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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개시일은 발트해 항구의 얼음이 녹는 4월 9일로 결정되었고, 철저한 기밀 유지를 위하여 덴마크와 노르웨이에 주재하는 독일대사들에게조차 이 사실은 통보되지 않았다. 또 이런 종류의 침공작전을 은폐하는 수단으로써 그것을 군사훈련으로 위장한다는 고전적인 수법에 따라 '베제뤼붕:베제르훈련'이라는 작전 명칭이 붙여졌다.
이처럼 비밀유지에 만전을 기했다고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런 대규모의 작전에서 완벽한 비밀유지는 어려운 법이다. 원래 큰 항구가 없는 독일에서 100여척의 각종 선박이 집결하여 9,000여며의 상륙병력, 그리고 그들이 사용할 군수물자를 선적하자면 '킬'이나 빌헬름스하펜 같은 몇 개의 항구가 북새통을 이루지 않을 수 없고, 이런 이상징후는 당연히 연합국 스파이들의 주목을 끌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스웨덴 정부는 4월 2일에 북부 독일의 항구에 병력과 함정이 집결 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했고, 그 며칠안에 모든 연합국과 덴마크, 노르웨이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기가 막히게도 모두가 무사태평이었다.
영국은 이름 그대로 독일해군이 '브레며하펜'에서 북해로 흐르는 베제르강 하구에서 대규모 해상 기동훈련을 벌이려는 것쯤으로 생각했고, 노르웨이는 독일해군이 덴마크를 노리고 있다고 믿었지만 덴마크는 그 희생물이 노르웨이가 될 것이라고 속 편하게 해석해 버렸던 것이다.
드디어 4월 3일.
각종 보급품과 말, 그리고 상륙병력이 사용할 차량을 가득 실은 수송선들이 먼저 출항했다. 뒤이어 4척의 유조선이 그 뒤를 따랐고, 더 속도가 빠른 순양전함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아드미럴 히퍼'같은 군함들은 4월 7일 새벽에 은밀하게 브레머하펜 항구에서 닻을 올렸다.
그 날 저녁 킬항구에서는 블뤼헤를 비롯하여 포킷전함 '뤼초우', 순양함 '엠덴'등이 수 척의 구축함과 소해정을 거느리고 출발했고, 자정 무렵에는 '쾰른'과 '쾨니히스버그'가 수 척의 어뢰정과 보급함을 거느리고 빌헬름스하펜 항구를 떠났다. 그리고 바다 속에서는 28척의 U-보트가 이들 함대를 인도했다.
각기 다른 항로를 통해 노르웨이 해안으로 접근한 이들 독일함대는 4월 9일 새벽 4시 15분을 기하여 일시에 포문을 여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이정도의 전력이라면 '독일해군의 자존심'이라고 하는 전함 '비스마르크'와 '델피츠'가 빠져 있다는 점을 제외 하고는 독일 해군 전체가 이 베제뤼붕 작전을 위해 떨치고 일어선 셈이라고 할 수 있고, 그 동한 격침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여 제각기 분산되어 해상 유격전을 수행하고 있던 이 함정들을 모두 긁어 모아 이처럼 단일작전에 투입한 것만 보더라도 히틀러가 이 작전에 걸고 있는 기대가 얼마나 컸던 가를 충분히 짐작할 만했다.
하지만 전쟁의 운명을 지배하는 신은 짓궂은 장난을 치고 있었다. 독일 해군 전체의 운명을 짊어진 이 독일 함대는 조만간 숙명적인 라이벌 영국해군과 정면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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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프레드 작전과 R4 작전
물론 영국도 독일만큼이나 노르웨이라는 나라가 안고 있는 전술적인 가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근본적으로 중립주위란 "연합국과 주축국 어느 편에도 서지 않겠다."는 뜻이지만 거꾸로 말하면 이것은 "누구와도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뜻이고, 영국은 바로 이점이 못마땅했다.
노르웨이를 비롯한 스칸디나비아반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철(鐵)의 산지이고, 이곳으로부터 수입되는 철광석은 독일의 전쟁수행 능력을 떠받치는 기둥이다.
특히 스웨덴산 철광석을 실은 독일 수송선들은 영국해군의 해상봉쇄망을 피해 수많은 암벽과 암초로 이루어진 노르웨이 영해안의 수로를 이용하고 있었지만, 노르웨이가 중립을 표방하고 있는 이상 그 어떤 나라의 배도 이 항로를 이용하는 것을 막을 근거가 없다.
스칸디나비아 중립국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것은 단순한 상거래 일 뿐이지만, 영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독일의 전쟁 수행을 돕고 있는 짓' 일 수밖에 없고, 영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점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해군장관 윈스턴 처칠은 작년에 소련과 핀란드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을 때도 '핀란드를 원조하러 가는 체' 노르웨이에 상륙하여 이곳의 철광산을 모두 때려 부숴 버리자는 주장을 펼친 바 있지만, 그나마 그 전쟁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 버리는 바람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런 처칠이 다시금 그와 비슷한 주장을 들고 나왔다. 1940년 1월에 영국은 노르웨이와 스웨덴 정부에 대해 '귀국이 독일에 철광석 수송을 위한 수로를 계속 제공한다면 중립을 포기하고 독일편에 서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는 어마어마한 '협박'을 통보했다.
