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보를 멸하는 길
정업(定業)이란 과거에 지은 업(業)에 따라 현세에 받게 되는 과보를 말한다.
자신이 이미 행동을 했기 때문에 그 행동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 재앙을 줄 것인지 복록(福祿)을 줄 것인지 결정할 권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번 결정된 업은 면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어지는 업이라도 받는 사람이 마음공부를 쉼 없이 해서 마음의 자유를 얻으면 그 화복(禍福)에 얽매이지 않고 항상 마음이 편안합니다.
그래서 인생을 살면서 수 많은 사람을 만나서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마음을 공부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화내는 마음과 집착을 놓고 서로를 북돋우며 다 같이 잘 살아갈 수 있는 마음 공부를 해야 합니다.
한 생각 돌리면 상대방도 이롭고 나도 이로운 상생(相生)의 길이 열려서 다 같이 즐겁지만, 한 생각 잘못하면 상대방도 해롭고 나도 해로운 상극(相剋)의 길에서 같이 괴로운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일체중생은 한 진리, 한 천지 가운데 어울려 사는 동포이며 형제입니다.
이 속에서 지옥을 만드느냐, 극락을 건설하느냐는 모두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좋은 세상, 살기 좋은 극락을 만들 수 있도록 마음의 힘을 기르고 지혜의 눈을 밝혀야 합니다.
영가에게 죄업이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에 원망이 없고 원수를 갚으려는 마음이 없으면 악업이 점차 소멸합니다.
반면 남은 죄업이 없다 하더라도 원망하고 원한을 품으면 악업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영가는 과거에 잘 지냈거나 잘못 지냈거나, 원통하거나 억울했거나 모든 것을 다 잊고 오직 마음을 조촐하게 하고, 상생의 큰 도에 귀의해서 완전한 해탈과 천도를 얻어야 합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업보를 멸도하는 방법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과거 부처님 말씀에 생멸 거래가 없는 큰 도를 얻어 수행하면 다생의 업보가 멸도 한다 하셨나니, 그 업보를 멸도하는 방법은 이러하나니라.
누가 나에게 고통과 손해를 끼쳐주는 일이 있거든 그 사람을 속 깊이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말고 과거의 빚을 갚은 것으로 알아 안심하며 또한 그에 대항하지 말라.
이편에서 갚을 차례에 져버리면 그 업보는 쉬어버리느니라. 또한 생사 거래와 고락이 구공한 자리를 알아서 마음이 그 자리에 그치게 하라. 거기에는 생사도 없고 업보도 없나니, 이 지경에 이르면 생사 업보가 완전히 멸도 하였다 하리라.” (『대종경』천도품)
누군가가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손해를 끼치면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인과의 이치를 공부하는 사람은 과거의 빚을 갚은 것으로 알아 안심하고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마져 낼 수 있습니다.
업보(業報)를 완전히 멸도시키는 방법은 생사 거래와 고락(苦樂)이 구공(俱空)한 자리를 알아서 마음이 그 자리에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
태어나고 죽은 것이 모두 텅 비었다는 것은 태어나고 죽는 것이 끊임없이 돌고 돌며 변화하기 때문에 생(生)도 아니고, 사(死)도 아니며, 생이라고 할 수도 없고 사라고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업보(業報)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탁 태 (托胎)
어머니의 태(胎)에 생(生)을 의탁한다는 뜻입니다. 탁생(托生)·착생(着生)과 같은 말입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영혼의 탁태과정에 대한 “영혼이 육신에서 뜨면 약 칠칠(七七)일 동안 중음(中陰)으로 있다가 탁태되는 것이 보통이나, 뜨면서 바로 탁태되는 수도 있고, 또는 중음으로 몇 달 혹은 몇 해 동안 바람같이 떠돌아다니다가 탁태되는 수도 있는데, 보통 영혼은 새 육신을 받을 때까지는 잠잘 때 꿈꾸듯 자기의 육신을 그대로 가진 것으로 알고 돌아다니다가 한번 탁태를 하면 먼저 의식은 사라지고 탁태된 육신을 자기 것을 안다”라고 하셨습니다. (『대종경』천도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