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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북한의 국경을 가다(중)
■ 이지범 - 고려대장경연구소 소장 ■
백두산 원경사진
솔 향을 맡으며 이른 아침부터 백두산의 산문(山門)으로 향했다. 이도백하에서 북산입구까지는 30Km가 넘는 자작나무 숲길이 펼쳐진다. 중국 땅을 통해 백두산 천지에 가려면 3가지 루트가 있다. 북산 산문입구에서 오르는 북쪽코스(일명 북파)와 서파, 남파코스이다. 이를 다 경험하면 ‘백산그랜드슬램’을 했다고 한다. 북파코스는 지금도 활화산의 수증기가 계속 피어오르는 온천지대인 협곡과 비룡(장백) 폭포를 경유한다. 천문봉 정상의 장쾌한 파노파마가 일품이다. 1,442개의 계단을 오르는 서파코스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지만 외계에 온 듯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금강대협곡이 으뜸이다. 계절에 관계없이 일정 온도의 찬 기온을 유지하는 제자하(梯子河)라는 지하 강과 압록강의 발원지로 불리는 대협곡은 평균 폭이 120m, 깊이가 80m, 길이는 약 70km이다. 개방구간은 1.5km이다. 남파코스는 광활한 초원지대와 지천에 야생화가 피어있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낭만적인 코스이다. 압록강 상류를 거슬러 오른 기분으로 다양하고 다채로운 지형과 식생을 볼 수 있는 재미가 있다. 이들 코스를 살펴보면 관광으로 갈 때는 북파코스를, 산행으로 가고자한다면 서파와 남파코스를 선호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북측에서는 삼지연을 거쳐 천지까지 오르는 밀영코스가 가장 유명하지만, 이 코스는 우리에게 지금 제한되어 있다. 중국 사람들이 백두산에 오를 때 가장 많이 오르는 코스가 북파이기도 하다. <간도학교> 일행들도 북파를 택했다.
백두산 천지 가을풍경
산의 높이보다 넓이로 말하는 백두산은 세계에서도 가장 넓은 산으로 꼽힌다. 총면적이 7만㎢인데, 약 10㎢가 되는 남한 땅의 70% 정도가 된다. 백두산은 지금으로부터 33만 년 전 시기에 해당하는 화석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가 살던 중생대말~신생대 제3기 중신세(홍적기)에 화산폭발로 인해 3,500m 이상으로 탄생되었고, 산의 정상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솥’처럼 생겨난 칼데라호인 천지(天池)가 있다. 천지는 1050년에 화산폭발로 형성되어 1410년 전까지 오늘날의 모습으로 완성된 것이 학설이다.
백두산(白頭山)은 산꼭대기가 1년 중에 8개월 이상 덮인 만년설 같은 하얀 눈이나 백색의 부석(浮石)으로 사계절 희게 보여이고 희다는 뜻으로 ‘백(白)’ 자를 쓴 것이다. 중국에서는 창바이산(長白山)이라 부른다. 영화〈최종병기활>에서 사용했던 만주어로 표기하면, '골민 샹기얀 알린’(golmin šangiyan alin : 果勒敏珊延阿林)'을 의역한 것인데, '골민'은 기다란(長), '샹기얀'는 희다(白), '알린'은 산(山)을 의미한다.
비룡=장백폭포
백두산에 관한 최초의 문헌은 기원전 3~4세기경 쓰여진 중국의 고대신화집인《산해경(山海經)》대황북경(大荒北經)에 불함산(不咸山)으로 기록되었으며, 역사의 기록에는 단단대령(單單大嶺)·개마대산(蓋馬大山) 등과 당나라 때에는 태백산(太白山) 그리고 금나라 때부터 장백산(長白山)·백산(白山) 등으로 불렸다. 한국의 문헌에서는 『고려사』성종 10년(981)에 백두산이라는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압록강 밖의 여진족을 쫓아내, 백두산 바깥쪽에서 살게 하였다.”고 적었다. 1285년(충렬왕11) 일연스님의『삼국유사』고조선조(條)와 1287년(충렬왕13) 이승휴가 지은 역사책 『제왕운기』등에는 태백산으로 나온다. 신시(神市) 등 단군신화와 더불어 부여, 고구려를 설명하면서 ‘태백산’을 무대로 언급한 점으로 보아 조선에서는 대체로 10세기 후반부터 이 산을 백산, 백두산이라 부르고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민족이 백두산을 민족의 성산(聖山)으로 널리 숭상하게 된 것은 고려 태조 왕건의 탄생설화부터라고 비정할 수 있다.
