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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기다, 너! 동아줄이냐?? 말해봐라, 이년아!]
2005년 3월 5일.
오후 3시경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전화 거신 분은 의료용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의 대표이사 ㅈ@@.
(이 회사 쟁쟁하다. 최고급(?) 인력 수십명을 거느린 잘 나가는 회사..)
직원 결혼식 참석차 일부러 부산에 왔는데, 그냥 갈 수 있겠냐고, 얼굴이나 보잔다.
워매~ 점심도 안 먹었고, 세수도 안했는데..
나는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한다.
(번개치기에 별 소질이 없지만 할 수 없이 번갯불에 콩 구워 먹었다.)
짧은 윗옷을 입었다가, 아무래도 바람이 찬 느낌이라 다시 코트로 갈아입고 내려가니
ㅈ사장은 내 사는 아파트 마당에서 바바리 차리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파트 마당에서 맨 바람을 맞고 서 있는 한 남자를 만나려니 엄청 기분 수수했다. (히히~)
잠시, 어디로 갈까 망서리다가 해운대로 가기로 했다.
하여, 차를 잡기 위해 아무 길로 방향을 잡았는데,
그가 하늘을 손가락질 하며 하늘의 저것이 구름이냐, 안개냐.. 하고 물었다.
정말이지 헷갈렸다. 구름같기도 하고, 안개같기도 하고..
아무튼 하늘은 장난 아니게 안개같은 연기(?)를 마구 피워올리고 있었다.
ㅈ사장이 또 하늘을 봤다. 아무래도 눈이 올 것 같네..
나는 속으로, 눈은 무신.. 그랬었다.
우리 동네는 벚나무가 많다. 조만간 꽃 피면 볼만하겠다고 그가 말했다.
택시는 잘 오지 않았다.
그가 물었다. 파트로네스ㅡ 어디 사느냐고. 가까운 곳에 산다고 내가 답했다.
그럼 파트로네스도 부르자, 그가 말했다.
나는 알아서 하라고 했다.
그렇담 해운대까지 갈 이유 없으니, 그냥 가까운 곳의 식당으로 가자고 내가 꼬셨다.
점심을 먹지 않은 뱃속이 더 이상 못 참겠다고 아우성을 질러대는 참이었기로.
그가 전화를 걸었고, 우린 복국집으로 갔다.
참복국과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조금 있으니 파트로네스 님이 왔다.
내가 머리를 처박고 복국의 국물을 소비시키는 동안..
창 밖으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3월에 눈이 오다니. 그것도 이 부산에!!
그런데 눈발은 점점 굵어지는 것이었다.
대장의 예상이 맞았던 것이다. (흠~ 그를 비웃었던 내 맘을 혼자 반성했다.)
케이티엑스. 20시 25분.
아직 두 시간의 여유가 있다며 ㅈ사장이 조용한 카페로 가자고 했다.
창가에 앉아 바다로 내리는 눈 구경을 하면 멋있겠다 싶어 우린 광안리로 가기로 했다.
복국집에서 나와 택시를 잡았다.
택시를 잡는 얼마 안되는 순간 머리며 옷이 눈에 범벅이 될 정도였다.
아, 눈이 장난이 아니었다.
광안리를 가면 집에 돌아가기 힘들어 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구두들 신었는데..
가까운 곳의 카페를 가기 위해, 중간에서 내렸다.
카페 입구에서 내 마음이 또 변했다.
그냥 내 집으로 가는 게 좋을 거 같은 생각.
또 다시 택시를 타고 기본요금 거리인 내 집으로 왔다.
소주와 묵은 금치와 얼린 문어로 술자리는 계속 되었다.
베란다 창으로 보이는 바깥은 이미 설국이었고,
현관문을 나가 복도에서 내려다보는 정원(?) 풍경은 가히, 그림이었다.
설국? 흠, 진짜 설국!!
잠시 잠시 눈구경을 위해 방과 복도를 오가면서 술을 마셨다. (나는 안 마시고..)
