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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07. 08 (목) KAL기 진상규명대책위 신동진사무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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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 진행 : 의문사진상규명법을 개정해서라도 KAL기 858기 폭파사건을 재조사하도록 하겠다는 얘기가 열린우리당 쪽에서 일부에서 나왔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이제 이것이 이미 대법원이 KAL858기 폭발사건에 대해서 북한 김정일의 지령에 의한 폭파사건이다 라고 확정판결을 내린 사안인데 재조사한다는 자체가 사법부에 대한 침해다라는 얘기도 있고 그렇지 않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혹이 있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증거가 나올 수 있는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면 재조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3, 4부에서 두 분을 연결할 텐데요. KAL858기 진상규명시민대책위의 신동진 사민국장 그리고 사건 당시 안기부 수사책임을 맡았던 정형근 의원을 연결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신동진 사무국장을 연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신 사무국장님 나와 계시죠? 신동진 / KAL858기 진상규명시민대책위원회 사무국장 : 네, 안녕하세요. 손석희 / 진행 : 우선 재조사 방법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들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한데요. 지금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다른 별도의 기구를 신설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신동진 / KAL858기 진상규명시민대책위원회 사무국장 : 요즘 의문사위원회에서 여러 가지 얘기들이 있는데요. 3기 의문사위가 제대로 잘 출범하고 그 다음에 의문사법이 지금 열린우리당의 원희룡 의원이 개정 발의한대로 통과가 된다면 의문사위에서 처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손석희 / 진행 : 지금 2기는 끝났고 3기는 여야가 합의하는데 구성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요. 그 구성내용을 보고 별문제가 없다면 맡겨도 좋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죠? 신동진 / KAL858기 진상규명시민대책위원회 사무국장 : 예. 손석희 / 진행 :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 할 텐데요. 이미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이 난 상황에서 이걸 뒤집을만한 새로운 증거들을 가지고 계신지요? 신동진 / KAL858기 진상규명시민대책위원회 사무국장 : 일단 지금 진상규명에 대해서 그걸 왜 하냐라고 얘기를 하는 쪽에서 계속 대법원에서 판결이 났다고 얘기하는데요. 사실 지금 요즘에 사법부는 분명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얘기를 하는 게 최근에 파괴공작 이라는 책이 있거든요. 진상규명을 한 책인데요. 그 책에 대해서 가처분신청을 했었습니다. 국정원에서요. 근데 국정원에서 가처분신청을 한 것에 대해서 법원이 KAL기 폭파사건은 역사적 사실로서 그 진상이 반드시 규명되어져야 할 사안이라고 기각을 했어요. 더군다나 이철승 자유민족회의 이사장이 KAL기 진상규명운동을 김정일의 사주를 받았다던가 또는 김정일의 프락치라고 했던 것에 대해서 명예훼손이라고 판결을 내린게 대법원의판결입니다. 그래서 사법부의 판단이 있었다라고 얘기를 한다는 건 당시 군부독재시대 때 사법부가 이상한 판단을 내린 것도 몇 가지가 있거든요. 손석희 / 진행 : 그러니까 법원의 입장 변화가 감지된다라는 것이죠? 신동진 / KAL858기 진상규명시민대책위원회 사무국장 : 그렇죠. 