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칠봉에는 깔딱이 하나다.
노용춘
꽤 오랜만에 산을 찾을 생각을 했다.
윤성의 계속되는 압박(?)도 있었고 쉽게 회복되지 않는 심신의 충격들로 해서 걱정도 있었으나 그래도 싱그러운 봄기운 피어오르는 산에 가서 상서로운 기운을 받아보자는 작은 소망으로 산행에 동참하겠다고 했다.
윤성의 사전 문자에 의하면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고 오라고 했다.
간단하게 빵과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기로 했단다.
드디어 4월 1일 아침 윤성의 문자가 도착했다.
“이승범이는 07:40분, 노형은 07:45분, 이기송이는 07:50분까지 집 앞에서 기다릴 것.”
물 두통과 혹시 몰라서 아이젠 그리고 여벌옷을 챙겨가지고 큰길가에서 기다리는데 승범이를 태우지 않고 성이가 혼자 차를 몰고 왔다.
“왜 승범이는 안 간대?”
“문자를 못 받아서 이제 씻고 있어서 그냥 왔는데, 택시 타고 온데”
윤성의 차에 배낭을 싣고 기송을 태우러 갔다.
기송도 조금 늦게 나와서 신호를 무시하고 무단횡단을 하여 부리나케 차에 탔다.
집결지인 거두리 하나로마트 주차장에 도착해 보니 아직은 아무도 없다.
잠시 후에 심형섭이가 차를 몰고 도착을 했다.
그런데 참석인원이 7명에서 갑자기 11명으로 늘었단다.
못 간다던 승범과 인호 그리고 장희진이가 온다고 하고 황기면 동기의 부인이 참석하겠다고
하는 때문이었다.
그래서 윤성 차량 맨 뒷 칸을 치우고 준비를 하는데 형섭으로부터 황기면 동기의 부인은 사정이 생겨서 참석을 못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제 낮부터 술을 먹은 승범은 범우네 집에서 자고 오느라고 늦었고, 용균과 의준, 용모, 인호는 용균의 차로 오느라고 늦었다.
결국 윤성의 차에 나와 기송, 인호, 승범이 타고 형섭의 차에 용균, 의준, 용모, 희진 등 5명씩 나눠 타고 오늘의 목적지인 가칠봉의 등산 출발점인 삼봉자연휴양림으로 출발을 하였다.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홍천 쪽으로 가다가 동홍천IC에서 빠져 나왔는데 우리 차는 동홍천IC에서 요금이 1,800원인 줄 알고 동전을 포함하여 1,800원만 준비 했던 윤성이가 주말 요금인 2,200원을 다시 준비하여 건네주다가 동전을 모두 길에다 떨어뜨리는 실수(?)로 해서 시간이 많이 지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톨게이트를 빠져 나오자마자 외삼포리로 가는 농로를 통하여 지름길로 가면서 아무리 살펴도 형섭의 차가 없었다.
형섭의 차는 44번 국도로 구성포쪽으로 역행군하여 서석으로 가는 길을 택했으니 우리를 앞서서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만우절이라고 뒤에 따라오는 형섭의 차에서 자기들이 앞서서 가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인호는 이를 곧이듣고 헷갈리기도 했다.
어쨌든 술이 덜깬 승범과 인호에게서 나오는 지독한 술 냄새 때문에 추운 아침 창문을 열어야 하는 고통 속에서도 홍천을 지나 말고개를 넘어 율전이 얼마 남지 않은 휴게소에서 내려서 음료와 커피를 한 잔 하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주인의 말에 의하면 주변에 폭포가 두 개나 있는 애밋골(?)인가 하는 좋은 등산로가 있다고 했고 홍천간의 발원지인 미약골이 조금 더 가면 있다고 했다.
정말 경사도 급하고 구부러짐도 심한 고갯길을 오르자 해발 650미터(삼악산 높이)의 율전마을이 나타났다. 이곳에는 초등학교도 있었고 상점과 농협, 우체국 등 기본적인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있는 마을이었다.
여기서 우회전하여 상뱃재(890미터 - 대룡산 높이)를 넘어 홍천군 내면 소재지(창촌)을 지나 구룡령 쪽으로 올라갔다.
지나는 길에 아내가 근무를 해서 방학 중에 아이들 하고 찾아와서 자고 놀고 했던 원당초등학교가 보였다. 깨끗하게 도색이 되어 있었고, 그 때와는 달리 관사도 깔끔하게 지어져 있었다.
