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고 봉급 받으면 어떨까?
많은 사람이 꿈꾸는 직장은 높은 연봉에 안정적인 고용을 보장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받을 수 있다면 어떨까. 얼핏 생각하면 더없이 부러운 직장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존재가 아니라, 일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이유와 삶의 가치를 확인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김언수의 소설 『캐비닛』은 이 역설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공기업 연구소에 입사한 주인공은 기대와 달리 할 일이 거의 없는 현실을 마주한다. 하루 업무는 트럭에서 들어온 물품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것이 전부다. 남은 시간은 그저 자리를 지키는 일이다. 처음에는 편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나는 누구이며 여기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사로잡힌다. 일하지 않고 받는 월급은 기쁨보다 공허함을 안겨 주었다.
우리는 흔히 노동을 생계의 수단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노동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자기의 능력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사람은 보람을 느낀다. 아무리 높은 급여를 받아도 일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면 노동은 축복이 아니라 고통이 된다. 월급은 통장에 쌓이지만 삶은 조금씩 텅 비어 간다.
파킨슨의 법칙은 이러한 현실을 더욱 생각하게 만든다. 영국 역사학자 노스코트 파킨슨이 퍼뜨린 이 법칙은 업무량과 인력 규모 사이에 별다른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는 법칙이다. 조직은 때로 필요한 만큼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과 인력을 모두 채우기 위해 불필요한 일을 만들어 낸다. 회의를 위한 회의를 하며, 의미 없는 보고서가 늘어난다. 심지어 일 같지도 않은 일을 끊임없이 만들어 직원들을 바쁘게 만든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일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그 일이 어떤 가치가 있느냐에 있다.
인공지능 시대는 이 질문을 더욱 절실하게 만든다. AI는 이미 인간이 하던 많은 일을 대신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범위는 넓어질 것이다. 사람들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을 걱정하지만, 어쩌면 더 큰 문제는 일은 있어도 의미 있는 일이 줄어들지 모른다는 점이다.
그래서 미래 사회가 고민해야 할 것은 고용률만이 아니다. 어떻게 의미 있는 노동을 제공할 것인가, 그리고 일이 줄어드는 시대에 인간은 무엇으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노동은 돈을 버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일하지 않고 받는 봉급'이 아니다. 자신의 시간과 재능이 누군가에게 유익이 되고, 하루를 마쳤을 때 오늘도 의미 있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의미를 갈망하는 존재다. 그리고 그 의미는 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아니라, 자신이 세상에 남긴 작은 흔적 속에서 발견된다. AI가 노동의 풍경을 바꾸더라도, 인간이 끝내 지켜야 할 것은 바로 그 의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