그래서 계속 사법부 운운한다는 건 말이 안 되고요. 사법부 운운하시는 분이 정말 판결문이나 공소장을 정말 제대로 한번 찬찬히 봤는지 저는 그걸 묻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수사발표내용과 공소장, 판결문 이런 것들을 보고 지금까지 발견된 진상규명의 사실들을 놓고 보면 그게 얼마나 엉터리 기소였고 재판이었는지 금방 확인할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 사법부 운운하는 건 진상규명 안하겠다는 또 다른 하나의 의도라고 봅니다. 손석희 / 진행 : 발표된 수사결과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많이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제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가서 보니까 무려 33가지정도가 된던데 이걸 또 더 추가할 것도 있다라는 얘기도 있구요. 이걸 다 제가 여기서 다루기는 어렵고요. 신동진 사무국장께서 생각하시기에 가장 이슈가 될 만한, 문제가 될 만한 내용들을 몇 가지만 추려주시죠. 그러면 제가 이따가 정형근 의원도 연결할 테니까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정 의원께도 좀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동진 / KAL858기 진상규명시민대책위원회 사무국장 : 일단 당시 수사발표 내용을 보면요. 가장 중요한 게 과연 어떻게 실종이 됐느냐 라는 부분인데 수사발표 내용 중에 물증을 버리고 추정으로 수사발표를 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김승일의 허리띠의 김현희 옷에서 TMT화약반응이 나왔다고 국과수의 감정보고서에는 나와 있거든요. 근데 수사발표 시에는 이들의 소지품에서 다른 화약반응은 없었다 이렇게 수사발표를 했어요. 그리고 컴포지션 C4 350g이라는 것이 이 비행기 폭파에, 그네들의 얘기로 폭파에 사용된 폭약이라고 얘기를 했는데 그 폭약의 종류와 양의 안기부에서 조작을 한 겁니다. 그러니까 김현희 입에서 그 라디오 안에 무슨 폭약이 있었다고 얘기한 적이 없고요. 그 라디오 안에 350g 들어있다는 건 안기부가 임의로 만든 얘기에요. 어떻게 이런 식으로 추정을 오히려 수사보고서에 넣고, 손석희 / 진행 : 일단 화약과 관련된 얘기고요. 그리고요? 신동진 / KAL858기 진상규명시민대책위원회 사무국장 : 그리고 나서 당시의 공소장이나 수사발표 여기에는 KAL858기가 공중에서 산산조각 폭발 났다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최근 국정원이 저희 KAL기 가족회에 보낸 답변서에 보면 추락예상지점을 얘기하고 있어요. 이것도 폭발에서 추락으로 상황이 바뀐 건데 근데 그 얘기하는 추락지점도 버마에서 이 조사보고서를 국제민간항공기회에 제출했거든요 그 제출했던 보고서에서 얘기한 추락 예상지점하고 200km가 넘게 차이 납니다. 그러면 이 폭발에서 추락으로 왜 바꿨고, 추락지점이 어떻게 조사보고서의 내용하고 또 다른지 이런 부분도 새롭게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이 들고요. 손석희 / 진행 : 버마가 발표한 지점과 우리 수사결과가 나온 지점과 200km 차이가 난다는 것, 이건 얼마 전에 다른 다큐멘터리에서 문제제기를 했던군요. 이게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라는 것이죠? 신동진 / KAL858기 진상규명시민대책위원회 사무국장 : 예. 손석희 / 진행 : 그 다음에요? 신동진 / KAL858기 진상규명시민대책위원회 사무국장 : 그리고 이거 부분은 화동사진과 관련된 부분인데요. 그거에 대해서 아직도 국민들께서 계속 이미지를 갖고 계실 텐데, 물론 88년 1월 15일 날 수사 발표 했을 때 사진은 거짓말이다 라는 건 지금 국정원도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근데 최근의 주장이 뭐냐하면 그때 김현희라고 보이는 소녀한테 꽃을 받은 사람이 장기영씨가 아니고 이동복씨라는 거거든요. 손석희 / 진행 : 그건 누구얘기죠? 신동진 / KAL858기 진상규명시민대책위원회 사무국장 : 그건 국정원 얘기입니다. 그리고 이동복씨가 자기 스스로 또 그렇게 얘기를 했고요. 94년도에. 그런데 이동복씨가 그 꽃을 세 번째로 받았다는 거예요. 그건 거짓말이라는 거고요. 그리고 올해 초에 요미우리에서 새로운 화동사진이 나왔습니다. 