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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들께 보낸 송년인사 말미에 한 “대청봉 건을 만회할 기회를 한번 주십시오.” 인사에 큰형님은 날짜를 잡아라 고 하였고, 시간 제약이 많은 재철형님이 새해 둘째 주에 하자고 하여 신년 4형제 등산이 새해 벽두에 이루어졌다.
토요일을 피해 일요일로 정했으나, 일요일 오전엔 일이 있다는 큰형님 사정을 감안하여 일요일(1/8일) 낮 12시에 등산을 하기로 하였다.
일요일 낮 12시에 등산을 하려면 4형제 근거지의 중간 지점에 있는 산을 택해야 하고, 접근성이 있어 등산의 시간 효율성이 좋은 코스를 선정하여야만 하였다.
4형제 모든 행사의 추진 본부가 된 굿모닝컨설팅에는 마침 휘문고교 산행회 총무인 황팀장, 고문회(고대문과대 등산회) 총무인 이팀장이 있어 등산 코스 선정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용산, 목동, 성남, 영등포의 중간 지점에 있는 산은 관악산과 청계산이었고 시간적으로 낮 12시에 만나 쉽게 할 수 있는 산으로 청계산이 스크린되었다.
신분당선 청계산입구역에 내리면 청계산 원터골 입구로 등산이 가능하다는 황팀장의 코치를 받아 12시에 신분당선 청계산입구역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난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정확히 12시에 도착할 수 있게끔 집을 나와 2호선을 타고 강남역에 내려 신분당선을 탔다. 가는 도중 재철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 도착했으니 빨리 오라는 전화였다.
청계산입구역 지하역사에서 4형제가 만났다. 재균형님이 태어난 순으로 오늘 도착했다고 한다. 큰형님은 4호선 신용산역에서 출발하여 청계산입구역까지 오려고 하니 중간 환승이 2번 있어서 강남역까지 차편을 이용해서 왔는데, 의외로 차가 잘 빠져 강남역에 일찍 도착하였고 약속 장소에 30분전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도착시간이 태어난 순으로 되었다는 건 행사에 임하는 마음자세 순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작년부터 등산을 시작한 큰형님은 당장 히말라야를 올라도 될 듯한 등산복과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재철형님은 장비의 성능이 등산 실력이라며, 가볍지만 따뜻한 옷, 방수가 잘 되고 편안한 신발, 방풍이 완벽한 바람막이 외투, 자외선을 막을 선글라스 등이 겨울 등산의 필수품이라고 한다.
등산의 프로인 둘째형님, 셋째형님, 초보지만 장비만은 히말라야에 당장 올라도 될 듯한 큰형님에 비해 나의 등산복과 장비는 동네 뒷산용이었다. 시간되면 나도 당장 히말라야 등반이 가능할 수 있게끔 장비를 갖추어야겠다.
청계산은 신분당선이 개통되기 전에는 전철역에서 바로 연결되는 코스가 없어 아쉬운 점이 있었다. 원터골 입구로 오르기 위해서는 양재역에서 버스를 타야만 되었지만, 신분당선 청계산입구역에 내려 100m 정도 걸으니 원터골 입구가 나왔다.
서울 웬만한 지하철역은 등산코스와 연결되어 있다. 북한산, 관악산 외에도 동네 뒷산마다 지자체에서 경쟁적으로 둘레길, 산행길을 만들어 등산에 관심이 있는 서울시민이면 누구나 자기 집 인근에 나만의 코스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단, 청계산만은 바로 전철역과 연계되지 못했는데 신분당선의 개통으로 서울의 거의 대부분 산은 전철 산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지난 여름 설악산 대청봉 산행 이후, 4형제가 다 같이 만난 건 처음이었고 산행도 처음이었다. 재균형님 외 세명의 형제들은 겨울 추위 대비용 비계를 약간씩 가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특히, 재철형님은 돌사진에 나오는 퉁퉁한 모습을 닮아가고 있었다. 형님은 3개월 전에 담배를 끊었더니 식욕이 늘면서 체중이 불었다고 한다. 담배가 다이어트 측면에서는 효용이 있는 기호품이라는 것이 확인된다.
재철형님은 고 2때부터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피우는 형님의 모습이 불량스러워 재균형님께 재철형님의 흡연사실을 일러 주었던 일이 생각난다.
그 후 39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한두 갑씩 피웠던 애연가가 담배를 끊었다니 대단한 결심을 한 셈인데, 담배를 갑자기 끊게 된 이유를 물으니 그냥 갑자기 담배 피운다는 것이 귀찮아져서 끊었다고 한다. 재철형님다운 대답이다. 재철형님은 귀찮은 것을 제일 싫어한다.
재철형님을 마지막으로 우리 4형제는 모두 담배를 끊었다. 갑자기 아버지 말씀이 생각난다. “술이든 담배든 세월이 가면 저절로 끊게 되는 것인 만큼 인위적으로 끊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아버지 지론이셨다.