예로부터 한민족과 만주족의 영산인 백두산은 대한민국의 애국가와 북한의 국가에서도 나온다. 고려시대에는 산천에 제사를 지냈고, 조선시대의 유교적 제사 방식(祀典)인 중사(中祀)를 지내는 제사 터가 지도에 표시될 만큼 유명하다. 고려시대 인종 9년(1131) 기록을 보면, “서경에 세운 '팔성당'에는 호국 백두악 태백선인 실덕 문수 사리보살(護國白頭嶽太白仙人實德文殊師利菩薩)이라는 신격을 모셨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남아있다. 『삼국유사』에서는 신라가 신성시했던 5대 산(五嶽)에 관한 전설로 "이 산은 곧 백두산의 큰 줄기로, 각 대(代)에는 진신이 늘 있는 곳"이라 하였다. 이처럼 백두산은 한반도의 모든 산의 으뜸인 조종(祖宗) 산으로서 신앙적으로도 매우 중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룡=장백폭포
한번 만이라도 이런 산에 들 수 있다는 것(屬入山)과 무사히 안길 수 있다는 것(屬抱卵) 자체만으로 행운이었다. 백두산 천지는 천운(天運)이 있어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전생에 복이 많으면 흐린 날씨도 좋아진다”는 속담도 생겨났다고 한다. 백두산의 현지 가이드들이 “100번 올라서 천지를 2번 보기 어렵다”고 지어낸 농담도 있다. 날씨와 타이밍을 잘 맞추어 백두산 천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행운이라 여길 정도다.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 1994년 등 3차례 방문했지만 “하루 평균 23번씩이나 변한다”는 백두산의 날씨로 인해 천지를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한다. 장백산을 소개하는 중국 자료에는 백두산의 날씨에 대해 ‘하나의 산에 4계절이 있고, 십리만 벗어나도 하늘이 다르다(一山有四季 十里不同天)’고 하였다. 그래서 6월말에서 7월초, 8월말에서 9월초가 백두산 방문의 최적기라고 한다. 10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겨울이고, 봄이 되면 곧 여름, 가을로 이어져 버리는 백두산의 절기는 안개와 구름, 강풍과 폭우, 눈과 혹한 등 연중 변화무쌍한 날씨를 품고 있다. 특히 천지는 하루에도 기상변화가 수차례 있고 안개도 잘 껴서인지 쾌청한 천지를 볼 수 있는 확률은 50%에 불과하다. 따라서 천지를 제대로 보고 싶다면 두 번을 오르는 것이 가장 좋다. 대륙의 작은 거인으로 불리는 덩샤오핑(鄧小平)이 1983년 여름, 천지를 방문하고 친필 휘호한 글씨는 천문봉 정상에 '텐츠(天池)’ 비석으로 세워져 천지를 바라 볼 수 있는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백두산 정상에 있는 천지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칼데라호(caldera lake)이다. 이 호수는 오랜 지질시대를 걸쳐 여러 모습으로 바뀌면서 새롭게 2차적인 모양을 이루게 된 지금의 백두산 분화구에 담겨 있다. 이 분화구는 평면상에서 보면 그 모양이 불규칙적인 곡선으로 이루어진 원형에 가까운데, 카오스적인 힘을 빌려 자름 면으로 본다면 밑이 우묵하게 파인 타원형 접시의 자름 면과 비슷하다. 천지는 바로 이러한 접시모양의 밑 부분에 해당하는데, 분화구 전체 높이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물이 차여 있다. 천지는 아주 오랜 세월동안 머리에 흰 눈을 이고 천하를 굽어보고 있다. 수시로 변하면서 만들어지는 구름도 힘겨워서인지 백두산 허리에 휘감기고, 그 위에 크고 깊은 분화구인 커다란 솥(칼데라)에 물을 담고 있는 곳은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다. 