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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재경고연회 원문보기 글쓴이: 육백
백두산 天池(중국령) 旅行記
□ 일 시 : 2006. 6. 11(일) ~ 6. 14(수)
□ 여행일정 : 3박 4일
- 6. 11(일) : 인천→장춘→연길
o 장춘 : 위황궁, 장춘영화제작소
o 연길 : 비행기 이동후 숙박
- 6. 12(월) : 연길→백두산
o 백두산천지, 장백폭포, 온천, 숙박
- 6. 13(화) : 백두산→용정→도문→연길
o 해란강, 일송정, 대성중학교, 두만강관광, 숙박
- 6. 14(수) : 연길→장춘→인천
□ 경 비 : 670천원(여행상품 549천원, 비자 21천원, 공통경비 100천원)
□ 백두산개념도
□ 여행후기
6. 11(일)
초등학교 소풍가는 기분이다. 전날부터 부산하게 수선을 떨며 여행가방을 챙겼지만 못내 빠진 게 있는지 재확인해 보고....., 아침에 혹시나 늦게 일어 날까봐 알람을 설정했지만 알람이 울기 전에 눈이 먼저 뜨입니다. 집사람도 일어나 아침식사도 챙겨주고 수서역까지 차도 태워 주고, 여행 잘 갔다 오라며 인사도 해주네요. 처음에는 부인들도 동행하기로 했는데 아이들 기말고사시험 때문에 며칠 빠지기 어려워 남자들만 출발하게 되었다. 미안한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음번 여행을 기약하며 홀로 출발합니다.
간간히 내리는 비를 뒤로 한 채 9시 30분에 장춘으로 출발하는 비행기가 인천공항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비행기 이륙 후에도 차창을 바라보니 온통 하얀 구름으로 아래가 보이질 않아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을까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2시간정도 걸려 장춘역에 도착하니 중국과 우리나라와 한시간 시차가 생깁니다.
중국의 첫인상은 드넓은 평야로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감회를 가져본다. 특히 우리가 방문할 연길은 조선족이 모여 사는 지역으로 옛날 선조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도망쳐 나오고, 숨을 곳이 없어서 이곳에서 생활을 일구어 온 곳이다. 요즈음 연변 조선족 인구가 줄어 간다고 한다. 중국 땅에서 살기 위해서는 조선족 아이들을 한족(중국)학교에 보내어 일찍이 중국어를 배우도록 하여 조선자치족이 차쯤 중국화 되어 간다고 한다. 학부모들은 중국어를 가르치는 한족 학교로 아이들을 보내고, 학원을 보내는 등 교육열이 높기는 우리와 다를 바 없다.
첫 방문지는 장춘영화 제작소다. 지금도 영화제작을 위해 사용 중인 곳이어서 출입이 통제된 지역이 대부분이다. 방문한 곳은 6,70년대에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영화 촬영장이다. 이곳은 입구에 들어갈 때 입장료를 내었는데 상당한 금액으로서 입장료가 아까울정도로 볼거리는 없다.
두번째 방문지는 장춘시 북동쪽 끝자락의 광복로에 위치하고 있는 위황궁이다. 위황궁은 위만주국의 허수아비 황제 푸이의 궁전으로 그는 1932년부터 1945년까지 이곳에서 머물렀었다. 위황궁은 크게 정치활동을 하는 외정과 일상생활이 이루어진 내정 두 부분으로 나눠져 있으며, 현재는 위만황궁 진열관과 위만제궁 진열관으로 나누어 놓았다. 외정은 푸의가 정무를 처리하던 장소로 푸이의 사무실이 있던 근민루와 회원루, 가락전이 속하며, 내정은 푸의와 그의 가족들이 생활하던 구역으로 그 중 집희루는 푸의와 그의 황후 완롱의 처소였으며, 동덕전은 푸의의 첩이었던 복귀인의 처소였지만 현재 제궁의 일부분은 길림성 박물관이 되어 역사적 사료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장춘에서 여행도중 가끔 내리는 소나기성 비로 내일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을는지 걱정이 앞선다. 비행기 고장방지와 승객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중국에서 비행기 여행은 다소간의 지연은 감수해야 한다고 한다. 다행이 연길까지 이동하기 위해서 우리 일행들은 20분만 기다리고 비행기를 탑승할 수 있었다.