1978년 가을.
나는 너무 심심한 나머지 뭔가를 배우러 다니기 시작한다.
그 때 만난 선생님이 바로 ㅈ사장이다.(이하, 대장이라 부른다. 늘 그렇게 불렀다..)
대장은 키가 컸고, 음성이 우렁우렁~ 남자다웠고, 노래를 잘 불렀고, 무엇보다 손이 엄청나게 섬세하게 생겼었다.
(지금봐도 놀랄 정도로 손이 섬세하고 아름답다.)
남자다움의 표본과도 같은 멋있는 남자가, 손이 어떻게나 아름답던지..
나는 대장을 좋아하기 시작하고, 그에게 대장이라는 칭호도 선사한다.
(연정은 아니다. 그냥 반한 것이다. 이런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지?? 자마는 알랑가? 함 물어봐야지..)
그러나 그 시절, 나의 대장은 여자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잘난 남자였다.
어느 날, 나는 편지지 한 장에다 연필로 깨알같은, 말도 안되는 글을 써서 대장에게 건네준다.
대장은 그 글을 읽고 연필로 어떻게 그렇게 글씨를 작게 쓸 수 있느냐고, 신기하다고 했다.
대장에게로의 배움이 끝났기로 다시는 대장을 만날 수 없게 되었을 무렵.
나는 대장의 전화를 받는다.
61번(정확하지 않다, 맞을 것 같기도 하고..) 버스 종점에서 그와 만나기로 약속을 한다.
약속 시간이 되어 종점으로 갔는데..
대장은 내가 걸어올 방향과는 영 반대 쪽 방향으로,
그러니까 내게 등을 돌린 상태로 두 손을 허리에 얹은 채 저어기, 먼 하늘을 바라보고 서 있는 것이었다.
나도 그를 따라 그가 보고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아~ 하늘은 석양으로 범벅 되어 온통 벌건 핏빛이었다.
그러나 하늘보다 더 진하게 부각되었던, 그의 그 뒷 모습!!
나는, 시끄러운 버스 종점 한 가운데서 하늘바라기를 하고 섰는 대장의 뒷모습에 또 한 번 더 반해 버린다.
그런데 그 뒷모습은 전혀 연출(?)의 냄새가 나지 않았고, 하늘 저거 왜 저렇지? 하는 느낌만 줄 뿐이었다.
그래서 더 멋있었다. (그 땐 내가 지금보다 더 예민하던 시절이었음)
똑똑~ 내가 대장에게 나의 존재를 알린다.
대장은 그제서야 꿈에서 깬 듯 나를 돌아보았다.
대장이 말했다. "우리, 해지는 쪽으로 무조건 걸어가보자."
늘 다리가 아팠던 나는 해지는 쪽으로 얼마나 걸어야 할지 자신이 없었지만
그의 의사를 전혀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린 꿈에서조차 가보지 않은 남의 동네 골목골목을 헤집으며 해 지는 쪽을 향해 걸었다.
걷다보니 구포둑이 나왔다.
굽 높은 샌들을 신은 나는 다리가 엄청 아팠을 것인데도 장대장과 걷던 구포둑길이 하나도 길지 않았다.
구포둑이 끝나는 곳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서면으로 향했다.
서면의 술집에서 술을 마셨고.. 그러고 헤어졌다.
다시 한번 대장을 만난다.
부산 송도.
옛날 송도엔 흔들 다리가 있었다, 그 다리를 구름다리라고 불렀다.
우린 구름다리 앞의 어떤 곳에서 뭔가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던 길 나는 혼자 조금 울었다.
사랑 때문이 아니고..
아주 어릴 적부터 이유 없이 아팠던 내 너절한 인생이 스스로 생각해도 참담했던 모양이었다.
(날이면 날마다 불면이었으며 다리의 통증은 한시로 나를 떠나지 않았고, 편두통은 정도 이상으로 심했었다.
