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귀스트 르누아르 Pierre-Auguste Renoir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걸쳐 왕성하게 활동한 프랑스의 인상주의
미술의 정점 오귀스트 르누아르 Pierre-Auguste Renoir 여성미 물씬 풍겨
나ㅡ는 고운 그림들 그생전에 5천 여점의 작품을 그렸는데 이중 2천 여점이
여성이다. 르누아르는 평생토록 여성을 그렸다. 그 스스로 "신이 여성의 몸을
창조하지 않았다면, 내가 화가가 되었을지 나는 모르겠다" 라고 말할 정도로
르누아르에게 여성은 존재의 의미요 곧 아름다움이었다. 작품들 속에 여성은
마르고 예쁜 정형화된 미의 기준을 벗어난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다. 르누아르는 처제인 가브리엘과 소녀 등 주위의 평범한 사람들을 주로 그렸다.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위 그림처럼 따뜻하고 화사한 색감으로 가득하다는 점이다. 이는 “그림은 영혼을 씻어주는 선물이어야 한다”는 그의 선물 철학이 그대로 그의 미술 작품에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친 영혼을 씻어주는 르누아르의 작품을 바라보면서 성장하였다. 1862년 르누아르는 글레이르의 아틀리에서 모네, 시슬레 등을 알게 되었다.
그는 피사로, 세잔, 기요맹과 사귀며 훗날 인상파 운동을 지향한 젊은 혁신화가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초기에는 코모, 들라크루아, 크루베 등의 영향을 받았다. 1890년대부터 르누아르는 꽃, 어린이, 여성을 많이 그렸다. 르누아르는 모자 등의 소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직접 소품을 만들기도 했는데, <두 소녀, 머리 장식하기>에서 모자의 레이스와 리본 모두 르누아르가 만든 것이다. 이 그림을 그리기 전, 이탈리아 여행은 르누아르의 그림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여행을 통해 그는 거장들의 고전적인 작품을 보게 되었고 고전 미술에 깊이 매료된다. 그 결과 인상주의 화풍에 고전스러운 느낌을 더한 르누아르식의 화풍이 만들어졌다.
그의 작품이 고전적인 분위기를 내는 요소로 로코코의 향락과 유희로 가득한 분위기, 이상적인 누드화, 확고한 명암법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는 르누아르의 작품들이 다른 인상주의 작품에 비해, 따듯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색채의 마술사'라고도 불렸던 르누아르는 프랑스 미술의 전통을 계승한 색채가로서 1900년에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 피카소도 르누아르의 작품을 개인적으로 7점이나 갖고 있을 정도로 르누아르의 작품을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반짝이고 포근한 색채들로 늘 일상의 아름다움을 그렸다. 지병인 류머티즘성 관절염 때문에 손가락에 연필을 매고 그리면서도 마지막까지 그림을 그리는 행복을 잃지 않았다. 죽기 3시간 전까지 붓을 놓지 않고 그림을 그렸던 르누아르는 "이제야 그림을 조금 이해하기 시작했다"라는 말을 남긴 채 1919년 7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Portrait of Julie Manet' 1894 ~ Pierre Auguste Renoir
'sial(2023.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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