그리로 이런 협박쯤은 보나마나 묵살될 것이 틀림없었으므로, 처칠은 곧 이어 「윌프레드 작전」이라고 이름붙인 모종의 계획에 착수했다.
이 작전의 개요는 지극히 간단해서 노르웨이 영해의 모든 수로에다 기뢰를 쫙 깔아서 독일 선박의 왕래를 차단해 버리자는 것이지만, 사실 그 뒤에는 처칠 자신도 '이치에 어긋나고 호전적'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음흉한 계획이 한가지 더 숨어 있었다.
「R4」작전이라 불리운 그 작전은 내친 김에 6개대대 규모의 지상군을 노르웨이에 상륙시켜 트론헤임과 베르겐, 나르빅항구를 점령하는 한편으로 스타방게르 비행장을 파괴해 버리자는 것이었다.
독일군이 노르웨이를 점령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지만, 따지고 보면 이것도 히틀러의 야심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노르웨이데 대한 전면 침공일 뿐이다.
말하자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다른 주권국가의 중립의지같은 안중에도 없다는 이기적인 발상이었지만, 처칠은 이런 말로 자신의 결정을 합리화했다.
"요컨대 우리는 노르웨이같은 작은 나라들의 자유와 주권을 지켜주기 위해 그들 대신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그들이 말하는 중립정책 따위에 우리가 손발이 묶여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연기에 연기를 거듭하던 윌프레드 작전의 개시일은 공교롭게도 독일의 베제뤼붕 작전보다 하루 빠른 4월 8일로 결정되었고, 기뢰의 부설이 끝나는대로 노르웨이 해안에 병력을 상륙시키는 R4작전을 속행하기로 했다.
☞양쪽 다 놀랐다!
이처럼 독일해군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과 거의 때를 같이하여 1차 대전의 영웅 「윌리엄 위트워스」중장이 지휘하는 영국함대도 스캐퍼플로우 항구를 출발했다.
위트니스 제독이 탑승한 기함 「레나운」과 8척의 구축함, 그리고 수로에다 기뢰를 부설하는 작업을 수행할 또 다른 구축함 4척이 그 뒤를 따랐으며, 바다속에는 16척의 잠수함이 이들 함대의 항로를 샅샅이 초계하고 있었다.
이들이 노르웨이 남단의 스카게라크 해협에 진입하고 있던 4월 7일 아침, 북해 상공을 초계하던 영국 공군기로부터 모종의 '이상한' 징후를 알리는 최초의 보고가 날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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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한 규모의 독일 함대가 북해상을 항진중"
정찰기는 아마도 노르웨이를 향해 크게 우회하고 있는 5개의 독일 함대중 하나를 발견했던 것일테지만, 독일군이 베제뤼붕 작전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위트니스 제독은 독일의 의도를 오판했다.
"독일이 일제 공격으로 우리 해군의 해상 봉쇄망을 뚫어볼 참이로군. 신경쓸 것 없어! 우리는 하던 일이나 하기로 하자!"
보고를 접한 영국 해군본부 역시 위트니스 제독과 똑같은 생각이었으므로, 국내 주둔 해군 사령관 「찰스 포브스」경으로 하여금 이 독일 함대를 찾아내어 격멸할 것을 명령했고, 포브스 제독은 즉시 전함 「로드니」와 다른 전함 1척, 순양전함 1척 순양함 3척 그리고 12척의 구축함으로 구성된 수색함대를 이끌고 이 '겁없는' 독일 군함들을 찾아 나섰다. 그 시각, 기뢰 부설임무를 띤 위트워스 제독의 함대는 노르웨이 최북단의 항구 나르빅에서 64Km정도 떨어진 「베스트」협만에 도착하여 기뢰를 부설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들이 우려하는 단 하나의 걱정거리는 혹시라도 빈약한 노르웨이 해안 경비대가 싸움을 걸어오지나 않을까 하는 것 뿐이었고, 위트워스 제독은 이때까지만 해도 윌프레드 작전이 아무런 차질없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한편으로 포브스 제독이 이끄는 수색 함대는 눈에 불을 켜고 독일 함정을 찾고 있었지만, 짙은 안개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북해 어디에도 독일 함대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노르웨이 해안에 바짝 접근해 있는 독일 함대를 넓은 바다 한가운데서 찾고 있었으니 그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바로 그때 엉뚱한 곳에서 최초의 포성이 터져 나왔다.
영국 구축함 「글로우웜」은 원래 기뢰 부설임무를 띤 위트워스 함대에 속해 있었지만, 항해 중에 수병 한 명이 파도에 휩쓸러 바다에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함대에서 뒤쳐져 그 해역 일대를 수색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몇 척의 독일 구축함이 짙은 안개속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글로우웜호의 함장 「제랄드 루퍼」중령은 이 뜻밖의 사태에 소스라쳤지만, 본대에서 낙오된 단 한 척의 구축함도 세계 최강의 영국해군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로우웜은 즉시 적함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전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뜻밖의 공격을 받은 독일함정들은 혼비백산 흩어졌고, 그로우웜의 첫 포격에 얻어맞은 구축함 한 척이 침몰했다.
