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전 이미 서양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영화 ‘동승’에는 3년 동안 발품을 팔며 찾아낸 아름다운 풍경들이 오롯이
담겨있다. 눈이 무릎까지 차오르는 오대산 월정사와 태백산 산골 마을의 아름다운 돌담길, 촬영당시 학생이 열 명도 안 됐다는 무주구천동의 작은
학교, 정선 민둥산의 아찔한 억새밭… 막 그려낸 수채화 같은 영화 속에서 봄내음 물씬 풍기는 초록빛 산하를 따라나섰다.
봉정사 전국의 사찰이란 사찰은 모조리 훑었지만
맘에 드는 장소가 없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찾아갔다는 곳 봉정사. 안동역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한 시간을 들어가야 하는 이 절은 제법 외진 산
속에 자리 잡은 절이지만 영화인들에게는 제법 알려진 유명 촬영지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를 시작으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동승’ 등의 영화를 촬영했던 이 절의 색다른 매력 탐구.
Point 1 ‘영산암’ 알콩달콩 살아가는 세 스님의 산사생활 봉정사로 가는 버스를
가득 매운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다. 오랜만에 안동 시내로 장보러 나왔던 촌로들의 손에는 갖가지 물건이 들려있다. 혼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아 보이는 짐을 들었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 한 분이 “봉정사 들어가나 보네.” 하며 인사를 건넨다.
자신도 봉정사를 찾는 신도라며 절이라서가 아니라 옛것이 그대로 살아있는 곳이라 더욱 좋다는 말도 덧붙인다. 버스에서 내렸더니 주차장 위로 호젓한
참나무 길이 이어진다. 가파른 오르막길이지만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10여분 동안 오르다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천상의 선녀가 내려와 등불을
밝혔다는 전설 때문에 이름 붙여진 ‘천등산’의 품에 안겨 있는 절은 언뜻 조그만 공원 같아 보이기도 하고 커다란 집처럼 보이기도 한다. 애어른
할 것 없이 머리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게 만든 입구를 통해 경내로 들어서니 상상도 못했던 풍경이 펼쳐진다. 밖에서는 안이 잘 들여다보이지
않지만 안에서는 산 전체가 조망되는 독특한 구조다.
대웅전 오른 쪽으로 나 있는 돌계단을 따라 200m정도 올라가면 동승의 촬영장소인 영산암에 이른다.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는
애기스님 도념과 어른이 되어가는 총각스님 정심, 엄하지만 한없이 따뜻한 큰 스님이 함께 사는 곳이 바로 여기, 영산암이다. 감독이 ‘3년간
둘러본 100개의 사찰 중 100번째 장소’였다고 밝히기도 했던 이 곳은 본절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호젓한 느낌을 주는 봉정사의 부속암자다. 세
사람이 머무르는 공간으로 딱 좋을 것 같은 아담한 규모의 이 암자에서 대부분의 씬을 촬영했다. 매일 밤 도념이 불을 밝히던 석등이며, 세 명의
스님이 사이좋게 밥을 먹던 툇마루, 금방 해 온 나무를 쌓아두던 뒤뜰도 모두 여기에 있다.
둘러보면 봉정사에는 영산암 외에도
볼거리가 많다. 그중에서도 국보 제15호인 극락전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아 찾는 이들을 발길이 끊이지 않는곳.
현재는 보수공사 중이지만 언뜻 보기에도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위용이 흐른다. 대웅전에서는 매일 새벽 4시와 저녁 6시에 예불이, 아침 7시와
11시, 오후 5시에는 공양이 행해진다. 속세보다 일찍 찾아오는 어둠 속에서 범종을 울린 후 합장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엄숙함이
느껴진다.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느끼는 묘한 긴장감이랄까. 미리 연락을 취하고 신원을 밝히면 누구라도 절에 머물며 이 신성한 의식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니 놓치지 말자.
문의 봉정사 (054)853-4181, 4183
Point 2 ‘지조암’ 도깨비도 달아나는 기와 그림이 있는 곳 봉정사로 오르는 참나무 길을 걷다보면 두
갈래 길을 만난다. 오른쪽 길이 봉정사로 이르는 길이고 나머지 한 쪽 길이 지조암으로 가는 길이다. 지조암으로 들어가는 길은 200m 남짓.