둘레 길이는 14.4㎞, 최대 깊이는 384㎚, 평균 깊이는 213.3㎚, 면적은 9.16㎢이며 물용적은 약 1,955,000,000㎥이고 물의 해발 높이는 2190.15㎚이다. 이러한 위용과 신비로움, 아름다운 고산호수의 풍치로 하여금 예로부터 세상에 널리 알려진 천지는 먼 옛적부터 ‘대택(大澤)’이라 불렀고, 18세기 후반 채색필사본 지도책《여지도》등 우리나라 고지도나 고서에서는 천지 대신에 대택 혹은 대지(大池)로 표기되었다. 천지란 지명의 이름은 1908년 청나라 봉길 감계위원인 유건봉이 처음 사용한 이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비룡=장백폭포 가는 길 온천지대 천지의 물이 얼마나 맑고 깨끗하였으면, 백두산의 암벽지대에서 바람을 집으로 삼아 사는 칼새(white-rumped swift)가 창공인줄 알고 날아들다가 헛갈려 천지 물에 떨어지는 일도 더러 있다고 한다. 약탄산수의 맛을 지닌 천지의 수질 맑음도는 호수가 주변에서 10~12㎚이고 호수중심에서 16㎚로 분석된 바 있다. 그래서인지 호수 중앙으로 갈수록 청푸른 초록색을 점점 더 띠고 있다. 겨울철에는 천지가 투명한 에메랄드빛 얼음으로 뒤덮여 만물이 잠자는 듯이 천지의 신비로운 경관이 펼쳐지고 시시때때로 연출되는 아름다운 풍치는 백두산 천지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함이다.
이 천지에 괴물이 산다는 전설이 있다. 고대 신화집인《산해경》17권에는 백두산에 산다는 괴생물 이야기가 있다. 그 괴물은 백두산을 근거로 했던 숙신씨(肅愼氏)의 나라에 비질(蜚蛭)이라는 것이다. 날개가 넷이고 짐승머리에 뱀 몸통을 하였으며 이름을 금충(琴蟲)이라 하였다. 천지에서는 강한 돌개바람(龍拳)이 자주 일어난다. 용권이 천지호반에서 일어날 때에는 야구공만한 돌들이 암벽 위로 솟구쳐 오르고, 천지물 위에서 일어날 때는 용오름으로 불리는 물기둥이 하늘높이 치솟아 오른다. 이 때 물기둥은 수십~수백 미터 높이가 되며 그것이 200~300㎚까지 이동할 때에는 물 표면에 생기는 큰 와류작용으로 인해 그 주위에 물안개가 자욱이 낀다. 이 때문에 옛 사람들은 천지를 용이 사는 못이라 하여 ‘용담’ 또는 용왕이 사는 못이라 하여 ‘용왕담(龍王潭)’이라 불렀다. 중국에서는 용담·온량박(溫凉泊)·도문박(圖門泊)이라고 한다. 근대 해외토픽으로 등장했던 영국 스코틀랜드협곡의 네스호에서 나타났던 공룡류와 같은 괴물에 대한 이야기도 천지에서 여러 번 생겨나기도 했다.
천지는 10세기 초에 폭발로 인해 형성된 다음, 1000년이 된 물을 날마다 새롭게 만들고 있다. 매일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물 40%와 강수량이 약 60%로서 그 수량은 20억 톤(총적수량은 20억40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량의 물을 자랑한다. 천지의 물은 오직 한 곳으로만 빠져 나간다. 그곳이 바로 ‘달문(闥門)’이다. 천지의 물은 이 달문을 통하여 높이가 조절되고 수량이 유지된다. 그러나 천지의 강수량이 매우 적어서1978년 7월 달문의 물이 흐르는 것을 멈춘(斷流) 일도 있었다. 이곳 개활지인 달문을 통해 아래로 흐르는 폭포를 ‘승사하(乘槎河)’라 부른다. 백두산 천활봉과 룡문봉 사이에 끼여서 흐르는 강물이 “흡사 하늘에 놓인 사다리처럼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지역 사람들은 ‘이 강(江)을 하늘로 통하는 강’이라 하여 통천하(通天河), 천하로 부르기도 한다. 또 이곳에서 처음 시작되는 폭포는 북한에서 비룡폭포(飛龍瀑布), 중국에서 장백(长白)폭포라 부른다. 총 높이 68m로서 90도의 수직으로 떨어지는 장쾌한 폭포의 높이만 해도 36m이다. 이곳 비룡폭포 앞에서는 말 그대로 천지의 용이 하늘로 수직으로 승천하는 기운을 느끼게 된다. 이 폭포수는 중국 지린성(吉林城)ㆍ헤이룽장성(黑龍江省)을 가로질러 흐르는 송화강(쑹화강)의 발원이 된다.