독일함정들은 다급히 지원을 요청했고, 그들을 추격하는데 정신이 파린 글로우윔은 그 자리를 빠져 나오는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한시간도 채 못되어 독일해군의 중순양함 「아드미럴 히퍼」호가 달려왔다. 덩치로 말하자면 히퍼는 글로우웜의 10배나 넘는 14,000톤이고, 이싸움이 될 턱이 없었다.
히퍼의 20cm 주포에 얻어맞은 구축함은 순식간에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고, 루퍼 함장은 최후가 임바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윌프레드 작전의 보안유지를 위해서 무선교신을 자제하라는 명령을 깨고 황급히 그 사실을 본국에 타전하는 한편으로, 연막을 피워 올리기 시작했다.
상처입은 군함이 연막을 터뜨려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것은 전투지역을 이탈하여 도망치려고 할 때 뿐이고, 아드미멀 히퍼는 이 속임수에 걸려 들었다.
"놓치면 안된다. 저 놈이 본대에 이 사실을 알리면 큰일이다."
아드미럴 히퍼는 글로우웜을 추격하기 위해 막 연막 속으로 뛰어든 순간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그 영국 구축함이 선수를 똑바로 들이대고 전속력으로 돌진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자살돌격이다! 충돌한다."
미처 회피할 틈도 없이 글로우웜의 날카로운 선수가 히퍼의 오른쪽 옆구리에 격돌했다. 선체 양쪽에 보강된 두께 40cm의 강철 장갑판이 아니었더라면 히퍼는 그대로 침몰했을 것이다. 충돌의 충격으로 이 철판이 떨어져 나가면서 크게 뚫린 구멍을 통해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신보다 10배나 큰 배를 들이받은 글로우웜은 이 최후의 육탄 돌격을 끝으로 침몰해 버렸고, 상처를 입은 히퍼도 비틀거리며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침몰하는 글로우웜으로부터 최후의 교전보고를 받은 영국 해군본부가 발칵 뒤집혔다.
"아드미러 히퍼가 나타났다! 독일 놈들이 몽땅 북해에 모여있다!"
그 동안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하며 골치를 썩이던 독일군함들이 '손바닥만한' 북해 안에 모여서 바글대고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기회도 없다.-지금은 윌프레드 작전이나 R4 작전따위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때가 아닌것이다.!
즉시 위트워스 함대에도 기뢰 부설 작업을 중지하고 독일함대를 수색하는 일에 합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기함 레나운과 3척의 호위 구축함이 글로우웜이 있던 해역으로 달려가 보았지만 그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날씨가 좋고 잔잔한 바다에서라면 아드미럴 히퍼와 같은 큰배가 지나간 항적은 수 시간이상 남게 되지만 북해의 거친 파도는 얼마 전에 이 곳에서 벌어진 치열한 교전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 버렸고, 글로우웜은 해상에 떠다니는 부유물 하나 남기지 않고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 후였던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자 영국해군은 몸이 달아 올랐다.
4월 8일 오후에는 R4 작전을 위해 육군병력을 승선시킨 채로 대기하고 있는 함정들에도 한 시간내에 독일함대를 발견하는 수색임무에 합류하라는 긴급 명령이 떨어졌다. 그 바람에 우스운 꼴이 되어 버린 것은 나르빅에 상륙하기로 되어있던 육군 제24 여단의 보병들이었다.「로사이드」해군기지에서 4척의 순양함에 이미 탑승을 끝내고 대기하고 있던 보병들은 영문도 모른 채 빨리 하선을 종용하는 해군장병들에게 등을 떠밀리다시피 쫓겨났고, 수병들은 이미 배에 실려있던 육군의 전투장비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대충 내던져 주고는 황급히 출항해 버렸다.
순양함 데본셔호는 라이세스터셔 연대의 각종 보병장비를 급히 하역해 주긴 했지만, 즉각 전투에 돌입할 수 있도록 세심한 우선순위에 따라 선적되었던 각종 장비들은 뒤죽박죽이 되어 부두에 내던져졌다.
전 대원들이 부둣가에서 축구를 하고 있던 랭카셔 연대는 좀더 볼쌍사나운 꼴을 당해야 했다.
이 연대의 장병들은 순양함 버위크호가 자신들의 장비일체를 그대로 실은 채로 황급히 출항해 버리는 광경을 짧은 운동복 차림으로 멀거니 바라보고 있어야 했던 것이다.
이런 법석을 떨며 영국해군은 투입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함정을 동원하여 북해 일대를 뒤지기 시작했지만, 그 시각까지도 독일군이 노르웨이를 덮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다만 한가지 의심스러운 보고가 있긴 했다.
스카게라크 해협을 초계중이던 잠수함 오젤 호가 독일 수송선 리오데자네이로 호를 격침시켰는데, 그 격침된 배에서 상당량의 군수 물자와 말, 그리고 육군 병사들의 시체가 떠올랐다는 것이다.
