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년의 미켈란젤로는 누구로부터 주문을 받지 않고, 자신을 위한 피에타상들을 작하였다. 위의 두번째 <피에타>는 그의 나이 70세쯤에 자기무덤에 놓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 또한 미완성이지만 종래의 피에타 도상과는 전혀 다른 이 <피에타>의 구성은 그의 종교관을 짐작케 한다.
양쪽의 두 마리아가 시체를 부축이고 있지만 시신은 그들에게 의존하지 않는 듯 미끄러져 내리는 듯하다. 그리고 그의 뒤에 있는 거대한 니코데모는 마치 건물의 도움과 같이 그를 보호하며 얼굴엔 미켈란젤로 자신의 자화상을 새겨놓았다. 니코데모는 원래 예수를 비난한 율법학자들과 같은 유대인이었으나 모험을 무릎 쓰고 예수의 무덤을 제공한 사람이다. 그의 존재를 이렇게 크게, 그리고 그의 얼굴엔 자신의 모습을 새긴 미켈란젤로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학자들은 카톨릭세계에 있었던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개혁적인 성향을 이렇게 나타낸 것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다. 개혁성향의 람들을 다시 탄압하던 1555년경 그가 이 상을 부수려 했던 행동은 이를 반증하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론다니니 피에타 , 1552-64년경 , 대리석 , 높이 195, 밀라노 스포르체스코성
일명 <론다니니 피에타>라고 부르는 또 다른 피에타는 미켈란젤로가 죽기 며칠 전까지 붙들고 있던 작품이다. 시신은 길게 늘려있고 예수를 부축해야할 마라아는 오히려 시신에 얹혀있는 듯 불안정하다.
죽음이 가까운 시기에 만든 이 <피에타>는 그 청년기에 만든 바티칸 소장의 <피에타>와 너무나 큰 대조를 보인다. 아름다운 균형과 완전한 기법은 모두 사라지고 절절한 간구만이 남았다. 그러나 이 피에타는 무르익던 르네상스 시내가 가고, 종교개혁과 반 종교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을 마감하던 미켈란젤로가 구원을 갈구하는 참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