그거를 월간조선 2월호에서 그걸 실으면서 화동소녀들의 귀를 다 분석을 했어요. 그러면서 조갑제씨가 자신이 갖고 있는 별도의 흑백사진을 갖고 분석을 했다 이렇게 했는데 그 별도의 흑백사진을 좀 내놔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어요. 왜냐하면 화동소녀 사진 흑백사진은 예전에 한 장뿐이 나온 게 없거든요. 그 한 장에 나온 사진에는 머리에 머리핀이 없는데 조갑제씨가 내민 별도의 흑백사진에는 머리핀이 보여요. 손석희 / 진행 : 이 부분은 월간조선의 조갑제 대표에게 질문을 드려야 되는 건데 저희가 연결을 못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정형근 의원이 답변할 문제는 아니라고 보고요. 그리고요? 신동진 / KAL858기 진상규명시민대책위원회 사무국장 : 정형근 의원이 저희 쪽에서 알기로는 당시 수사에 참여하지 않았고 다 수사가 끝난 뒤에 참여한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근데 왜 정형근 의원이, 또 지금 보좌관들도 정형근 의원이 당시에 수사에 참여 안 했다라고 그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근데 왜 정형근 의원이 왜 KAL기 사건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으신지 묻고 싶고 정형근 의원도 그때 무슨 일을 했는지 솔직하게 고백해주시기 바라고요. 그리고 정형근 의원한데 이거 좀 묻고 싶은데요. 국정원이 최근에 보낸 답변서에 보면 88년 1월 15일 그 시점까지 확인 안된 내용이 굉장히 많거든요. 김현희의 행적이라든가 여러 가지 사항이 확인 안 된 상황에서 88년 1월 15일 날 수사 발표를 했어요. 그건 무슨 이유로 이런 중대한 사건을 그렇게 확인도 안 된 상태에서 대국민 앞에서 그렇게 수사발표를 했는지 그걸 좀 묻고 싶습니다. 손석희 / 진행 : 이 정도로, 지금 한 다섯 가지 정도, 세부적인 사항으로 들어가면 7~8가지가 됩니다만 추려주셨는데 아까 말씀하신 화동사진 문제는 정 의원께 질문 드리긴 곤란한 문제인기 거 같고요. 제가 보기에. 그리고 또 제가 추가해서 여쭤본다면 김현희의 노동당원증 공개를 요구하고 있으시죠? 대책위 쪽에서. 이유는 뭔지요? 신동진 / KAL858기 진상규명시민대책위원회 사무국장 : 이유는 조선 노동당원증이 폭발 테러범이 공작원이 자기 신분증을 갖고 다닐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혹시 그걸 갖고 다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바레인에서 처음 체포됐을 때라든가, 아니면 88년 1월 15일 날 수사발표 때라든가 아니면 재판 판결문의 증거품으로 나왔어야 되는 증거물이죠. 근데 김현희가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마유미로 들어왔어요. 신분이 확인 안 된 일본사람으로 들어왔단 말이죠. 그러니까 신분증이 그때까지 없었다는 얘기거든요. 그러면 이것이 어떻게 재판부에 들어갔나, 이 내용은 올해 초에 서울행정법원에서 정부공개 판결문 내용 속에 들어가 있는 내용이거든요. 어떻게 이런 증거물들이 있느냐, 만약에 정말 안기부에서 김현희의 조선노동당원증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면 아무리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도 그건 87년 11월 29일 이후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면 87년 11월 29일 이전에 안기부가 김현희의 조선노동당원증을 갖고 있었다면 그 내용이 어떻게 되는 거겠습니까? 그래서 이건 굉장히 폭발력이 있는 증거품일 수 있기 때문에 그 판결문, 이번에 서울행정법원에 판결문에 적혀있는, 분명히 이렇게 적혀 있거든요. 김현희가 소지하고 있던 조선노동당원증이라고 문구가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니까 그 조선노동당원증을 저희가 요구하는 거죠. 손석희 / 진행 : 그리고 김현희가 북한공작원인 동시에 안기부의 이중 스파이다 이런 얘기도 나오고 있는데요. 그 근거는 뭡니까? 신동진 / KAL858기 진상규명시민대책위원회 사무국장 : 그 근거는 사실 여러 가지 사실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하나의 추론이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설명하기가 좀 어렵고요. 조금 전에 조선노동당원증 그 건도 하나의 추론의 근거로 사용될 수 있을 것 같고요. 