해군 함정에서 말과 육군병사들이 발견되었다면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이들이 어딘가에 상륙을 기도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영국해군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도 단숨에 진상을 눈치챌 수 있는 이 중요한 정보를 소홀히 흘려 버리는 실수를 범했다. 만일 이 정보가 텅빈 북해상에서 독일군은 찾아 헤매고 있던 포브스 제독의 수색함대에 전달되가만 했더라도 그들은 즉시 항로를 바꾸어 노르웨이 해안을 뒤지기 시작했을 것이고, 독일함대는 미처 상륙병력을 내려 놓기도 전에 이들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필연적으로 베제뤼붕 작전 전체를 뒤틀어 놓았을 것이 틀림없지만, 역사에은 가정이 필요없다는 말 그대로 영국해군은 그 소중한 기회를 놓쳐 버렸던 것이다.
☞블뤼헤를 덮친 재앙
연합군과 추축군의 싸움 따위에는 조금도 흥미가 없지만, 그들이 안고 있는 지정학적인 조건으로 인해 그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 노르웨이도 이 무렵에야 자기네 앞 바다에서 모종의 사건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침몰한 독일 수송선으로부터 떠오른 각종 부유물과 해안으로 표류해 온 독일군 생존자들은 충분히 우려할 만한 불길한 전조였던 것이다.
오슬로에서는 그 날 저녁 비상각의가 소집되었지만 이 자리에서 약소 중립국 노르웨이가 취할 수 있는 조치란 한 가지도 없었고, 해안선을 지키고 있던 국방경비대에 경계를 더욱 강화하라는 애매한 지시가 전달되었을 뿐이다.
이런 사정은 스카게라크해협 건너편의 덴마크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덴마크의 외무장관 페터 뭉크 박사는 코펜하겐 주재 독일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귀국이 우리 덴마크를 공격해 올 계획이 있느냐?" 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지만, 이 바보스럽도록 순진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너무도 뻔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 이란 독일 대사의 장담을 들은 덴마크 정부와 시민들은 안심하고 4월 8일 밤의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과연 그 날 밤은 무사히 지나갔다.
이미 육로를 통해 덴마크를 향해 출발한 독일군 부대는 그 이튼날 아침에야 도착하게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베제뤼붕 작전의 총지휘관 오스카 쿠메츠 제독은 오슬로협만 입구에 도달했다. 협만 가운데를 가로마고 있는 "카흘맨"섬에는 노르웨이군의 요새가 있지만, 이 "오스카르즈보그" 요새의 대포는 박물관에나 보내야 할만큼 낡은 고물이라는 정보가 들어와 있었으므로 그것이 침공함대에 어떤 위협을 가해온다는 것은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독은 고개를 들어 그 '박물관'을 다시한번 올려다 보았다.
"이 놈을 먼저 한 방 먹여줄까? 아니면 무시해 버리고 그냥 본토로 갈까?"
돌연 그때 노르웨이 본토쪽에서 한 줄기의 탐조등 불빛이 켜지면서 그가 타고 있는 기함 블뤼헤의 회백색 선체를 흐뿌옇게 드러내었다.
거의 동시에 오스카르즈보그 요새의 거대한 해안포가 섬광을 토해냈다. 300Kg짜리 포탄이 블뤼헤의 좌현을 강타했고, 뒤따라오던 포킷전함 뤼초우도 갑판위에 한방을 얻어 맞았다. 곧이어 노르웨이 본토 해안의 '드로박'포대도 이 포격에 가세했다.
전혀 뜻밖의 선수를 당한 블뤼헤는 첫 발을 얻어맞았을 때 이미 조타 능력을 상실했고, 파괴된 함재기의 연료댕크에서 흘러내린 연료에 불이 붙자 순식간에 미쳐 날뛰는 화염이 넓은 갑판위로 확 번져 나갔다.
뜨거운 불길이 주변의 안개를 증발시켜 버리자 블뤼헤의 모습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고, 그 바람에 오스카르즈보그 요새의 어뢰발사대는 목표물을 정확히 폭착했다. "발사!"
수비대장 '비거 에릭센'대령의 단호한 명령이 떨어지자 2발의 어뢰가 곧은 직선의 항적을 그리며 이미 거대한 불덩어리로 변해 버린 브뤼헤를 향해 달려나갔다. 브뤼헤의 함장 '쿠르트 제펠'대령은 거대한 굉음과 함께 자신의 몸이 공중으로 부웅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노르웨이군의 구식 어뢰가 정확히 블뤼헤의 탄약고를 직격했던 것이다. 승무원들에게 퇴함 명령을 내릴 사이도 없이 블뤼헤는 허연 옆구리를 하늘로 쳐들고 수면위에 길게 누워 버렸고, 선창 아래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육군 상륙병력 대부분은 배에서 빠져 나오지도 못하고 화염속에 휩싸여 버렸다.
뤼초우는 생존자들을 구출할 겨를도 없이 엔진을 전속력으로 후진시켜 도망쳤고, 1,000명 이상의 독일군 병사들이 바다를 완전히 뒤덮은 기름과 불길속에서 타 죽었다. 노르웨이 군에 구출된 쿠메츠 제독이하 1,300여명의 생존자는 포로가 되었디.
