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댓글정독하지 못하고 제목부터 대충 훑어보았습니다. 제목들로만 보아도 매우 훌륭한 글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이 문제는 본인들이 내면적으로 씨름하면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실제적으로, 실질적으로 깨달아야만한다는데 있다고 생각됩니다. 나중에 다시 정독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다시 대충만 훑어보았습니다. 구원과 거듭남이라는 부분들에 있어서는 상당히 많은 말씀들을 망라하고 강조한 설명들이 돋보이고 좋았다고 생각됩니다. 차츰 더 나아가서 구원파에 대한 말이 나오는데 그런 경우 저는 각자가 다른 측면에서 말하기 때문에 서로 대화가 잘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다음으로 몇가지 교리나 이론상으로 분별이 필요하고 토론과 검증이 필요한 해석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쓰신 분이 여기에 계시지 않는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거론할 수도 없는 문제이므로 나중에 행여 기회가 되면 견해차를 좁히는 대화를 할수 있을지 모르겠고 뒤로 미루는 것이 나을 것같습니다.
그것들을 몇가지만 지적한다면, 이 글을 쓰신 이정규 목사는 장로교 목사로 처음부터 느껴졌고 총신대를 나오신 분으로 보입니다. 예컨대 침례 대신 세례를 사용한 것 정도는 쉽게 이해할 부분으로 넘어갈 것입니다. 또한 칼빈주의의 TULIP 중 완전부패로 인간의 거듭나기 이전의 상태를 말하는데 아주 죽어있는 상태이므로 성령을 받기 위해 기도하거나 성경을 읽는 일 같은 것은 조금도 행하려하지 말고 버려야 한다는 말로 들립니다.
< <그러므로 누구든지 거듭나기를 원한다면 분명히 하나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자기 자신이 열심히 기도 하며 성경을 읽고 전도하는 일등 손톱만한일이라고 자신이 한일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버려야 한다>>
예컨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도 할일이 없습니다. 오직 주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이루신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가장 쉬운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여러가지 생각들이 있기에 그 말을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런 까닭에 자꾸만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로마서 10장 17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즉각 듣고 거듭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금방 거듭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세상 신이 복음의 광채가 비추이지 못하도록 심령을 어둡게 만들어놓고 있기에 그 혼미함을 깨뜨리기 위해 말씀을
듣고 과연 그러한가 하여 자꾸만 성경 말씀을 상고할때( 행 17:11) 듣고 믿는 사람이 많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분이 언급한 벧전 4장 6절 죽은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말씀을 구약시대에 죽었던 성도들은 모두 죄인들로 남아 있었는데 예수님이 죽으신 다음에 3일 동안 옥에 내려가서 그들에게 전도하였다고 합니다. 이 부분과 벧전 3장 19절도 다시 검토해보아야 할 대목입니다.
벧전 3장 19절은 노아 홍수시대 불신자들에 대한 말씀으로 해석됩니다만, 이분은 구약시대의 이사야, 다니엘, 사무엘, 같은 구약 성도들도 죄사함을 받지 못하고 죄인으로 있다가 예수님때에 죄사함을 받은 것으로 해석하고 계십니다.
<< 베드로전서 4장6절 말씀은 예수님 오시기전에 죽은 구약성도들에게 들려지는 복음의 말씀입니다.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벧전4:6) 이 말씀은 구약성도들에게는 없어서는 아니 되는 대단히 중요 한 구원을 위한 복음의 말씀입니다. 구약성도들은 비로소 이 날, 즉 예수님이 모든 인류의 죄를 위해 대속 의 죽음을 죽으시고 피를 뿌리셨던 십자가 희생과 죽음의 사건 그날에 드디어 영원한 속죄피로 죄에서 해 방되는 구원을 맛보았던 것입니다>> <<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실 때까지 영적으로 지옥에까지 내려가셨던 것입니다. 모든 범죄자는 죽어야 하고 또 지옥에 가야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 구약 성도들은 짐승의 피로 죄 사함을 약속받은 자들일지라도 실제로 온전한 죄구속이 될 수 없었기 때문에(히10:1,4,11) 예수님이 오 시기 전까지는 그 상태가 죄인의 신분임으로 형 집행 확정전의 감옥, 즉 구치소와 같은 옥에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벧전3:19). 구약 사람이라도 짐승의 피로 죄 사함을 믿지 못한 사람들과 이방 불신죄인들은 구치소가 아닌, 영원한 형벌장소인 교도소에 보내진 것입니다.>>
이 부분도 성경적으로 보다 심층적인 검토가 불가피한부분입니다.