6. 12(월)
중국이 한국보다 한시간 빨라서인 지 아침 일찍 눈이 뜨인다. 서둘러 백두산으로 이동하기위해 짐을 챙겨 나섰다. 우리가 묵은 숙소는 연길역 앞이어서 새벽부터 많은 주민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특히 아침기차를 이용하여 도착한 사람들은 대부분 택시를 이용하여 한꺼번에 빠져 나갔다. 한바탕소란이 있은 후 역 앞에 가득 찼던 택시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 버렸다. 서성이는 여행객들에게 역앞 식당에서는 아침 식사를 하라고 손님들을 찾는다.
이곳은 중국과 한국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다. 연길에서 조선족인구가 약85만인데 연길인구의 70%를 차지한다고 한다. 가끔씩 귀에 익은 한국말이 들려온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가끔 우리나라의 공사장이나 식당에서 일하는 소위 “연변족 사람”들이다. 요즈음 들어 빚을 내어 한국방문을 하지만 돈을 모아오는 사람들이 줄어든다고 한다.
아침 식사는 간이 뷔페이다. 조선족 음식이어서인지 짭짤한 음식이 입에 맞다. 이제부터 백두산까지 약 290㎞를 이동할 것이다.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 5시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길에서 출발할 때 날씨는 흐리지만 백두산 날씨는 변화가 심하여 천지를 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출발해본다.
점심 식사중에 우리와 같은 코스로 여행하던 분들의 차사고로 우리차를 소형차와 바꾸어 승차하는 바람에 약30분정도 지체되어 오후 2시쯤 되어 백두산 아래에 도착했다. 아침에 흐렸던 날씨는 이곳은 맑았다. 백두산에 올라가 천지를 직접보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백두산 천지의 날씨를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백두산 북파는 천지와 장백폭포 가는 삼거리에서 짚차로 기상관측소까지 올라 5분이면 천지까지 갈수 있다. 우리 일행은 백두산 입구에서 모두 내려서 24인승 승합차를 이용하여 짚차를 이용할 수 있는 곳까지 이동했다. 서서히 하늘이 열리고 수목의 생성 한계선인 1,700m대 원시림의 울창한 미송나무 지대를 지나니 시야속에 백두산 정상이 보이 시작한다.
이곳부터는 다시 6명이 탈 수 있는 짚차를 이용하여 꾸불꾸불한 포장도로를 따라 천지까지 이동한다. 천지쪽으로 올라가는데 주변경치가 너무 아름답다. 드넓은 평야 같기도 하고, 기암괴석과 절벽이 즐비하기도 하다. 당초 우리가 트래킹을 계획했던 대로 이곳부터라도 걸어서 가면 좋을 걸 하는 생각도 든다. 천지까지 가는 짚차 운전기사들은 능수능란하게 곡예 운전을 한다.
기상관측대 주변에 차량을 세워 놓고 천지로 이동한다. 천지주변 능선에 간간히 보이는 흰 눈덩이는 마치 바위덩어리처럼 보인다. 천문봉에서 해발 2,600m 백두산 천지를 내려다보니 저절로 환호성이 난다. 안개로 천지가 보이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맑다. 천지를 들러 싸고 있는 능선들은 안쪽으로는 심하게 절벽단애를 이루어져 있어 언제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고, 경사가 완만한 곳이라고는 중국과 북한과의 국경지대가 아닌가 생각된다. 천문봉에서 정면으로는 천지중 제일 높은 장군봉(2750m)과 좌축으로는 망천후(2,712m) 우축으로는 해발봉(2,719m)으로 북한땅을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천지에는 아직 녹지 않은 얼음이 남아있고, 급박한 경사면에는 석회암의 돌과 모래가 흘러내려 눈인지 흙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회색이다. 정상에 쌓인 화산재로 인해 사시사철 희다고하여 백두산(白頭山)이라 부르는 것일 것이다.