내가 아내 생각이 난다고 하였더니 승범이가 이따가 산에 가서 아내 생각하면서 실컥울라고 한다.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지. 눈물은 카타르시스이니까.
그렇게 이야기 하면서 춘천을 떠난지 1시간 45분 만에 삼봉산자연휴양림에 도착하여 차를 대고 배낭을 꺼내서 가져간 컵라면과 빵과 술들을 분배하고 등산화를 졸라맨 후에 입장료를 내고 출발을 했다.
삼봉약수가 있는 곳까지 약 500여 미터는 차가 들어갈 수 있는 도로가 개설되어 있었는데 다리 밑으로 흐르는 개울물은 정말 맑고 투명했다.
삼봉약수터의 주변에는 몇 채의 방갈로가 있었고, 그 곳에는 방갈로마다 차량과 함께 사람들이 모두 들어와 있었다.
천연기념물 502호(?)인 삼봉약수는 철분이 많아서 위장병 등에 효과가 크다고 적혀 있었으며, 세 구멍에서 약수가 솟고 있었으며 바가지와 함께 병에 물을 쉽게 부을 수 있도록 깔대기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물맛은 톡 쏘면서 약간 신맛이 나는 다른 곳과 비슷한 약수물 맛이었다.
등산로는 능선을 따라 오르는 2㎞ 거리의 짧은 등산로와 계곡을 따라서 오르다가 능선으로 오르는 3㎞ 거리의 두 가지 등산로가 있는데 우리는 2㎞ 짜리 짧은 등산로로 올라가서 계곡 쪽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가칠봉을 향해 오르기 전에 의준이가 지도를 보니까 여기 등산로는 깔딱고개가 세 개가 있었다고 했다.
오르는 길은 의암댐 쪽에서 오르는 삼악산처럼 초반부터 계단과 가파른 경사가 어우러진 깔딱이었다. 산행을 시작한 지 10분도 안 되어서 모두 숨 소리가 거칠어졌고 어제 술을 많이 마신 사람들은 비명까지 질러댔다.
기송이가 선두로 치고 나갔고 내가 두 번 째로 따라갔으며 나머지는 중간 그룹, 그리고 승범과 인호가 마지막으로 따라왔다.
승범과 인호는 초반부터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포기하고 내려갈까? 도 생각을 했단다.
오르는 우리를 몰아세우는 잔설과 얼음 녹은 물을 스쳐 지나온 바람은 시원하기 보다는 차가웠다.
경사와 바람 때문에 쉴 곳을 쉽게 찾지 못하고 계속해서 올라가다가 그래도 경사가 조금 완만한 장소를 골라서 빵과 김치를 안주로 막걸리 두 병을 비웠다.
그러던 중 승범이가 비틀거리자 모두 조심하라고 하자 승범 왈
“그래도 내가 국가대표 선수였는데 내가 넘어지겠어?”
“나는 원래 빠르지 않기 때문에 수비수가 되었던 것이고 아무리 빠른 공격수가 와도 넘어지지 않고 막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승범은 느리고 불안하기는 하지만 넘어지지는 않는다고 했다.
어쨌든 오늘 승범은 넘어지지 않고 몇 번 넘어진 인호를 끌고 노부부처럼 끝까지 등산을 했다.
이놈의 길은 올라가도 올라가도 계속해서 가파른 능선뿐이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등산로에는 북풍이 몰아다 쌓아놓은 눈들이 녹거나 쌓여있어서 가끔 빠지기도 하고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뜩이나 탱탱한 종아리를 더 딱딱하게 만들었다.
세상을 살 때 남보다 목표에 먼저 오르려면 지름길로 가야하고, 경쟁자가 많으므로 장애물도 많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짧은 능선길은 눈과 질척함으로 해서 빠름의 장애를 느끼게 했다.
작년에 떨어진 낙엽들은 모두 갈색으로 변해있었다.
빨간 단풍잎도 노란 은행잎도 모두 갈색으로 변해 있음을 보면서 세상사 모두 결국 갈색으로 변해가는 낙엽처럼 화려함이나 아름다움 뒤에는 갈색 같은 평범이 있음을 느끼게 한다.
기송은 한참 먼저 정상에 올라가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우리들도 굳은 다리와 가뿐 숨을 몰아쉬며 지름길의 어려움을 몸소 느끼면서 그렇게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 오른 의준이
“이 산은 처음부터 끝가지 깔딱이야.”