이 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다음 3일 동안에 지옥에 내려가셨다고 주장하시는데, 로마 카톨릭에서 그들의 그리스도는 루시퍼의 아들로서 혹은
루시퍼 자신으로서 인페르노 즉 지옥에 내려가셨다가 다시 올라왔다고 해석하는 것과 동일한 해석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이 강도에게 <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낙원과 지옥이 같은 장소라면 그 해석이 맞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낙원과 지옥이 다르다면 그 해석은 틀린 것입니다.
벧전 3장 19절은 모든 구약성도도 아니고 노아 홍수시의 불신자들이며, 예수님은 그곳으로 들어가셨다는 말이 아니라 그들에 대고 선포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부분도 교제가 더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이 분의 글은 제시 펜 루이스, 오스왈드 스미스, 피터 럭크만, 워치만 니, 알프레드 깁스 ( 형제모임), 허윤욱(형제모임), 존 라이스, 엠 알 디한 등의 글들을 많이 참조하였다고 합니다만, 그들 모두는 오늘날까지 신약시대 전반에 걸쳐 있는 율법무시 복음 혹은 율법무시 믿음 중심의 그리스도인들을 망라한 것으로 분별됩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제가 짧은 시간에 평하기 어려울 것이며 이런 부분에 의문을 느끼시는 분들께서는 이 부분에 관해서는 좀 시간을 갖고 이 카페에 올려져 있는 글들을 읽어보시면 좋을 것같습니다. 우선 맨 처음 읽어보실 글은 < 교통법규와 범칙금> 에 관한 글이 작년에 올려진 글이 있습니다.
<< 죄와 사망의 법은 율법을 말하는데(롬8:2) 율법에는 은혜(용서)와 생명이 없기에 죄를 깨닫게 하여(롬 3:20)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에 이르게 하므로(롬5:12) 결국 생명을 죽이는 사망의 법이 되는 것입니다.(롬 7:10,약1:15,롬6:23,롬4:15) >>
이 분은 로마서 8장 2절에서 말하는 죄와 사망의 법이 바로 율법을 말하는 줄로 알고 해석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의 8장 4절에서는 성령께서 < 율법의 의를 이루어 가신다> 고 합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는 < 죄와 사망의 법의 의를 이루어가신다> 는 말씀입니까? 앞서서 7장 12절, 14절은 율법과 계명 혹은 율법이나 계명이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며, 영적이라고 말합니다.
13절은 죄가 사망을 야기시키는데 선한 그것 때문에 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은 다른 한 측면인데, 그 반대 측면에 죄가 있어서 우리안에서 사망을 야기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7절에서 분명하게 < 율법이 죄냐?> 천만에! 그럴수 없느니라, 하고 부인합니다. 그런데 이분은 율법이 죄와 사망의 법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모든 해석이 그릇된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바로 이 카페는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매우 세미하게 그리고 정교하게 율법의 기능과 우리가 율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의 의미를 올바르게 해석하여 오직
성령님만을 좇는데 더욱 기여할 수 있는 해석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관해서는 저는 많은 세월을 허송했고 더 증명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바이므로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을 이해할 것입니다. 다만 그점에 있어서 이미 논의된 부분들에 대해서는 먼저 읽어보시고 제가 말하는 바가 아직 거듭나기 전에 율법을 좇아야 한다거나 거듭난 이후에 율법을 지켜야 구원이 유지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율법을 지켜서 구원얻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쉐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히 11:26, 요 5:46)
이런 부분이 오해되다 보면 구약시대의 성도들은 예수님 십자가 때까지 죄인들로 남아 있었으며, 그리하여 옥에 갇혀 있었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에스겔이 옥에 갇혀 아직 죄사함을 받지 못한 영으로 성경을 썼겠습니까? 그들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었습니다( 벧전 1:11) 이 부분에 관해서도 < 구약성도들의 거듭남> 이라는 글을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입니다. 지금은 이 정도만 말하겠습니다.
@어린양율법을 죄와 사망의 법으로 오해하는 것과 율법을 세상의 찬한 초등학문이라고 오해하는 것이 대표적인 반율법주의 오해라고 믿어집니다. 세상의 천한 초등학문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다음, 그것을 지키지 못했다고 이스라엘을 쫓아내고 정죄한 분이 하나님이라면 아주 잘못된 분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세상의 초등학문과 율법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억울한 누명을 씌워서는 안될 것입니다.
첫댓글 정독하지 못하고 제목부터 대충 훑어보았습니다. 제목들로만 보아도 매우 훌륭한 글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이 문제는 본인들이 내면적으로 씨름하면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실제적으로, 실질적으로 깨달아야만한다는데 있다고 생각됩니다. 나중에 다시 정독해보고 싶습니다.