천운봉에서 기암괴석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 본다. 아래에는 깍은 듯한 절벽으로 절벽위에 서 있으니 뚝 뛰어나온 흙덩어리가 무너질 듯한다. 우리와 같이 온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는 탓에 몇 시간이라도 지체하고픈 마음을 남기고 서둘러 짚차가 있는 곳으로 이동합니다.
천지에서 짚차에 몸을 싣고 확 뜨인 평야와 기암괴석을 다시 한번 바라보며 삼거리 입구까지 곡예 하듯이 내려왔다. 천지삼거리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장백폭포로 가는 길로 장백폭포의 장엄함을 멀리서부터 느낄 수 가 있다. 천문봉 오른쪽으로 철벽봉과 용문봉사이 천지 물이 유일하게 흘러내리는 계곡입구를 달문이라 한다. 이 달문 아래 장백폭포가 있고 장백폭포에서 흐르는 물은 송하강으로 흘러간다. 장백폭포에서 흘러내리는 천지물은 손발이 얼얼할 정도로 차갑다. 그래도 천지물에 손을 담근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대단한 일인가 ?....
장백폭포는 우기시 강우량이 많으면 2줄기로, 건기시 강우량이 적어면 3줄기 폭포로 형성한다. 세줄기 폭포는 세 마리 용이 서로 앞 다투어 승천하는 모습이다. 백두산 천지의 날씨에 대한 전설도 있다. 백두산 천지에서 세 마리 용이 싸우다가 침 흘린 것을 비유하여 비가 온다고 하고, 세용이 불어내는 입김은 안개, 싸움질 할 때는 천둥이 친다고 한다. 그래서 일년 365일중 30여일만 천지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천지를 볼 수 있는 맑은 하늘은 세 마리 용이 싸우다가 지쳐 기절 할 때라고 하니 그야말로 천지를 본다는 것은 조상의 은덕이나 다름이 없는 듯 하다.
장백폭포 아래 장백산국제호텔과 대우호텔이 있다. 몇 개의 숙박시설이 더 있지만 중국정책에 의해 이곳의 호텔들을 아래쪽으로 이동하기 위해 철거할 예정이라고 한다. 폭포 올라가는 길에 조그만 옹달샘 같은 곳에 온천수가 솟는 곳에 달걀을 담가 삶는다. 온천수에 삶은 달걀은 노른자부터 익어 3개에 1000원으로 사먹을 만하다.
산행후 피로 회복은 온천욕이 아닌가 싶다. 장백산온천은 유황온천으로 원수가 90℃이고, 열탕 온도는 82~83℃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현대화된 시설은 아니지만 원수를 직접 온천수로 이용하기 때문에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저녁은 백두산근처 식당에서 먹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천년기념물인 산천어 양식장이 있다. 산천어는 차가운 물 속에 생활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양식이 곤란하지만 이곳에서 산천어 1㎏당 3만원으로 상당히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
연길시 숙소 바깥에서 최근 관광객 상대로 사고가 많이 발생되고 있고, 특히 한국여권은 조선족들에게 500여만원 상당으로 거래가 되고 있어 외출을 삼가라는 가이드의 말이 귀에 맴돌며 오늘 하루도 저물어 간다.
6. 13(화)
숙소인 장백산호텔앞에는 새벽부터 농산물 시장이 시골장터처럼 섰다. 모두들 집에서 가꾸어 온 농산물을 조금씩 팔기위해 새벽부터 나온 것 같았다. 시장규모는 적지만 우리의 시골장터와 다름없이 경운기소리와 물건 파는 사람들의 메가폰 소리가 아침을 활짝 열고 있다. 시장에는 돼지고기, 토마토, 고추, 배추, 장뇌삼 등을 파는 장사들이 늘어서 있다. 가격을 물어보거나 어쩌다 눈길이라도 주면 사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끈질기게 달라붙는다. 이곳에서 물건도 비싸고 살만한 게 없다. 아예 가격을 물어보지 않는 게 좋다. 토마토 같은 경우 크기는 어린애 주먹만한 적은 것 4개에 1,000원한다. 우리내 슈퍼가격과 별판 차이가 없을 듯싶다. 새벽시장은 아침 7시에는 장을 파하고 어느새 도로는 한가로워 졌다.