또 한 가지는, 한 가지만 더 중요한 예를 든다면 김현희의 평양과 관련된 진술들이 84년 이전에 멈춰 있어요. 그러니까 자기의 주소지라고 얘기한 평양시 문수 구역은 83년 3월 이후에는 없어진 구역이거든요. 그걸 87년 11월 29일, 88년 1월 15일, 89년 2월 3일 검찰 공소장에 다 그런 진술을 하고 있단 말입니다. 없어진 구역을. 그리고 김현희가 평양을 출발해서 모스크바에 갔다는 비행기 있잖아요. 87년 11월 14일 쯤에 갔다고 했는데 그 비행기 표의 시각이 있는 건 국제항공 시간표에 보면 김현희가 탔다는 그 비행기가 없어요. 근데 그 비행기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84년도에는 있거든요. 그러니까 김현희는 84년도에 탔던 비행기를 갖고 진술을 했다라고 저희는 보고 있구요. 그 다음에 84년과 87년 두 차례에 걸쳐서 김현희가 김승일하고 해외공작여행을 했다라고 이렇게 돼 있는데 84년과 87년의 여정 중에서 겹치는 부분이 어디냐 하면 평양, 모스크바, 부다페스트, 빈 여기가 겹칩니다. 그런데 우연인지 어쩔 수 없는 건지 좌우간 87년에 11월 29일 폭파되기 전 여행에서 빈부터는 목격자들이 있어요. 호텔 종업원이든 이런 사람들의 목격자가 있지만 빈 이전에는 목격자가 없거든요. 손석희 / 진행 : 알겠습니다. 이런 내용들이 모두 지금 쭉 들어주신 것이 결국은 김현희의 행적이 84년 이전 걸로만 증거가 남아 있는 것이고 84년 이후는 그 행적을 잘 모른다? 신동진 / KAL858기 진상규명시민대책위원회 사무국장 : 그렇죠. 84년 이후의 행적은 김현희의 여권을 보면 나와 있습니다. 그걸 안기부는 위조된 스탬프라고 그러는데 여러 가지 다른 정황들을 보면 김현희는 일본에서 거주했을 확률이 굉장히 높고요. 그리고 김현희가 일본을 출국했던 그 스탬프들이 찍혀 있어요. 손석희 / 진행 : 84년 이후에 말이죠? 신동진 / KAL858기 진상규명시민대책위원회 사무국장 : 예. 손석희 / 진행 : 알겠습니다. 지금 워낙 가지 수가 많고요. 더 하실 게 많겠습니다만 일단 오늘 시선집주에서는 양쪽의 얘기를 들어보도록 하는데요. 중요한 부분만 추려서 이렇게 들어보도록 하고요. 이 논란은 어차피 앞으로 지속이 될 것이기 때문에 저희가 기회가 되면 또 듣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일단 신동진 사무국장 전화를 여기서 접고요. 계속해서 정형근 의원의 얘기를 들을 텐데요. 신동진 사무국장께서도 잘 들어주시고요. 다시 또 문제제기 할 문제가 있다면 나중에 또 해주셔도 상관이 없을 것 같습니다. 잠시 전해드리는 말씀 듣고 한나라당의 정형근 의원을 연결하도록 하겠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말씀드린 대로 계속해서 한나라당의 정형근 의원을 연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정 의원님 나와 계시죠? ⊙ 정형근 / 한나라당 국회의원 : 네, 안녕하세요. ⊙ 손석희 / 진행 : 우선 인터뷰 시작하기 전에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오늘 어차피 문제제기 하는 차원에서 신동진 사무국장이 문제제기를 하셨고, 또 거기에 대한 답변을 지금 정형근 의원께서 하실 텐데요. 이것이 저희 시선집중으로서 시작이거든요. 만일에 나중에 또 다른 문제제기가 또 있다면 다시 한번 연결을 하는 것에 대해서 동의를 하시는지요? ⊙ 정형근 / 한나라당 국회의원 : 오늘 말입니까? ⊙ 손석희 / 진행 : 아니, 오늘 말고요. ⊙ 정형근 / 한나라당 국회의원 : 괜찮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알겠습니다. 제기된 문제를 다 들으셨을 줄로 압니다. 전화로 다 연결을 해놨었기 때문에요. 우선은 제가 먼저 그 중에서 드리고 싶은 질문은 정형근 의원의 당시 역할에 대한 의문을 제기를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수사를 제대로 참여하지 않으신 게 아니냐 라는 제기였는데요. ⊙ 정형근 / 한나라당 국회의원 : 대단히 중요한 대목이라고 생각하는데, 당시 87년도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수사국장이 아니었습니다. 아마 이게 11월 29인가 사건이 나 가지고 88년 1월 15일 발표할 때까지 사건 쭉 했는데 저는 정확하게 수사국장이 된 건 88년 3월로 기억합니다. 다만 생각해 보십시오. 이 사건이 터져 가지고 이것은 대국가적인 큰 문제였고, 또 이것을 수사 주책임이 안전기획부, 특히 수사국에 있었기 때문에 당시 저는 수사단장이었습니다. 