뤼초우의 함장 '아우쿠스트 틸레' 대령은 독일해군이 자랑하는 최신형 중순양함 블뤼헤가 변변히 응전조차 못해 보고 그 낡은 노르웨이군의 해안포에 싱겁게 나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악몽이다...... 이것은! 부뤼헤는 아마도 재수없이 해안에 부설된 기뢰를 건드렸을 것이다.."
상처를 입은 뤼초우와 다른 부속함정들은 남쪽으로 20Km나 도망쳐서 다른 상륙지점인 '손스부크텐'으로 향했고, 수도 오슬로에 상륙한다는 계획은 실패로 돌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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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나르빅
블뤼헤는 지독하게 운이 나빴다고 밖에 할 수, 다른 항구로 향했던 독일 함대는 그렇지 않았다. 순양함 쾨니히스버그와 쾰른을 앞세우고 베르겐으로 진입을 시작한 함대는 노르웨이 해군 어뢰정으로부터 검문을 받았지만, 독일군은 미리 명령받은 대로 영어로 대답했다.
"우리는 당신네 정부의 요청에 의해 파견된 영국 해군이다. 의심스러우면 지금 위에다 확인해 보라."
이들이 진짜 영국 배인지, 또 그렇다면 자신은 도대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사전에 지시받은 바가 없음이 분명한 이 노르웨이군 장교가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에 독일군은 막무가내로 배를 항구 안으로 몰아넣어 버렸다. 한참 후에야 이들의 정체를 눈치챈 노르웨이군 해안포대가 사격을 개시하여 쾨니히스버그에 3발의 포탄을 명중시켰지만, 이미 상륙을 시작한 지상부대가 간단하게 그 포대를 점령해 버림에 따라 베르겐은 수월하게 독일군의 수중에 떨어져 버렸다.
노르웨이의 육로와 연안항로의 요충지인 동시에 최고의 항구설비를 갖추고 있던 트론헤임은 더 간단하게 점령되었다.
이미 영국 구축함 글로우윔을 격침시킨 바 있는 아드미럴 히퍼가 포문을 열어 해안포대를 쑥밭으로 만들고 있는 사이에 상륙함들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1,700명의 병력을 상륙시키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크리스티 얀센'의 노르웨이군은 꽤 야무지게 저항해 왔다. 그들의 해안포대는 순양함 '칼스루헤'를 두 번이나 격퇴시켰지만, 오전 10시 무렵 덴마크에서 날아온 독일공군의 폭격기들이 공습을 퍼붓기 시작하자 마침내 그들도 두 손을 들어 버렸다. 덴마크는 이미 두어 시간전에 독일군땅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전투다운 전투가 약간 벌어진 곳은 최북단의 항구 나르빅이다. 이곳에 상륙한 독일 지상군부대의 지휘관 '에두아르드 디틀'소장은 독일군에 병합된 오스트리아군 산악부대 출신으로, 개인적으로 뛰어난 등산가인 동시에 탐험가였던 그는 이전에도 수차례 노르웨이를 방문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4월 9일 아침, 공격개시 시간이 다가오고 있을 때 디틀소장은 구축함 '빌헬름 하이드 캄퍼'호의 갑판에 서서 나르빅 해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북극점에 가까운 이 해역에서 태양은 정오가 지나야 간신히 떠오르고 그나마 짙은 안개속에서 희뿌연 빛을 발할 뿐이므로 주변은 아직도 짙은 어둠속에 쌓여 있었고, 폭설이 계속 쏟아지고 있었다.
"고약한 곳이로군요." 옆에 서 있던 함장 '프리드리히 본테'대령이 혼자 말처럼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름다운 곳이지" 디틀장군이 대답했다. 선도함 하이드 컴퍼를 비롯한 9척의 구축함은 저마다 잘 훈련된 200명의 병사를 탑승시키고 있고, 그 대부분이 오스트리아군 산악부대 출신의 이 병사들은 나르빅항구와 그 12Km북방의 노르웨이군 탄약고에 상륙시키기만 하면 일은 끝난다.
바로 그때 노르웨이 해군이 모습을 나타냈다. 구식 해안 순시함 '아이즈 폴트'와 '노르게'호는 건조된지 40년이 넘는 골통 품 이었지만 최소한 대포를 장비하고 있으므로 그들이 결사적으로 덤벼 들기라도 하면 상당히 성가신 존재가 될 것이 틀림없었다. 본테함장은 시간을 끌기로 했다. 백기를 게양한 모터보트를 그들에게 보내 일단 항복을 권고해 보기로 한 것이다.
노르게호로 건너간 독일 해군장교가 설득을 시도했다.
"당신들의 항전은 별 의미가 없다. 이미 남쪽의 항구 대부분이 우리 군에 접수되었다. 우리는 노르웨이를 점령하자 는게 아니라 단지 항구를 좀 빌려 쓰자는 것 뿐이다."
두 노르웨이 함장이 물러가는 것을 보며 본테함장은 이들이 말귀를 꽤 알아 들을 줄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노르웨이군의 단호한 의지를 과소평가했다. 다음 순간, 총성이 울리며 눈송이 속에서 붉은 신호탄이 터져 올랐다. 물러나는 척하던 두 척의 노르웨이 순시함은 방향을 바꿔 전투태세를 취했다.