일요일 정오가 지난 시간이어서 등산객보다 하산객이 많았다. 서울 근교 산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휴일에는 산이 만원이다.
줄 서 내려오고, 줄 서 올라간다. 겨울 가뭄으로 산에는 눈이 없었고, 등산로에는 먼지가 많았다. 산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기 보다는 등산로에 쌓인 황토 먼지를 마시는 기분이 된다.
큰형님은 연말에 과로하여 감기 기운이 있었는데, 큰형님의 절친인 병식형님과 병식형님이 자랑하는 노량진역에서 내려 국립현충원을 순환하는 등산을 연초에 했더니 감기가 심해져 있는 상태라고 한다.
큰형님은 감기로 등산 못할 정도는 아직 아니라고 한다. 감기만 걸리면 지레 겁을 먹는 나로서는 형님의 기개가 멋있게 느껴졌다. 물론 큰형님은 기초 체력이 좋다. 모든 힘의 원천이라는 허벅지 둘레는 형제 중 아직도 제일 굵다. 재철형님의 분석을 덧붙이면 허벅지 근육은 정화작용을 하는 기능이 있어 지구력과 회복력의 원천이 된다고 한다.
등산로 초입에는 등산복 매장과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노점에서 파는 번데기 냄새에 이기지 못해 재철형님에게 번데기를 먹자고 하니 번데기를 사 준다. 번데기를 사면서 정상주 안주감으로 조미 오징어 한마리를 샀다.
재균형님과 재철형님은 번데기를 먹지 않고 큰형님과 나만 번데기를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번데기 맛이 괜찮다.
등산이 시작되었다. 원터골로 오르는 청계산코스 초입은 동네 뒷산을 연상시킨다. 편안한 길을 얼마 걷지 않아 경사도가 제법되는 산길로 접어 들었다. 이어서 청계산 특유의 나무계단이 나온다.
나무계단을 오르자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특히, 큰형님은 설악산 대청봉을 오를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스님의 목탁소리가 들린다. 청계산 돌문바위다. 어느 날부터 돌문바위 앞에서 탁발 스님이 보았는데 매번 청계산에 올 때마다 스님을 보게 되니 이젠 돌문바위와 스님이 일체가 되는 듯하다.
재철형님을 선두로 돌문을 세번 돌았다. 탑돌이가 아니라 돌돌이라고 할까?
매봉을 지나 오뎅을 파는 노점에서 오뎅 꼬치를 하나씩 들었다. 노점 근처 평지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였다. 4형제 등산에서 빠지지 않는 큰형님의 양주가 오늘도 배낭에서 나온다.
재균형님은 모듬 과일, 재철형님은 컵라면, 나는 양갱을 꺼냈다. 오뎅을 안주로 양주를 한잔씩 하였고, 컵라면을 한입씩 먹고, 과일을 먹었다. 청계산 정상의 냉기가 한잔의 양주에 온기로 바뀌는 듯하다.
만경대, 혈읍재를 지나 이수봉을 앞 두고 더 갈 것인지 옛골로 내려 갈 것인지 4명이 모여 잠시 고민을 하다 짧은 겨울 해를 감안하여 옛골로 하산하기로 하였다.
옛골로 내려 오면서 재철형님이 여름철 옛골 계곡에서 목욕하기 좋은 곳을 알려 준다. 저기 있는 다리 밑은 은폐는 잘 되나 모기가 많아 목욕하기 좋지 않고, 저긴 사람이 많고, 가장 좋은 곳 한 곳을 알려 준다. 여름 날 청계산 옛골로 하산하게 되면 목욕을 한번 해 봐야겠다.
청계산 정상에는 군사기지(미군통신기지로 알고 있음)가 있어 차량 통행이 가능하게 콘크리트 포장길이 구비구비 되어 있었다. 포장도로를 가로 지르는 지름길이 다람쥐 길처럼 되어 있었는데 재철형님은 잘 찾아 내려갔다.
텃밭이 많은 지역으로 나왔다. 텃밭을 보니 몇 년전 고교 동문들과 옛골로 청계산을 오른 기억이 난다. 그 땐 노래를 참 많이 불렀지.
옛골 입구 식당가를 거쳐 지나가며 큰형님이 “저 두부집이 잘하는데 오늘 사람이 너무 많다.” 고 한다. 청계산 등산을 몇 번 해 보지 않았을 것 같은 큰형님이 맛집을 기억하는 것이 신기하다.
큰형님이 다른 식당을 찾으려고 기억을 더듬자 재철형님이 그 집은 철거되었다고 말해 준다.
큰길에 근접한 규모가 있는 오리고기 집을 택해 들어 갔다. 훈제오리고기와 막걸리를 주문하였다. 큰형님이 소주를 추가 주문한다.
모스크바에도 막걸리 바람이 불었는데, 장수막걸리와 같은 생탁이 오지 못하고 팩막걸리가 오는 관계로 맛이 덜했다고 한다.