수사국장 휘하에서 모든 수사관들이 다 참여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누구 한 기관이 한 것이 아니고 수사관이 전부 참석했기 때문에 저는 수사단장으로서 이 사건의 정말 면밀한 분석, 그 다음에 여기에 대해서 법률적인 문제, 이런 걸 저는 파트를 가지고 전부 지휘하면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회의에 참석하고, 회의에 참석했기 때문에 정형근은 수사에 참석 안 했다, 이건 말이 성립이 안 되고. 그 다음에 제가 바로 이 사건 1월 15일 발표 한 후 3월에 제가 수사국장이 돼 갖고 모든 사건을 인계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김현희씨를 관리하고 또 처리 모든 과정을 제가 지휘했기 때문에 그 당시 수사국장이 아니었다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게 불과 1, 2개월 차이이고 단장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수사국장이 아니다 하는 말은 맞지만 수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 말은 맞지 않는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아까 마지막으로 제기됐던 문제 가운데 84년 이전에 기록이 많이 남아 있고 실질적으로 84년 이후에는 일본에 거주한 것이 아니냐, 이게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라는 주장이었는데요. 그렇다면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 가운데 여러 가지 김현희와 관련된 실질적인 기록들이 정확한 것은 84년 이전 것 밖에 없지 않느냐 라는 것이죠.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정형근 / 한나라당 국회의원 : 저도 사건을 당시 지휘하고 나서 많은 시간이 걸렸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이 사건을 아주 세부적인 것을 갖다 제가 보면 그 당시 기록이라든지 또 그 당시 여러 가지 자료들을 갖다 제가 쭉 훑어보면서 그런 거 가지고 답변할 수밖에 없는데 대개 여러 가지 시민단체나 여러 가지 의혹을 갖다 주장하는 내용이 지금까지 33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84년 이전의 자료만 있고 없다는 것, 이것은 성립되지 아니하고 김현희를 쭉 조사하는 과정에서 아시다시피 당시는 공산권과 우리가 수교가 안 됐습니다. 자연히 김현희의 진술, 그리고 같이 있던 주요한 신이치는 음독 자살했고 해서 김현희의 진술을 토대로 해 가지고 관련 당국이 여러 가지 조사를 했기 때문에 초동수사에 조금씩 일부 세부적으로는 어긋나는 게 있을 겁니다. 아까 말씀하신 화동의 귀라든지 이런 게 틀려 가지고 최초에 안기부에서 발표한 사진이 김현희가 아니라든지 이것은 사실로 아닌 걸로 판명이 됐어요. 그 뒤에. 그런 여러 가지 세부점이 있지만 그러한 내용들이 지금 제기하는 그런 내용들이 이게 어떤 한 부분을 가지고 하는 것이지 모든 진술은 84년 이후에 여러 가지 행적이라든지 이런 게 그대로 다 수사기록에 나와 있기 때문에 그것은 근거가 없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제가 한 가지를 말씀을 드리면 당시 애초에 아까 중요한 얘기를 했는데 콤포지션4 350g, 이런 거 이것은 안기부에서 조작한 것이지 그런 것은 전혀 증명이 안 된다 이렇게 말씀을 하실 수가 있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종류와 양에 있어서... 특히 양은 350g으로 했다라든가 이런 것은 김현희의 진술 상 없다는 얘기인데요. ⊙ 정형근 / 한나라당 국회의원 : 그런데 그걸 김현희 진술 등을 토대로 해 가지고 판단했습니다. 그 당시. 아시다시피 고체 폭약은 자기가 사용한 것은 고체폭약이라는 데 이건 콤포지션4입니다. 무색, 무취, 비금속으로 X-RAY 탐지가 어렵습니다. 그 다음에 액체폭약은 술로 위장을 해 갖고 술병에 넣었다고 그랬거든요. 그러면 액체폭약입니다. 이건 고성능 액체폭약으로 PLX인데 이것을 그 당시에 라디오에 고체폭약을 넣었고 그 다음에 술병에다가 액체폭약을 넣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전부 시뮬레이션을 해 가지고 전부 얼마나 넣을 것이냐, 그 다음에 미국에서 보잉 똑같은 707 기종을 해 가지고 폭발을 하고 이런 걸 전부 통해 가지고 콤포지션4는 라디오에 의해 갖고 그 정도 폭발이 되면 최대용량이 350g정도 되겠다. 