잔걸음으로 10분 정도 걸리는 짧은 길이지만 좁은 길이 제법 운치 있다. 양 쪽으로 솔숲과 참나무 숲이 늘어서 있고 발 아래에는 황토 빛이
선명하다.
높다란 언덕위에 올라앉은 암자에 도착하니 새하얀 페키니즈 한 마리가 방문객을 맞는다. 이 곳의 주인은 오래된 기와에
귀면 그림을 그리는 귀일스님. 갑자기 찾아간 불청객에게 아낌없이 차 한 잔을 내어주신다. 따끈한 아랫목에서 다도를 즐기며 나누는 이야기는
재미나기만 하다. 기와에 그려진 귀면 그림이라. 낯설게만 느껴지지만 알고 보면 통일신라 때부터 잡귀를 쫒기 위해 귀면기와를 지붕에 올려왔단다.
이런 전통이 사라진 건 일제시대 때부터. 민족문화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이를 모두 없애버렸다. 귀일스님은 10년 동안 전국의 절을 돌아다니며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이를 재현해냈다.
오래 된 절이 보수 공사를 할 때마다 버려지는 기와를 모아 그 위에 전통 귀면 그림을 그린 지
벌써 5년 째. 귀면은 중국, 일본에도 있지만 각 나라마다 특징이 있다. 일본의 경우는 강한 색 배합으로 공포감을 자아내는 것이 특징이지만
스님이 그리는 한국 전통귀면은 한결 부드럽고 따뜻하다. 서로를 감시하느라 늘 한 쪽을 흘겨보고 있는 부부귀면의 해학적인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그림 한 개를 디자인하려면 적게는 일주일, 많게는 1년도 걸린다. 외국인들이 와도 딱히 선물할 만한 전통공예품이 없는 현실에서 스님이 그려내는
기와그림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문의 지조암 (054)852-5759
하회마을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자료 제122호로 지정되어 있는 하회마을은 문화재다. 너무나 익숙한
하회란 이름은 낙동강물이 마을을 감싸며 돌고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 1999년 영국여왕이 다녀간 것을 계기로 세계적인 명소로 자리 잡은 이
곳에는 전통이 있고, 자연이 있고 사람이 있다. 영화 속 하회마을은 ‘해방’의 공간으로 그려지고 있다. 더러는 욕심을 버리기 위해 더러는 희망을
찾기 위해 떠나가는 주인공들을 감싸주는 따뜻한 공간. 굽이치는 낙동강 물길을 따라 하회마을 여행을 떠난다.
Point 3 ‘전통가옥 마을’ 곳곳에서 묻어나는 전통의 향기 안동시내에서 승용차로 40여분 들어가다보면
전통가옥이 정겹게 모여 있는 모습이 멀리서도 한 눈에 들어온다.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집들이 동서남북으로 제각각 자리 잡은 모습이 이채롭다.
질서가 있는 것 같으면서도 제각각인 독특한 모습. 구릉을 중심으로 낮은 곳을 향해 배치했기 때문에 집의 방향이 일정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여느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 때문인지 구석구석 둘러보고 싶은 욕심이 앞선다.
마을 입구에는 장승공원이 들어서 있어
방문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나무를 깎아 만든 갖가지 장승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을 보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지만 재미있는 표정들이 이내
정겨워진다. 흙 담 골목을 따라 굽이굽이 걸으면 자연스럽게 마을을 한 바퀴 돌게 된다. 걸으면 걸을수록 그 규모가 큰 것에 놀라게 되는데 알고
보니 기와집 93동, 초가집 126동등 모두 290동의 가옥이 모여 있단다.
한참을 들어가다 보면 그 옛날 한약방을 연상시키는
조그만 집을 만날 수 있다. 입구에는 ‘한약을 먹을 수 있는 곳’이라는 방이 붙어있는데 갖가지 약재들이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
커다란 독에 약재를 넣어 묻어놓은 풍경이 재미있다.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 먹는 쌍화탕, 노인들이 특히 좋아한다는 십전대보탕 등을 직접 먹을 수
있는데 가격은 3천원에서 5천 원 선. 좀 더 들어가면 서애 유성룡선생의 종택이라는 ‘충효당’, 풍산 유씨의 종가인 ‘양진당’, 겸암 유운룡
선생이 서재로 사용했다던 ‘빈연정사’ 등을 둘러볼 수 있다.