누군가가 개발한 막걸리에 보드카를 섞으니 먹을 만 하였고 이젠 막걸리에 보드카를 섞어 마시는 것이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큰형님은 보드카 대신 막걸리에 소주를 타 마셨고, 동생들에게도 권한다. 같이 한잔을 하였고, 소주파인 재철형님은 첫잔 이후에는 소주로 전환하였다.
근 5개월 만에 만남이어서 할 말이 서로 많았다. 당장 며칠 뒤에 있는 설에는 큰형님과 나는 부산에 갈 것이라고 했지만, 재균형님은 설 이후에 갈 것이라고 한다. 재철형님은 표를 구하지 못해 못 갈 것 같다고 말하자 큰형님은 표를 구해 줄 테니 내려 오라고 한다.
의령 산소 명의가 아직 아버지 명의로 되어 있어 큰형님 앞으로 명의변경하기로 하였고, 대연동 비치아파트에 사시는 어머니 집은 좁은 것도 있지만 계단이 많아(층간에 엘리베이터가 서는 구조임) 새 아파트를 알아 보기로 하였다.
설악산 대청봉이 우리 형제들에게는 메기 역할을 하였는지 메기가 없는 편안함이 체중 증가를 가져 왔다고 재균형님이 말한다. 다시 메기를 들여 몸에 긴장감을 주고, 긴장감을 주기에는 등산이 최고라며 지리산 등반을 제의한다.
재철형님도 선뜻 동의하여 3월 마지막주 금요일에 지리산 2박3일 등산이 결정되었다.
큰형님의 감기기운은 하산길에서 심해져 듣기 거북할 정도의 가래 낀 음성이었으나, 몇 잔의 술이 감기를 날려 보냈는지 정상화된다.
막걸리 각 1병, 소주 각 1병 정도를 마셨고, 마무리로 묵밥과 국밥을 시켜 먹었다.
식당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우리 눈 앞에서 버스가 떠난다. 길 건너 대기하고 있는 택시를 탔다. 택시에서 정담이 끝을 내지 못하고, 양재역 인근에서 간단히 맥주 한잔만 하기로 하였다.
맥주집에서 개인별 취향에 따라 맥주를 주문했다. 밀러, 아사히, 호가든, 기네스 맥주 등 4종류였다. 기네스는 맛이 특이하여 다르지만 다른 맥주는 맛 차이가 별로 없다고 내가 말하자, 맛 차이가 분명히 있다고 형님 세분이 말한다.
그럼, 맞추기를 하자고 하여 큰형님의 등산 빵모자를 눈가리개로 사용하여 맥주 맛 시음대회가 벌어졌다.
먼저 시음 순서를 정하였고, 맛을 말할 때 한번 호명한 맥주는 다시 호명할 수 없다는 규칙을 정했다. 내깃돈으로 각자 만원씩 걸었다.
먼저, 돌아가면서 4가지 맥주 맛을 시음하였다. 밀러와 아사히 맛이 구분하기 어려웠고, 호가든은 독특한 향이 있었고, 기네스는 다른 맥주 맛과 확연히 구분되었다.
내가 1번이었다. 아사히와 밀러는 구분하였고 기네스를 호가든이라 하여 2가지 맞춘 것으로 되었다. 내가 시음할 때 생긴 문제를 감안하여 4가지 맥주를 다 마신 후에 진위여부를 말해 주기로 하였다.
큰형님이 2번이었다. 4가지 맥주 중 어느 것을 먼저 주느냐 도 문제의 난이도에 영향을 주는 건이어서 나머지 세명이 서로 조용히 협의를 하면서 문제의 맥주를 건넸다. 큰형님은 아사히와 밀러에서 틀렸고 호가든과 기네스를 맞추어 2가지 맞춘 것으로 되었다.
3번인 재철형님도 큰형님과 같이 호가든과 기네스를 맞추어 2가지 맞춘 것으로 되었고, 마지막은 재균형님의 순서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맛이 강한 기네스를 먼저 건넸다. 재균형님은 호가든이라고 하였고, 호가든은 기네스, 밀러와 아사히에서도 마찬가지로 맞추지 못해 한가지도 맞추지 못한 것으로 되었다.
평소 절대미각을 자랑하던 재균형님이 의외로 한 개로 맞추지 못했다. 재균형님은 평소 나와 시합을 할 때 참이슬과 처음처럼도 맞추고, 하이트와 카스 맛도 구분했었다.
동률 1위가 3명이었지만, 동점일 경우 연소자가 합격한다는 일반 시험원칙을 적용하여 내가 1위가 되어 상금을 받았다.
긴장된 시간은 끝났고, 맥주를 주문하여 양껏 시원하게 마셨다. 가족별 음주 대항전이 있다면 우리 형제도 할 만한 게임이 될 듯하다. 제법 많이 마셨다.
재철형님은 양재역 건너편으로 갔고, 큰형님은 양재역에서 3호선으로, 재균형님, 나는 양재역에서 신분당으로 각자의 길로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