또 PLX 액체폭약은 한 700cc되겠다. 이렇게 해 가지고 그러한 진술을 토대로 추정 단정해서 발표한 것이지 이것이 김현희도 모릅니다. 그게. 얼마를 넣었는지... ⊙ 손석희 / 진행 : 그런데 말이죠. 지난번에 제가 KBS에서 다큐멘터리 하는 걸 봤는데요. 거기 보니까 트렌지스터 라디오에다가 고체폭약을 그렇게 넣어 가지고는 라디오 자체가 기능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라디오 틀 수가 없다는 얘기죠. 왜냐하면 내부에 그 정도의 폭약이 들어가면 다른 내용물을 다 빼내야 되기 때문에 그런 의문도 제기하던데요? ⊙ 정형근 / 한나라당 국회의원 : 그건 그 당시 저희들이 폭약전문가라든지 이런 모든 전문가들과 다 해 가지고 그걸 전부 분석해 가지고 했기 때문에 어떤 근거에 의해서 그게 터질 수 없다 이렇게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당시에 그것을 조작했을 리도 만무하고 또 그것이 김현희 자신이 얼마를 넣었나 이런 걸 몰랐기 때문에 그런 여러 과학적인 수치나 근거를 가지고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발표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 이게 할 수 없다, 주장에 대해서 뭐라고 지금은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시뮬레이션을 했다는 과정이라든가 그런 내용들이 다 기록이 돼 있습니까? ⊙ 정형근 / 한나라당 국회의원 : 그럼요. 미국에서 같은... 예를 들어서 88년 1월 9일 날 종합대테러 훈련장에서 콤포지션4 폭약 350g을 폭발실험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5mm 강판이 직경 30cm로 관통 파열되고, 10mm 강판은 25cm로 관통 파열되면서 가스, 불꽃, 폭풍 등의 현실이 나타나서 강력한 위력을 보인 것, 이런 실험을 전부 해 가지고 발표한 겁니다. ⊙ 손석희 / 진행 : 아까 제기된 문제 중에 또 하나가요. 그렇게 해서 공중에서 폭발이 되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라고 했다가 추락 예상지점 얘기가 나오면서 추락으로 바뀌었다 라는 것이 이쪽 대책위 쪽의 주장입니다. 그래서 산산조각 난 폭발에서 어떻게 공중폭발에서 추락으로 바뀌느냐, ⊙ 정형근 / 한나라당 국회의원 : 그렇게 된 건 아닙니다. 이게 당시에 우리가 수사를 하고 발표한 것도 이것은 공중폭발이 됐는데 그 잔해를 수색을 굉장히 했지 않습니까? 그 잔해가 아시다시피 11월 29일 비행기가 2시 1분에 사고 직전 미얀마 랭군 지상 관제소하고 최종 교신이 이루어졌고 그 다음에 그게 방콕 서쪽의 300마일 지점입니다. 그 다음에 20분 뒤에 다음 보고지점이 미얀마 타보이 상공에서 교신이 두절됐거든요. 그것을 추정해 가지고 299마일 지점에서 이 정도 갔을 것이다 해서 그 일대를 갖다 수색을 한 겁니다. 수색을 해 가지고 수색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뒤에 전부 다 발견이 됐습니다. 1차로 20 몇 일인가 미얀마에 있는 다고니인가의 배가 전부 다 부유물, 그 다음에 25인승, 그 다음에 잔해 파편하고 한달 뒤에 또 배가 발견... 61개 아마 여러 가지 파편 등을 발견해 가지고 미국에 보내 가지고 전부다 분석도 하고 우리 국립과학수사연구서에서 분석을 하고 해 가지고 이것이 공중 폭발돼 가지고 이 잔해들이 미얀마 거기는 물살도 빠르고 수심이 3천m 정도 됩니다. 굉장히 넓기 때문에 이것이 흩어져 가지고 발견된 것이지 추락했다는 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아까 나온 얘기 중에요, 미얀마 당국 발표의 지점과 우리가 내놓은 지점은 지점과는 200km 차이가 있다 해서 이것이 공중에서 누가 폭발해서 어떻게 200km 씩이나 이렇게 차이가 나게 예상지점이 달라지는가, 이 부분에 대한 의문제기도 있는데요. ⊙ 정형근 / 한나라당 국회의원 : 예상지점이 그렇게 200km 차이가 났다는 것은 저는 금시초문이고요. 그 일대가 굉장히 물살이 무지무지하게 빠르고 이렇기 때문에 그것이 광범한 해역에서 어떤 건 한 달 뒤에도 발견되고 어떤 것은 20일 뒤에도 발견되고 했기 때문에 그 지점이 상호 보면 입장에 따라서 다를 수 있지만 그 지점이 200km의 차이가 났다, 버마의 발표하고 우리 발표, 그런 것은 저는 금시초문이고 그런 건 없었을 것입니다. ⊙ 손석희 / 진행 : 그 부분은 잘 모르시는 걸로 해두고요. 