그렇죠~
제아무리 좋은 복음의 글이라도 글을 읽는 사람의 마음이 준비가 되어져 있지 않았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또 성령님의 도움이 없으면 본 내용을 깨달아 알수가 없으며 여타의 잡지와 다를바 없을 것입니다.
제가 다시 대충만 훑어보았습니다. 구원과 거듭남이라는 부분들에 있어서는 상당히 많은 말씀들을 망라하고 강조한 설명들이 돋보이고 좋았다고 생각됩니다. 차츰 더 나아가서 구원파에 대한 말이 나오는데 그런 경우 저는 각자가 다른 측면에서 말하기 때문에 서로 대화가 잘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다음으로 몇가지 교리나 이론상으로 분별이 필요하고 토론과 검증이 필요한 해석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쓰신 분이 여기에 계시지 않는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거론할 수도 없는 문제이므로 나중에 행여 기회가 되면 견해차를 좁히는 대화를 할수 있을지 모르겠고 뒤로 미루는 것이 나을 것같습니다.
그것들을 몇가지만 지적한다면, 이 글을 쓰신 이정규 목사는 장로교 목사로 처음부터 느껴졌고 총신대를 나오신 분으로 보입니다. 예컨대 침례 대신 세례를 사용한 것 정도는 쉽게 이해할 부분으로 넘어갈 것입니다. 또한 칼빈주의의 TULIP 중 완전부패로 인간의 거듭나기 이전의 상태를 말하는데 아주 죽어있는 상태이므로 성령을 받기 위해 기도하거나 성경을 읽는 일 같은 것은 조금도 행하려하지 말고 버려야 한다는 말로 들립니다.
< <그러므로 누구든지 거듭나기를 원한다면 분명히 하나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자기 자신이 열심히 기도
하며 성경을 읽고 전도하는 일등 손톱만한일이라고 자신이 한일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버려야 한다>>
예컨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도 할일이 없습니다. 오직 주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이루신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가장 쉬운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여러가지 생각들이 있기에 그 말을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런 까닭에 자꾸만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로마서 10장 17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즉각 듣고 거듭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금방 거듭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세상 신이 복음의 광채가 비추이지 못하도록 심령을 어둡게 만들어놓고 있기에 그 혼미함을 깨뜨리기 위해 말씀을
듣고 과연 그러한가 하여 자꾸만 성경 말씀을 상고할때( 행 17:11) 듣고 믿는 사람이 많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분이 언급한 벧전 4장 6절 죽은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말씀을 구약시대에 죽었던 성도들은 모두 죄인들로 남아 있었는데 예수님이 죽으신 다음에 3일 동안 옥에 내려가서 그들에게 전도하였다고 합니다. 이 부분과 벧전 3장 19절도 다시 검토해보아야 할 대목입니다.
벧전 3장 19절은 노아 홍수시대 불신자들에 대한 말씀으로 해석됩니다만, 이분은 구약시대의 이사야, 다니엘, 사무엘, 같은 구약 성도들도 죄사함을 받지 못하고 죄인으로 있다가 예수님때에 죄사함을 받은 것으로 해석하고 계십니다.
<< 베드로전서 4장6절 말씀은 예수님 오시기전에 죽은 구약성도들에게 들려지는 복음의 말씀입니다.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벧전4:6) 이 말씀은 구약성도들에게는 없어서는 아니 되는 대단히 중요
한 구원을 위한 복음의 말씀입니다. 구약성도들은 비로소 이 날, 즉 예수님이 모든 인류의 죄를 위해 대속
의 죽음을 죽으시고 피를 뿌리셨던 십자가 희생과 죽음의 사건 그날에 드디어 영원한 속죄피로 죄에서 해
방되는 구원을 맛보았던 것입니다>>
<<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실 때까지 영적으로 지옥에까지 내려가셨던 것입니다. 모든 범죄자는
죽어야 하고 또 지옥에 가야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 구약 성도들은 짐승의 피로
죄 사함을 약속받은 자들일지라도 실제로 온전한 죄구속이 될 수 없었기 때문에(히10:1,4,11) 예수님이 오
시기 전까지는 그 상태가 죄인의 신분임으로 형 집행 확정전의 감옥, 즉 구치소와 같은 옥에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벧전3:19). 구약 사람이라도 짐승의 피로 죄 사함을 믿지 못한 사람들과 이방 불신죄인들은
구치소가 아닌, 영원한 형벌장소인 교도소에 보내진 것입니다.>>
이 부분도 성경적으로 보다 심층적인 검토가 불가피한부분입니다.
