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에 슬픔과 기쁨이, 이 둘이 살고 있는데 번갈아 집을 지킨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집에 오막살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가을에는 찬바람이 불어 쓸쓸한 마음이 일어나기도 하니 세상의 모든 집이 오두막집으로 보이기도 한다.
나도 시월의 오두막에 살짝 가서 보았다. 조랑조랑 매달린 감이 발그스름하게 익고 감잎이 물들고, 석류도 익어 껍질이 쩍 갈라져 있었다. 툇마루에는 따서 널어놓은 고추가 붉고, 싸릿개비로 만든 둥글넓적한 채반에는 갓 딴 팥이 마르고 있었다. 댓돌에는 벗어놓은 신발이 가지런했다. 장화에는 흙이 묻어 있었다. 작은 마당은 산그늘에 덮였고,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초라한 집이었지만 슬픔이 집을 비운 사이에 화색이 도는 기쁨과 고요와 평화가 시월의 집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가을은 더 깊은 오솔길로 걸어서 들어가고 있었다.
✵강은교(1945- ) 시인은 함경남도 홍원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경기여자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김기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동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동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1968년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순례자의 잠〉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75년 제2회 「한국문학상」, 1992년 제37회 「현대문학상」, 2006년 제18회 「정지용 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은 《허무집》《빈자일기》《소리집》《바람노래》《오늘도 너를 기다린다》《벽속의 편지》《어느 별에서의 하루》《등불 하나가 걸어오네》《시간은 주머니에 은빛 별 하나 넣고 다녔다》《초록 거미의 사랑》《벽 속의 편지》, 시선집은 《풀잎》《붉은 강》《우리가 물이 되어》《그대는 깊디 깊은 강》, 산문집은 《그물 사이로》《추억제》《도시의 아이들》《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누가 풀잎으로 다시 눈뜨랴》《잠들면서 참으로 잠들지 못하면서》《허무 수첩》 등이 있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조선일보 2024년 10월 14일(월)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문태준 시인)〉, 《Daum, Naver 지식백과》/ 사진: 이영일 ∙ 고앵자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