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양 수남
세탁기로 쉽게 빨아진 옷가지를 널다가보니 문득 오래 전 빨래를 하던 생각이 났다. 안마당에 길
게 매어 놓은 빨래 줄에 한 가득 널고는 바지랑대로 높이 떠받치던 그때 그 시절.
어느 날인가 유난히 논일 밭일로 흙투성이가 된 빨랫감이 많았던 날이었다. 평소에는 동네 안에 있는 우물에서
빨래를 했다. 오늘은 하늘을 올려다보니 흰 구름이 아름답고, 울타리 너머로 피어 있는 찔레꽃 향기가 마음을 흔들어 놓는 바람에 주섬주섬 옷가지를
그릇에 담아 강에 가서 쉽게 빨래를 하고 싶어 집을 나섰다.
도랑을 따라 강으로 내려가는 길에서는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에 놀랐는지 개구리가 물 논으로 풍덩 뛰어들고
나도 덩달아 놀란 눈으로 개구리를 좇았다. 밭가에는 군데군데 청 보리가 실한 이삭을 쳐들고 있었다. 산기슭은 누런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는
보리밭은 고무래로 밀어 놓은 것처럼 반듯하게 키를 갖추고 있어 그 모습은 바라볼수록 흐뭇하기만 했다. 잘 여물어 가는 보리밭 옆에서 소를 몰아
밭을 가는 이웃집 아저씨의 ‘이랴, 워-어’ 어저저-‘ 소리는 화창한 들녘에 퍼지어 활기가 넘치고, 땅속에서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은 흙이 쟁기
날에 뒤집혀 땅 위로 드러난 흙은 윤기가 났고 신선한 흙 냄새와 상큼한 보리냄새는 봄바람을 타고 들녘으로 퍼져나갔다.
강 언덕으로는 고운 모래로 이루어진 강변 밭에는 사람 키만큼이나 자란 호밀 밭이 펼쳐져 있다. 강바람이 불어오면
호밀은 잔잔히 넘실대는 푸른 파도의 물결을 이루었고, 밭가에서는 장기의 울음도 울려 퍼졌다. 시원한 강바람이 온몸으로 스치며 지날 때의 그
상쾌한 기분은 지루하던 일상에서 나를 잠시나마 해방시켜 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강나루 건너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강가 푸른 풀밭에는 여기저기 무더기를 이루어 토끼풀이 하얀 꽃을 피워 놓고 있었으니, 그 모양은 마치 하늘의 흰 구름이
한 점 사뿐히 내려와 앉은 듯 소담함에 마냥 감탄을 했다. 이른 아침에 피어오른 물안개는 앞 산 중턱에 걸려 있었고 맑은 강물은 여전히 산밑을
휘돌아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 쉼 없이 흐르고 있었다. 모래밭과 자갈밭은 물굽이를 따라 나란히 어깨동무라도 한 듯 펼쳐져 흘러가는 물결을
굽어보며, 나도 그 때 아득히 먼 곳을 그리며 흘러가는 그 강물을 넋을 잃고 바라보곤 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하는 뒷 구절은 모르던 시절이었다.
황톳물이 들어 있는 어머니 옷을 비누칠을 하여 비벼 헹구어도 황톳물은 옅어질 뿐 없어지질 않아 나는 옷들이 때가 안
빠진다고 짜증을 내며 빨래 방망이로 팡팡 두드렸다. 앞산에 울려 되돌아온 방망이 소리는 마음의 찌든 곳을 씻겨 내기라 하는 듯, 들으면 내
마음도 후련해졌다. 좀 더 깊은 물에 들어가 빨래를 헹구어 꼭 짜서 자갈 위에 널어놓고 나면, 몸도 마음도
한가로워졌다.
맑은 강물에 들어가 강바닥에 깔려 있는 큰 돌 을 뒤집으면 그 속에는 햇살을 피해 숨어 있는 다슬기와
조개들을 하나 둘 주워 담고 있을 때면, 강 건너 편에서 지나가던 총각들이 나를 향하여 휘파람을 불어댔다. 그때는 왜 그리도 겁이 났던지....
깊은 강이 가로막혀 건너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밭 갈고 있던 이웃집 아저씨를 확인하고서야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곤 했었다.
미처 마르지 않은 빨래들을 뒤집어 널면서 발 밑에 구르는 자갈들의 소리도 들었다. 얼마나 많은 세월동안
물에 떠밀려 얽히고 굴렀기에 반들반들하게 다양한 모양들을 이루었을까. 그 모습들은 제 각각이다. 납작하고 동그란 돌을 골라들고 강물위로 던져
수제비를 떠본다.