그런데 지금 발견된 것이 양에 있어서 굉장히 다른 비행기의 어떤 추락사고 하고는 차이가 날 정도로 극히 적었다, 그리고 특히 블랙박스가 발견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의문점을 계속 제기하고 있단 말이죠. ⊙ 정형근 / 한나라당 국회의원 : 이건 그렇습니다. KAL기 잔해가 발견된 것은 12월 13일인가 그럴 겁니다. 미얀마 화물선 대곤 1호가 발견했는데 이때는 25인승 구명보트 등 KAL기 잔해 16종 41점을 1차 수거를 했습니다. 그 다음에 그로부터 3개월 뒤에 90년 3월 5일 날 태국 어부들이 또 미얀마 영해 안다만 해역에서 그때는 잔해 60점, 의류가방 한 점인가 이렇게 해 가지고 또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충분히 아까 말씀대로 그 지역이 수심이 깊고 물살이 빠르기 때문에 빨리 발견은 못했습니다만 그 뒤에까지 해 가지고 많은 잔해들이 발견이 되었고, 그 다음에 블랙박스가 발견이 안 된 것은 블랙박스가 그렇답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것이 염수에 이것이 접촉이 되면 이것이 2마일 해상에 음파를 보낸 답니다. 그리고 한달 간 지속됩니다. 한달 간 미국에서 PC35를 다섯 대를 갖다 임차를 해 가지고 전문가들이 공중 수색했는데 한 달 동안을 수색해서 발견을 못했어요. 한달 동안하고 나면 이것이 생명이 끊어지기 때문에 철수한 것으로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알겠습니다. 실종을 갖다 말이죠. 그러니까 비행기, 858기요. 물증을 한 것이 아니라 추정을 가지고 자꾸 얘기를 했다, 그러니까 수사결과 발표도 예를 들면 88년 1월 15일이면 모든 것이 확인이 안 된 그런 상황이 많이 있는데 무리하게 너무 앞당겨서 발표한 게 아니냐 라는 문제제기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87년 12월에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것이 불과 다음 달에 이런 중차대한 사건이 좀 더 깊은 수사라든가 그리고 좀더 물증을 확보하는 그런 노력이 없이 불과 한달 만에 이렇게 발표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문제제기인데요. ⊙ 정형근 / 한나라당 국회의원 : 그것은 통상 그렇지 않습니다. 사건들 저도 수사발표 하고 그랬습니다만 이게 87년 12월 15일인가 압송이 돼서 왔을 겁니다. 김현희가. 수사를 했는데... 이게 국민적 관심이 엄청났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분위기를 말할 것 같으면 온 나라가 온 국민이 그야말로 초조하게 그야말로 이 사건이 누가 했느냐, 어떻게 될 것이냐, 여기에 대한 관심이 고도로 집중되고 분위기가 침울했습니다. 당시 제가 기억하기로 안기부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야말로 쥐 죽은 듯이 하고 온 국민이 수사에 집중돼 있었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정 의원이 시간이 30초 남았습니다. ⊙ 정형근 / 한나라당 국회의원 : 알겠습니다. 그래서 통상 수사를 하면 한달 만에 발표를 한 걸로 돼 있는데 그것도 상당히 긴 기간입니다. 수사에 있어서. 큰 사건이 나 가지고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을 한달 이후에 발표한 것만 해도 이것은 상당히 긴 기간입니다. ⊙ 손석희 / 진행 : 알겠습니다. 이견을 가지신 분들도 많이 계실텐데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정 의원님 이 문제가 좀더 논의가 되고 또 정 의원님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 계속 문제 제기가... ⊙ 정형근 / 한나라당 국회의원 : 제가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 손석희 / 진행 : 죄송합니다. 시간이 10초 밖에 남지 않아 가지고요. 말씀드린 대로 다음에 연결해서 말씀 마저 듣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첫댓글 정형근이 완패다. 게임은 끝났네. 국정원 이제 손들고 나오라. 아니 이렇게 엉터리 수사가지고 정말 창피하다. 안기부 수준이 이정도이니 실망이 크다. 게임 오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