"안되겠어. 격침시켜 버리시오." 디틀소장이 내 뱄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프로이센 제국시절부터 해군에 근무해온 신사인 본테대령이 투덜거렸다. '발사!" 디틀소장이 그의 심약함을 꾸짖는 말투로 재차 재촉했다.
구식 수동장치를 조작하여 독일 구축함을 조준하느라고 꾸물거리고 있는 노르웨이 함정을 향해 4발의 어뢰가 파도를 헤치며 달려 나갔다.
그리고 3발의 어뢰가 명중했다. 정통으로 화약고를 얻어맞은 아이즈폴트는 대 폭발을 일으키며 선체 한가운데가 두 동강으로 부러지면서 침몰해 버렸고, 175명의 승무원은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다.
자매함이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 노르게호는 필사적인 저항을 시도하여 이미 부두에 병력을 상륙시키기 시작한 독일 구축함 '폰 아르님'을 향해 포격을 가했지만 포수의 솜씨가 너무 서툴렀다.
제 1탄은 적함에 훨씬 못미쳐 바다 위에 떨어졌고, 연이어 발사된 제 2탄은 아르님의 키를 훌쩍 뛰어 넘어 부둣가에 세워진 어부들의 창고를 날려 버렸다. 아르님도 응사를 시작하여 6발의 어뢰가 발사 되었고, 그 중 2발이 명중했다. 대 폭발을 일으킨 노르웨이 순시함은 전복되어 버렸고, 역시 100여명의 승무원 전원이 전사했다.
눈앞에서 벌어진 두 함정의 최후를 지켜본 노르웨이군 해안수비대는 기가 꺾여 버렸다. 독일군 산악부대는 얌전히 손을 들고 걸어나온 노르웨이군의 해안포대와 경비시설을 신속하게 접수 했고, 디틀소장은 베를린으로 승전보를 타전했다.
"05시 00분, 나르빅 점령성공. 아군피해는 전무"
☞너무 늦어 버린 승리
북해 한가운데서 밤새도록 헛된 수색을 계속하고 있던 영국 수색함대도 그제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포브스제독은 비로소 노르웨이 해안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함대를 둘로 나누어 기함 로드니를 비롯한 주력함정을 남쪽의 스카게라크 해협으로 보내는 한편으로, 다른 몇 척으로 하여금 나르빅으로 항진하고 있는 위트워스제독의 함대를 지원하도록 했다.
그의 이런 조치는 더없이 적절한 것이었지만 시간적으로 너무 늦어 있었다.
그리고 진실을 말한다면 위트워스 제독의 기함 레나운은 이 증원부대가 도착하기 얼마 전에 이미 독일 함대를 발견하고 있었다. 4월 9일 새벽 3시 30분경, 레나운은 로포텐 제도 근해에서 독일군의 순양전함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를 포착했다.
이들은 육지로부터 80Km 정도 떨어진 해안에 접근해 있었으므로, 누가 보더라도 이 배들이 상륙부대를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중임에 틀림없었다. 레나운은 즉시 포문을 열었고, 전방의 선회포탑에 일격을 얻어맞은 그나이제나우는 전투 불능상태가 되어 버렸다. 두 척의 독일군함은 도망치기 시작했고, 레나운이 이들을 추격했지만 마침내 짙은 안개와 눈보라 속에서 놓쳐 버렸다.
그 시간이 바로 독일군의 상륙작전이 개시되던 새벽 4시경이었고, 위트워스제독이 사태의 전말을 깨닫는 그 순간, 노르웨이의 각 항구에는 속속 독일군이 상륙을 시작하고 있었다.
영국군 함대에 내려진 무선 침묵의 명령은 이미 의미가 없어져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 사이의 원활한 정보교환을 방해했고, 특히 본국의 해군본부에서는 북해상에 떠있는 모든 함대에 전투지령을 내릴 수 있지만 함대는 전파를 발신할 수 없었으므로 혼란은 더욱 커져갔다. 이날 하루종일 영국 해군본부가 접수한 보고는 한결같이 단편적일 뿐 아니라 서로 모순되는 것뿐이어서, 정보분석을 담당한 장교들은 진땀을 빼고 있었다.
그런 정보 중에는 나르빅에 진입한 독일 함정이 단 한 척뿐이며 독일군의 상륙병력이 극소수라는 애기도 있었으므로 이것을 진실로 믿어 버린 해군본부는 즉시 워버튼리 함장이 이끄는 5척의 구축함을 그곳으로 급파했다.
그들이 나르빅 입구의 헤스트협만에 도착한 것은 그 날 오후 4시가 다 되어서였고, 최소한 먼 바다에서 살펴본 해안의 풍경은 평온무사할 뿐만 아니라 독일 군함은 한 척도 보이지 않았다.
워버튼 리 함장은 마침내 노르웨이어를 구사할 줄 아는 부관 제프리 대위를 육지로 잠입시켜 정보를 수집해 오도록 했다.
영국 해군장교가 한적한 해안마을을 기웃거리고 다니며 "혹시 독일군이나 그들의 배를 본적이 있습니까?" 라고 묻고 다니는 그 광경은 무척 기이하고 한심해 보였지만, 하여간 그들은 필요한 정보를 얻었다.