아침에 눈 뜨면 2시간은 자리에서 비비적거려야 했고, 누군가와 말이라도 할라치면 누워서야 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나를 식구들은 잘난 척 하는 거라고 여겼다.
내 고틍은 씨가 먹히지 않을 거라고 미리 절망한 나는 나의 고통 정도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니까.
하릴 없이 이불이나 뭉개고 앉아서 세월 보내는 나를 엄마는 <대한민국에서 젤 편한 백성>이라고 불렀다.)
나는 건강하지 않으면 절대 결혼같은 건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었고,
그 결심이 아니더라도 내 맘에 드는 남자 또한 없었다.
하지만, 대장은 내게 이성친구로 다가오지 않았지만 암튼 멋있는 남자였었다.
79년 여름, 나는 인천의 외가집 공장에 1달 동안 가 있게 된다.
사무실 여직원이 갑자기 그만 둔 바람에 급히 내가 차출(?) 되어진 것이다.
그 짧은 한 달간의 <남의집 살이>중 나는 한 번의 <휴가>를 받아 집으로 오게 된다.
그날.. 장대장은 부산역으로 나를 마중나와 주었고, 아리랑호텔 커피숍에서 커피까지 사주었다.
어쩌면 그도 부산을 떠날 거라고 말했다.
키스트에 가게 될 거 같다고.
<키스트 요원>이 되자 장대장은 경희의료원으로 파견 근무를 나가게 된다.
내가 인천 외가에 있을 무렵 대장은 국철을 타고 나를 만나러 인천으로 와준다. 두 번.
인천에서 만난 대장은 부산서 만나던 것과는 다른 느낌을.. 내게 주었다.
(하지만 그 느낌을 나는 뭐가 어떻게 다른지 표현할 길이 없다.)
역시나 나는 대장을 남자로 여기지 않았고, 대장도 나를 여자로 보지 않았다.
확실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대장은 나를 몇번이나 만나주었다.
대장은 서울서 바쁜 나날을 살게 되고 나는 인천에서의 <한달 직원>노릇을 그만두고 귀향한다.
(병골인 내가 지탱하기엔 너무 힘든 나날들이었다.
엄마의 잔소리가 심했지만 내집이 편하다는 걸 그때 깨닫는다.
아버진 내가 집으로 가야겠다는 말이 떨어지자 마자 기차표를 부쳐주셨다.
외삼촌은, 한 마디 말도 없이 집으로 가겠다고 결정한 나를 섭섭해 했다.)
그때가 79년 여름.
이후, 대장의 소식을 간간히 풍문으로 듣는다.
(경희의료원에 있다가 중대병원으로 옮겼다는 그런 소식을..
그리고 뒤에 그는 마흔도 안된 나이에 큰 대학병원의 행정부원장이 된다.
그러다가 얼마 뒤 그 직함을 버리고 자기 회사를 차려 독립한다.
한 마디로 승승장구의 삶을 살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대장은 결혼을 했고, 나는 85년 돈 생길 일로 서울을 간다.
내가 묵었던 집이 장위동이었는데 (장위동 교장댁 이야기도 인연론에 꼭 소개해야 할 집이다)..
대장에게 전화를 할까말까..망서리다가 하지 않는다.
그러고 세월이 흘렀다.
2001년 여름.
나는 불현듯 대장 생각을 하게 된다.
그가 유명해져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그를 찾기 어렵지 않을 거라는 결론에 이른다.
검색창에 대장의 이름자를 쳤다.
아, 역시!!
내가 예상했던 그대로, 모니터엔 그의 이력과 함께 그의 업적이 소개되어 있다. 삼성 sds 어쩌고.. 맞다.
별 흔하지 않은 그의 이름과, 회사명..
나는 뜸을 들이고 들이다가, 114로 회사 이름을 대며 전화번호를 묻는다. 알려준다.
그러나 그뿐.. 나는 전화를 걸지 못한다.