이 순간은 물새가 날아가듯 물살을 가르는 짜릿한 동심에 젖어들고 있었다.
강 돌들은 여름 장마가 지면 많은 물에 씻겨 떠내려가 다시 새로운 돌들로 강기슭을 가득히 메우고 는 했다.
옆 집 할머니가 뒤늦게 빨래 감을 머리에 이고 오시며 “빨래 다했냐? 이거 먹어라” 하시며 바가지에 담아온
찐 감자를 건네주시기도 했었다. 조용하던 강가에 할머니의 소박한 웃음과 빨래 방망이 소리가 번져 갈 때면, 나는 이웃 사람들의 인정과 강촌의
여유를 느끼곤 했었다.
세상은 많이 변하여 문명의 발달로 의식주의 생활이 아주 편리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넉넉지 않은 중에도
가진 것을 나누며 살아가던 그 시절, 전기도 없어 여러 가지로 불편하였지만 그때가 더 여유 있었고 사람들도 따뜻하고 순박했다. 일년에 몇 차례
홍수로 큰물이 내려 갈 때마다 떠밀려 가기도 하고, 겹겹으로 쌓여 지기도 하던 강가의 모래 속에 내 지나간 날들도 함께 묻혀 버렸으니......
소중한 사람들은 추억 속에 간직되어 있을 뿐이다.
빨래 줄에서 바람에 펄럭이는 옷들은 빛이 나고 선명하다. 내가 비누칠 할 것도 없이 세제 넣고 세탁기만 돌리면 저렇게 빨아 주는
것이다. 그 옛날 강가에서 풀물이 배어 있고 황톳물이 들어 빨래를 해도 깨끗지 않던 부모님 옷들. 이제 생각하니 그것은 자식들을 기르시고
공부시키느라 당신 몸 아끼지 않으시고 농사일을 해내신 희생의 흔적이었다. 고무신이 닳고 닳아 밑창이 나도록 논으로 밭으로 다니며 날마다 하시는
일이건만, 밭의 풀 한 포기라도 더 뽑아 내고 오시느라 어두워져야만 하루 일을 마치셨던 어머니, 캄캄해져서야 푸성귀가 담겨 있는 댕댕이 넝쿨
바구니를 들고 마당을 들어서시던, 그 아련한 어머니 모습이 저만큼에서 내게 다시 다가 오실 듯 하여, 널어놓은 옷자락으로 희미해 오는 두 눈을
닦으며 골목길을 응시해 본다. 여름이면 땀에 절어 쉰내 나던 그 옷들을 지금은 투정 않고 깨끗이 빨아 드릴 텐데, 빨래를 널다 말고 소용없는
후회를 하며, 그때 사립문 앞에서 맞이하던 어머니 모습을 다시 뵐 수 없는 안타까움에 가슴이 아려 온다.
첫댓글 강촌 마을이라는 것만 빼면 어린시절의 저의 모습과 풍경이 그대로 되살아나게 하는 글 속에서 저도 지난 날을 떠올리고 그래 그랬었지 하며 공감대를 갖게하는 글에 머물러 보았습니다..감사합니다..
옛시절의 모습이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빨래빨아 널고 마르는동안 개울에서 물놀이 하며 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젊은 분들은 이라송한 이야기일 거예요. 안보셔서....저는 잠시 옛개울에서 즐거울수 있었습니다.감사해요.
제가 여자라면 어쩐지 거의 모방한 듯한 생할이었는데, 남자라 빨래는 하지 않았지만, 하교후 개울에 매어 놓은 소에게 저녁 풀을 뜯기는 일은 제? 이었으니 말입니다. 빨래가 아니라 소 풀뜯기기 라는 제하로 글감이 되겠습니다.향수에 젖게해 주신 교수님 감사합니다.
솔직히 저의 윗 세대 아낙네들은 고생 많았다는 걸...인정합니다.....여름은 괜찮죠...한 겨울 개울가에서 빨래하시는 모습에서......현재에 따뜻한 온수..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밭에 풀을 조금이나마 더 뽑고 돌아오시는 그 옛날 부모님의 마음 ... 빨래 사립문 앞에서 엄마를 그리다가... 엄마 하고 부르던 그때... 그때가 정말 좋았지요 지금은 가슴아픈 지난날의 추억... 감사합니다
옛시절 대다수의 가슴에 간직되여있는 향수이지요. 정감있는글 잘읽고 추억에 머물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