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형부시랑으로서 휘자를 백추라고 하는 유공은 우신에게 있어서는 어르신네뻘이다.
학문은 자세하고 넓으며, 자못 저울질하여 감별하는 기질이 있어 물이 차와 맞는 것을 비교하더니 모두 일곱 등급이라고 하였다.
양자강 남령의 물이 첫째요
무석 혜산의 샘물이 둘재요
소주 호구사의 샘물이 셋째요
단양현 관음사의 물이 넷째요
양주 대명사의 물이 다섯째요
오송강의 물이 여섯째요
회수는 최하로서 일곱째이다.
내가 일찌기 병을 배 안에 갖추고 몸소 이 일곱 가지 물을 퍼다가 비교하여 보았는데, 진실로 그 말씀대로였다.
양절의 사정에 밝은 나그네의 말로는 널리 물어서 찾는 것이 아직도 모자란다 하기에 나는 일찌기 뜻한 바가 있었다.
영가의 자사가 되었을 때 동려강을 지나서 엄자탄에 이르니 시냇물의 빛깔은 지극히 맑고 물맛도 지극히 차서, 가족들이 묵어서 검게 변질된 차에 뿌렸더니 모두 꽃다운 향기가 그윽하였다.
또 좋은 차를 달였더니 그 고운 향기의 이름을 지을 수가 없었는데, 양자강 남령의 물보다 더욱 심오하게 뛰어났다.
영가에 이르러서 선암폭포의 물을 취해서 써 보았더니 또한 남령보다 밑돌지를 않았다. 이로써 그 나그네의 말이 진실되고 믿음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저 이치를 밝히어 사물을 살피는 것도 요즈음 사람들은 반드시 옛 사람에게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옛 사람들이 모르는 것으로써 지금 사람들이 잘 아는 것도 있을 것이다.
○ 강주자사 - 당나라 때의 강주는 지금의 강서성 구강시이다. 자사란 지방의 관장이었다.
형부시랑 - 형부란 형벌의 일을 맡아 보던 정부의 기구이다. 시랑은 차관을 가리킨다.
휘자 - 죽은 사람의 이름이다.
남령 - 남령은 강소성 진강시의 서북쪽에 있는 금산의 중령천 남쪽에 있다.
무석 - 강소성의 무석시를 가리킨다.
혜산 - 혜산사. 무석시의 서쪽 5리에 있는 혜산 첫봉우리의 백석오에 있다.
소주 - 화동구에 들어 있는 강소성의 소주시를 가리킨다.
호구사 - 강서성이 호구산에 있는 운암사로, 호구사 호부사 무구사 보은사 동산사라고도 한다.
단양현 - 지금도 강소성에 단양현이 있다.
관음사 - 단양현의 동북 3리에 있는 지형산을 일명 보은산 관음산이라고 하며, 지둔이 지형산에 세운 지형사를 보은사 관음사라고도 한다.
양주 - 강소성의 양주시를 가리킨다.
오송강 - 강소성과 절강성에 걸터 앉은, 태호에서 동북쪽으로 흘러서 황포강으로 들어가는 강을 가리킨다.
회수 - 하남성의 남쪽 끝인 동백산에서 안휘성과 강소성으로 흐르는 강이다.
양절 - 절강이라고 하는 전당강의 서북쪽을 절서라 하고, 동남쪽을 절동이라고 하는데, 절서와 절동 양쪽을 가리켜 양절이라고 한다.
영가 - 당나라 때는 강남(동)도에 속하는 영가군이었으며, 지금의 절강성 영가현.
동려강 - 절강인 전당강의 상류
엄자탄 - 후한 때의 엄광이 낚시를 드리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엄릉뢰라고도 하는 이 여울은 절강성 항주시 동려현의 동려강에 있다.
원화 9년(814)의 봄에 나는 비로소 진사가 되어 명성이 높아져 동기생과 함께 천복사에서 만나기로 기약하였다.
나와 이덕수가 먼저 와서 서상의 현감 스님 방에서 쉬고 있었다.
때마침 초지방에서 온 스님이 계셨는데, 여러 편의 책을 담은 자루가 놓여 있었다.
내가 우연히 한 권을 뽑아서 훑어 보았더니 모두가 글이 촘촘히 적힌 잡기였다. 책권의 끝에 '차를 달이는 책'이라고 하는 제목이 있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였다.
대종조에 이계경이 호주자사가 외어 부임하던 도중, 유양에 이르러 육처사 홍점을 만나게 되었다.
이계경은 평소부터 육우의 이름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수레를 붙이고 환담하였다.
그러한 인연으로 부임하는 고을로 가다가 양자역에서 묵게 되었다.
막 음식을 들고자 하면서 이계경이 이르기를, '육군이 차를 잘 한다는 명성은 천하에 들리고 있소이다. 하물며 양자강 남령의 물이 또한 뛰어난 절품임에 있어서리요. 이제 두 가지의 절묘함이 천년 만에 만났으니 어찌 덧없이 지내리까'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고지식한 군사에게 명령하여 병을 들려 배를 저어서 남령으로 깊숙이 들여 보냈다.
한편 육우는 그릇을 정돈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물이 당도하자 육우가 구기로 그 물을 떠올리면서 이르기를, '강물은 강물이지만 남령의 물이 아니라 강 언덕가의 물 같군..'이라 하였다.
그러자 심부름꾼이 말하기를,'소인이 배를 상앗대로 저어서 깊숙히 들어가는 것을 본 사람이 수 백명이 되는데, 어찌 감히 헛되게 속이겠읍니까?'라고 하였다.
육우는 아무 말도 없이 이미 여러 동이에 돌을 담아 절반에 이르자 급히 멈추고 다시 구기로써 떠올리면서 말하기를, '이것부터가 남령의 물이니라'라고 하는 것이었다.
~ 중략
본시 차란 산지에서 달여서 좋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럴 것이 물과 흙이 차와 걸맞기 때문인데, 그곳을 떠나면 물의 공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그렇지만 잘 달이고 그릇이 깨끗하면 그 공은 완전하다.
~ 중략
옛 사람이 이르기를, '물을 토하여 병 속에 두면 어찌 능히 치수와 승수를 가리랴'라고 하였다.
이 말은 구별이 분명히 되지는 않으나, 만고 이래로 믿을 만하여 의심할 나위가 없다.
어찌 천하의 이치를 아직도 말할 수 없다는 것과 옛 사람의 연구가 자세함에 이르러도 이미 미진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겠는가.
학문에 힘쓰는 군자는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않아야 한다.
어찌 가지런한 것을 생각하는데 멈출 뿐이겠는가. 이 말에도 근면에 도움이 되기에 적어두는 것이다.
○ 어찌 능히 치수와 승수를 가리랴 - 열자의 '설부편'에서 온 글이다. 즉 공자가 말하기를, '역아(易牙)라는 요리사는 두 강물의 물맛을 분간하였다'고 했다. 치수와 승수는 산동성에 있다.
어찌 가지런한 것을 생각하는데 멈출 뿐이겠는가 - 이 대목은 '논어'의 '이인편'에 있는 다음의 글에 바탕을 둔 것이다. 공자가 이르기를, '어진 이를 보고는 그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생각하고, 어질지 못한 사람을 보고는 속으로 자신을 반성한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