어느 날 어느 순간 나는 전화를 건다.
한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여긴 <@@정보>가 아닙니다, 하면서 내게 전화번호 하나를 알려준다.
(지금 생각해도 고맙다,그 분!! 장대장도 그 전화번호는 모르는 곳이라고 했다.
인연은 이렇게나 질기다.
만날 사람 만나게 해 주려고 모르는 사람이 대장 회사의 전화번호를 알려준 이 신비함..)
이번엔 진짜로 전화가 쉽지 않았다.
과연 장대장이 나를 기억할 것인가. 22년 전의 나를..
만약 기억한단들, 장대장이 나를 반가와 할 것인가. 과연..
그렇게 며칠을 보낸 어느 날, 에라이~ 전화를 걸었다.
직원이 사장실로 연결 시켜주었고, 나는 옛날의 그 음성을 듣게 된다.
대장은 나를 기억하고 있었으며, 그리고 박대하지도 않았다.
다행이었다.
며칠 뒤, 재회한 기념으로 내 이름이 찍힌 떡 하나를 내가 보낸다.
그러고 또 한 해가 갔다.
2002년 봄.
어떤 분이 누군가를 흠모(?)하는 카페 하나를 만들었다.
나는 그 카페의 회원이 된다.
대장에게 그 카페를 소개했다.
큰 회사의 사장이 되어있는, 그래서 바쁘기 그지 없는 대장은 나의 말 한 마디에 그 카페에 가입을 한다.
그리하여, 막강한 필력과 파워를 구사하며 단연 나의 입지를 빛나게 해준다.
2002년 10월.
드디어,우리는..부산에서, 20년도 넘는 세월을 뛰워 넘어 재회를 한다.
재회의 자리엔, 이미 카페에서 글로 안면을 익힌 카페 쥔장과 벳남서 사업하는 박사장도 함께.
(박사장은 벳남서 사업을 하고 집은 인천이라, 일부러 인천서 부산엘 왔고,
대장도 나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어 서울서 온 것이었다.)
해운대 미포에서 전어회와 소주로 에피타이저(?)를 한뒤,
우린 미리 예약해 둔 파라다이스 호텔 일식당으로 갔다.
그 날 나는 참으로 호사스런 생일 파티를 갖게 된다.
시리즈(?)로 나오던 일식 요리만도 흥감해 죽을 판이었는데, 무지 비싼 샹파뉴와 맛있는 케잌까지!!
(그날 찍은 즉석 사진도 어딘가에 있다.)
일식당서 나온 일행은 이미 예약된 객실에 들어가 서로 맞절을 하면서 우리의 만남을 자축한다.
(하, 지금 생각해도 멋있는 장면이다. 우린 그렇게 멋을 부릴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객실서 우리만의 의식을 치른 뒤 일행은 밖으로 나와 단란주점으로 갔다.
그 곳에서 <노래빨> 끝내주는 세 남성들의 <재롱잔치>를 보면서 나는 새로운 감회에 젖는다.
헤어진 지 22년 만의 만남.
그리고, 대장과는 새로이 만나게 된 두 남자, 합 셋.
세 분은 서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한 사이였는데
카페에서의 몇줄 글로 친해져선 친형제 이상으로 마음의 문을 열다니..
보는 내가 감사하고 묘하게 코 끝이 찡~해졌다.
벳남 박사장과 카페 쥔장을 호텔 객실로 보내고
대장이 택시에 나를 태워 집 대문 앞까지 배달해주고 갔다.
이튿 날.. 먼곳의 남자 두 분은 이른 비행기를 타고 김포로 갔다.
2003년 6월.
카페 회원 중의 한명이 광주에서 결혼식이 있었다.
결혼식에 가기 위해 4명의 남자들이 곧 입주할, 부산 내 집을 먼저 방문했고,
대장과 벳남 박사장님도 내집에서 합류한다.
살다면 이런 일도 있는가?