아침 7시30분 백두산에서 용정으로 출발하였다. 이때까지 기념품 판매점을 들른 적이 없었으나 처음으로 북한에서 직접 운영하는 묘향산 기념품 판매장을 방문했다. 기념품판매장에는 안궁청심환과 사람들이 직접 수를 놓은 액자들을 판매하고 있다. 액자는 여러 종류인데 주로 정물화나 사상체제를 찬양하는 그림들이다. 특히 장미와 비슷한 꽃은 김정일화라고 하는데 김대중대통령이 북한에 방문하였을 때 주민들이 열열이 환영하며 흔들었던 꽃이라고 한다. 가이드는 여행객 모두가 모이도록 독려하는 모습이 보인다. 북한에서 판매하는 상품인 안궁청심원을 20만원에 판매하고 있는데 동행한 여행객 들은 북한동포를 돕는 심정으로 많이 구입한다.
연길에서 용정까지 터널이 한개 밖에 없을 정도로 중국은 더 넓은 평야이다. 만주 들판을 말 타고 다녔다는 선조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용정에서의 첫방문지는 민족시인 윤동주가 다녔던 대성중학교다. 현재는 용정제일중학교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실제로 학생들이 이 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신관과 구관으로 나뉘어져, 구관 앞에는 그의 대표적인 서시가 비석로 세워져 있으며, 건물 2층에는 기념전시관이 꾸며져 있다.
기념관에는 사진, 화보, 책자 등이 전시되어 있어서 당시의 윤동주 시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이 곳은 재야 운동가였던 문익환 목사와 정일권 전 총리의 모교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우리말을 사용하고 있으며 학생들 덩치도 우리나라 학생들 못지않게 크다.
대성중학교에서 일송정으로 이동하였다. 용정의 어느 주유소에 정차하여 야산 위에 일송정을 바라 볼 수 있었다. 전에는 늠름한 자태의 소나무가 한그루 서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작은 소나무 한그루와 정자가 있다. 용정 시민들의 말에 의하면, 오래 전 이 곳에는 정자 모양의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그리고 이 소나무 밑에서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항일의 의지를 불태우곤 했다고 한다. 이를 미워한 일제가 소나무에 구멍을 뚫고 약품을 넣어 일송정을 고사시켰다고 전해진다. 1980년대 후반 중국정부 당국에서 이곳에 '일송정'이라는 이름의 정자를 건립하여 이를 기념하고 있다고 한다.
주유소에서 이동하면서 우리일행은 해란강 다리를 건널 수 있었다. 두만강 지류로 선구자에서 언급된 용정지역의 강이다. 이 강이 선구자에 언급된 이유는 우리 민족이 간도 지방에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이 해란강 주변의 들판이었고, 그 중심 젖줄이 해란강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강폭이 30여 미터로 조그만 강줄기에 지나기 않아 “선구자”가곡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용정에서 북한의 접경지대인 두만강 관광을 위해 도문으로 이동한다. 용정에서 도문까지 50여분 포장도로를 이동후 20여분간 비포장도로를 이동해야 하면서 주변땅에는 벼농사를 볼 수 없고, 넓은 땅에는 옥수수 밭만 즐비하다. 간혹 물을 받을 수 있는 곳에만 작은 논이 형성되어 있다.
두만강은 중국의 도문시와 북한의 남경시를 경계로 하여 흘러가는 강으로 북한을 바라볼 수 있는 중국과 북한의 접경에 위치한 강이다. 역사적으로는 한국 분단의 아픔을 지닌 곳이며, 최근에는 월북자들이 이곳에서 생사를 달리하는 가슴 아픈 장소가 되고 있다.
