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칸토(Bel canto)는 다들 아시는바와 같이 아름다운 소리라는 뜻이며 이탈리아의 도니제티, 벨리니, 롯시니 시대(1700년대 후반이후) 를 벨 칸토 의 시대라고 하며 그 시기에 그 작품을 불러내는 가수들이 필요했는데 그 가수들의 창법을 벨 칸토 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악 발성이 학문적으로 연구된 것은 불과 200년 정도밖에 안됩니다.
벨칸토 시대에는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생겨난 신흥시민계급(자신이 돈을 주고 음악을 듣는 유료 관객)이 형성되면서 작곡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오페라나 곡을 쓰기보다는 극장주(매니져먼트)들의 요구에 의해 곡을 쓰기 시작했지요. 귀족이 아닌 계급의 사람들은 고귀하고 우아한 품위있는 창법보다는 가볍고 많은 기교를 부리는 소리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한 프레이즈에 100개이상의 음을 한 호흡으로 불러야 하는 경우도 발생하였습니다.
자연히 가벼운 발성이 필요하였고 in maschera(in mask) 발성 - 이것은 얼굴 전반에 소리가 붙어 아예 떨어질 생각조차 없는 완벽히 비강의 최전방에 공명이 집중되어 있는 상태를 말함- 이 오늘날의 벨칸토 창법이 되었습니다.
이태리에서는 얼마전에 돌아가신 Gina Cigna를 거의 마지막으로 벨칸토는 완전히 영업정지 하였습니다. 이태리 극장은 예술의 전당 홀처럼 둥근 극장으로 되어 있어 울림이 좋은 관계로 벨 칸토 창법으로도 충분히 곡을 표현할 수 있었고 200년전의 오케스트라는 경비문제로 많은 인원이 반주를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벨 칸토는 아주 인기있는 발성이었습니다.
그러나 큰 극장이 생겨나고 더 많은 오케스트라가 투입되면서 벨칸토는 서서히 사양의 길로 접어듭니다. 특히 잘 아시는 Enrico Caruso는 벨칸토 창법을 완벽하게 구사하는 완성자이자 벨칸토의 파괴자입니다. ' High C'음을 흉성공명을 같이 사용하여 연주함으로서 당시의 미국시민들에게 대단한 극찬을 받은 반면 비평가들에게 세속적인 발성을 하는 성악가란 혹독한 비판을 받은 바 있습니다.
합창 발성에서는 비강을 고루 울려주는 부드러운 발성이 요구되는데 이 벨칸토 창법은 합창발성으로는 부적합한 발성임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태리 발성= 벨칸토 창법 (벨 칸토가 이태리 말은 맞는데 이 등식은 전혀 성립하지 않습니다)
발성에서 몸을 자유자재로 열고 놓아주고 하면서 우리 인체는 많은 Energy를 소비하는데 벨칸토는 얼굴앞에 소리를 걸어 놓고 가능한 다른 근육은 최소한의 일만 함으로써 호흡의 손실을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명의 폭이 좁고 개성이 강한 소리가 합창에 어울리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태리는 합창음악에 큰 권위를 보이지는 않지요.
bel canto란 이태리어로 무슨 뜻일까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아름답게라는 형용사 bel 과 노래라는 명사 canto가 합쳐져진 단어이다.
우리고 알고있는 벨칸토는 단순히 발성 기술이라 생각할수 있으나 서양음악사속에서 성악의 흐름을 짚어보면 벨칸토는 단순한 발성이 아니라 오페라사속에서 한 자리를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을 알수있다.
벨칸토 시대는 그 유명한 작곡가 헨델과 영화로 우리에게 친근함을 주는 실존 인물이였던 카스트라토 파리넬리가 존재했던 시대이다.
당시 중세 유럽은 암흑의 시대라 불릴만큼 사회 전반적인 부분이 교회에 예속되어있다보니 예술 창작활동의 범위또한 종교적인 것에 국한되었다.
그 당시 교회에는 여성이 출입할수가 없다보니 교회 성가대의 구성이 남성으로 이루어질수 밖에 없었고 남성음역으로 소화하기 힘든 고음역 즉 여성의 음역 부분을 보이소프라노가 대신하다 보니 어린이의 소리로는 고도의 테크닉과 힘을 발휘할수없었다.
그에 대한 방안으로 어린 남자애를 사춘기가 지나기전 거세를 하면 남성호르몬이 억제가 되어 보이소프라노때 가지고 있던 여성적인 음역과 소리의 색깔을 유지할수있었다.
신체는 건장한 남성이나 목소리는 여성의 음역과 빛깔을 지니다 보니 실제로 소프라노보다 더 많은 음역과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 주로 거세를 하다보니 그 당시의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그렇게 교회를 통해 성장한 그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들의 소리와 테크닉에 매료된 당대의 작곡가들에 의해 오페라 극장으로 진출하게된다.
이를 계기로 오페라속에서 프리마돈나의 자리를 밀어내고 카스트라토들이 주역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면 많은 호응을 얻게된다.
파리넬리와 같은 최고의 카스트라토가 많이 등장하게되자 작곡가들은 작곡하는 곡에 대한 테크닉의 난이도를 점차적으로 높이게 되면서 이를 계기로 그들의 발성 또한 더불어 점점 발전하게 된다.
특히 주요 아리아 그 당시 유행했던 아리아 꼴 다까뽀 에서 앞에 제시된 멜로디를 다시 반복하는 재현부에서 작곡가의 아무런 언급없이도 그들의 테크닉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 버리게 되는것이 하나의 관습이 된다.
이런한 현상의 그들의 발성 기법이 너무나 완벽했고 아름다웠기에 벨칸토라는 칭호를 얻게 되나 무대에서의 지나친 그들의 테크닉에 대한 집착은 오페라 내용이나 노래의 내용과는 상관 없이 흘러가게 만들어 버리는 폐단을 낳게된다.
이로 인해 독일의 작곡가 글룩은 자신의 오페라의 개혁내용속에 아리아 꼴 다까뽀에서 재현부에서의 지나친 꾸밈음이나 장식음등 오페라의 내용과는 상관 없는 부분을 금지시킨다는 것을 포함시킨다.
이 당시는 남성의 음역중 테너가 거의 지금의 바리톤의 소리나 음역과 유사했기에 그다지 오페라에서 지금과 같은 대접은 받지못했다.
이러다보니 고도의 발성 테크닉을 지닌 카스트라토들이 그들이 등장하기전까지 오페라에서 꽃이였던 소프라노를 밀어내게 된다.
그 당시 카스트라토들로 인해 성악에서 아름다운 소리를 중시하는 벨칸토 발성의 근간이 이루어지며 그들이 풍미했던 시대를 벨칸토 시대라고 한다.
첫댓글 유익한 글이 었습니다.
소프라노 백선생님 속한 벨칸토 연구회 연정국악원공연 연주회때가서.들었는데..김철수 선생님도 나오셨더군요
내용에서 보면은 ..벨 칸토 창법이 요즈음의 대극장이나 대 규모 오케스트라에서는 맞지 않는다고 되어 있네요...최근에는 마이크를 쓰는 공연에는 또 잘 맞을것 같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