이다. 그 정도로 비자나무와 동백림이 우거진 상록수림은 특유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사찰은 '백제 침류왕 원년에 마라난타가 진나라로부터 와서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여러 차례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근래에 대대적으로 중창불사했지만 여전히 고찰의 풍모가 보인다.
약 600년 전 건립된 대웅전은 보물 제1310호로 지정될 만큼 조형미가 뛰어나다. 대웅전 안에는 매우 독특하고 보기 드문 지불, 즉 종이불상이 있다. 종이를 여러 겹 바르고 그 위에 금물을 입힌 것이다. 건칠비로자나불은 예술성과 학술성에 있어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 제1545호로 지정되어 있다.
본격적인 산행은 '덕룡산불회사사적비' 옆에서 시작된다. 전체적인 개념도를 표시한 안내판은 없지만 '등산로' 라고 작은 팻말이 있다. 간벌이 잘 되어 있어 길도 넓고 선명하다. 경사가 있어 처음부터 상체를 잔뜩 숙여야 한다. 촘촘한 나무계단을 따라 능선삼거리에 이르는 20분 가량 가쁘게 호흡하면 그 이후로는 완만하게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는 수준이다.
산은 굴참나무가 주종을 이룬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능선 전체에는 조릿대가 발목을 잡았지만 말끔하게 정비되었다. 게획조림으로 경제가치가 높은 숲을 만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경사면이나 주요지점에는 굵은 로프가 이정표처럼 설치되어 길을 유도하고 있다. 능선삼거리부터는 수월하다. 느긋한 걸음으로 45분이면 시야가 뚫리면서 456m봉이다. 이정표가 갈림길 왼편으로 '덕룡산 0.5km', 우측으로 '암정저수지 2.0km'를 가리킨다. 덕룡산 방향은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어 묵은 길로 잡목이 우거져 있다. 암정저수지 방향으로 내려서면서부터 466m 높이의 깃대봉까지는 하늘을 뒤덮은 나무로 인해 경치가 시원한 곳은 없지만 숲속 정원을 거니는 것처럼 편안하다. 이어 분지처럼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여기서 왼쪽으로 내려서면 운흥사 방향으로 하산할 수 있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깃대봉(466m)은 석축 터가 있는 평범한 모습이다. 그러나 정상에서 5분만 내려가면 전망바위가 나타난다. 여기서는 화학산, 용암산, 무등산으로 이어지는 하늘금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이 길은 등산로가 아닙니다' 라고 적힌 팻말과 가시철조망이 진입을 막고 있지만 장뇌삼 밭이 있어 출입을 막은 것이다. 사실 불회사 경내로 통하는 지름길이다.
우성목장 사거리에서 이정표의 화살표 방향이 조금은 이상하게 설치되어 혼돈스럽다. 직진하면 우성목장이고 일주문 쪽으로 가기 위해선 우측으로 꺾어 흘러내리는 능선을 따라야 한다. 잠시 오르는가 싶더니만 내리막 경사각도가 만만치 않다. 바닥에 잔잔한 자갈이 많아 미끄럼에 주의해야 한다. 다행히 굵은 로프가 있어 도움이 된다. 그러나 로프를 고정한 조임 때문에 나무가 목을 졸리고 있는 모양새라 고정로프를 제대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
30분 가량 내리막이 계속되며 묘 1기가 있는 곳에서부터는 완만해진다. 능선따라 20여분이면 818번 지방도로와 만나게 된다. 도로를 따라가면 5분만에 불회사 일주문에 닿는다.
*산행길잡이
○불회사주차장~석장승~연리목~불회사~삼거리~덕룡산 갈림길~깃대봉~전망바위~우성목장 갈림길~임도~일주문 <3시간30분 소요>
○일주문~능선~삼거리~덕룡산 갈림길~깃대봉~전망바위~우성목장 갈림길~임도~일주문 <3시간30분 소요>
○철천리 한치재(팔각정)~병풍바위~덕룡산~운흥사 <3시간320분 소요>
*교통
용산역에서 나주까지 KTX가 1일 4회 운행하며,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는 고속버스가 1일 6회 운행한다. 나주까지 버스로 4시간 소요된다.
나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403번(구180-4) 버스를 타고 불회사 입구에서 하차한다. 50분 걸린다. 문의:나주시외버스터미널 061-333-3226).
*먹거리(지역번호 061)
나주군청 앞에 개운하면서도 구수한 나주곰탕(7,000원) 전문점이 밀집되어 있다. 하얀집, 노인집, 탯자리식당 등이 유명하고 예약없이 단체손님 식사 가능하다. 나주 정신병원 앞에 있는 번영회관(336-0254) 백반(7,000원)은 20여 가지 반찬이 푸짐하게 나온다.
*볼거리
도래마을은 풍산 홍씨의 땅을 밟지 않고는 나주를 지날 수 없다는 부촌으로 전형적인 남도의 반촌. 지금도 4개의 정자와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된 홍기응가옥 등 마을전체가 민속촌이나 다름없다. 그외에도 TV드라마 사극 단골 촬영지인 나주영상테마파크, 배 박물관,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나주향교, 고려 왕건과 장화왕후의 러브스토리가 있는 완사천 등이 볼거리다.
글쓴이:김희순 광주샛별산악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