“누가 깔딱이 세 개라고 했어?”
“깔딱은 하나 밖에 없는데.”
정상에는 가칠봉(1,240m)이라는 표석이 있었고 왼편으로 조그만 안내판에는 오른쪽은 방태산 왼쪽은 구룡령이 표시되어 있었으며, 약 2평 정도로 평평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가칠봉에서 바라보면 가까운 방태산이나 오대산은 물론 멀리 설악산 귀떼기청봉을 비롯한 대청봉까지 보이고 점봉산 등 태백산맥의 웅대한 산들이 아주 잘 보였다.
산을 오를 때는 찬바람이 심하게 불더니 오히려 산 정상에서는 바람이 없고 따듯한 봄볕만이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해서 우리는 정상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깔판을 깔고 버너를 피워 빵과 컵라면을 먹기 위한 준비를 했다.
우리가 빵과 컵라면을 준비한 것은 국립공원(?)에서 취사행위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는데 등산객이 우리 말고 한 명 밖에 없고 정산이 모두 눈으로 덮혀 있어서 라면이나 끓여먹을 요리를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그냥 먹을 수밖에 없었다.
모두 컵라면을 버너에 쏟아 붓고 함께 끓여서 먹자고 하는데 유독 윤성은 따로 컵라면에 물을 부어서 부려 먹겠단다.
“으이구 지독한 원칙주의자”
불려먹는 라면보다 끓여먹는 라면이 훨씬 맛이 있는데...
그나저나 산에서 끓여먹는 라면은 어떻게 먹어도 맛이 있을 수밖에.
라면에 곁들여서 막걸리와 안동소주 한 잔 씩.
형섭이가 술을 안 먹는다.
형섭은 저녁 5시가 되어야만 술을 먹는다나.
그러자 의준이 어차피 지금 오시(午時)니까 지금부터 먹으란다.
식사와 술이 거의 끝나가고 있는데 승범과 인호가 올라왔다.
산 정상까지 올라온 것이 괘 오랜만이란다.
그런데 승범이 주섬주섬 꺼내놓는 컵라면을 보내 세 개나 되었다.
그래서 아까 우리는 8명이서 7개의 라면을 먹어야만 했다.
승범이와 인호를 아예 부부로 선언을 해 버렸다.
남편 승범과 임신 24개월로 배부른(?) 아내 인호로.
둘은 좋단다.
식사 후에 하산길은 3㎞ 자리 긴 코스를 잡았다.
그런데 이게 왠 일.
3㎞라던 길은 3.4㎞로 안내표지판에 표시되어 있었고 방태산 쪽으로 뻗은 능선은 얼음과 눈으로 길을 찾기 어려울 만큼 힘든 코스였다.
잘못하면 미끄러지기 십상이었고 계속해서 북풍이 몰아다 쌓아놓은 눈더미의 잔재로 해서 내려오는 것이 쉽지 않았다.
1㎞ 이상의 긴 능선은 방태산의 줄기와 만난 곳에서 끝나고 2백여 돌계단을 내려오자 눈 덮힌 계곡이 나타났고, 눈 녹은 물이 흘러내리는 개울을 따라 2㎞ 가까운 하산길이 이어졌다.
눈덮힌 얼음장 밑을 흐르는 물은 소리를 내며 흘렀고, 시냇물의 흐르는 소리와 침엽수에서 나오는 피톤치트로 해서 산만하고 어수선한 마음이 조용하고 편안해짐을 느꼈다.
아래로 내려오면 내려올수록 점점 물소리는 커지고 물소리가 커지는 만큼 마음은 노래를 흥얼거릴 만큼 평안해져 갔다.
정말 자연의 힘은 대단한 것이다.
그렇게 회복되기 어렵다고 느꼈던 심신이 뚜렷하게 회복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모두들 그렇게 기분 좋은 하산길 끝에서 톡 쏘는 삼봉약수 한 잔을 마시고 물병에다가 한 병 가득히 삼봉약수를 채웠다.
그리고 털털대는 윤성의 자동차 때문에 약간 불안하기도 했지만 무사히 춘천에 도착하여 염소전골로 푸짐하게 보신을 한 후에 집으로 돌아왔다.
식사 중에 황기면 부인의 등산 동참에 대하여 토론이 있었는데 결국 황기면 동기의 허락을 전제로 참석하는 것으로 형섭과 기면이 충분히 얘기 후에 결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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