마침 여중 컴퓨러 선생인 우리동네 아줌마 2가 이사도 채 안된 내 집에 와 있다가 속속 들어서는 손님들을 봤다.
아줌마가 2가 아줌마 1께 했다는 말씀.
"멀쩡하게 생긴 남자들이 젬마 집에 쑥쑥 들어서는데.. 참.. 이해가 안가더라"
나는 그렇게 남들이 이해 못할 인생을 이렇게 살고 있다.
나도 어떤 땐 이해가 잘 안된다.
내 인생이.. 비까번쩍 잘나가는 것도 아닌데, 나는 후진 촌년이고 십 수년을 집 안에서만 살고 있는데.
(파트로네스 님이 이런 나를 너무 잘 안다.)
그날 밤 대장은 서울 손님들을 모시고 송정으로 가서 새벽 3시까지 호스트 노릇을 톡톡히 한다.
(이십년도 더 지난 시절의 나를 뒤늦게 만난 덕분으로 대장은 금전적 손실을 많이 입게 된다.)
이후로도 대장은 부산에 올 일이 있으면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우리(카페회원)를 챙겼다.
눈 내리던 밤.
분위기가 하도 흥겨워서 내가 대장에게 물었다.
해지는 구포둑 걸은 거 기억함미? 기억 안 난다고 했다.
부산역으로 나 마중 나온 거 기억함미? 잘 모르겠다고 했다.
송도 갔던 거 기억 함미? 확실하게 기억한다고 했다. (그래서 사실은 송도 가고 싶었다,고..)
인천으로 나 만나러 왔던 거 기억함미? 당연 기억한다고.
왜 나를 만나러 와 주었음미? 전혀, 여자로 인식하지는 않았는데, 그냥 괜찮았다고.
내가 제안했다.
그럼 내가 대장을 나의 <첫사랑>범주에 넣어버리겠다.
오늘 부터 대장은 <나의 애인>이 된다. 오케이?
음 오케이!!
그래서 손도장 찍고 복사하고, 파트로네스님이 증인 서고.
대장이 말했다.
"바보야, 오늘 이 눈!! 이 엄청난 눈, 이거 재회를 축복하는 눈인 거라.."
27년 전의 사람. 그 사람을 다시 만난 기념으로 하늘이 부산에다 눈을 퍼부은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무슨 눈이 그렇게나 퍼붓 듯이 내릴 것인가!! 흠~)
신이 난 우리는 술 마시다가.. 베란다로 나갔다가 복도로 나갔다가..
주체 못하고 내리는 눈을 구경하다가 대장은 기차시간도 놓친다.
"벳남 박사장 지금 눈 만드는 기계 살라고 독일까지 전화하고 난리 치는데 이 눈 좀 갖다 주자."
그러고 있는데 벨이 울렸다. 벳남 박사장의 국제전화. (암튼 귀도 밝아요.)
참말, 바지런하신 박사장님, 신이 난 나는 대장을 바꿔주었다.
(얼마 전에도 내게 꿀과, 한치와, 커피와, 차와, 초코렛과, 뭐뭐.. 한 상자를 보내주었었다.)
눈은 더더 세차게 내리고..
박사장과의 통화 후, 나의 장난끼가 동했다.
장대장의 휴대폰으로 누군가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 분을 다짜고짜 장대장에게 바꿔주었다.
서로 알지만, 아직 만나지는 못한 사이. 연우 아빠.
대장과 연우아빠, 만나지도 않은 사람들이 신바람 나게 통화를 했다.
내게 잘 하는 연우아빠가 너무 고마와서 대장이 언제 술 한잔 사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이렇게 거간 노릇을 잘한다.)
내 손에 걸리면 뾰족한 낚시바늘에 코 꿰는 격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좋은 인연을 혼자 <독점>하지 않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나 같은 착한 거간이 있으면 인연은 자연 <확장>된다. (흥~ 하기 없기!!)
우리 인연에 동참 하고픈 분들은 제게 <텔레파시>보내주십시오.