곳곳에는 전통음식을 맛 볼 수 있는 음식점이나 기념품 가게도 눈에 띈다. 추억을 담아가고 싶은 관광객들에게는 반가운 일이지만
모든 것이 자연 그대로인 이 마을에서 인공의 묻어나는 곳은 이 곳 뿐인지라 아쉬움이 남는다. 넉넉하게 한 시간이면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지만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게 보이지 않는 전통의 힘인 것일까. 매주 일요일 오후 세 시에는 무형문화재 69호인 하회별신탈놀이가
상설공연 된다.
Point 4 ‘만송정 백사장’ 넓은 세상 나들이 나가는 길 애기스님과 총각스님이
포경수술하러 서울로 떠나는 길이 바로 이 길, 만송정 백사장 길이다. 잔뜩 기대에 부풀어 성큼성큼 앞서가는 총각스님을 따라가며 “같이 가”를
외치는 애기스님. 이들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건 빼곡하게 들어선 솔숲과 넓은 백사장이다. 건너편에는 기암절벽을 이루고 있는 부용대가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강 건너편에 있지만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옥연정사, 겸암정사의 정취도 흥겹다. 매해 이 곳에서는 ‘선유줄불놀이’가 열린다.
절벽의 맨 위에서 불을 붙여 강으로 떨어뜨리는 흥겨운 놀이다. 산과 강, 숲으로 완벽하게 둘러싸여 있는 묘한
지리조건으로 하회마을은 그동안 단 한 번도 외침을 받지 않았다. 으리으리한 기와집부터 조그만 초가에 이르기까지 고택들이 이토록 잘 보존되어 있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넓은 백사장은 영화 중반부 애기스님과 총각스님이 함께 뛰노는 곳으로도 등장한다. 정말이지 보면 볼수록 묘한 풍경이다.
강과 절벽, 백사장과 솔숲.
찾아가는 길 승용차 : 경부고속도로 호법 IC-만종 IC-제천-단양-영주-안동 /
중부고속도로 음성 IC-518번 지방도로-37번 국도-음성읍-괴산군 연풍면-3번국도-이화령터널-문경-예천-안동
버스 :
동서울터미널에서 안동까지 가는 고속버스가 3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첫차 오전 7시, 막차 오후 6시 45분. 요금은 14900원.
시내버스 하회마을 안동시외버스 터미널 건너편에서 하회마을로 가는 버스를 이용하면 약 40분정도 소요된다.
06:20, 08:40, 10:20, 11:25, 14:05, 14:40, 16:00, 18:10 출발. 봉정사 안동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에서 버스를 이용하면 50분정도 소요된다. 06:00, 08:15, 14:20, 17:35, 19:00 출발
안동
먹거리 하회마을에서는 안동을 대표하는 각종 먹거리들을 풍성하게 맛 볼 수 있다. 전통 음식점 간판을 걸고 있는 곳만도 꽤 여러
곳. 그 중에서도 안동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헛젯밥은 별미 중에서도 별미다. 안동에서는 예부터 제사를 지낸 후 제사음식으로 비빔밥을 해
먹었다. 이 전통이 이어져 제사가 없을 때에도 같은 재료를 마련해 비빔밥을 만들어 먹게 됐는데 일반적인 비빔밥과는 달리 고춧가루를 쓰지 않으며
붉은 색 재료를 쓰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고사리, 미나리, 도라지, 시금치 등의 각종나물에 쇠고기 다져 볶을 것을 섞어 간장과 깨소금,
참기름으로 비벼 먹는다.