백두 남파코스
1861년(조선 철종12) 고산자 김정호는 <대동여지도>의 머리글에서 넓이 1,000리에 산꼭대기에 있는 못의 이름을 ‘달이 솟아오르는 입구(闥門)’라고 하였듯이, 백두산 천지는 참으로 대자연의 모든 비밀을 독점하고 있다. 여기에다 갖가지 오묘한 조화를 부려 하늘과 땅을 천변만화시킴으로 알라딘의 요술램프와도 같다. 휴화산인 백두산은 10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화산이 일어났다. 고려 정종 원년(946년) 10월 7일에 “이 무렵 하늘에서 고동소리가 들려 사면했다”(『고려사』세가世家),『고려사절요』)는 기록과 『일본략기(日本略記)』는 “정월(947년) 2월 7일에 하늘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났다”고 한 것은 후대 지질학자들의 시료 연구와도 일치한다.《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597년·1668년·1702년과 그후 1898년, 1903년 5월에도 백두산이 폭발하였다. 요술램프가 100년 등 몇 년 단위로 열린다는 주기설 주장에는 아무런 신빙성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조상들은 백두산의 화산폭발을 불을 내뿜는 성역으로 간주함으로서 민족의 시원을 말해주는 신화와 전설의 무대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 옛날, 그렇게도 성스러운 빛이 지금에 화산폭발이라는 과학적 근거로부터 백두산의 신화가 희미하게 무디어졌다. 15세기 중엽 거란, 몽고(北狄)의 병란에 대해 남이(南怡) 장군이 “큰 칼을 빼어 들고 백두산에 올라보니, 밝고 맑은 천지에 전쟁의 기운(腥塵)이 덮여 있구나. 언제 전쟁을 없애고 평화로운 세상 만들 수 있을까”하는 한시를 통해 평화를 바라는 장수의 마음을 담았다. 이렇듯 우리 민족은 고대로부터 무엇을 염원하고 기상을 세우기 위해 백두산에 올라 정성으로 기원했던 것 같다. 일촉즉발의 전쟁 기운이 맴도는 작금의 한반도에 백두산의 정기로부터 평화와 통일이 잉태되기를 바래본다.
우주의 풍경이라 할 수 있는 화산은 백두산의 비룡폭포 아래 온천계곡에 작은 성혈로나마 군데군데 자리를 잡고 있다. 초겨울의 날씨에도 열기가 식지 않고 지표 아래에서 꿈틀대는 거대한 에너지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신호탄처럼 백두산에는 지금도 화산활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 신호탄이 언제 어떻게 다시 활화산이 될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밤사이 내린 눈과 비로 인해 도로 결빙되면서 천지에 오르지 못하고 비룡(飛龍)폭포를 만난 필자 등 <간도학교> 일행에게 성혈의 훈기로나마 전달되었다. 하늘이 도와야 그 얼굴을 내미는 천지에서 바랬던 조중 국경선의 표석이나 반도로 쭉 내리뻗은 백두의 산줄기를 움켜잡고 싶던 큰마음은 승사하(비룡폭포)를 타고 내리는 강물에 손을 담그며 풀어 놓았다.
이제 백두산은 불을 내뿜지도 않고, 달이 뜨고 잠드는 오라클이던 달문의 전설도 사라지고, 지질학상의 칼데라호라 일컫는 천지만이 덩그렇게 남아 있다. 그러나 백두산이 만드는 설경은 특이한 관광 대상이다. 눈이 내리고 쌓이는 곳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겠지만 고고하고 우아한 백두의 설경은 겨울 풍치의 모든 요소들을 다 갖추고 있다. 만주벌판의 적막한 광야의 중심인 백두산은 멀리서 보게 되면 마치 눈이 쌓이고 쌓여 솟아 오른 설산(雪山)이고, 백두 마루에서 사방을 둘러보는 경치는 눈 바다(雪海)에 돛배를 타고 떠있는 것 같다고 한다. 이 평화의 배는 남북의 새로운 물꼬가 다시 열리는 날, 저 멀리 남도까지 노저서 갈 수 있으리라고 염원하며, 조국산하 태초의 젖줄인 압록강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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