그물을 손질하고 있던 늙은 어부가 "오늘 아침에 최소한 10척쯤 되는 독일 배들이 나르빅으로 갔고, 또 그것들은 당신이 타고 온 배보다 훨씬 컸다"고 알려주었던 것이다.
워버튼 리 함장은 잠시 망설였다. "우리 구축함보다 크다면 순양함일까? 또 10척이 넘는다면 우리의 갑절이 아닌가?"
사람들의 패싸움에서나, 바다 위의 해전에서나 무릇 모든 싸움에서는 자신에게 주도권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높은 사기가 승부를 좌우하는 법이고, 대영제국의 해군이 바다 위에 떠있는 다른 나라의 배에 대해서 먼저 겁을 집어먹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리 함장은 결심을 굳혔다. 안개와 눈이 그들의 모습을 감추어 주는데 힘 입어 영국 함대는 곧장 나를빅 항구를 향해 돌입해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곧 해안포대에서 포탄이 날아오기 시작했지만 그것을 쏘고 있는 것이 독일군인지 노르웨이군 인지 알 도리가 없었고, 또 알려고 할 필요도 없었다. '핫스퍼'와 '호스타일'이 포대를 향해 응사를 개시하는 사이에 리함장의 '하이디'호를 선두로 '헌터'와 '해복' 3대의 구축함은 각종 선박들이 들어 차 있는 항구 안쪽으로 뛰어 들었다.
정박해 있는 어선과 각종 민간선박들 사이에서 휘날리고 있는 하켄크로이츠 깃발이 한눈에 확 들어왔다.
"모두 정박해 있다. 사정없이 때려 부숴라!" 하아디 호에서 발사된 포탄이 독일기함 하이드 캄퍼의 브릿지를 정통으로 때렸고, 프리드리히 본테 함장은 이 첫 발의 포격에 영문도 모른 채 전사했다. 뒤이어 '안톤 슈미트'호가 두 토막으로 딱 꺽어지면서 침몰했고, 지상부대를 위한 군수물자를 하역하고 있던 수송선들이 차례차례 불길에 휩싸였다.
승리감에 도취되고, 기관조차 정지한 채로 항구에 정박해 있던 독일함정들이 이런 기습공격에 맞서 싸울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약 30분간 계속된 전투에서 영국 구축함들은 좁은 내항 안을 마음대로 휘젖고 다니며 5척의 독일 구축함을 침몰시키고 수송선들을 남김없이 휩쓸어 버렸지만, 자신들은 거짓말처럼 상처 하나없이 말짱했다.
흡사 함포 사격 연습과도 같은 한바탕의 일방적인 '난동'을 끝낸 영국함대는 곧장 항구를 빠져 나와 퇴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그들의 행운도 다해가고 있었다. 무수한 바위절벽과 암초로 이어진 노르웨이의 피요르드는 구축함같은 작은 함정들에게는 천혜의 엄폐물이고, 적함이 그런 바위 그늘 뒤에 몸을 숨기고 있다면 그 놈과 정면으로 코를 마딱뜨릴 때까지 시원찮은 레이더로는 도저히 그 존재를 눈치 챌 수 없다. 부근의 '헤르앙스'협만으로부터 갑자기 '팔팔한' 독일 구축함 3척이 튀어 나왔다.
워버튼 리 함장의 하이디호는 필사 적으로 도망치러 했지만 항구 안의 전투에서 포탄을 완전히 소진해 버린 것이 실수였다. 그들의 정면에는 또 다른 독일 구축함 '게오르그 틸레'와 '폰 아르님'이 가로막고 있엇다. 틸레의 함포가 하이디의 브릿지를 강타했다. 독일군은 조금 전에 당했던 기습을 철저하게 복수했다.
직격탄을 얻어맞아 조타장치가 파괴된 핫스퍼가 헌터를 들이받았고, 두 척의 배는 한 덩어리로 뒤 엉킨 채로 그야말로 처절하게 두둘겨 맞았다. 헌터는 침몰했고, 대파를 입은 하아디는 기관을 전속으로 가동하여 선체를 해안에 좌초시키는 바람에 간신히 140명 승무원의 목숨을 구했지만 중상을 입고 있던 워버튼 리 함장은 전사하고 말았다.
해복과 호스타일이 상처 입은 핫스퍼를 에워싸고 필사 적으로 도망쳤지만 연료가 바닥난 독일 함대도 더 이상 추격해 오지 않았다.
5척의 적 구축함으로 이미 독일군이 점령한 나르빅항을 급습하여 10척의 구축함과 더 많은 수송선을 때려 부순 반면, 아군은 구축함 2척이 격침되고 한 척이 파손-사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승리를 거두었다고 자평할 만했다.
게다가 북쪽 땅 끝에서 벌어진 이 작은 해전은 영국해군이 마지막으로 '보너스 점수'를 하나 더 건지는 것으로 끝이 났다.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남쪽을 향해 향진하고 있던 이 3척의 영국 구축함 앞에 독일해군 수송선 '라우엔젤스'가 정통으로 걸려 들었던 것이다.