쇠고기와 버섯 등으로 끓여낸 탕과 각종 산적이 곁들여지는데 보통 1인분에 6천원에서 1만 원 선.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운영하는 하중재는 음식점이 아니라 시골 외가집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정겨운 고택이다. 곳곳에 커다란 틈이 숭숭 뚫린 마루에
앉아 먹는 헛젯밥이 일품이다. 해물전 5천원, 하회촌두부 5천원, 도토리묵 5천원, 안동소주 2만원. 문의 하중재 043-853-2300
잠잘곳 하회마을에 머무는 동안은 숙식에 대한 부담을 잠시 접어도 좋다.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민박집들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 취향에 따라 종택, 정자, 초가집, 기와집 등의 다양한 형태의 민박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오후 5시에서
다음날 12시까지 사용가능하다. 집집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1박에 2만원에서 5만 원 선. 주인아저씨가 직접 나무로 불을 때주는 아랫목에
앉아 아주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먹을 수도 있다. 식사는 1인당 3천원에서 5천 원 선. 마을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예약시스템을 통해 전화로
예약가능하다. 문의 하회마을 관리사무소 054-854-3669
순천
선암사 절 안에서 생활하는 모습은 봉정사에서 촬영했지만 절 주변의 촬영은 모두 선암사에서 이루어졌다. 영화
‘취화선’의 촬영지이기도 한 이 곳 역시 아름다운 절경으로 유명한 곳. 자신을 수양아들로 데려갈지 모르는 예쁜 아줌마를 기다리는 애기스님이 넋을
놓고 시간을 보내던 곳도, 총각스님이 욕심을 버리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홀연히 떠나가던 그 길도 바로 이 곳에서 촬영했다.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곳, 선암사를 찾아간다.
Point 5. '선암사'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곳 개울을 따라 나 있는 아름다운 숲길을 따라 약
20여분을 오르다 보면 아름다운 다리 하나가 보인다. 절로 들어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승선교는 무지개 모양을 하고 있다. 이 다리를 건너면 한
순간 깨끗한 마음이 될 것 만 같은 기분. 속세와 신의 세계를 연결하고 있는 통로인 것만 같아 신비감마저 느껴진다. 오랫동안 선암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설레임을 안겨주던 이 다리는 차량 통행로가 생긴 후부터 붕괴위험 때문에 직접 건널 수 없게 됐다. 길을 막아 놓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다리를 건너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계곡에 내려와 한참동안 그 풍경을 보고 가곤
한다.
영화 속 인물들도 이 다리를 건너 세 스님을 찾아오고, 또 다시 떠나가곤 한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들을 위해
불공을 드리러 오는 예쁜 아줌마를 기다리는 애기스님. 승선교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그녀가 다리를 건너오는 모습을 발견하면 “왔다!” 소리치며
달려간다. 빨갛게 익은 사과를 몰래 갖다 놓기도 하고 들꽃을 엮은 꽃다발을 만들기도 하던 모습이 떠올라 웃음 짓게 된다.
산사
뒷 쪽으로 한참을 들어가면 영화 포스터에서 볼 수 있었던 아름다운 돌샘을 볼 수 있다. 산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약수가 모아져 길다란 나무를
통해 내려온다. 모두 네 개의 돌샘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맨 위의 샘은 부처님께 드리는 공양수이고 두 번째는 스님들을 위한 식수로 쓴다. 세 번째
샘물은 받아다가 공양에 필요한 쌀이나 야채를 씻는데 쓰고 마지막 물을 허드렛물로 쓴단다. 들통을 매고 샘으로 물 길러 다니던 애기스님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또 한 번 웃어본다.
사실 선암사는 봄마다 펼쳐지는 꽃잔치로 더욱 유명하다. 매해 봄 절을 뒤덮는 산수유 꽃과 목련, 동백꽃은 말 그대로 꽃대궐을
이룬다. 아찔한 꽃무리 속에 있으면 그리움도, 아픔도 모두 다 잊혀질 것만 같다. 근처에 800년 전통의 자생다원이 있으니 한 번 쯤 둘러보는
것도 잊지 말자.
문의 선암사 (061)754-5247
찾아가는 길 승용차 호남고속도로
승주 IC-832번 지방국도-선암사
버스 강남고속터미널에서 순천까지 가는 고속버스가 3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첫차 오전 6시
20분, 막차 오후 6시.
시내버스 순천역에서 선암사까지 가는 1번, 100번 버스 이용하거나 순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승주읍까지
가는 시외버스 이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