이 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다음 3일 동안에 지옥에 내려가셨다고 주장하시는데, 로마 카톨릭에서 그들의 그리스도는 루시퍼의 아들로서 혹은
루시퍼 자신으로서 인페르노 즉 지옥에 내려가셨다가 다시 올라왔다고 해석하는 것과 동일한 해석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이 강도에게 <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낙원과 지옥이 같은 장소라면 그 해석이 맞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낙원과 지옥이 다르다면 그 해석은 틀린 것입니다.
벧전 3장 19절은 모든 구약성도도 아니고 노아 홍수시의 불신자들이며, 예수님은 그곳으로 들어가셨다는 말이 아니라 그들에 대고 선포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부분도 교제가 더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이 분의 글은 제시 펜 루이스, 오스왈드 스미스, 피터 럭크만, 워치만 니, 알프레드 깁스 ( 형제모임), 허윤욱(형제모임), 존 라이스, 엠 알 디한 등의 글들을 많이 참조하였다고 합니다만, 그들 모두는 오늘날까지 신약시대 전반에 걸쳐 있는 율법무시 복음 혹은 율법무시 믿음 중심의 그리스도인들을 망라한 것으로 분별됩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제가 짧은 시간에 평하기 어려울 것이며 이런 부분에 의문을 느끼시는 분들께서는 이 부분에 관해서는 좀 시간을 갖고 이 카페에 올려져 있는 글들을 읽어보시면 좋을 것같습니다. 우선 맨 처음 읽어보실 글은
< 교통법규와 범칙금> 에 관한 글이 작년에 올려진 글이 있습니다.
<< 죄와 사망의 법은 율법을 말하는데(롬8:2) 율법에는 은혜(용서)와 생명이 없기에 죄를 깨닫게 하여(롬
3:20)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에 이르게 하므로(롬5:12) 결국 생명을 죽이는 사망의 법이 되는 것입니다.(롬
7:10,약1:15,롬6:23,롬4:15) >>
이 분은 로마서 8장 2절에서 말하는 죄와 사망의 법이 바로 율법을 말하는 줄로 알고 해석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의 8장 4절에서는 성령께서 < 율법의 의를 이루어 가신다> 고 합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는 < 죄와 사망의 법의 의를 이루어가신다> 는 말씀입니까?
앞서서 7장 12절, 14절은 율법과 계명 혹은 율법이나 계명이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며, 영적이라고 말합니다.
죄와 사망의 법이 거룩하고 선하고 의롭고 영적입니까?
13절은 죄가 사망을 야기시키는데 선한 그것 때문에 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은 다른 한 측면인데, 그 반대 측면에 죄가 있어서 우리안에서 사망을 야기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7절에서 분명하게 < 율법이 죄냐?> 천만에! 그럴수 없느니라, 하고 부인합니다. 그런데 이분은 율법이 죄와 사망의 법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모든 해석이 그릇된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바로 이 카페는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매우 세미하게 그리고 정교하게 율법의 기능과 우리가 율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의 의미를 올바르게 해석하여 오직
성령님만을 좇는데 더욱 기여할 수 있는 해석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관해서는 저는 많은 세월을 허송했고 더 증명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바이므로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을 이해할 것입니다. 다만 그점에 있어서 이미 논의된 부분들에 대해서는 먼저 읽어보시고 제가 말하는 바가 아직 거듭나기 전에 율법을 좇아야 한다거나 거듭난 이후에 율법을 지켜야 구원이 유지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율법을 지켜서 구원얻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쉐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히 11:26, 요 5:46)
이런 부분이 오해되다 보면 구약시대의 성도들은 예수님 십자가 때까지 죄인들로 남아 있었으며, 그리하여 옥에 갇혀 있었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에스겔이 옥에 갇혀 아직 죄사함을 받지 못한 영으로 성경을 썼겠습니까?
그들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었습니다( 벧전 1:11) 이 부분에 관해서도 < 구약성도들의 거듭남> 이라는 글을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입니다. 지금은 이 정도만 말하겠습니다.
@하토브 저는 너무 길어서 겁을 먹고 아예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하토브님의 논평을 읽어보니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롬 8:2의 죄와 사망의 법이 율법이라고 한 것은 명백한
오류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어린양 율법을 죄와 사망의 법으로 오해하는 것과 율법을 세상의 찬한 초등학문이라고 오해하는 것이 대표적인 반율법주의 오해라고 믿어집니다.
세상의 천한 초등학문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다음, 그것을 지키지 못했다고 이스라엘을 쫓아내고 정죄한 분이 하나님이라면 아주 잘못된 분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세상의 초등학문과 율법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억울한 누명을 씌워서는 안될 것입니다.