언제나 그대들의 이야기, 경청하겠습니다.
어떤 분이 만든 <흠모 카페>는 겉으로 보기엔 썰러엉~ 하지만 <내실 탄탄>하고,
쥑여주는 <빵빵한 인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아~ 헤쳐 모엿!!
05.03.07.
첫댓글 역쉬 연애 야그는 남의 것 듣는게 재밌어요. 한데 장대장님에게 반했다는 것을 다음 부분에서 알 수 있네요. "굽 높은 샌들을 신은 나는 다리가 엄청 아팠을 것인데도 장대장과 걷던 구포둑길이 하나도 길지 않았다.." 그때, 구름 속을 붕 뜬 듯이 걷지는 않으셨나요?
내용을 보니 공주님 금방 쾌차하시겠구만~사랑하는 이들이 많아서~장대장님과 쥔장님께 감사 올립니다~이몸도 뒤집기를 해서 즐거운 자리에 자주 동참해야 할터인데~~
저는 잘 모르는데 남들이 그러더라구요. 사랑에 빠져 길을 걸으면 그런 느낌이 든다구요.
글 올리는 주에 십사성님이 끼여드셨네요. 비엔남에도 곧 눈보라가 휘몰아 치게 되나여?
ㅋㅋㅋ 누가 할 소리를 한댜~~시계 외곽 프레임 다 만들어 놓았습니대이~~비엣남에 눈 날리면 모르긴 해도 꽃사모님은 엉덩이 온전하지 않을걸~~라이타 다 준비해놓았으니께~~^^
미취겠다..난 서재에서 공부한다고 식구들한테 뻥(?)치고 노크없이 들어오면 다 박살내겠다고 공갈놓고 책 펼쳐놓고 첼마 기다리는데 이 어이없는 첼마는 틀림없이 자는갑다.
출근해서...빌빌거리다...//헤쳐 모였~!! 소리에 정신이 번쩍듭니다...//축축한 아스팔트 밟고 왔는데...비가 온 것 같지는 않고...봄이 아스팔트에 내린듯....//봄맞이 갑시다.......벚꽃 구경도 가고.....술 구경도 가고...//어디로?? 토곡으로....
역시 작가는 달라. 별볼일없는 사람도 작가의 손을 거치면 세상에 멋진 남자로 둔갑하다니. 더군다나 첫사랑으로 승격 하다니. 아 ~ 그래서 눈이 밤새 내렸구나. 사람이 만나기는 쉬워도 헤어지기는 어렵다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입니다. 첫사랑 만쉐이 !!
ㅋㅋㅋ 계속 눈야그 하면 우리 십자 성님 눈 돌아가지...
참으로 답글들 좋구나 좋아~~그날 내린 함박 눈 처럼 포근하구나~~김흠모 회원님덜 만쉐이!~~고국에서는 *눈 때문에 雪雪기고 이내몸은 눈 찾아서 雪雪기누나*
내실 탄탄 인맥 ㅃ ㅏㅇ빵~~~~~~~~ 언니 언니 글 보면 제가 마치 작가가 된듯한 느낌이... 아니 주인공이 된듯한 느낌이... 언니 건강하셔야 해요. 제가기도하고있거든요
이거 소설이었어요? 잠시 흥분했네...휴우~~~
오잉! 이상님 반갑슈~~가네는 두루 평온 하시고?
이상, 바부!! /이 글이 소설로 보이나?? 에긍.. 담엔 별물 몬 주겠다. 바부~ /식구들이 늘어나니 게시판도 활기가 도는 듯.. /이상님. 라졸리 우예된 긴공? 별물 200시시 보내면 라졸리 몇 병인공? 계산해서 올리소!! 나는 주는대로 받을 텡께로...
질긴 인연.....에휴휴~ 다들 코가 꿰이셨구려 ㅎㅎㅎ 아름다운 인연 더불어 나눌수 있길 소망하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