두만강 전망대에는 뻥띠기나 살구파는 사람, 앵벌이도 눈이 띄인다. 옛날에는 북한 주민들이 와서 장사나 앵벌이를 했는데 지금은 북한사람들은 없고 한족이나, 조선족이라고 한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주로 노인이나 장애자들이고, 값도 싸고 해서 여행객들은 하나씩들 산다. 두만강 건너편에 북한병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는 모습이 보이지만 어리고 장난스런 얼굴표정을 짓고 있는 듯싶다.
도문에서 연길까지는 한시간 거리이다. 우리숙소인 연길에 도착하여 세기의 관심사인 한국과 토고전 월드컵 축구 경기를 관람하였다. 예전에는 북한방송을 시청를 많이 했다고들 하는데 지금은 인공위성 덕분으로 한국의 3사방송을 생방송으로 시청을 한다. 중국땅에서 한국의 붉은 악마가 되어 대한민국을 외치며 열심히 응원해 본다. 비록 중국이지만 한국에 있는 기분이다. 한국의 승리 ... 이번 여행은 운이 좋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백두산천지...., 그리고 백두산 여행중 한국의 월드컵 첫 경기 승리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6. 14(수)
우리숙소인 연길 대주호텔에서 연길공항까지 대략 10분정도 걸린다. 마지막날 여행은 관광이 없고 장춘에서 지체 했다가 한국행 비행기를 타면 이번 여행은 끝난다. 연길공항은 잔뜩 흐린 날씨로 옷깃을 여밀 정도로 쌀쌀하다. 중국에서 살만한 것은 참깨라고 하여 참깨 5㎏을 2만원에 사서 가방안에 넣으니 돌아오는 여행 보따리가 처음의 것보다 더 크다.
7시비행기를 탑승하여 장춘으로 출발하였다. 50분정도 소요되는 장춘까지의 거리는 장춘공항의 일기관계로 착륙하지 못하고 연길로 다시 회항을 했다. 비행기여행을 많이 해보지 않아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마음속으로 다시 장춘으로 출발할 때 비행기 비용을 지불해야 되지 않는 가 은근히 걱정이 되었지만 추가 비용은 없었다. 회항후 30여분간 비행기내에 대기하다가 장춘날씨가 좋아져서 연길에서 다시 이륙하였다. 장춘에서 서성거릴 시간이 필요 없이 한국행 비행기를 바로 Xkf수 있었다.
중국을 출발할 때와 마찬가지로 한국으로 들어올 때에도 비행기 안에서 바라보는 서해바다는 온통구름 천지로 구름에 반사되는 빛 때문에 바깥을 바라 볼 수 없을 정도이다. 오후 3시 서울에 도착. 이제 중국은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이 가능할 정도로 일일생활권에 든 것 같다.
비행기안에서 가끔씩 흔들리고, 급하강으로 가슴도 조여 보이지만 하늘을 날수 있는 비행기 동체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끼며 새로운 여행을 꿈꾸어 본다.
P.S
저는 글을 잘 쓰진 못합니다. 단지 잊혀져 가는 추억들이 아쉬워 메모지와 사진들을 펼쳐가며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즐거운 시간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댓글 저는 글을 잘 쓰진 못합니다는 겸손의 말씀이고요, 빨리 읽었는데, 같이 다닌 기분이네요. 그리고, 이렇게 소중한 추억을 글로써 전달해 주는 베네딕토 형제님의 정성에 감복할 뿐입니다. 당신은 명문가이십니다.
좋은일 많이 한 사람은 한번에 천지도 구경하시고 나는 천지 물 구경도 못했는데 넘 좋았겠습니다. 도문에서 북한 구경 많이 하셨겠네요. 잘 다녀 오시고 좋은 추억거리 만드신듯 옷은 어디서 많이 본듯 합니다.ㅎㅎㅎ
글솜씨가 보통이 아닙니다. 가기전에 준비도 많이한것같고 메모도 정말 잘한 것같습니다. 좋은 자료가 될수 잇겠습니다. 감사하고 수고하셨습니다^^^^^^^^^
으매 징허구먼이랑....백두산 가믄 천지에 있는 물이라두 떠와야지라.....생각만 혀도 짠허냉용.....끌 잘보구 가용...
백두산구경 잘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