해복과 스타일이 마지막 남아있던 포탄 3발을 발사하자 무서운 광경이 벌어졌다. 북해 전체를 뒤덮을 만큼 요란한 폭음과 함께 시뻘건 불기둥이 하늘 끝까지 치솟아 올랐고, 세찬 충격파가 폭심에서 한참 떨어진 세척의 영국 구축함까지 가랑잎처럼 뒤흔들었다.
독일함을 발견한 순간 거의 조건 반사적으로 포격을 가하긴 했지만, 상상밖의 요란스런 대폭발에 오히려 얼이 빠져있던 영국수병들은 한참만에 그 이유를 깨달았다.
라우엔젤스는 나르빅에 상륙한 독일 지상군이 사용할 각종 탄약과 자신들이 이미 대부분 수장시켜 버린 구축함들이 사용할 각종 포탄을 가득 실은 탄약 수송함이었던 것이다.
☞워스파이트의 마무리
"도망다니는데만 귀신인 줄 알았던 독일놈들이 꽤 용감하게 싸움을 걸어오고 있다."
뒤늦게 자신들의 실수를 깨닫고 분통이 터진 영국 해군본부는 지중해에 있던 전함 '위스파이트'까지 북해로 불러 올렸고, 4월 13일 정오경에는 위스파이트가 그 웅장한 모습을 나르빅해상에 드러내었다. 사령관 위트니스 제독이 레나운으로부터 이 배로 옮겨탐에 따라 위스파이트의 마스트에는 기함(旗艦:Flag ship)임을 알리는 지휘관기가 높이 휘날렸고, 9척의 구축함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노르웨이 해안에서 첫 포성이 터져 나온지도 나흘이 지났고 병력을 상륙시키는데 성공한 독일 함정 대부분이 이미 도망쳐 버린 뒤였지만, 그때까지 그곳에서 얼쩡거리고 있던 독일 군함들은 철퇴를 맞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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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해군이 이처럼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면 그걸 당해 낼수 있는 나라는 별로 없었다. 워스파이트는 380mm 거포를 휘둘러 숨어있던 독일 구축함 '에리히 쾰너'를 단숨에 박살내 버렸고, 날랜 사냥개같은 영국 구축함들도 독일 함정들을 사정없이 몰아부쳤다.
전사한 본테 함장을 대신하여 지휘를 맡고 있던 '에리히 베이'대령은 일단 승무원들의 목숨만이라도 구하고 보자는 현명한 조치를 내렸다.
몇 척되지 않는 독일함들은 나르빅 내항으로 도망쳐 들어가서 그곳에 배를 정박시켰다. 그리고 최소한의 포수와 어뢰 조작 병들만을 남기고
승무원 전원을 퇴함시켜 해안 방어기지의 지상군 병력과 합세했다.
말하자면 수병들은 유군 소총수가 되고 함정들은 해상포대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이지만, 그래도 이들은 꽤 훌륭하게 싸웠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베어 대령이 지휘하는 구축함 폰 아르님은 격렬하게 저항하여 영국 구축함 '에스키모'와 '푼자비'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고, '코사크'호를 좌초시켜 버렸다. 위트니스 제독은 내친 김에 병력을 상류시켜 나르빅 항구를 탈환하는 것을 고려해 보았다.
하지만 지상 전투 경험이 없는 수병들을 시가전에 몰아 넣는다는 것도 무리였고, 무엇보다도 바다밑에 얼마나 많은 독일 잠수함 U-보트가 숨어있는지 걱정되었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텐마크에서 독일 공군기들이 날아올 것이 틀림없었으므로, 그는 마침내 이것이 자신의 손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4월 14일 아침, 영국 함대는 공해상으로 빠져 나가면서 이렇게 타전했다.
"나르빅은 이미 독일군에 의해 점령이 끝났다, 적의 병력은 2,000여명. 즉시 R4 작전을 수행하면 이들을 격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됨."
독일과 영국, 양쪽 모두 해군이 할 일은 끝났다. 이제 바톤은 양국의 육군으로 넘어간 것이다. 독일은 이 베제뤼붕 작전을 통해 그렇게도 원하던 노르웨이 항구를 손에 넣었지만, 그들의 해군은 비싼 대가를 치루었다.
독일 해군이 보유한 전 구축함의 반수 이상이 격침되거나 파손되었고, 각 종 군수물자를 가득 실은 보급선 14척이 북해의 차가운 바닷속에 가라앉아 버린 것이다.
순양전함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는 당분간 작전을 수행할 수 없을 만큼 큰 손상을 입었고, 금쪽처럼 소중한 존재인 블뤼헤와 칼스루헤. 쾨니히스버그 3척의 순양함을 잃었다. 이제 해안에 상륙한 지상군이 해군의 이런 희생에 보답하여 얼마나 활약을 보여주느냐 하는 것만 남은 셈이다.
그들은 이제 겨우 해안에 첫 발을 디딘 것일 뿐, 아직도 결코 만만찮은 상대인 노르웨이 육군이 단호한 항전의 결의를 다지고 있을 뿐 아니라 곧 연합국 지상군 병력이 몰려올 것이다. 독일군은 그들 모두를 성공적으로 격퇴시키고 노르웨이를 완전히 장악해야만 비로소 베제뤼붕 작전의 결실을 거두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